114화. 괴구리 (3)
유지한 파티는 며칠에 걸쳐 생태공원을 재방문하며 사냥을 이어 나갔다.
사냥 방식은 첫 날과 같았다.
마석을 먹인 커다란 애벌레를 미끼로 하여 괴구리를 물속에서 끌어올린다.
“월척이요!”
다른 파티에서 물속에 직접 들어가거나 분주히 움직이는 때.
유지한은 낚시대를 거치대에 올려놓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피크닉을 온 것마냥 여유마저 느껴지는 사냥이었다.
“저 사람들 뭐야?”
“낚시로 괴구리를 낚는다는데?”
주변에서는 낚시중인 그들을 보고 수군거렸다.
몬스터를 낚시로 낚는다는 게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근처에서 그들을 직접 지켜본 파티들은 그 특이한 방식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알 수 있었다.
“그거 어떻게 하는 거죠?”
“저희도 알려 주세요!”
결국 다른 영웅들은 유지한 파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자기들도 같은 방식을 사용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곤충계 몬스터의 유충을 가져오셔야 하는데…….”
“몬스터로 몬스터를 잡는다고요?”
“예. 영웅부에 허락도 받으셔야 해요.”
유지한은 쏟아지는 무수한 요청들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알고 보면 딱히 특별한 방법도 아니고, 주변에 감출만큼 대단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잘 안되는 거 같은데…….”
“생각보다 어렵네요.”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사냥법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은 늘어났다.
그러자 유지한은 아예 그런 사람들을 한곳에 모아 놓고 차근차근 방식을 알려 주기도 했다.
“낚시 바늘에 걸린 마석을 지금보다 더 생동감 있게 흔들어야 합니다. 괴구리가 먹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로요.”
자신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공유하는 유지한.
열려 있는 그 모습에 다른 영웅들은 많은 감사를 표했다.
“이렇게 공짜로 알려 주셔도 되는 건가요?”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넷에 올려도 돼요?”
“예. 문제 없어요.”
이 새로운 사냥법은 모 영웅 커뮤니티에서 게시글로 작성되기도 했다.
그것이 정말로 가능한지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실제로 생태 공원에 있던 사람들은 효과를 봤다는 인증을 하기도 했다.
[asdasd : 이거 누가 알려 주셨다고요?]
[fire123 : 꿀잼 길드의 유지한 파티입니다.]
덕분에 커뮤니티에는 유지한 파티의 이름이 언급되는 일도 벌어졌다.
본인들이 모르는 사이에도 조금씩 이름이 퍼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생태 공원을 찾아온 날.
김시후는 저수지 근처에 자리잡은 영웅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다들 낚시대를 들고 있네요.”
이전보다 편하게 사냥하는 방법을 알아 버린 상황.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낚시대를 들고 있었다.
그중에 유지한 파티를 알아본 사람들은 꾸벅 인사를 해 오기도 했다.
“지한 씨가 만든 사냥법을 정리한 게시물이 인기 게시물까지 올라갔던데요?”
“그래요?”
민유리의 말에 유지한은 조금 흐뭇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낚시꾼이 되어 버린 듯한 광경.
뭐랄까, 새하얀 도화지 한장을 자신이 원하는 색으로 물들인 듯한 기분이었다.
누구는 MA처럼 위험한 장소가 영웅들의 낚시터로 변해 버렸다는 비난을 했지만.
그가 알 바는 아니었다.
“이러다 괜히 저희 몫이 줄어드는 건 아니에요?”
“괜찮아. 어제 보니까 제대로 낚는 파티는 절반도 안됐어.”
낚시줄을 통해 마석을 제어하는 일은 생각보다는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김시후처럼 마력 제어에 뛰어난 영웅이 없으면 미끼로 괴구리를 꼬드기는 건 상당한 훈련이 필요했다.
덕분에 마법사가 없는 파티는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해야 했다.
“우리는 힘들게 물속에 들어가서 사냥하고 있는데!”
“당신들이 던진 미끼 때문에 괴구리가 자꾸 도망가잖아!”
낚시 중인 사람들에게 소리치는 저 남자들처럼 말이다.
“어디서 이상한 놈이 들어와서는…….”
전사들만 모인 파티의 리더가 유지한을 째릿 노려봤다.
아주 불만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이 MA에서 그가 처음 낚시를 시도했다는 소문이 퍼진 탓이다.
‘어쩌라고.’
유지한은 그 시선을 가뿐히 무시했다.
불만이면 자기들도 따라하라지.
*****
풍덩!
유지한이 낚싯대를 휘두르자 완성된 미끼가 저수지 중앙에 떨어졌다.
바늘에 걸려 밖으로 빠져나온 괴구리에게는 민유리가 선공을 날리고, 유지한과 칠라는 그녀를 보조하면서 전투를 치른다.
며칠 간 반복한 이 과정을 통해서 작은 피해 하나 없이 괴구리를 잡아낼 수 있었다.
“껌이라도 씹으실래요?”
“좋죠.”
“앗, 저도요.”
김시후가 낚싯대를 잡고 있는 사이.
유지한은 민유리가 건넨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괴구리를 기다렸다.
그리고 약 6분쯤 흘렀을까.
“왔다.”
낚싯줄이 팽팽해지고, 낚싯대의 끝부분이 살짝 아래로 휘었다.
괴구리가 미끼를 문 것이었다.
휘리릭!
김시후는 릴을 감았다가 풀면서 양손으로 잡은 낚싯대를 잡아당겼다.
근 며칠간의 경험을 통해 낚시에 대한 노하우를 익힌 그였다.
“오오……! 이건 월척인데요.”
김시후는 조금 놀란 얼굴을 했다.
어제 마지막으로 잡았던 괴구리도 몸집이 꽤 큰 놈이었는데.
지금 미끼를 문 녀석의 힘은 그놈보다도 훨씬 강했다.
“도와줄까?”
“네!”
유지한은 김시후으로부터 낚싯대를 전달받았다.
끼이익…….
낚싯대를 잡아당기자 대가 점점 더 꺾였다.
마지막에는 낚싯대가 거의 C자 모양으로 휘어 버렸다.
‘이놈 봐라?’
미끼에 물린 녀석은 끝까지 거칠게 반항했다.
제법 묵직한 손맛.
김시후가 말한 대로 제대로 월척에 걸린 모양이었다.
“흐읍!”
결국 유지한은 낚싯대를 가능한 힘껏 잡아당겼다.
점점 괴구리가 딸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녀석이 수면 바로 아래까지 도달했을 때.
“응?”
“……?”
수면에 비친 괴구리를 발견한 모두가 눈가를 좁혔다.
몸집이 이상할 정도로 컸기 때문이었다.
푸확—!
마침내 물보라를 일으키며 저수지를 빠져나오는 괴구리였다.
그런데 녀석의 외형은 어제까지 사냥했던 금괴구리와는 달랐다.
몸집은 칠라보다도 더 크고, 색은 금괴구리보다 훨씬 탁했다.
게다가 피부 전체가 검은색의 무늬로 뒤덮여 있었다.
‘뭐지?’
‘괴구리는 맞는 거 같은데.’
민유리와 김시후가 녀석을 경계하는 사이.
유지한은 물 밖으로 나온 녀석의 정체를 알아챘다.
“저게 왜 여기 있지?”
“저게 뭔데요?”
“황소괴구리예요.”
“네?!”
민유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괴구리 중에서도 외래종에 해당하는 황소괴구리.
등급으로는 4급이 아니라 3급에 해당하는 녀석이었다.
“개굴! 개굴! 개굴!”
황소괴구리가 턱을 부풀릴 때마다 정말로 황소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몸집은 황소보다도 커서 더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울음소리였다.
입에 있던 바늘은 어느새 뱉어 버린 상태.
‘끊어졌나.’
자세히 보니 낚싯줄은 끊어져 있었다.
물 밖으로 나온 타이밍에 끊어진 모양이었다.
유지한은 앞으로 검을 겨누며 말했다.
“다들 조심해.”
황소괴구리의 먹성은 평범한 괴구리의 것을 뛰어 넘는다.
땅에 자라난 나무도 먹고, 딱딱한 돌도 먹어서 소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한 위장.
뭐든 입에 넣고 보는 녀석의 특성상 걸어다니는 인간 또한 하찮은 먹이 중 하나에 불과할 뿐.
조금 전에 낚싯대를 통해서 느꼈던 힘 또한 심상치 않았다.
“개굴!”
유지한이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은 순간.
그를 주시하고 있던 황소괴구리가 입을 벌렸다.
촤아악—!
녀석의 입에서 혀가 빠르게 튀어나왔다.
무려 사람 머리만 한 두께의 혀!
한 번 잡은 먹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오돌토돌한 돌기까지 돋아 있는 시뻘건 혀가 유지한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금괴구리의 혀보다도 훨씬 빠르게 느껴지는 공격이었다.
‘보였다.’
하지만 거기에 반응한 유지한은 날아오는 혀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슈왁!
황소괴구리의 혀를 잘라 버릴 기세로 휘두른 검.
그러나 날아가던 도중에 혀가 살짝 휘어 버린 덕분에 혀에 작은 상처가 나는 정도로 그쳤다.
3급 몬스터인 황소괴구리는 마력을 보유한 개체.
직선으로 혀를 뱉어내기만 하는 괴구리와 달리, 혀 전체를 둘러싼 마력으로 혀를 제어하는 것이었다.
“개구울—!”
뱉어낸 혀를 입 안으로 회수한 황소괴구리가 울부짖었다.
고막을 울리는 소음에 유지한은 표정을 살짝 찌푸렸다.
그때 준비를 마친 김시후는 녀석을 향해 지팡이를 뻗었다.
[파이어 돔]
화륵!
땅 위에 황소괴구리를 가두는 불의 반구가 생성되었다.
파이어 월보다 난이도가 높은 개량형 마법.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없도록 막아서는 것이었다.
“개굴?! 개굴!”
황소괴구리의 주위를 덮은 뜨거운 불길이 녀석의 몸을 달궜다.
항상 촉촉하게 유지되어야만 하는 피부가 빠르게 말라갔다.
그것은 피부로 호흡하는 녀석의 특성상 끔찍한 고통과도 같았다.
“개굴……!”
화끈거리는 열기가 피부는 물론이고 괴구리의 몸 속까지 침입을 시도했다.
결국 녀석은 불에 직접 닿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쏴요!”
그때 자세를 낮춘 채 마력 화살을 시위에 겨누고 있던 민유리가 잡아당기고 있던 시위를 놓았다.
허공에 떠오른 녀석을 향해 빠르게 날아가는 화살!
파바박!
유지한의 조언대로 화살촉 끝에 작은 갈고리를 매달아서 괴구리의 점액질에도 미끄러지지 않도록 만든 공격.
그렇게 정성을 기울인 3발의 화살은 다행히 빗나가지 않았다.
“개, 개굴!”
화살 모양을 이루던 마력은 곧 주위로 흩어졌다.
녀석의 몸에는 피가 쏟아지는 3개의 구멍만이 남았다.
피부는 불에 달궈지고 몸에는 슝슝 구멍이 뚫린 상황.
다시금 위로 뛰어오르려던 녀석은 이내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죽었군.’
가까이 다가간 유지한은 녀석의 죽음을 확인했다.
김시후는 그 사체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생각보단 별 거 없네요.”
“혀에만 잘 대처하면 크게 어려울 건 없어.”
황소괴구리에게 당한 영웅들 대부분은 자유롭게 휘어지는 혀를 막아 내지 못한 경우에 속한다.
유지한이 첫 공격을 막아 냈을 때부터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던 셈이었다.
반대로 공격을 막지 못했겠다면 아주 처참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3급 몬스터가 나오다니…….”
4급 MA으로 지정된 이 생태공원에서 3급 몬스터가 나왔다.
등급을 벗어난 몬스터의 발생.
이전에 겪은 것들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황소괴구리가 이제서야 발견됐다고.’
황소괴구리는 식탐이 매우 많은 성격이다.
며칠 간 미끼를 계속 던졌기에 반응이 오려면 진작에 왔어야 했거늘.
오늘에서야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에 유지한은 의문이 들었다.
게다가 금괴구리와 황소괴구리는 원래 서로 공존하지 않는다.
욕심이 큰 황소괴구리는 같은 몬스터인 금괴구리마저 잡아먹기 때문이었다.
“어? 누나. 저게 뭐죠?”
그때 김시후가 저수지를 가리켰다.
민유리는 눈을 좁히며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봤다.
저수지의 수면 전체가 조금 어두워져 있었다.
“……?”
그녀가 기억하기로 수면이 어두워지는 건 특정한 순간에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낚시 바늘에 걸린 괴구리가 수면 위로 빠져나오기 직전의 순간 말이다.
하지만 수면 전체가 저렇게 탁해지다니.
‘설마…….’
불길한 예상이 그녀의 전신을 뒤덮었다.
표정을 바짝 굳힌 민유리는 당장이라도 활을 쏠 수 있게끔 손에 마력 화살을 여럿 생성했다.
분위기를 감지한 나머지 파티원들도 무기를 들고 물가를 경계했다.
푸확! 푸확! 푸확!
곧 커다란 물보라와 함께 무언가가 단체로 하늘 높게 치솟았다.
그리고 잠시 후.
“개굴!”
“개굴!”
“개굴!”
“개굴개굴—!!”
하늘에서 황소괴구리의 비가 쏟아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