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영화관 (3)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진석우가 손가락을 튕겼다.
파앗—
유지한 파티원들과 진석우를 기준으로 반경 2m를 감싸는 얇은 마력의 막이 생성되었다.
내부의 소리가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게끔 제어하는 것이다.
“오늘 공개된 영상은 영웅부에 편집을 맡긴 결과물입니다.”
유지한 파티가 백화점에서 촬영한 영상은 원활한 수업의 진행을 위해 일부 편집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편집된 영상 중에는 물리적인 접근을 차단하는 결계의 존재와 그들이 마지막에 바바리안들과 치렀던 전투까지도 포함되었다.
꽤 자연스럽게 편집이 되어 있어서 사람들은 빠진 부분이 있는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지만.
사실상 그날의 가장 중요한 장면이 제외된 것이다.
“교육에 앞서 영웅부와 상의해 본 결과, 바바리안과의 전투가 담긴 영상은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됐습니다.”
“역시 그랬나요.”
진석우의 말에 유지한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당시 부천에서 바바리안이 등장했다는 소식은 아직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
꿀잼에도 가급적 협조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기에,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는 건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었다.
“그게 언제까지고 숨겨지지는 않을 텐데요.”
“아무래도 그럴 겁니다. 그건 영웅부에서 감당할 몫이죠.”
사망자가 다수 발생한 사건이었다.
아무리 옥상에서 괴무가 나타났다곤 해도 시체가 훼손된 정도라든지, 의심쩍은 부분이 너무 많았기에 오랫동안 숨길 수는 없을 터였다.
죽은 영웅들의 유가족들이 항의가 계속되면 언젠가 공개가 되겠지.
게다가 현장에 있던 영웅들의 입단속이 평생 유지될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영웅부의 결정과는 별개로 파티의 활약상을 감추게 된 점은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진석우는 무척 미안하다는 표정이었다.
유지한 파티와 바바리안과의 전투는 분명 큰 파급력을 몰고 올 영상이었다.
그런데 그걸 공개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본인들은 큰 불만을 가질 수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김시후가 진석우에게 말했다.
“이렇게 되면 저희는 오늘 공개된 영상으로만 다른 파티의 피드백을 받게 되는 거죠?”
“그렇죠.”
오늘 영상의 하이라이트 장면은 옥상에서 괴무들과 치른 전투.
4급 파티가 3급 몬스터에게서 붙잡힌 영웅들을 구출하고 잡아내기까지 했다는 건 놀라울 정도의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에 따른 보상을 요구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영상을 공개할 수만 있다면 저희는 무조건 좋은 피드백을 받을 자신이 있거든요.”
김시후의 주장은 나름 일리가 있었다.
갑자기 등장한 침입자를 하나도 아니고 여럿이나 제압했다는 건 몬스터 사냥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대단한 활약이었으니.
원래대로라면 청영사에서 가산점을 받는 건은 물론이고, 어쩌면 청영사를 졸업할 수준에 닿을지도 모른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진석우는 짧은 고민 끝에 김시후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우선 청영사에서 한 번에 드릴 수 있는 최고 가산점을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가산점이라는 말에 김시후는 씩 하고 웃었다.
얼마나 점수가 더해지는지는 모르겠으나, 이제 어지간한 실수를 연달아 벌이지 않는 이상 청영사에서 쫓겨나지는 않을 것이리라.
그러면 무료로 대여한 사무실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졸업 후 1년까지도 사무실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제 재량으로 유지한 파티에 괴삼 하나를 지급해드리겠습니다.”
“예?”
“정말이요?”
이어진 말에 유지한 파티원 모두가 눈을 크게 떴다.
그 반응을 본 진석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혼자 보기 아까울 만큼 아주 멋진 모습을 보여 주신 대가입니다.”
“……6년근인가요?”
“물론이죠. 청영사는 오직 6년근 괴삼만 보관하고 있습니다.”
“와.”
돈 주고도 구하기 힘든 6년근 괴삼을 주겠다니.
이게 웬 떡이냐!
예상치 못한 수확에 민유리마저 쉽게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 참, 그리고 이건 피드백 교육에서 지급되는 괴삼과는 별개입니다.”
“예? 그 말씀은…….”
“저희가 교육에서 괴삼을 한 번 더 받을 수도 있다는 말씀인가요?”
“맞습니다.”
진석우는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였다.
앞선 피드백 교육에서 범상치 않은 피드백을 제출했던 유지한 파티다.
어쩌면 교육에서 지급되는 괴삼도 이들이 챙겨갈 가능성이 있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좋은 모습 보여 주세요.”
영상 편집으로 인한 보상 건은 그렇게 정리가 되었고.
그들 간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시후 씨.”
“네.”
진석우가 아주 진지한 눈빛을 하며 물었다.
“바바리안과의 전투에서 시후 씨가 사용한 마법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그……. 커다란 손 말씀이신가요?”
“네. 더불어 지한 씨에게 사용한 마법도.”
“…….”
머뭇거리던 김시후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전혀 알지 못하는 마법이었습니다. 저도 제가 어떻게 사용했는지 모르겠어요.”
“그 당시에 의식이 있긴 했나요?”
“제가 뭔가를 했다는 감각만 어렴풋이 남아 있습니다.”
바바리안과의 전투가 끝나고 백화점을 빠져나온 당시.
잠에서 깨어난 김시후는 자신에게 어떤 일이 발생한 건지 알지 못했다.
천장에서 등장한 거인의 손은 무엇인지, 유지한의 몸을 강화시킨 마법은 무엇인지.
기억은 나지만 스스로도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마력이 늘긴 했지만.’
특이한 점이라면 그 일을 겪은 후에 마력의 양이 증가했다는 것.
응축력 또한 좋아져서 더 밀도 있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마법들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겠어요?”
“어렵습니다.”
“흠,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보이긴 했습니다만…….”
진석우의 추측도 유지한과 비슷했다.
그 급박한 상황에서 김시후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었다.
“몸에 뭔가 달라진 건 없어요?”
“마력이 큰 폭으로 늘어난 느낌은 있습니다.”
“그러면 깨달음이 맞는 모양이군요.”
바바리안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급박한 상황.
영웅이 깨달음을 얻은 사례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지금처럼 깨달음으로 그런 위기에서 벗어난 사례도 적잖게 있었다.
‘4급에 깨달음을 얻은 건 정말 극소수인데.’
3급도 아닌 4급 영웅이 깨달음을 얻은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김시후는 그 드문 사례에 포함된 것이다.
“먼저 축하한다는 말씀 드리고 싶네요.”
“가, 감사합니다.”
진석우는 흔치 않은 기회를 얻은 김시후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말을 건넸다.
청영사의 교관으로서 가르치는 영웅이 크게 성장한다는 건 그의 기쁨이기도 했다.
“시후 씨는 하프엘프시죠?”
“알고 계셨네요.”
“입교생들의 기본 인적 사항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습니다.”
청영사 본부는 김시후가 하프엘프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본인이 직접 밝히지 않았기에 따로 언급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추측에 불과하지만, 제 눈에 영상 속 마법은 엘프의 마법처럼 보였습니다.”
“엘프의 마법이요.”
“저는 과거에 엘프 침입자들과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어느 엘프 마법사의 공격 마법이 시후 씨가 영상 속에서 사용한 마법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형태나 위력은 많이 다르지만요.”
“그게 정말인가요?”
“네.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담이니 참고만 해 주세요.”
초록색 풀 따위로 엮어진 테두리는 정황상 숲과 함께 살아가는 엘프를 떠올리게 하는 마법이었다.
그건 김시후도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부분이었지만.
‘그만큼이나 강한 마법은 들어본 적이 없어.’
무려 바바리안을 한번에 제압할 정도의 위력.
어머니이자 순혈 엘프인 에르나 하스는 단 한 번도 그런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 마법을 내 것으로 삼는다면…….’
스스로도 어떻게 사용했는지 모르는 마법이다.
하지만 그만큼 강력한 힘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면, 분명 파티에 엄청난 도움이 되리라.
그렇게 생각한 김시후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하고 쥐었다.
*****
IUPC의 사무실.
검은색 코트를 입은 남자가 입구로 걸어 들어왔다.
업무 도중 그를 발견한 한 직원이 말했다.
“부장님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사람 좋은 미소를 띤 부장은 직원들에게 밝게 인사했다.
“출장은 끝나셨어요?”
“조만간 또 나가 봐야 해요.”
“또요? 항상 바쁘시네요.”
“하하. 연맹의 성장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출장에서 돌아온 부장이 직원들과 잠시 잡담을 나눴다.
회사에서 상당히 높은 직급이지만, 아래에 있는 직원들과도 부담 없이 교류하는 그였다.
그러다 부장은 자신의 서류가방을 뒤적였다.
“아 참, 이건 출장에서 가져온 선물입니다.”
“와, 진짜 귀여워요!”
그가 꺼내든 것은 엄지 손톱만 한 크기의 수제 사탕이었다.
작은 원통형 모양의 사탕 위에는 어느 몬스터를 형상화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동료 직원들하고 나눠 드세요.”
“잘 먹겠습니다!”
흐뭇하게 웃어 보인 부장은 사무실 복도를 쭉 걸어 자신에게 배정된 부장실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그 혼자만의 사무실.
부장은 소파 위에 서류가방을 올려놓고 코트를 벗었다.
똑똑.
“들어오세요.”
어느 직원이 방금 닫힌 문을 열고 들어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책상을 정리하는 부장에게 꾸벅 인사를 한 그녀가 입을 열었다.
“프로젝트 결과 보고 드립니다. 부천의 백화점에서 바바리안의 습격으로 인한 피해자는 총 10명으로…….”
“10명?”
“네.”
“사망자는?”
“중상은 2명, 사망자는 8명으로 보고 있습니다.”
움직임을 멈춘 부장이 보고 중인 직원을 돌아봤다.
그는 조금 전 직원들에게 보여 준 밝은 미소는 온데 간데 없는,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죽은 영웅이 8명이라고요?”
“네.”
“고작?”
“…….”
죽은 인원이 그것밖에 되지 않느냐.
부장은 은근히 분노한 기색이었다.
직원은 별다른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4급 MA였잖아요?”
“맞습니다.”
“옥상에는 괴무가 있었고, 각 층에 영웅부에서 빼돌린 물리 결계를 설치한 데다가, 바바리안이 10명도 넘게 나타났는데……. 겨우 그것밖에 안 죽었다고.”
“알려진 정보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결계에 문제가 있던 건 아닌가요?”
“담당자가 확인한 바로는 마석이 부서지기 전까지 원격으로 결계를 켜고 끄는데 문제가 없었습니다.”
“당시 안에 있던 인원은요?”
“영웅부의 파티 입장 기록에 의하면 전체 37명이라고 합니다. 저희 쪽 인원을 제외하면 34명 정도가 되겠습니다.”
세간에 알려지기로 바바리안은 아무리 못해도 4급 영웅들을 쉽게 제압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이종족들이었다.
어쩌면 3급 MA에 등장하더라도 커다란 피해를 입을 수준.
게다가 물리적인 접근을 차단하는 결계까지 설치하여 더 큰 피해를 유도했으니, 적어도 20명 이상의 피해자가 나와야 했다.
그런데 결과는 겨우 영웅 몇 명을 죽이는 것으로 끝났다.
부장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들인 노고에 비하면 실패라고 봐야겠어요.”
“죄송합니다.”
“아뇨. 당신이 죄송할 일은 아니죠. 멍청한 바바리안이 문제지. 이럴 줄 알았으면 영웅을 노릴 게 아니라 지난번처럼 심플하게 괴네나 풀어놓는 건데, 괜히 시간만 버렸네.”
“…….”
“그래서, 누가 죽인 건데요?”
질문하는 부장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팔뚝에 소름이 돋은 직원은 긴장한 채 말을 이어 갔다.
“소, 소식에 따르면 특정한 파티에서 바바리안들을 처리한 것 같습니다.”
“그게 어디죠?”
“영웅부 내부에서 정보를 감추는 중이라……. 알아내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몇 가지 보고를 마친 직원이 사무실을 나서고.
닫힌 문을 바라보던 부장은 팔짱을 꼈다.
‘불쾌하군. ……아주 불쾌해.’
침입자들이 이렇게나 쉽게 쓰러지다니.
등급에 따른 영웅들의 전력은 대부분 파악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물론, 운이 나쁘게도 그 백화점에 4급 이상의 화력이 나오는 파티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을 터.
“좆같은 영웅 새끼들…….”
덜그럭.
부장은 책상 위에 놓여있던 작은 가위를 집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가위질을 했다.
“싹둑. 싹둑.”
가위로 유명한 영웅들의 목을 찢고 잘라 내는 상상을 하자, 그는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언젠가는 이 상상을 현실로 만들 거라고 다짐하는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