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괴구리 (2)
유지한은 쓰러진 여성을 비웃는 민유리의 태도를 보며 흠칫했다.
‘은근히 성깔이 있네.’
자신이나 김시후에게는 한 번도 보여 준 적이 없는 모습.
적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에게는 가차 없는 그녀였다.
“여기서 잠깐 있죠.”
유지한 파티는 잠시 동안 경찰과 자리에 함께했다.
IUPC 회원들은 계속해서 거친 말을 쏟아 냈지만 쉽사리 앞으로 달려들지는 못했다.
몸집이 큰 성인 남자를 한 손으로 가볍게 던져 버릴 수 있는 영웅들과 싸울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영웅들을 매번 무시하고 비난하면서도 영웅들이 가진 힘까지 무시하지는 못하는 그들이었다.
“더 뒤로 물러나세요!”
“싫어! 싫다고!”
공원 입구에서 벌어진 사태는 영웅부 소속 영웅들이 자리에 곧 도착함에 따라 빠르게 정리되었다.
이번 시위가 사전에 협의되지 않았던 탓에 그들의 도착이 늦은 것이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IUPC에게 끌려갔던 경찰은 유지한 파티를 향해 꾸벅 허리를 숙였다.
정말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던 상황에서 살아남은 그였다.
“어휴, 다친 것 좀 봐요…….”
“이, 이 정도는 끄떡없습니다!”
그의 터진 입술과 멍든 눈을 걱정스러운 얼굴로 살피던 민유리가 말했다.
“오늘 같은 시위가 많은 편인가요?”
“예예……. 예전보다는 더 심해진 감이 있습니다. 최근에 출동하는 날이 더 많아졌거든요.”
“크게 다치지 않기를 바랄게요.”
“걱정 감사합니다.”
대화를 마친 유지한 파티가 공원으로 입장하기 전.
김시후와 민유리는 IUPC 회원들이 모여 있는 쪽을 째릿 노려봤다.
“헉!”
그 시선을 직접적으로 받은 이들은 흠칫 놀란 표정이었다.
살기를 느꼈는지 크게 긴장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그만 무시하고 들어갑시다.”
유지한은 그런 파티원들을 달래며 안으로 진입했다.
오늘 MA에 방문한 본래 목적은 어디까지나 괴구리를 사냥하는 것이었기에.
‘서식지는 저쪽인가.’
입구 너머에는 작은 주차장과 더불어 공원의 광장 같은 것이 꾸며져 있었다.
유지한 파티는 광장에 놓인 팻말을 보며 금개구리 서식지를 향해 걸었다.
무성한 풀숲과 잘 꾸며진 흙길이 그들을 반겼다.
‘아직 전투가 심하게 일어나지는 않았나 본데.’
시민들이 산책할 수 있는 공간과 개구리의 서식지가 따로 나뉘어 있는 공원.
외관만 보면 평범한 공원처럼 멀쩡해 보였다.
조금 더 격렬한 전투가 치러졌다면 이렇게 평온한 모습을 유지하지는 못했으리라.
하지만 유지한 파티는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주변을 경계했다.
언제 어디서 적들이 나타날지 몰랐기에.
“저기 있네요.”
민유리가 멀리 떨어진 앞쪽을 가리켰다.
입구 쪽에 말라있던 땅과는 달리 축축하고 습기 가득한 흙바닥.
다른 영웅들이 그 근처를 돌아다니는 게 보였다.
“푸하! 이쪽에는 없어!”
“이쪽도!”
서식지에는 공원 면적의 절반을 넘게 덮을 정도로 커다란 저수지가 존재했다.
공원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몬스터의 등장 이후 저수지의 깊이가 이상할 정도로 깊어졌다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전신에 잠수복을 착용하고 산소통을 등에 짊어진 영웅들은 물속에 숨어 있는 괴구리를 찾기 위해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꽂았다! 끌어올려!”
어느 영웅이 손에 들고 있는 건 호수 밖으로 줄이 길게 연결된 작살.
물속으로 잠수한 그가 괴구리에게 그 작살을 꽂는 데 성공하면, 대기하고 있던 같은 파티의 영웅들은 작살에 꽂힌 괴구리를 물에서 끌어올린 뒤 사냥을 진행하는 식이었다.
이곳의 괴구리는 물속 깊이 숨어서 잘 나오려고 하지 않는 탓에 대부분이 그런 방식으로 사냥을 진행하고 있었다.
‘독을 푸는 건 불가능하고.’
몬스터가 물속에 숨어 있으니까 독을 풀자는 의견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은 본래 근처 시민들이 자주 들리던 생태공원인 데다가, 몬스터 외에 보호받아야 하는 다른 동식물들도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공원이 오염될 것을 고려하면 독을 사용하는 건 절대 불가능했다.
“여기면 되겠다.”
유지한은 사람이 별로 없는 저수지 바로 앞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어깨에 매고 있던 가방의 지퍼를 열었다.
구매 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새 것 같은 낚싯대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읏차.”
김시후는 칠라가 들고 있던 보따리를 유지한에게 건넸다.
사냥한 몬스터를 담을 예정이자 낚싯대에 사용할 미끼도 들어 있는 보따리였다.
“그것 좀 꺼내 줘.”
“네? 제가요?”
“너 아니면 누가해?”
“유리 누나가…….”
김시후는 도와 달라는 듯한 표정으로 민유리를 바라봤다.
그러나 그녀는 허공에서 투명해진 드론을 조종하는 척하며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으으…….”
결국 김시후는 무척 싫은 기색으로 보따리를 열어 재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몸집이 거의 사람 팔뚝만큼 커다란 애벌레들.
우화 과정을 거치면 5급 몬스터가 되지만, 연구를 위해 성장이 불가능하도록 개조된 연구용 몬스터였다.
“자, 먹여.”
낚시대를 점검하던 유지한은 김시후에게 손톱 크기의 최하급 마석들을 건넸다.
단돈 몇 천원으로도 구매할 수 있는 싸구려 마석이었다.
“에잇! 얌전히 먹어!”
김시후는 그것을 어떻게든 애벌레의 입으로 집어넣었다.
벌레들은 꿈틀거리며 반항했지만 영웅의 힘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그렇게 최하급 마석을 먹인 미끼들이 준비되었다.
‘몬스터로 몬스터를 사냥한다.’
예전부터 괴구리 사냥을 위해 낚시를 시도한 영웅들은 있었으나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녀석들이 평범한 미끼에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곤충계 몬스터의 유충을 미끼로 괴구리를 끌어올린다는 새로운 계획!
물속에 숨은 괴구리를 사냥하기 위해 유지한이 준비한 것이었다.
‘김현태가 나보고 미친놈이냐고 했었지.’
이건 김현태 파티에 있을 적에 처음 떠올려서 파티원들에게 제안했다가, 잠깐의 고민도 없이 바로 거부된 계획이기도 했다.
그렇게 다른 영웅들마저 미친놈 취급할만한 소리였지만.
——그걸 하시겠다고요? 진짜로? 리얼리?
이미 그는 양지철을 통해서 영웅부의 허가까지 따둔 상태였다.
몬스터로 분류되는 미끼를 MA에 반입하는 것도 덕분에 가능했다.
‘미끼를 바늘에 걸고…….’
유지한은 통통한 애벌레를 잡고 낚시 바늘에 꽂았다.
바늘에 꿰인 녀석이 꿈틀거리는 걸 본 김시후는 질색했다.
쉭!
저수지를 향해 힘차게 던져지는 미끼.
허공에서도 연신 꿈틀거리던 애벌레는 퐁당하고 물속으로 빠졌다.
“받아.”
“네.”
낚싯대를 물려받은 김시후는 낚싯줄 위에 손가락을 살포시 올렸다.
낚싯줄 또한 마력이 흐를 수 있게끔 마력 코팅이 되어 있는 특수한 물건이었다.
지이잉—
김시후가 낚싯줄에 마력을 흘려 넣었다.
그의 손에서 출력된 소량의 마력은 기다란 낚싯줄을 타고 빠르게 이동했고.
그 끝에 달린 바늘과 애벌레에게도 도달했다.
그러자 물 속의 애벌레는 물밖에 나와 있는 것처럼 활발하게 꿈틀거렸다.
‘마력을 이용해서 마석을 먹인 애벌레를 흔든다.’
최하급 마석은 세밀하게 다루기에는 좋지 못한 품질이지만.
그저 흔드는 정도로 사용하기에는 충분했다.
결과적으로 물속에 있는 괴구리가 아주 좋아하는 미끼가 탄생하는 것이다.
가만히 저수지를 지켜보던 민유리가 물었다.
“이게 진짜 통할까요?”
“아마도요?”
유지한은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계획만 세웠지 확신까지는 없었다.
만약 이게 실패한다면 여기서 다른 MA로 이동해야만 했다.
다른 파티처럼 잠수용 장비나 수중용 드론 따위를 챙겨온 것도 아니었으니까.
“어?”
그런데 김시후가 미끼를 흔들어 대던 그때였다.
낚싯대에서 느껴진 작은 진동에, 김시후는 퍼뜩 낚싯대를 위로 잡아당겼다.
어째 조금 전보다 낚싯대가 무겁게 느껴지고 있었다.
“이, 이거 어떻게 당겨요?”
“핸들을 돌려!”
김시후는 유지한의 지시에 따라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그에 따라 낚싯줄이 조금씩 팽팽해졌다.
바늘에 걸린 무언가가 거칠게 저항하는 것이었다.
“흐압!”
마법사라고는 하지만 김시후 또한 엄연한 영웅.
상당한 근력을 가진 그가 낚싯대를 힘껏 위로 잡아당겼다.
그럴수록 저수지 아래에 어두운 그림자가 지기 시작했다.
“왔다!”
그리고 마침내, 낚싯줄 끝에 걸린 괴구리가 물 밖으로 튀어나왔다.
초록색 피부에 툭 튀어나온 입. 검고 동그란 눈알, 심상치 않은 크기까지.
분명 일반적으로 묘사되는 개구리의 모습이 맞았다.
“개굴?”
땅으로 끌려나온 괴구리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갑자기 물속에 움직이는 먹이가 나타나는가 싶더니…….
먹이를 물자마자 갑자기 물 밖으로 나와 버렸으니까.
“유리 씨!”
피슝!
대기하고 있던 민유리는 괴구리 쪽으로 마력 화살을 쏘았다.
정확히 녀석의 머리를 향해 날아가는 화살이었다.
“개굴개굴!”
그러나 화살은 목표했던 머리에서 살짝 어긋난 몸통을 스쳤다.
피부의 미끄러운 점액질이 공격을 빗나가게 한 것이다.
“개구울……!”
분노한 괴구리가 민유리를 향해 입을 벌렸다.
길고 매끈하고도 붉은 혀가 그녀를 노리고 직선으로 뻗어졌다.
그녀가 쏘는 화살만큼이나 빠른 속도였다.
“찍!”
칠라는 방패를 들어서 혀를 막았다.
자석의 S극과 N극이 붙듯이 방패에 착하고 달라붙은 혀.
괴구리는 그 혀를 자기 쪽으로 잡아당겼다.
“찍, 찍!!”
방패에 달라붙은 혀가 아주 팽팽하게 당겨졌다.
하지만 발을 땅에 고정한 칠라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절대적인 힘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다.
유지한은 영약까지 먹여 가며 칠라의 능력을 키운 것에 뿌듯함을 느꼈다.
서걱!
유지한이 방패에 달라붙은 혀를 검으로 잘라냈다.
지지대를 잃은 혀가 아래로 축 늘어졌다.
“개, 개굴?!”
혀의 절단면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피.
그때 괴구리는 난생 처음으로 생명의 위기를 감지했다.
“개굴개굴!!”
빠르게 인간들을 등진 괴구리가 위로 폴짝하고 뛰었다.
높은 점프력을 가진 녀석답게 주변의 나무보다 훨씬 높이 뛰어오르는 모습이었다.
[헤이스트]
괴구리가 뒷다리를 힘껏 뻗으며 다시 한 번 위로 점프한 순간.
유지한은 녀석이 떨어질 예상 지점을 가늠하여 샘플링을 연속으로 사용했다.
<—A지점에 괴구리가 떨어질 확률>
<35%>
<—B지점에 괴구리가 떨어질 확률>
<41%>
…….
…….
‘이쯤인가.’
녀석이 착지하는 지점을 찾아낸 유지한은 정확히 그 중심 부근에 검을 가져갔다.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개굴—!”
땅에 있는 그를 발견한 괴구리가 큰 소리로 울어 댔다.
하지만 위에서 떨어지는 녀석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푸욱!
끝내 날카로운 검끝이 괴구리의 배때기를 뚫어 냈다.
기다란 칼날을 타고 등까지 한번에 관통 당한 녀석은, 몸을 계속해서 버둥거리다가 이내 죽음을 맞이했다.
유지한은 녀석의 한쪽 뒷다리를 잡아 들고서 파티원들에게 걸어갔다.
“찍?”
칠라는 주먹으로 괴구리의 몸을 툭툭 건드렸다.
진짜로 죽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옆에서 낚시대를 정리하는 김시후는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허……. 이게 되네.”
괴구리를 사냥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발견.
유지한 파티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직후, 머지않은 미래에 전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될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