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교육 (4)
“둘 다 나중에 봐요.”
“다치지 말고.”
“네!”
청영사에서 포지션 별 교육이 진행되는 두 번째 날.
교육에 앞서 자신의 파티원들과 함께 모여 있던 유지한은 시간에 맞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문이라고 했나.’
청영사 3기의 전사들은 건물 내 강의실로 이동하는 시각.
그는 반대로 청영사 건물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건물 앞을 두리번거리던 순간.
‘저건가?’
도로 한쪽에 비상등을 켜고 대기 중인 검은색 차량이 보였다.
그는 차량의 조수석쪽으로 다가가 창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닫혀 있던 창문이 살짝 내려가며, 안에 있던 운전자가 말했다.
“유지한 님 되십니까?”
“예. 데리러 오신 분이신가요?”
“맞습니다. 타시죠.”
확인을 마친 유지한이 차량에 탑승했다.
오늘 그는 청영사에서 전달해 준 내용에 따라 외부에서 교육을 받도록 되어 있었다.
‘왜 나만 따로 가라는 건지…….’
함께 교육을 받는 고미나는 이전과 같은 강의실로 오라는 것 외에 별다른 안내를 듣지 못했다고 한다.
유지한은 속으로 의문을 가지면서 안전벨트를 맸다.
더 태울 사람은 없었던 모양인지 자동차는 곧 출발했다.
멍하니 도로를 바라보던 유지한이 말했다.
“어디로 가는 건가요?”
“주사위 길드의 본사로 이동하겠습니다.”
“주사위요?”
갑자기 주사위로 가겠다니.
청영사의 협력 길드 중에 분명 주사위가 포함되어 있긴 했지만.
갑자기 끌려가는 이유에 대해서는 전혀 짐작 가는 바가 없었다.
그렇게 자동차가 빠르게 달리길 약 40분.
차량의 유리창 너머로 눈에 익은 주사위의 건물이 보였다.
“안내하겠습니다.”
차에서 내린 운전자는 유지한을 이끌고 지하로 내려갔다.
이전에 한 번 방문했던 훈련소가 있는 곳이었다.
“여긴 왜…….”
“안쪽에서 기다리시는 분이 계십니다.”
운전자가 안내해 준 곳은 개인 훈련실.
굳게 닫힌 문을 똑똑 두드린 운전자가 그 문을 열었다.
그리고 안쪽에서 보인 건.
“여.”
“……윤도하 씨?”
입가에 미소를 띤 채 한쪽 손을 반갑게 흔들고 있는 윤도하였다.
익숙한 선글라스를 착용한 모습이 마지막에 봤던 것과 거의 똑같았다.
‘아니, 왜?’
저 사람이 왜 여기 있는 걸까.
여기가 주사위의 건물이니까 대표가 있다 한들 이상할 건 없지만…….
유지한이 그가 있는 곳으로 안내받은 건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들어와.”
얼떨떨한 표정의 유지한이 훈련실 안으로 들어섰다.
친절하게도 훈련실 문을 열어 준 운전자는 그대로 문을 닫고 떠났다.
닫힌 문을 힐끔거린 유지한이 다시 윤도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청영사에서 이쪽으로 가라고 하던데요.”
“맞아. 내가 직접 연락했거든.”
“예?”
“지한 씨를 데려온 게 나라고.”
갑자기 혼자서만 외부 교육을 나가는가 싶더니.
그게 윤도하 때문인 모양이었다.
“청영사 내부에서 슬슬 교육 시작했다며?”
“맞습니다.”
“지한 씨는 전사들 사이에서 교육을 받았겠지.”
“그것도 맞습니다.”
“그런데 그거, 굳이 받을 필요가 있어?”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잘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의 유지한.
선글라스를 낀 윤도하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내 정보통을 통해서 지한 씨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알아봤지. ……김현태 파티라고 하면 알려나?”
“…….”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활동을 했던 것 같은데.”
김현태 파티가 언급되자 유지한은 표정을 살짝 굳혔다.
‘들켰구나.’
영원한 비밀이란 건 없다.
역시 1급 영웅처럼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진실을 숨길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여기서 모르는 척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도 상대를 어느 정도 가리면서 해야 하는 법.
따라서 유지한은 침묵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나름대로 사정이 있는 것 같으니 깊게는 묻지 않을게.”
“……예.”
“하지만 내가 파악한 정도의 인물이라면 굳이 그런 지도를 받을 필요가 없는 것도 사실이지.”
“너무 과분한 평가입니다.”
“과연 그럴까?”
윤도하가 유지한의 눈을 주시했다.
1급과 비슷한 평가를 받으며 높은 주가를 자랑하는 김현태 파티.
거기서 몇 년이나 자기 자신을 숨긴 채 활동했던 영웅, 유지한.
그쯤 되면 이전에 주사위의 4급 파티가 유지한 파티에게 패배했던 것도 이해가 된다.
오히려 그때 유지한이 진심을 다해서 싸웠다면, 4급 파티는 상대조차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여튼, 당분간 지한 씨는 나한테 수업을 받아야겠어.”
“도하 씨한테요?”
“지한 씨는 정령사잖아. 청영사에서 필요 없는 교육을 받는 것보단 이쪽이 훨씬 좋지 않아?”
1급 정령사 윤도하.
정령 중에는 단연코 불의 정령이 최고라고 여겨지던 인식이 그로 인해 통째로 바뀌었을 만큼, 그는 강력한 힘을 지닌 영웅이었다.
그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면 일부 정령사들은 무릎을 꿇고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가르침을 요청할 것이다.
그렇기에 유지한을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저에게 잘해 주시는 거죠?”
“불만인가?”
“그런 건 아닙니다만.”
“유망한 후배를 위한 것도 있고……. 개인적인 원한도 조금 있고.”
윤도하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레드홀의 백강천이 이전의 청영사 선발 과정에 개입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저번에 만났을 때 분명 건들지 말라고 했을 텐데도, 백강천은 레드홀이 아니라 청영사를 통해서 유지한 파티에게 손을 뻗은 것이다.
‘딱히 개입이 없었더라도 붙었을 것 같지만 말이야.’
짝!
윤도하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서론은 여기까지. 준비 됐나?”
“알겠습니다.”
유지한은 윤도하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다소 갑작스러운 만남이지만, 그런 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눈앞의 영웅에게 가르침을 받을 기회가 절대로 흔한 게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으니까.
“정령 꺼내 봐.”
뾰롱!
윤도하의 요청에 곧바로 실프가 등장했다.
선글라스를 살짝 내린 윤도하가 맨눈으로 실프를 살폈다.
“이전보다 더 성장한 것 같은데.”
“도하 씨 덕분입니다.”
“입에 바른 소리는 지금 안 해도 돼. 나중에 저절로 하게 될 테니까.”
유지한과 같은 정령사의 기운을 느껴서일까.
윤도하에게 다가간 실프는 허공에서 몸을 빙그르르 돌려 댔다.
윤도하는 그에 응답하듯 자신의 정령인 무무를 소환했다.
쿠르릉!
무무가 땅 아래에서 땅을 뚫듯이 솟아오르고.
실프는 녀석의 바로 위쪽에서 낮게 날아다녔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서로 대화를 하는 듯한 장면.
가만히 그걸 지켜보던 유지한이 말했다.
“우연찮게 마결정을 얻게 되서 조만간 또 먹일 예정입니다.”
“좋은 소식이네.”
유지한은 바바리안의 도끼에 숨겨진 마결정을 채취하여 보관하고 있었다.
정령에게 있어서는 귀한 영약과도 같은 보물.
빠른 성장을 위해서는 그만한 것이 없었다.
“몇 개나 가지고 있어?”
“손톱만 한 크기로 6개 정도 있습니다.”
“허이구, 운도 좋네.”
“하나 드릴까요?”
“아서라. 난 이미 얻을 만큼 얻었어. 하나 알려 주자면 마결정은 투명도에 따라 등급을 나눠. 눈으로 봤을 때 얼마나 투명한 지에 따라 효과에 차이가 있다고 보면 돼.”
“보석의 색깔은요?”
“크게 의미 없더라. 아주 잘게 쪼개서 연구해보기도 했는데 유의미한 차이는 발견되지 않았어.”
“그렇군요.”
“그리고 한번에 많이 먹인다고 해서 급격하게 강해지지는 않으니까 주의해.”
유지한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나같이 처음 듣는 정보들.
윤도하 정도의 정령사가 아니었다면 접하기 힘들 만한 정보였다.
“포지션을 바꿀 생각은 없나?”
“파티원에게 비슷한 질문을 들었지만, 현재로선 없습니다.”
얼마 전에도 김시후가 했던 질문.
유지한은 여전히 그때의 선택을 고수했다.
“뭐, 그것도 나름대로 재밌겠지. 남들 다 가는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별로 재미없어.”
윤도하는 유지한의 대답을 듣고 상당히 즐거워했다.
그가 괜한 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는 건 이미 알고 있기에.
“검을 든 정령사. 정령검사로 불러야 하나? 잘만 되면 꽤 멋진 모습이 나올 거야.”
“이전 사례는 아예 없는 겁니까?”
“몇 명 있긴 있었지. 대부분 도중에 그만두고 마법사로 전향해 버렸지만.”
정령사는 어느 길드에서나 우대받는다.
그렇게 우대받는 이유는 앞서 정령사가 된 사람들이 굉장히 뛰어난 모습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었다.
한 가지 속성에서 아주 강력한 위력을 자랑하는 정령들.
초반에야 친해지기가 매우 힘들다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령은 계약자에게 커다란 힘을 안겨준다.
그런 정령을 가지고도 근접 무기를 고집하려는 사람은 드물었다.
굳이 직접 앞으로 나서지 않아도 주위에 정령사를 보호하고자 나서는 인력들이 넘쳐나니까.
“정령을 활용한 스킬이나 능력 같은 걸 보여 줄 수 있어?”
“뭐든지 상관 없나요?”
“아무거나 보여 줘 봐.”
잠시 고민하던 유지한이 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검에 실프의 마력을 집중했다.
샤아아—!
초록빛 오러가 그의 검이 서렸다.
그것이 지금 당장 그가 보여 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건……!”
윤도하는 그의 검을 보고 속으로 조금 놀랐다.
마치 작은 돌풍을 품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검!
유지한의 검을 감싼 것은 분명 오러가 맞았다.
그러나 전사들의 평범한 오러와는 느낌이 전혀 다른, 정령의 힘이 담긴 정령사의 오러였다.
“정령의 마력을 오러에 담았다고?”
“예.”
“이거 재밌는데……. 솔직히 말하면 나도 이런 현상은 처음 봐.”
유지시간이 짧은 오러는 몇 초 후에 사라지긴 했지만.
1급 영웅인 윤도하에게도 그것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조금 얕본 건가.’
기껏해야 간단한 마법을 사용할 줄 알았는데 오러를 꺼내들 줄이야.
“정령과 계약 후 몇 달 지나지도 않았잖아? 그런데 지한 씨는 거의 2년차는 되는 것처럼 보여.”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으하하! 이러다가 반대로 내가 배우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윤도하는 기분 좋게 웃어 재꼈다.
학생을 가르치러 왔더니, 되레 새로운 걸 알게 된 입장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목적은 교육.
정령사로서 그에게 가르칠 것들은 많았다.
“조금 전의 오러에서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유지시간이 짧은 것 정도일까.”
“그 부분은 저도 인지하고 있습니다.”
“정령의 마력이 대체로 휘발성이 강한 편이긴 해. 유지시간을 늘리려면 마력을 가능한 주위로 흩어지지 않게끔 붙잡고 있어야 할 거야. 일반적인 마력의 사용법과는 조금 다른데……. 이건 내가 알려 줄 수 있지.”
윤도하는 당분간의 개인 교육에서 정령의 마력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 알려 주겠다고 선언했다.
만약 마음에 들지 않으면 청영사로 돌아가도 좋다고도 말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유지한은 군말 없이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정말로 흔치 않은 기회.
놓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혹시 피자 좋아해?”
“피자요? 좋아하긴 합니다만…….”
“일단 뭐 좀 먹고 시작하자.”
“갑자기요?”
“내가 오늘 아침을 안 먹었거든. 요 앞에 화덕피자 집 있으니까 가자.”
영웅 윤도하.
한국에 단 10명 밖에 없는 1급 영웅 중 하나.
땅의 정령을 소유한 정령사로서 정령사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간 인물!
“간단하게 와인이나 맥주 곁들이는 것도 괜찮지?”
“술을 마시자고요? 오늘 이거 교육 아니었어요?”
“우리 같은 정령사는 말이야, 몸에 알콜이 좀 들어가 줘야 정령도 더 잘 다룰 수 있어.”
“…….”
그런 거물급 인사와 친분을 쌓게 된 유지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