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교육
[고미나 : 정말로요? 괜찮으시겠어요?]
[유지한 : 예.]
고미나로부터 새로운 채팅방에 초대받았다는 알림이 도착하고.
유지한은 그 알림을 클릭했다.
[채팅방에서 사용할 닉네임을 설정해 주세요.]
채팅방 입장 전, 익명 채팅방답게 원하는 닉네임을 정할 수 있었다.
잠깐 고민하던 유지한은 자신의 본명을 닉네임으로 설정했다.
[유지한 님이 채팅방에 입장하셨습니다.]
[크르릉 : ?]
채팅방의 입장 메시지가 출력됨과 동시에.
누군가가 물음표 하나를 채팅방에 적었다.
그리고 잠시 동안 누구도 메시지를 보내지 않는 정적이 이어졌다.
[청룡 : 뭐야? 유지한?]
[오또두 : 진짜인가?]
[퍼르 : 저 사람 누가 초대했어요?]
이내 기존에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이 의문을 드러냈다.
진짜로 유지한이 입장한 건지 의심하는 것이었다.
조금 전까지 유지한에 대한 험담을 나누고 있었기에 파문은 커졌다.
[오또두 : 유지한 맞음?]
[청룡 : 지금 들어온 사람. 뭐라 말 좀 해봐요.]
[사과 : 진짜 본인이 들어온 거?]
채팅방에 유지한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직접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들보다 지켜보는 인원이 많아질 즈음.
흥미로운 시선으로 그 반응을 바라보던 유지한이 휴대폰의 키보드를 두드렸다.
[유지한 : 꿀잼의 유지한입니다.]
[청룡 : 당신이 진짜 유지한 맞아요?]
[유지한 : 맞습니다. 인증이라도 할까요?]
누군가 보낸 물음에 긍정하자 다시금 채팅방에 정적이 깔렸다.
설마 본인이 직접 등장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사과 : 정말로 본인이 들어왔나 봐.]
[청룡 : 여긴 그쪽을 위한 채팅방이 아닌데.]
[청룡 : 그만 나가 주세요.]
기존 채팅방의 유저들 중에는 유지한을 쫓아내려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유지한은 그에 개의치 않고 메시지를 적었다.
[유지한 : 여기서 내 얘기가 그렇게 많이 나온다면서요.]
[퍼르 : 마침 잘됐네. 온 김에 하나만 물읍시다. 당신이 지나가던 시민들 괴롭혔다는 게 사실인가요?]
[유지한 : 그런 적 없습니다.]
[퍼르 : 목격자도 있다고 하던데요?]
[유지한 : 그러면 그 목격자라는 사람을 내 앞에 직접 데려와 보세요. 아마 절대 못 데려오겠지만.]
유지한은 채팅방이 아니라 현실에서 직접 대화를 나누자는 입장이었다.
그러면 뭐든 증명을 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 소문을 퍼트린 사람들이 그러지 못 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채팅이나 말 따위로 실체 없는 소문을 퍼트리는 건 쉽겠지만.
직접 대면해서도 거짓말을 이어 나가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기에.
[파랑 : 저도 질문이요. 유지한 파티가 청영사의 관계자를 돈으로 매수해서 합격했다는 썰이 있던데.]
[유지한 : 제 소속 길드는 그럴 의사도 없고, 돈도 없습니다. 돈으로 사람을 매수하려면 꽤 높은 직급이어야 할 텐데, 못해도 당장 지금 저보다 잘 버는 사람들일걸요.]
[구름 : 저번 피드백 교육에서 사용된 영상이 편집 전문 업체에 맡긴 결과물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유지한 : 그건 업체가 아니라 영웅부 측에서 편집한 영상입니다. 보안 문제 때문에 일부 장면을 잘라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구름 : 그럼 그때 영상에는 아무런 조작이 없다는 말인가요?]
[유지한 : 물론입니다. 정 의심되시는 분은 교관님들이나 영웅부 측에 물어보세요.]
하나 같이 무례함이 느껴지는 질 나쁜 소문들.
유지한은 거기에 끝까지 당당한 태도를 잃지 않고 반박을 이어 갔다.
[파랑 : 그럼 여기서 나오던 소문은 다 뭐야.]
[퍼르 : 전부 거짓말이었다고?]
그런 그의 모습에 채팅방에 들어온 일부 유저들은 동요했다.
하지만 대다수는 그의 말을 믿지 않는 분위기였다.
[크르릉 : 당신이 죄 없는 사람을 죽였잖아요!]
[유지한 : 그런 적 없습니다.]
[크르릉 : 거짓말하지 마세요. 이건 문경진 파티를 통해서 확실하게 확인한 정보입니다.]
[유지한 : 문경진 파티가 무슨 신이라도 됩니까? 그쪽에 확인하면 거짓이 진실로 바뀌나?]
[청룡 : 지랄하네.]
[유지한 : 지랄하는 건 당신들이고.]
[고기 : 좁밥 영웅 새끼가 말이 많아.]
[유지한 : ㅗ]
반박을 이어 가던 자신에게 갖은 비난이 쏟아지자 유지한은 가볍게 대응하며 코웃음을 쳤다.
채팅방에서 이뤄지는 대화는 딱 그가 예상하던 수준에서 머물렀다.
아무리 욕설을 던지고 가짜 소문을 퍼트린들, 유지한은 그걸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유지한 : 여러분!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이런 채팅방이 아니라 내 앞에 직접 와서 하세요.]
[유지한 : 여기서 하나같이 쥐새끼마냥 뒷담화까지 말고.]
[오또두 : 쥐새끼라고?]
[청룡 : 약소 길드 주제에 입만 살아서는.]
[유지한 : ㅋㅋㅋㅋ 불만 있어요? 불만 있으면 나한테 직접 오세요. 얼마든지 상대해 줄 테니까.]
[유지한 : 물론 그때 창피당하는 건 내가 아니라 그쪽들일겁니다.]
[유지한 : 아, 그리고 이 채팅방을 처음에 만든 사람이 누군지 슬슬 짐작이 갑니다.]
[유지한 : 그분 요새 건강이 괜찮나 몰라?]
[유지한 : (고양이가 왼발바닥을 혀로 핥고 있는 이모티콘)]
[고기 : 미친 새끼.]
이어서 다른 유저들의 공격적인 발언이 이어졌지만.
유지한은 이 이상 대화를 이어 나갈 생각이 없었다.
[유지한 : ㅅㄱㅇ]
할 말을 끝낸 유지한은 그대로 채팅방을 나왔다.
그리고 잠시 후, 고미나에게서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
[고미나 : 굿!]
[고미나 : 저도 그냥 채팅방 나왔어요.]
그녀도 채팅방을 나갔다는 소식이었다.
유지한은 정보를 알려 준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유지한 :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미나 : 에이, 별 것도 아닌걸요 ^^*]
[고미나 : 그런데 지한 씨!]
[고미나 : 혹시 다음에 시간 괜찮으시면 식사나 같이 하시는 건…….]
*****
“…….”
휴대폰을 내려다보던 문경진이 이내 주먹을 꽉 쥐었다.
휴대폰 화면에 떠오른 것은 조금 전에 유지한이 떠난 익명 채팅방.
문경진이 은연중에 청영사의 동기들을 불러 모은 채팅방이었다.
익명이라 부담 없이 참여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꽤 여러 영웅들이 모일 수 있었다.
[고기 : 님들! 설마 유지한이 했던 말을 믿는 건 아니죠?]
[사과 : 설마요. 그 수준 떨어지는 영웅 말을 어떻게 믿어요?]
자기 할 말을 마치고 채팅방을 떠난 유지한을 비난하는 사람들.
그중 일부는 문경진의 파티원이고, 바람잡이처럼 미리 섭외해둔 영웅도 있었다.
그런데…….
[이루녕 : 저는 여기 나갈랍니다.]
[너구리 : 호다닥]
[너구리님이 채팅방을 떠나셨습니다.]
[aww : 저분은 별 말도 없이 나가셨네.]
[에페 : 저도 나가요. 같은 쥐새끼가 되고 싶지는 않아서.]
유지한이 채팅방에서 분탕질을 치는 바람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갔다.
20명을 넘어가는 인원이 10명 안팎으로 줄어드는 데는 단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아마 지금 채팅방을 보지 않은 인원이 들어오면 더 줄어들 수도 있었다.
“씨발!”
퍽!
분을 이기지 못한 문경진이 주먹으로 옆의 소파를 내려쳤다.
영웅의 힘을 견뎌 내지 못한 소파의 가죽은 단번에 찢어지고 말았다.
‘유지한 이 새끼……!’
그는 유지한 파티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조장하려 했었다.
청영사 동기 사이에서 소문을 퍼트려 교관들이나 관계자의 귀에도 닿게끔 말이다.
그런데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니 뜻대로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빠드득!
문경진이 이를 소리 나게 갈았다.
유지한이 보낸 고양이 이모티콘을 보니 갑자기 아파트에서 괴냥이들에게 씹어 먹혔던 왼쪽 다리가 무척 쓰라렸다.
왼쪽의 의족을 포함해 인공 손가락까지.
전체적인 회복이 끝나서 통증은 없을 텐데도, 자꾸만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그였다.
“……이렇게는 못 넘어가.”
채팅방에서 유지한이 보인 말투를 보라.
아주 자만심이 넘치다 못해 건방지기까지 했다.
녀석이 지금처럼 계속 활개 치도록 놔둘 수는 없었다.
‘대체 어떻게 하면 그 새끼를 방해할 수 있지?’
딱! 딱! 딱! 딱!
문경진은 엄지 손톱을 깨물며 눈알을 굴렸다.
다른 영웅들이 녀석들을 욕하게 만들고 싶다.
무슨 수를 써서든 유지한의 앞길을 막아 버리고 싶다!
잔뜩 핏발 선 눈으로 휴대폰을 내려다보는 문경진이었다.
*****
[청영사 입교생을 대상으로 발송하는 메시지입니다. 각 포지션 별 교육이 예정되어 있으니, 이 메시지를 받은 원거리 딜러들은 당일 오후 2시까지 지하 훈련실로 모여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청영사 측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은 민유리는 지하의 훈련소로 이동하고 있었다.
오늘은 청영사의 새로운 교육이 진행되는 날.
원거리 딜러나 탱커, 전사, 마법사 등 영웅마다 포지션에 맞는 특별한 교육이 예정되어 있었다.
같은 파티의 유지한과 김시후 또한 다른 곳에서 교육을 받게 될 것이었다.
‘누가 올까?’
이번 교육을 진행할 영웅은 기존에 청영사 졸업했던 선배 영웅이라고 한다.
미리 1기와 2기 청영사 선배들을 찾아봤던 민유리는 오늘 교육에 누가 나올지 궁금해했다.
‘저기구나.’
오후 1시 55분 즈음, 청영사 동기들이 모여 있는 구역에 도착했다.
그녀는 그들과 함께 교관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딱 오후 2시가 됐을 무렵.
훈련소에 어느 여성이 손을 흔들며 등장했다.
“얘들아 안녕!”
“헛!”
“이수지 선배님?!”
영웅 이수지.
자리에 있던 영웅들은 그녀의 얼굴을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
아이스볼의 2급 파티에서 원거리 딜러를 맡고 있는 그녀는 상당한 인지도를 보유한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진석우만큼은 아니지만 가끔씩 연예계 쪽에서도 활동을 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오늘 교육은 내가 진행할건데……. 다들 나 알고 있어? 그러면 따로 소개 안 해도 되지?”
“네!”
“사, 사인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수업에 잘 따라와 준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팬에게는 친절한 이수지였다.
사인을 요청한 남자 영웅은 기대감에 찬 표정을 지었다.
“바로 가자!”
그녀는 등장하자마자 원거리 딜러들을 이끌고 훈련소 내 마법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마치 사격장처럼 길게 구성된 공간.
총 대신 사용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영웅의 마력뿐이다.
“다들 위치로.”
이수지는 30명이 넘는 인원을 훈련장에 일렬로 배치시켰다.
“너희 모두 지금부터 내가 멈추라고 할 때까지 각자 마력을 이용해서 표적을 쏴.”
“네?”
이수지는 후배 영웅들을 훑어보며 싱긋 미소 지었다.
여기 모인 이들은 4급 중에서도 가능성이 넘쳐나는 원석들.
오늘 그녀는 이들의 한계를 시험해 볼 생각이었다.
“이 훈련장은 내가 오늘 하루 종일 쓰겠다고 말해 뒀으니까 걱정일랑 말고.”
“그냥 쏘기만 하면 되는 건가요……?”
“그래. 바로 시작!”
저 멀리 표적이 모습을 드러내고.
영웅들은 각자 자기만의 방법으로 공격을 날렸다.
피슝! 피슝! 피슝!
슈우우웅!
화살, 표창, 탄환 등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가공된 마력들이 표적들을 덮쳤다.
다들 이수지의 지시에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면서도 착실하게 따르는 모습이었다.
그녀에게 나름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시작부터 전력을 쏟아붓는 사람도 있었다.
“헉, 헉…….”
“후우!”
갑작스러운 훈련 시작 후 40분 쯤 지났을까.
많은 영웅들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주룩 흘러내렸다.
쉬지 않고 마력을 사용한 탓에 마력은 물론이고 체력까지 많이 소모된 것이다.
“거기! 5초 이상 쉬지 말고 계속 쏴!”
이수지는 감독관처럼 모두의 뒤쪽에서 농땡이를 피는 영웅들을 질타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하나 둘씩 마력이 떨어지거나 지쳐가는 영웅들이 나올 즈음…….
‘지겨워.’
다른 영웅들과 달리 몸에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민유리는 슬슬 지겨움을 느끼고 있었다.
교관 이수지의 시선은 한동안 그런 그녀에게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