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영약
청영사에서 새로운 교육을 시작하고 며칠이 흘렀다.
교육을 담당하는 교관들은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영웅들을 가르쳤다.
학생 시절 영웅 학원에서 받은 교육과는 다른, 조금은 낯선 교육.
교관들은 그것을 두고 실전형 교육이라고 말했다.
‘에이, 이게 뭐야.’
‘유명한 영웅이라 기대했더니…….’
‘순 엉터리네.’
청영사 3기의 입교생 중에는 새로운 교육에 잘 따라가지 못해 불만을 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도 대부분은 교관들의 지시를 잘 따르는 편이었다.
교육에서의 태도와 성과 따위도 청영사의 점수로 반영되기 때문이었다.
첫주의 교육 일정은 평일 내내 상당히 빡빡하게 잡혀 있었다.
한 번 교육이 시작되면 최소 3, 4시간 이상이 소요되었기 때문에 대부분은 사냥도 갈 틈 없이 교육에만 집중해야 했다.
그리고 지금은 모두의 교육이 끝난 오후 8시.
바깥에 이미 어둠이 내려앉은 때, 유지한 파티는 길드 사무실에 모여 있었다.
“유리 씨. 교육은 어때요?”
“첫 날에는 뭘 하는지 몰랐는데……. 지금은 할 만해요.”
민유리는 2급 영웅 이수지의 아래에서 교육을 진행하고 있었다.
첫 날에는 지칠 때까지 표적을 맞추는 것만 계속 진행했기에 교육의 의도를 잘 알 수 없었지만.
둘째 날부터 이수지는 자신이 실전에서 경험한 여러 지식들을 바탕으로 파티에서 원거리 딜러로서 활약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원거리 딜러는 단순히 지원형 영웅으로서 남아있어서는 안 돼. 마법사 이상으로 파티의 핵심이 될 각오를 가져야 할 거야.
보통 원거리 딜러들은 파티에서도 최후방에 위치해 있지만.
이수지는 교육생들에게 적이 바로 옆에 붙어 있더라도 끝까지 자기 몫을 다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지라고 말했다.
근접 전투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민유리는 개인 시간 중 일부를 근접 전투 능력을 기르는 데 쏟고 있었다.
“시후는?”
“꽤 재밌어요. 알지 못하던 훈련들도 많아서.”
마찬가지로 김시후도 2급 마법사들의 교육을 받고 있었다.
기존에 경험해 보지 못한 훈련에 도전할 때면 가슴이 두근거리는 그였다.
다만 교육에서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는데…….
어떤 과제가 주어지면 그것을 해결하는 것을 위주로 진행되는 교육에서, 다른 이들보다 워낙 빠르게 과제를 풀어내는 탓에 교관들이 크게 난감해하는 것이다.
——아니, 김시후 씨? 정말로 4급 맞아요?
마력 제어에 있어서는 도가 튼 만큼 교관에게 등급을 의심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다행히 마력을 사용하는 과제는 여러 방식으로 변형이 가능했기에, 교관들은 과제를 빨리 풀어낸 사람들을 대상으로 2차, 3차 과제를 내주었다.
거기서 김시후는 하루에 최대 5차 과제까지 풀어낼 수 있었다.
그것 때문에 교관들이 현장에서 변형 과제를 연속으로 만드느라 머리를 싸매고 있다는 건 또다른 이야기였다.
“그보다 형은 어떤데요?”
“지한 씨는 윤도하 씨에게 교육을 받는다면서요?”
김시후와 민유리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유지한을 바라봤다.
유지한은 청영사 외부에서 주사위의 길드장인 윤도하에게 개인 교육을 받고 있는 상황.
그가 이런 특별한 교육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파티원을 포함해도 몇 명 되지 않았다.
“뭐……. 저도 재밌게 하고 있습니다.”
“고위 정령사들은 대체 어떤 훈련을 할까요? 나중에 꼭 한 번 보고 싶어요.”
“별거 없어.”
기대에 찬 김시후의 마음과는 다르게 윤도하와의 교육 첫 날은 피자를 먹으며 잡담을 나누는 시간이 교육에 들어간 시간보다 더 길었다.
물론 도움이 되는 지식들을 얻고 있지만.
정령사라고 해서 아주 특별한 교육을 진행하는 것은 아니었다.
‘정령은 당분간 계속 소환한 상태로 두라고 했지.’
지금은 그저 윤도하의 지시에 따라 실프를 현실에 꺼내 놓고 있었다.
사무실에 출근할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심지어 잠에 드는 순간에도.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에도.
딱히 실프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유지한은 실프와 함께했다.
윤도하는 이것을 두고 정령과의 친밀도를 올리는 과정이라고 했다.
계약자의 행동과 더불어 평소에 느끼는 감정 따위를 정령도 옆에서 함께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반복하다 보면 계약자와 정령 간 동조율이 높아지는데, 결국에는 정령사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남들 눈에 보일까 봐 걱정되긴 하지만.’
유지한은 실프를 거의 24시간 현실에 꺼내두면서도 최대한 품속이나 주머니에 넣어서 그 존재를 감추고 있었다.
조금 귀찮은 과정이지만 그가 선택한 길.
들킬 때까지는 현 상태를 유지할 생각이었다.
“간단하게 점검만 하고 퇴근하죠.”
“문서 띄울게요.”
김시후는 자신의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고 유지한 파티와 꿀잼 길드의 현황을 모두 정리해 둔 문서를 화면에 띄웠다.
길드의 재정 상황은 물론이고 각종 중요한 정보들이 담겨있는 대외비 문서였다.
문서의 일부분만 훑어본 민유리가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이거 제가 봐도 되는 거예요?”
“물론이죠.”
김시후와 유지한은 민유리에게도 길드의 모든 정보를 공유했다.
보통은 평범한 길드원과 아주 중요한 정보까지 공유하지는 않지만.
민유리라는 영웅에게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작은 결정 하나하나가 길드원이 길드를 더 신뢰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다.
“현재 자금은……. 약 5억.”
“바바리안 처치 후에 들어온 금액이 꽤 컸어요.”
얼마 전에 양지철이 사무실을 다녀간 이후.
보상금으로 정확히 2억이라는 금액이 길드 계좌로 들어왔다.
모든 세금을 제하고 난 뒤의 세후 2억.
기존에 벌어둔 금액과 합치면 5억이 조금 넘는 금액이었다.
“다들 장비 문제는 없죠?”
“마지막으로 수선한 뒤에는 멀쩡해요.”
백화점에서 바바리안을 상대한 뒤 유지한 파티는 망가진 장비를 수리해야만 했다.
맞춘 지 얼마 안 된 칠라의 방패마저 찌그러질 정도의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었다.
“장비를 교체하는 건 어때요?”
“그건……. 고민이네.”
유지한은 남호열에게서 지금의 장비를 구매한 지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았다.
등급만 보자면 지금의 장비로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도 되는 단계가 맞았다.
‘자꾸 사고가 터져가지고.’
하지만 돌연변이와 침입자를 마주치는 경우가 늘어나니 고민이 되는 유지한이었다.
만약 다음에 또 침입자를 마주친다고 가정한다면, 무리해서라도 장비를 갖춰 두는 게 좋을 테니까.
‘쓸 만한 아티팩트를 하나 마련하는 것도 좋을 거 같은데.’
돈을 사용할 방법은 많았다.
한정된 자원을 어떤 식으로 이용할 것인가.
그것을 결정하는 것도 하나의 실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
‘좋은 평가는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어.’
청영사는 입교생 중에 중도 탈락자를 선정할 수 있다.
점수가 낮은 파티를 지원 사업에서 탈락시키는 것이다.
유지한 파티는 현재까지 청영사에서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지만.
마냥 안심하고 있다가는 뒤에서 많은 지원을 받는 거대 길드의 파티에게 밀려 버릴 수도 있었다.
“형. 그래서 괴삼은요?”
“마침 건물로 돌아오기 전에 집에서 챙겨왔지.”
유지한은 자신의 가방에서 괴추괴삼청이 들어 있는 유리병을 꺼냈다.
괴삼의 검붉은 색소 같은 것이 꿀에 쫙 배어든 모양새.
제대로 숙성된 영약이었다.
뻥!
굳게 닫힌 뚜껑을 손으로 돌리자 경쾌한 효과음과 함께 뚜껑이 열렸다.
“우와……!”
“향이 정말 진하네요.”
괴삼과 괴추가 섞인 아주 진한 향이 주위로 퍼져 나갔다.
김시후와 민유리는 자꾸만 코를 자극하는 향기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딱 오늘 오후에 숙성이 끝났더라고.”
“지금 먹어도 되는 거예요?”
“타줄게.”
유지한은 따뜻한 물을 담은 보온병을 꺼내서 컵에 따랐다.
그리고 찐득한 괴추괴삼청을 한 스푼 크게 떠서 물을 따른 컵에 넣고 휘휘 저었다.
물과 검붉은 꿀이 섞이면서 완벽한 괴추괴삼차가 만들어졌다.
겉보기로는 물에 오징어 먹물을 떨어뜨린 듯한 모양새였다.
“완성.”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는 괴추괴삼차 4잔이 책상에 올려졌다.
세간에 알려지기로 첫 잔에서 가장 큰 효능을 느낄 수 있다는 영약.
“칠라. 받아.”
“찍!”
옆에 있던 칠라까지 컵을 받았다.
인간이 아닌 몬스터도 영약의 효과를 받는다고 알려지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긴장하며 컵을 들어올렸다.
“……마실게요?”
가장 먼저 나선 건 김시후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컵에 든 물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한 번에 들이켰다.
꿀꺽—
따뜻한 차가 혀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김시후는 가만히 눈을 감고 괴추괴삼차가 식도를 거쳐 위장으로 내려가는 걸 느꼈다.
콧속에 맴도는 아주 진한 괴삼의 향과 함께 차가운 몸이 순식간에 뎁혀지는 느낌이었다.
지켜보던 나머지 인원들도 물을 한 번에 들이켰다.
“……?”
그런데 약 10초 후.
이쯤이면 위장에 도착했을 따스한 물이 마치 품고 있는 열을 모두 빼앗긴 것 마냥 차게 식어버렸다.
세 사람이 그것에 의문을 갖던 찰나.
두근! 두근! 두근!
갑자기 영약을 복용한 모두의 심장이 빠르기 뛰기 시작했다.
빠르게만 뛰는 게 아니라 드럼을 세게 치는 것 마냥 커다란 진동이 전신을 뒤흔들었다.
치이이이—
살색이던 피부가 열이라도 오른 것처럼 온통 붉게 달아올랐다.
모두의 피부에서 검은 증기 같은 것이 피어올랐다.
“찌, 찍찍?!”
함께 영약을 먹은 칠라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대체 지금 무슨 일이……!’
신체의 마력이 끓는점에 도달한 물처럼 이리저리 요동쳤다.
세 사람은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인지했지만, 당장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저 이를 악물고 몸의 변화에 촉각을 기울일 뿐이었다.
그렇게 약 1분 정도가 흐르고…….
몸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현상이 멈췄을 때.
모두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사무실에 괴삼의 향은 온데간데없고 역한 냄새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형…….”
“창문 좀 열자.”
드르륵—
활짝 열린 창문을 통해 사무실에 가득 찬 냄새가 천천히 빠져나갔다.
그제서야 그들은 편하게 숨을 쉴 수 있었다.
“방금 건 대체?”
김시후는 손으로 자신의 볼을 매만졌다.
손가락에 검으면서도 끈적한 무언가가 묻어났다.
거기에 코를 가까이 댄 그가 이내 표정을 와락 찡그렸다.
방금 실내에 가득 차 있던 것과 동일한 냄새가 났기 때문이었다.
“알겠다.”
김시후가 물티슈를 꺼내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몸에서 노폐물이 배출된 모양이에요.”
“정말로?”
“확실해요. 괴삼의 효능 중에 노폐물 제거가 있다고 들었어요.”
“효과가 이 정도일 줄이야…….”
민유리는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끼쳤다.
한 모금 마신 것만으로 이만큼의 노폐물이 배출됐다니!
영약이 몸에 좋다는 건 말로만 들었지, 직접 체감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돌아가면 샤워라도 해야겠어요.”
“유리 씨? 머리카락이 조금 이상한데요?”
“네?”
“더 길어진 거 같아요.”
“……!”
유지한의 말에 민유리의 시선이 오른쪽 어깨 쪽으로 내려갔다.
몇 분 전까지 어깨보다 높게 떠있던 단발의 머리카락이, 어느새 어깨를 스치는 길이까지 자라 있었다.
“세상에…….”
옆에 있는 칠라의 털은 마치 기름을 칠한 듯 반짝반짝 윤기가 돌았다.
녀석 또한 영약의 효과를 본 것이다.
그리고 변화를 체감한 건 유지한도 마찬가지였다.
몸 이곳저곳을 관찰하던 그는 팔뚝의 근육을 살폈다.
‘더 단단해졌어.’
근육의 크기에는 거의 변화가 없지만, 확실히 더 단단해졌다.
손에서 느껴지는 악력도 평소와는 달랐다.
모르긴 몰라도 근력 또한 증가했을 터.
김시후도 신기한지 계속 자신의 몸을 만져 대고 있었다.
‘역시 유명한 영약은 다른가.’
럭키 위스커와 화이트 엄브렐라를 섭취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영약 하나가 이렇게 큰 변화를 일으킬 줄이야!
병에 남은 괴추괴삼청을 바라보는 유지한의 눈이 반짝하고 빛을 냈다.
‘다들 이렇게 좋은 걸 먹고 살았다, 이거지.’
돈을 더 벌어야 할 이유가 생기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