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교육 (2)
청영사 교관 이수지의 교육은 1시간 넘게 이어졌다.
그의 지시 아래 영웅들은 잠깐의 휴식 시간도 없이 표적을 맞춰야만 했다.
“끄, 끄으으…….”
“하아악…….”
“더, 더는 못해……!”
훈련 시작 후 1시간 10분째.
체력과 마력이 다 떨어진 나머지 중도 포기를 선언하는 인원이 나왔다.
“그래. 가서 쉬어.”
이수지는 그를 뒤쪽으로 물러나게 했다.
“저도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저도요!”
포기를 선언하는 인원은 점차 늘어났다.
그리고 1시간 30분이 채 지나기도 전.
전체 35명 중 이미 25명 이상이 포기하고 뒤로 물러났다.
‘대체 저게 뭐하는 거야.’
‘지금 교육받는 거 맞지?’
‘쟤넨 지치지도 않나…….’
뒤로 물러난 사람들은 속으로 불만을 가졌다,
자세한 설명도 없이 이런 훈련을 진행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건 아직 자리에 남아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한 누군가가 말했다.
“교관님. 대체 언제까지 쏴야 합니까?”
“내가 멈추라고 지시할 때까지.”
“…….”
“뒤로 빠진 인원들은 알아서 쉬고 있어.”
이수지의 말에 영웅들은 편하게 앉아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힐끔 그들을 바라본 그녀는 이내 훈련을 이어 가고 있는 영웅들을 주시했다.
‘쓸 만한 건 10명 정도인가?’
기본적인 체력과 마력은 물론이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가진 영웅들.
이수지는 아직 자리에 남아 있는 영웅들을 그렇게 평가했다.
가르칠 영웅들의 수준을 미리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평가 겸 훈련.
미리 청영사 측에도 이런 식으로 인재들을 걸러낼 거라고 얘기를 해 뒀다.
‘적당하네.’
이수지가 정한 기준에 들어간 인원은 전체 35명 중 10명.
5명만 있었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생각한 것보다는 근성 있는 영웅들이 많았다.
‘특히 저 여자애…….’
이수지의 고개가 살짝 우측으로 돌아갔다.
오른쪽 끝쪽 자리에서 흔들림 하나 없이 묵묵히 표적을 맞추고 있는 영웅이 있었다.
‘뭔가 달라.’
그녀는 지친 나머지 몸을 배배 꼬거나 땀을 흘리는 있는 영웅들과는 많이 달랐다.
쉴 새 없이 나오는 표적들을 맞추면서도 지친 기색 하나 없어 보였다.
손에서 생성되는 화살의 모양은 처음에 똑같은 정도로 일정하고, 전체적인 명중률도 상당했다.
이수지는 품속에 넣어 둔 서류를 꺼내어 그녀의 신상을 확인했다.
‘꿀잼 길드, 유지한 파티의 민유리.’
거대 길드에 소속된 나머지 인원과 달리 그녀는 아주 작은 길드에 소속된 영웅이었다.
게다가 특이사항에는 테이머로서 거대한 펫 하나를 데리고 다닌다고 적혀있었다.
‘저런 걸 두고 신예라고 하는 거겠지.’
이수지는 자리에 남은 영웅들의 이름 옆에 별 표시를 그려 두었다.
청영사 3기에서도 주목할만한 인재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2시간 10분 경과 후.
마지막까지 자리에 남아있는 건 민유리를 포함한 3명이었다.
“여기까지! 다들 수고 많았어.”
“허어어…….”
“으어어…….”
훈련이 종료되자 2명은 고개를 땅으로 떨군 채 앓는 소리를 냈다.
반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민유리는 손등으로 이마의 땀 한 방울만 닦고서 곧바로 스트레칭을 진행했다.
‘아직도 저런 여유가 남아 있다니.’
그런 그녀의 모습에 이수지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지금 바닥에 드러누운 2명의 영웅도 상당히 괜찮은 수준이었지만.
그녀는 오늘 처음 본 민유리에게 가장 큰 기대감을 가졌다.
‘올해 청영사에는 무서운 애가 들어왔네.’
서류에 적혀 있는 민유리의 이름 옆에 별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
청영사 3기의 마법사들은 교육에 앞서 그들의 교관들을 따라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었다.
청영사 건물에서 차를 타고 15분, 걸어서 5분 쯤 걸려 도착한 곳은 정사각형 모양의 커다란 건물 앞.
8명의 사람이 동시에 지나가도 될법한 커다란 문을 앞에 두고, 교관이 입을 열었다.
“여긴 특수목적으로 제작된 강당입니다. 내벽과 충전재가 모두 마법 저항력이 높은 소재로 채워져 있으며, 건물 전체에 전문가가 제작한 마력 코팅이 수백겹으로 덧씌워져 있죠. 청와대를 보강하는데 쓰여진 것과 거의 똑같다고 합니다.”
끼이익—
교관의 설명이 끝나자 커다란 문이 활짝 열렸다.
영웅들은 천천히 그 안으로 입장했다.
“우와…….”
“대단하다.”
넘어서자마자 입에서 감탄사를 내는 영웅들이 있었다.
주사위의 정영욱과 꿀잼의 김시후도 그중에 한 명이었다.
그들은 이 장소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여서 제작한 공간인지, 실시간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되게 비싸겠다.’
김시후는 강당의 이용료를 걱정했다.
무려 청와대에서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만큼 어마어마한 요금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청영사는 오늘 이곳을 대여하며 1시간당 1천만 원이 넘어가는 요금을 지불했다.
여러 마법을 사용하기에는 여기만큼 좋은 공간이 없었기에.
“여기서는 건물을 향해 마음껏 강력한 마법을 난사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벽에 튕겨서 다른 사람이 맞을 수 있으니까 조심해 주세요.”
“첫 번째 훈련은 미리 얘기했던 대로 2명씩 짝을 지어서 교육을 진행하겠습니다.”
마법사들은 미리 정해 둔 짝에게로 이동했다.
김시후는 자신의 짝인 정영욱의 옆에 섰다.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그래?”
“다른 사람들은 이미 다 짝이 있더라고.”
자신에게 먼저 함께 훈련하자고 말해 준 정영욱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김시후였다.
다른 동기들은 어째 자신을 피하는 기색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기들 사이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다는 건 유지한에게 이미 들은 바가 있었지만, 정확히 그것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시범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교관이 자신의 지팡이를 앞으로 뻗었다.
그 지팡이의 끝에서 천천히 마력이 뽑아져 나왔다.
거미가 뿜어내는 가느다란 실처럼 보이는 마력.
그것이 앞쪽을 향해서 천천히 나아갔다.
솨아아—
그와 거리를 두고 마주 보는 자세로 있던 다른 교관이 비슷한 형태의 마력을 선보였다.
2명의 2급 마법사가 함께 마력의 실을 뽑아내는 장면이었다.
그 2개의 실은 서로 비슷한 거리만큼 앞으로 나아가서, 중간 지점에서 마주쳤다.
“다음.”
꼼지락거리던 2개의 실이 하나로 얽혔다.
매듭이 지어지는 모양새였다.
곧 중간 지점에서 탄생한 것은 간단한 리본 모양의 매듭이었다.
“이 다음이 중요합니다.”
교관들은 각자 지팡이로 흘러가는 마력의 세기를 높였다.
그에 따라 실의 두께가 굵어지고 매듭의 크기가 커져갔다.
실의 두께는 사람 머리만 한 정도가 되서야 성장을 멈췄다.
“2명의 마법사가 뽑아낸 마력이 서로 얽히는 과정입니다. 이때 힘의 균형은 일정하게 유지되어야 합니다. 한쪽의 힘이 과해지면 실이 끊어져요.”
“매듭의 모양은 신경 쓰지 않아도 좋습니다. 최소한 매듭이 지어진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해 보세요. 마력을 다루는 데 아주 탁월한 도움이 될 겁니다.”
마력을 마치 실처럼 얇고 길게 뽑아내는 것.
그 실을 가지고 타인의 실과 매듭을 짓는 것.
그리고 매듭지은 실의 두께를 점차 증가시키는 것까지.
지금 교관들이 보여 준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마법사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훈련이었다.
“다들 준비하세요.”
지시에 따라 마법사들은 각자 무기를 앞으로 꺼냈다.
누군가는 15cm 도 안되는 작은 지팡이를.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키만큼 기다란 지팡이를 꺼냈다.
김시후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지팡이를 꺼내어 거리를 둔 정영욱과 마주보는 방향으로 섰다.
“준비된 조는 시작해도 좋습니다.”
교관의 허락이 떨어진 직후.
몇몇 마법사들의 지팡이에서 마력이 흘러나왔다.
“윽! 윽!”
“잘 안 되네…….”
“흐으읍!”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시작부터 난관에 빠졌다.
마력의 실을 만드는 과정부터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얇으면서도 길고, 울퉁불퉁하지 않고 깔끔한 실을 뽑아내는 건 꽤 노력과 정성이 들어가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을 하나씩 돌파하다 보면 분명 성장을 체감하게 될 것이었다.
그런데.
“영욱아, 시작한다!”
“나도 간다!”
김시후와 정영욱은 조금 달랐다.
그들은 자리의 누구보다 빠르게 마력의 실을 뽑아내는 것에 성공했다.
지팡이에서 빠져나온 정영욱과 김시후의 실이 점점 거리를 좁혀 갔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교관들이 시선이 그쪽으로 모였다.
‘다음은 매듭.’
김시후는 지팡이를 쥔 손가락 관절을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에 따라 마력의 실이 꼬물거리며 정영욱의 실과 얽혀갔다.
‘이건 좀 어렵네…….’
혼자서라면 깔끔한 리본 매듭을 만들 수 있는 김시후였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하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리본 매듭은 포기하고, 간단한 8자 모양의 매듭이 완성되었다.
‘흐음?’
‘저쪽은 상당히 빠르네.’
교관들은 그 과정을 흥미로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설마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매듭을 지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두께 늘린다!”
마지막 과정인 두께 증가.
김시후는 몸에서 지팡이로 흐르는 마력을 늘렸다.
슈우우우—
마력의 실이 조금씩 굵어졌다.
약 1mm 정도에 불과하던 실이 1cm로.
그리고 3cm, 5cm 로 증가했다.
“호오…….”
“허!”
마지막 과정까지 가능할 줄이야!
교관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게다가 김시후와 정영욱이 만들어 낸 실의 두께가 증가하는 속도는 그들의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빨랐다.
‘더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김시후는 정영욱과 눈빛을 교환했다.
서로 아직 여유가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정영욱이 먼저 실의 두께를 늘렸다.
그에 맞서듯, 김시후도 실의 두께를 키웠다.
“뭐, 뭐야?!”
“빠르다!”
두께가 5cm에서 8cm로, 그리고 15cm를 넘겼다.
교관들은 물론이고 훈련을 진행하던 영웅들의 시선이 한데 모였다.
그만큼 눈길을 끄는 광경이었다.
실 보다는 마치 반투명한 물이 흐르는 거대한 파이프 같은 모양새.
처음에 교관들이 보여 준 것과 비슷한 정도로 굵어져 버렸다.
‘저 자식…….’
김시후를 상대하는 정영욱은 속으로 적잖게 놀랐다.
영웅 학원에 다닐 때부터 마력을 제어하는 능력은 항상 김시후가 앞섰지만, 전체적인 마력의 양이나 마법의 세기는 정영욱이 앞섰다.
그런데 지금 보면 전혀 한 쪽이 밀리는 느낌은 아니었다.
‘못 본 사이에 이만큼이나 성장했다고?’
정영욱은 이를 악물고 실의 두께를 늘렸다.
김시후로서는 도저히 따라오지 못하게끔.
지금 유지되는 균형이 무너져도 상관 없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더 키운다!’
훈련에 재미가 들린 김시후는 그런 정영욱을 바짝 따라갔다.
거기에 더해 두 개의 실 사이의 불안정한 균형을 맞췄다.
상당히 거친 마력임에도 지금의 균형이 유지되는 건 모두 김시후 덕분이었다.
슈우우우우—!
어느새 실의 두께가 두 사람을 집어 삼킬만큼 굵어졌다.
그것은 더는 실이라고 부를 수 없는 형체가 되어 가고 있었다.
마력의 흐름에 따라 주변의 공기가 떨릴 정도였다.
마치 규모가 큰 마법의 전조와도 같은 현상.
거기에 위협을 느낀 주변 영웅들은 뒷걸음질쳤다.
“그만!”
“거기까지!”
결국, 두 사람은 교관들이 개입하고 나서야 행동을 멈췄다.
안전을 위한 결정이었다.
“아직 더 할 수 있는데.”
김시후는 마력을 꺼뜨리면서도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갖고 놀던 장난감을 빼앗긴 아이처럼.
“후…….”
반면 정영욱은 숨을 몰아쉬며 김시후를 노려봤다.
마치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