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괴구리
꿀잼 길드의 사무실.
사무실을 새로 옮긴 뒤부터 쭉 비어 있던 책상 위에는 웬일로 커다란 상자들이 올려져 있었다.
“이건 어떻게 쓰는 거예요?”
“잠시만요.”
민유리의 물음에 유지한은 손에 든 설명서를 읽어 내렸다.
책상 위에 올려진 것은 고화질 카메라가 장착된 무소음 드론 3개.
소량의 전기와 함께 내부에 있는 마석으로 동작하는 물건으로, 하성태와 영화 촬영 계약을 맺은 후 그가 보내온 것이었다.
“……본 드론은 마력을 주입한 자의 몸을 추적하며 주변을 따라다닙니다. 최대 연속 촬영 시간은 12시간이며 스텔스 기능이 달려 있어 타인에게 잘 보이지 않도록 숨겨 둘 수 있습니다.”
“다른 파티에서 쓰는 걸 보긴 했어요.”
민유리는 드론을 보고 무척 신기하다는 반응이었다.
다른 파티에서 비슷한 드론을 사용하는 걸 몇 번 구경만 했었던 그녀였다.
보통 이런 건 방송 쪽으로 활동하는 영웅들이나 사용한다고들 알려지는데.
그 물건을 이제는 영화 촬영을 위해서 직접 사용하게 된 것이다.
“유리 씨가 띄워 보실래요?”
“해볼게요.”
유지한은 상자에서 드론을 꺼냈다.
민유리가 그 드론에 손을 대고 마력을 조금 주입했다.
우웅—
드론 위에 달린 프로펠러들이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잠시 후 프로펠러가 하나의 원으로 보일 만큼 속도가 빨라지자 몸체가 책상 위로 떠올랐다.
신기하게도 미약한 바람 소리를 제외하면 소음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방해는 안 되겠네.’
당분간 이 드론은 파티를 졸졸 따라다니며 영상을 촬영할 예정이었다.
유지한은 혹시라도 저것이 전투에 방해가 될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생각만큼 거슬리지는 않았다.
민유리가 하늘로 떠오른 드론의 기능들을 조작하며 말했다.
“영상이 나오면 저희 부모님께서 좋아할 것 같아요. 매번 제가 현장에서 어떻게 싸우는지 궁금해하셨거든요.”
“형. 실프는 어쩌죠? 카메라에 비치면 곤란할 텐데.”
이전에 피드백을 위해 사용했던 건 신체에 고정하는 형태의 카메라였다.
렌즈가 어디쯤에 있는지 알고 있으니 보이지 않는 각도에서 정령을 다룰 수 있었다.
하지만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드론이 촬영하는 영상에는 실프의 모습이 찍힐 가능성이 높다고, 김시후는 생각했다.
아직 정령을 공개하지 않은 유지한에게 있어서는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건 하성태 씨에게 미리 말을 해 두려고.”
비슷한 생각을 했던 유지한은 하성태에게 자신이 정령사라는 걸 알려 줄 생각이었다.
이렇게 되면 비밀을 공유하는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나겠지만.
나중에 영상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실프가 나오는 부분을 잘라낼 수 있을 터.
“으음.”
비행중인 드론을 올려다보는 김시후는 심경이 조금 복잡한 표정이었다.
“왜 그래?”
“지한이 형이 실프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뭐였죠?”
“우리를 쉽게 보고 정령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달라붙을까 봐. 그리고 단순히 운이 좋아서 유명세를 얻는 것도 경계하고 있지.”
“그건 저희가 영화를 통해 이름을 알리는 것과는 다른가요?”
유지한 파티가 정령사가 포함된 파티로서 유명해지는 것.
그리고 영웅 영화에 출연한 파티로서 유명해지는 것.
김시후는 그 2개의 차이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수단이야 뭐든 간에, 영웅 본연의 활동 외적인 것으로 이름이 알려진다면 비방이나 좋지 못한 말이 나올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유지한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이번 건 조금 경우가 달라.”
“그래요?”
“우리의 실제 모습을 보여 주는 거잖아. 그리 나쁘게만 생각할 건 아니야.”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영웅의 현실을 보여 주는 일.
완성된 영웅 영화를 몇 번 시청한 적이 있던 유지한은 그 부분에 있어서 꽤 긍정적이었다.
걱정되는 게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영화의 흥행을 가정했을 때 파티가 얻을 것들이 상당했기에.
‘그래도 4급 파티 영상을 누가 얼마나 찾아보겠어.’
헛된 기대감은 가지지 않는 편이 좋겠지.
이번 촬영 또한 그저 경험.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 것이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이번 일에 도전해 볼 가치는 충분했다.
우웅—
그때 유지한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담당 교관 진석우입니다.]
[다음 교육에 앞서 각 파티장들에게 한 가지 과제를 전달해드리니 확인 후 답장 보내 주세요…….]
진석우가 보내온 메시지.
청영사에서 입교생들에게 과제를 내리겠다는 내용이었다.
[참고로 과제 수행 여부는 자유이며…….]
명목상으로는 강제성이 있는 과제가 아니었다.
과제를 수행한 파티에게만 교육에서 가산점이 들어갈 수 있다는 메시지가 적혀 있을 뿐.
‘반드시 하라는 거지.’
유지한은 메시지를 읽은 뒤에 쓴 웃음을 지었다.
강제는 아니라지만 모든 입교생들은 이 과제를 수행할 것이다.
청영사에서 탈락하고 싶은 파티는 없을 테니까.
[이번 과제는 ‘괴구리 사냥’입니다.]
과제의 내용은 간단했다.
개구리가 몬스터로 변한 개체, 괴구리.
녀석을 사냥하고 파티마다 소감을 발표하라는 것이었다.
유지한은 파티원들에게 해당 과제의 내용을 알렸다.
“지한 씨는 괴구리 잡아 보셨어요?”
“어……. 예전에요.”
민유리의 물음을 듣고 유지한은 몇 년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넓은 강가에서 괴구리를 향해 무기를 휘두르던 날.
아직 그가 김현태 파티에 있을 때의 기억이었다.
“어땠어요?”
“피부가 엄청 미끌미끌해요.”
“엑.”
민유리는 표정을 살짝 찌푸렸다.
무심코 괴구리의 모습을 상상해 버린 것이다.
“개구리 싫어해요?”
“징그럽잖아요…….”
파충류와 양서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민유리였다.
유지한은 거기에 추가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아실지도 모르겠지만 보통 호흡을 피부로 하는 놈들이라서 피부가 마르면 안 되거든요. 그래서 점액 때문에 미끌거려요. 몬스터로 변해서인지 일반적인 놈들보다 훨씬 더.”
“누가 온몸에 기름칠 한 것 같다고 말하는 건 봤어요.”
청괴구리, 금괴구리, 황소괴구리 등…….
세계에는 수많은 종의 괴구리가 존재한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발견된 괴구리의 종은 총 6종.
“생각보다 위험한 놈들이라고 하던데요.”
“만만하게 보다가 골로 간 사람이 여럿 있었지.”
괴구리는 대체로 골든 리트리버의 성견 이상으로 커다란 몸집을 가진 몬스터다.
먹이를 낚아채는 기다란 혀는 미끈한 피부와는 대조적으로 상당한 끈끈함을 가지고 있다.
녀석의 혀에 손목을 붙잡힌다면, 혀 또는 손목을 잘라내지 않고서는 탈출이 어려울 정도였다.
*****
다음 날.
유지한 파티는 민유리가 모는 차량을 타고 경기도 광명시로 이동했다.
그곳에 있는 생태공원 전체가 MA로 선언된 덕분이었다.
멸종위기종인 금개구리를 보호하기 위해 금개구리의 서식지가 별도로 마련된 공원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녀석들이 몬스터로 변해 버린 탓에 모두 처치해야만 했다.
“부탁할게요.”
“맡겨 두세요.”
공원과 조금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한 뒤.
민유리는 가장 먼저 챙겨온 드론들에 마력을 주입했다.
주로 후방에서 전투를 치르는 그녀는 다양한 각도에서 영상을 찍을 수 있게끔 드론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았다.
“형. 그거 진짜 쓰려고요?”
“써야지. 안 쓸 거면 왜 가져왔겠냐.”
“…….”
입을 다문 김시후가 어깨에 기다란 가방을 맨 유지한을 바라봤다.
그 가방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낚시대.
유지한이 언젠가 쓸 일이 있길 바라며 구입해 뒀던 물건이었다.
“음?”
그런데 MA 입구 근처는 어쩐지 시끌시끌한 분위기였다.
유지한은 그 앞에 모여 있는 인파를 바라봤다.
“금괴구리 서식지 파괴를 중단하라!”
“중단하라! 중단하라!”
얼굴에 열을 올리며 크게 소리치는 사람들.
유지한 파티는 단번에 그들이 누군지 알아챘다.
대부분 IUPC에서 나온 회원들이었다.
금괴구리는 한국에서도 멸종위기종인 금개구리가 몬스터로 변해 버린 개체.
그만큼 흔치 않은 몬스터인 것으로, IUPC에게는 지켜 내야 할 대상인 모양이었다.
“거기 뒤로 물러나세요!”
“물러나시라고요!”
커다란 방패를 든 경찰들은 그들을 공원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유지한 파티는 두 무리가 한창 다투는 와중에 도착한 것이었다.
“쯧!”
김시후는 IUPC에게 방해받은 기억을 떠올렸는지 혀를 찼다.
동시에 민유리도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 또한 그들이 어떤 단체인지 잘 알고 있었다.
“아악!”
“끌어내!”
경찰들이 커다란 방패를 들고 IUPC와 대치하던 때.
가장 앞에서 방패를 들고 있던 경찰 중 하나가 IUPC 회원들에게 끌려갔다.
앞으로 밀어내기만 하다가 반대로 당겨지는 것에 제때 반응을 하지 못한 것이다.
“밟아!”
퍽! 퍽! 퍽! 퍽!
IUPC 회원들은 끌려나온 경찰을 공격했다.
운동화는 물론이고 단단한 구두 따위로 경찰의 몸을 사정없이 밟아 댔다.
심지어 나무 막대기를 휘두르거나 단단한 돌멩이를 던지기도 했다.
“안 돼!”
“효준아!”
다른 경찰들은 끌려간 동료를 보고 이를 악물었다.
분노로 가득 찬 눈빛이었지만 자리를 이탈하지는 않았다.
“억! 어억!”
바닥에 쓰러진 경찰은 몸을 바짝 웅크렸다.
허나 그런다고 공격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입술이 터져 나가고, 연신 발길질이 날아왔다.
‘죽는다……!’
온몸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통증!
경찰은 어쩌면 자신이 여기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인간을 죽인다는 몬스터들은 저 MA 안에 있는데, 같은 인간들 때문에 말이다.
“뭐하는 짓이야.”
“지한 씨! 저 사람 죽겠어요!”
보다 못한 유지한 파티는 쓰러진 경찰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누가 다가오거나 말거나, 신나게 발길질을 하는 사람들.
단체로 광기에 물든 수준이었다.
턱!
유지한은 그중 한 사람의 어깨를 잡았다.
입가에 사악한 웃음까지 띄우며 경찰을 밟던 남자였다.
“그만 해.”
“네가 뭔데……!”
어깨를 붙잡힌 남자는 순간 욱하고 짜증을 냈다.
유지한은 그런 그를 번쩍 들어 올려서 뒤쪽 멀리 던져 버렸다.
처음부터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홱! 홱! 홱!
유지한은 이어서 경찰을 공격하는 사람들의 멱살과 어깨를 붙잡아 뒤로 던졌다.
“찍! 찍!”
“어, 어어?!”
몸집이 큰 칠라까지 직접 나서자 IUPC 회원들은 추풍낙엽처럼 뒤로 밀려났다.
김시후는 쓰러진 경찰에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괜찮으세요?”
“괘……. 괜찮습니다.”
터진 입술과 찢어진 피부에서 피를 흘리는 경찰이었다.
반면 뒤로 밀려난 IUPC 회원들은 유지한과 민유리를 보며 외쳤다.
“개같은 영웅 새끼들이!”
“방해하지 말고 꺼져!”
“이런 씨방새…….”
하나같이 불만이 가득한 말투였다.
그중에는 쉴 새 없이 욕설을 내뱉는 사람도 있었다.
말이 칼이었다면 상대를 여러 번 찌르고도 남을 기세였다.
그러다 어느 여성이 손가락으로 칠라를 가리켰다.
“저기 좀 봐!”
“어떻게 이놈들이 저런 귀여운 크리처를 가지고 있는 거야!”
IUPC 회원들의 시선이 칠라 쪽으로 모였다.
몬스터를 옹호하는 세력답게 존재감이 강한 칠라에게 이끌린 것이다.
평범한 동물보다도 훨씬 귀엽게 생긴 몬스터는 그들의 보호 대상 중에서도 가장 상위권에 올라와 있었다.
“난폭한 영웅보다는 내가 훨씬 잘해 줄 수 있을 텐데!”
민유리는 말을 꺼낸 그녀를 흘겨보며 말했다.
“데려가고 싶어?”
“그래!”
“원하면 데려가 봐.”
쿨한 대답에 여성이 멈칫했다.
“……진짜로?”
“그래. 할 수 있다면.”
꿀꺽!
침을 삼킨 여성의 시선이 칠라를 향했다.
“거, 거기 귀여운 친구야. 이리 온!”
“찍?”
“내가 먹을 것도 사주고, 옷도 사주고 뭐든지 해 줄게! 저 사람보다 내가 너한테 훨씬 잘해 줄 수 있어!”
여성은 어색한 웃음과 과장된 몸짓을 보이며 칠라에게 어필했다.
자신이 민유리보다 더 나은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칠라는 그런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됐다?!’
이윽고 칠라가 그녀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잔뜩 기대에 찬 여성은 탐욕스러운 눈빛을 지었다.
멋모르는 영웅에게서 크리처를 빼앗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찍!”
“꺄악!”
그런데 여성의 바로 앞까지 걸어간 칠라는 손으로 그녀의 코를 냅다 후려쳤다.
난데없이 얻어맞은 여성은 양손으로 코를 붙잡으며 쓰러지고.
민유리는 입술 위에 손바닥을 올리며 말했다.
“어머, 이거 안타깝네. 걘 너가 싫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