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소문 (5)
청영사의 훈련장.
고미나 파티는 단체 훈련을 진행하고 있었다.
“앞으로 가!”
“언니, 이쪽으로!”
그녀들의 눈앞에는 홀로그램으로 가상의 적이 출력되었다.
파티로서 적을 상대한다는 가정 하에 치러진 모의 전투였다.
손에 들고 있는 무기는 활을 제외하고 모두 전투 훈련 전용으로 제작된 무기.
가상의 적을 공격하면 현실과 비슷한 충격에 반발력까지 느껴지는 도구였다.
“들어갔다!”
“다음이 마지막이야!”
고미나 파티의 공격을 버티지 못한 적의 형체가 바스라지며 사라졌다.
그리고 이어서 시작된 다음 전투.
‘나왔다!’
고미나의 눈에 인간의 모양을 본뜬 붉은 색의 적들이 비쳤다.
이 모의 전투를 시작하기 전 체력을 아주 높게 설정해 둔 개체들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커다란 녀석은 얼굴에 눈, 코, 입 대신 A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유지한 파티와 대련을 치렀던 당시 방패를 들고 있던 칠라와 모습과 같았다.
포지션도 그때와 거의 비슷하게 설정을 해둔 상황이었다.
‘이때를 기다렸어.’
이 마지막 전투가 오늘 훈련을 진행하는 이유와도 같았다.
가상의 적들과 잠시 대치를 이어 가던 고미나가 외쳤다.
“시작하자!”
그녀의 명령이 떨어지자 전사 3명이 상대측 딜러들을 향해 달렸다.
적 중에서 탱커 역할을 맡은 탱커A는 팀원들을 보호하라는 프로그램의 알고리즘에 따라 그들을 가로막았다.
“어딜!”
“핫!”
함께 달려가던 3명의 전사 중 2명이 각각 좌측과 우측으로 빠졌다.
목표물이 3개로 나뉘자 갈팡질팡하던 탱커A는 최대한 동료들과 가깝게 뒤로 물러났다.
“어림도 없지!”
좌측으로 빠졌던 고미나 파티의 전사가 상대측 딜러진을 노렸다.
탱커A는 그녀의 접근을 막기 위해 방패를 들었으나, 동시에 정면과 우측에서 다가온 전사가 녀석의 하단을 공격하는 것에 성공했다.
“좋았어!”
전사들은 첫 공격에 성공한 이후 상대측의 반격을 피하면서 다시금 공격 기회를 엿봤다.
일부러 주위를 빙빙 돌며 압박하니 당황한 적들은 우왕좌왕하며 힘을 쓰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고미나 파티의 장점인 속도감 있는 전투가 진행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 뒤쪽에서는 고미나와 상대측 전사B의 전투가 치러지고 있었다.
‘역시 빠르다.’
얼굴에 알파벳 B가 적혀 있는 전사B는 고미나의 휘두르는 쌍검을 가볍게 피했다.
예상했던 결과에 고미나가 침을 꿀꺽 삼켰다.
녀석은 그녀가 유지한을 떠올리며 생성한 적이었다.
높은 체력과 힘, 그리고 빠른 속도까지 전부 가지고 있다는 설정의 전사.
‘잘못하면 또 지겠어.’
이 훈련에서 기본값으로 제공하는 적과는 많이 달랐다.
고미나는 쉬지 않고 녀석을 공격했지만, 전사B는 높은 능력치를 가진 개체답게 쉽게 밀려나지 않았다.
“지금이야!”
“네!”
고미나는 전사B의 공격을 세게 튕겨 내며 옆으로 물러났다.
동시에 그녀 뒤에 있던 원거리 딜러가 전사B에게 마력으로 만든 표창을 연사했다.
표창 정도는 검으로 가볍게 튕겨 내는 전사B였지만.
고미나는 옆쪽에서 그의 빈틈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서걱!
그리고 결국 2인 합공으로 전사B에게 유효타를 먹일 수 있었다.
“그렇지! 이렇게만 가자!”
가상의 적들과 팽팽하게 맞서던 고미나 파티는 전투에서 조금씩 승기를 잡아갔다.
그리고 약 15분 후.
전투 시작부터 전력을 다해 움직인 탓에 호흡이 조금 거칠어질 즈음.
[YOU WIN]
적들을 모두 쓰러뜨리는 것에 성공했다.
“와!”
“이겼다!”
“하아아…….”
전투를 마친 고미나 파티원들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다들 하나같이 지친 기색이었다.
“이걸로 1승 3패죠?”
“맞아.”
고미나는 파티원의 물음에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과 비슷한 모의 전투에서 이미 3번이나 패배했던 그녀들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겼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길 것이었다.
‘그 짧은 사이에 실력이 늘었어.’
대련에서 유지한 파티에게 압도적으로 패배한 이후.
큰 충격을 받은 고미나 파티는 항상 진행하던 몬스터 사냥도 그만둔 채 훈련에 많은 시간을 쏟고 있었다.
언젠가 현장에서 침입자를 마주친다면 정말로 전멸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엄습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고미나는 훈련을 진행한 지 약 일주일만에, 자신의 파티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체감하고 있었다.
‘이게 다 지한 씨 덕분이겠지.’
고미나는 유지한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는 이전의 대련에서 고미나에게 상세한 피드백을 주었다.
그때 메모해 둔 피드백은 고미나 파티가 변화하는 일에 아주 큰 영향을 끼쳤다.
파티원들의 공격과 수비가 이전보다 한층 안정되었고, 고미나는 리더로서 전투의 흐름을 어떻게 가져가면 좋을지도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조만간 감사 인사를 드려야겠어.’
그의 도움으로 이런 변화를 겪고도 그냥 넘어가는 건 도리가 아니다.
나중에 금전적인 것이든 뭐든 간에 보답을 할 생각이었다.
“언니. 물 좀 드세요.”
“고마워.”
고미나는 파티원이 가져다 준 생수를 마셨다.
새로 뜯은 500ml 짜리 생수를 절반 넘게 마신 뒤에야 갈증이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저기, 언니. 저번에 유지한 파티 말인데요…….”
“응?”
“지금도 계속 소문 돌고 있잖아요.”
최근 청영사 동기 사이에서 도는 소문들.
유지한 파티가 평범한 시민들을 괴롭혔거나, 죄없는 영웅들을 공격했다는 등, 하나 같이 좋지 못한 이야기뿐이었다.
“역시 그분들이 소문이랑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저도요.”
하지만 고미나 파티원들은 그 소문을 믿지 않았다.
정확히는 믿기 힘들어했다.
파티에 지금 같이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준 사람들이 그런 행동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그래.”
고미나는 유지한을 매우 범상치 않은 영웅으로 여겼다.
떠도는 소문처럼 성격이 나쁜 사람이라기보다는, 아직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은둔 고수의 느낌이었다.
되레 지금보다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말이다.
“그런데 유지한 씨 말이야…….”
“네?”
“꽤 괜찮은 사람 같지 않아?”
고미나가 문득 뱉은 말에 나머지 파티원들이 그녀를 쳐다봤다.
개중에는 놀랐다는 얼굴을 한 사람도 있었다.
“언니, 혹시…….”
“아니죠?”
“글쎄?”
턱을 괴며 고개를 돌린 고미나가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띠었다.
파티원들은 그런 그녀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한번 점찍은 남자는 남의 남자라고 하더라도 자기 걸로 만들었던 고미나였다.
그러면서도 쉽게 질린다는 이유로 연애 기간이 일주일을 채 넘기지 않는 경우가 많을 정도.
‘이 언니가 또 병이 도졌나.’
‘느낌이 안 좋은데.’
‘또 한 명의 희생양이…….’
고미나를 바로 옆에서 지켜봐 온 파티원들은 말없이 물을 마실 뿐이었다.
*****
유지한의 집 주방.
불이 켜진 가스레인지 위에 양은 주전자가 올려졌다.
치이이—
강불로 달궈진 주전자에 담긴 물이 끓기 시작하고, 배출구에서 허연 김이 흘러나왔다.
짠내와 쓴내가 동시에 느껴지는 수증기였다.
그 안에 담긴 것은 럭키 위스커와 화이트 엄브렐라.
하나같이 구하기 힘든 희귀한 재료들이었다.
여러 번 끓인 덕분에 점점 맛이 옅어지는 느낌은 있었지만.
완전히 뽕을 뽑을 때까지는 계속 끓일 예정이었다.
“긴장되네.”
싱크대 앞에 서있던 유지한은 가스레인지 옆에 놓인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쪽에는 푹신한 스폰지와 하얀 종이 따위로 무언가가 꽁꽁 싸여 있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그 포장들을 뜯었다.
“이게 괴삼…….”
상자 안에 들어있던 것은 다름 아닌 괴삼!
그것도 품질이 뛰어난 6년근 괴삼으로 청영사에서 유지한 파티에게 보내온 것이었다.
유지한은 마치 연약한 아기의 피부를 만지듯 괴삼의 겉면을 쓰다듬었다.
‘확실히 진품이군.’
마치 잘 자란 무처럼 두꺼우면서도 검붉은 몸통.
그 밑으로 뻗어 있는 잔뿌리는 눈으로 개수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아주 얇고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직접 잔뿌리의 개수를 세어 본 사람의 후기로는 약 천여 개가 넘는다던가.
살아 있을 때는 저 뿌리를 이용해 땅을 걸어다니기도 하고, 공격하기도 한다고 하던데…….
하여간 인터넷에서 본 괴삼의 사진과 똑같았다.
‘향이 엄청나다.’
괴삼은 포장을 뜯기 전부터 상자를 뚫고서 향기가 조금 느껴졌었다.
그리고 본 모습이 드러난 지금은 주방 전체에 쌉싸름한 향이 맴돌고 있었다.
마치 잘못 만들어진 향수 한 병을 집 안에 쏟아 버린 느낌이었다.
괴삼을 손으로 만진 지금, 비누로 빡빡 씻어도 손에서 냄새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이걸 썰어야 하는데 말이지.”
유지한은 식칼을 꺼내어 괴삼을 자르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역시 평범한 식칼로는 괴삼을 자를 수 없었다.
억지로 힘을 주다가는 날이 깨져 버릴 것 같았다.
결국 그는 사냥할 때 사용하는 검을 가져다가 괴삼을 썰었다.
‘여기에 괴추를 추가해서…….’
그 다음에 꺼낸 것은 붉은 대추가 몬스터로 변한 괴추였다.
몽땅의 장사임을 통해 구매한 양질의 괴추는 하나같이 주먹만 한 크기였기에 2알이면 충분했다.
마찬가지로 검으로 잘게 썰어다가 괴삼과 함께 소독을 끝낸 투명한 유리병에 넣었다.
‘마무리로 꿀을 넣으면 끝.’
괴추와 괴삼이 들어간 유리병에 달콤하고도 찐득한 꿀이 부어졌다.
지금 유지한이 만들고 있는 것은 괴추괴삼청.
괴삼을 섭취하는 다양한 방법 중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는 괴추괴삼차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었다.
“숙성되고 먹으면 되겠어.”
청을 완성한 유지한은 매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파티원들에게 나눠 줄 생각을 하니 뿌듯함이 배가 되는 느낌이었다.
‘삼괴탕을 만드는 것도 괜찮았으려나.’
유지한의 냉동실에는 괴물 닭의 고기 일부가 남아 있었다.
괴삼과 그걸 이용하면 삼계탕이 아닌 삼괴탕을 만드는 것도 가능할 터.
그런데 그가 유리병을 조심스럽게 바닥으로 내려놓던 그때였다.
띠링!
휴대폰에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
“미나 씨네?”
얼마 전에 번호를 교환했던 고미나의 메시지였다.
[고미나 : 지한 씨! 이것 좀 보세요.]
고미나는 사진 몇 개를 연속으로 보내왔다.
한국에서 흔히들 사용하는 메신저, 파파오톡의 채팅방을 촬영한 화면이었다.
유지한은 그 사진들을 하나씩 클릭해서 살폈다.
“……?”
그런데 사진에 보이는 대화 내용이 이상했다.
[사과 : 그 유지한이라는 놈이 진짜 쓰레기라니까요.]
[퍼르 : 지나가는 시민들을 괴롭혔다는 썰도 있던데.]
[오또두 : 사실이에요. 직접 본 목격자도 있다고 해요.]
[크르릉 : 유지한 파티의 실체.png]
[청룡 : 같은 청영사 입교생으로서 너무 부끄러운…….]
…….
…….
참여자들이 익명으로 나와 있는 채팅방에는 하나같이 유지한 파티를 험담하는 내용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고미나 : 청영사 입교생들이 일부 모여 있는 채팅방이에요.]
[고미나 : 저희도 이번에 새로 초대받아서 들어갔는데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더라고요.]
놀랍게도 참여 인원은 모두 청영사 입교생이라고 한다.
고미나의 추가 메시지를 확인한 유지한이 머리를 긁적였다.
‘안 보이는 곳에서 이딴 짓을 하고 있었나.’
누가 이런 짓을 벌였는지는 짐작이 됐다.
나이프 길드의 문경진, 혹은 나이스 길드의 민주용.
그중에서도 유지한이 강하게 의심하는 건 문경진이었다.
“유치하게.”
겨우 이런 걸로 피해를 주려고 했던 걸까.
다시금 사진을 훑던 유지한은 고미나에게 답장을 보냈다.
[유지한 : 혹시 미나 씨가 저 채팅방에 새로운 사람을 초대할 수 있어요?]
[고미나 : 아마도요?]
[유지한 : 그러면 저 좀 초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