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영화관 (2)
화려한 장비를 갖춰 입은 한 무리의 영웅들이 길을 걷고 있다.
그들은 모두 같은 파티에 소속된 영웅들.
“저기 봐.”
“와…….”
허리춤에 멘 기다란 검과 빛에 반사되어 더욱 번쩍거리는 갑옷.
앞을 스쳐 지나가는 일반인들은 한 번씩 그들을 힐끗거렸다.
호기심과 부러움, 혹은 선망이 담긴 눈빛이었다.
개중에는 약간의 질투가 섞인 것도 있었다.
영웅이 되고 싶었으나 되지 못한 이의 질투심이었다.
“흠.”
“으흠.”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영웅들은 어깨에 힘을 주었다.
위풍당당한 걸음걸이. 한껏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표정.
부담을 느끼기는 커녕 되레 즐기는 모양새였다.
마력을 깨우치고 영웅이 되면서 주변의 관심에 부담을 느끼는 부류가 종종 있지만.
그 반대로 이들처럼 관심을 즐기는 부류도 적지 않았다.
슥슥—
영웅 중 누군가가 자신의 왼쪽 가슴에 달려 있는 붉은 배지를 손으로 털었다.
그것은 레드홀에서 주관하는 청년영웅사관학교, 청영사에 합격한 영웅들에게만 지급되는 배지.
높은 경쟁률을 뚫어내고 최종 합격한 소수의 인원만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의미일 뿐이지만, 배지를 단 그는 주목받는 집단에 들어가 있다는 소속감을 크게 느끼고 있었다.
“오늘 일정이 뭐더라?”
“피드백 교육.”
오늘 입교생들에게 예정된 수업은 교관 진석우가 진행하는 피드백 교육.
진석우를 좋아하는 여자 영웅은 벌써부터 아주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옆에 있던 파티원이 그녀에게 물었다.
“그렇게 좋냐?”
“당연히 좋지! 석우님은 내 롤모델이야.”
“저번에 싸인 받은 종이는 코팅까지 해서 벽에 걸어 놨다며.”
“응. 액자도 하나 사려고!”
“같이 사진도 하나 찍어 달라고 하지 그래.”
“그건 너무 부끄러워서…….”
일부 영웅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될 정도로 인지도를 갖고 있는 진석우였다.
그들은 잡담을 나누며 청영사 본부 안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강의실로 향하던 길을 찾던 찰나.
진석우의 교육을 떠올린 한 남자 영웅이 말했다.
“오늘 피드백 영상은 어느 파티에서 찍는다고 했었지?”
“레드홀의 제임스 강 파티하고……. 하나는 뭐더라?”
“아마 꿀잼의 유지한 파티였을걸?”
두 번째 교육부터는 영상을 찍을 파티의 정보가 미리 공개된 상황.
유지한 파티를 떠올린 영웅은 피식하고 웃었다.
“걔네 그거잖아. 청영사 입교식 때 면접 점수 잘 받았다는 곳.”
“맞네. 기억 난다.”
“그런데 난 그거 절대 인정 못해. 우리도 순위에 못 들었는데 말이야.”
“나도 그래. 왠 이상한 파티가 청영사에 들어와가지고…….”
한국에는 영웅들을 위한 다양한 영웅 지원 사업이 존재한다.
그중에서 청영사는 최상위권에 위치한 지원 사업이었다.
청영사의 존재를 아는 4급 영웅들에게 있어 청영사에 입교했다는 건 하나의 자랑거리와도 같다.
졸업하기는 매우 까다롭지만, 만약 해낸다면 향후 한국에서 주목받는 파티 중 하나로 꼽히게 될 정도로 명성을 쌓을 수 있었다.
“워리어즈에 내 친구가 있는 파티도 떨어졌던데, 걔네는 대체 어떻게 들어온 거야?”
“내부에 연줄 있는 거 아닐까?”
어느 듣도보도 못한 길드가 청영사에 굴러 들어와서 레드홀의 길드장인 백강천에게 직접 언급되기까지 했다.
이름 있는 길드에 소속된 영웅이라면 모를까, 나보다 못해 보이는 놈들이 칭찬을 받다니.
같은 입교생인 처지로서는 눈엣가시처럼 여겨질 수 밖에 없었다.
“오늘 영상은 안 봐도 뻔해. 보나마나 쓰레기겠지.”
“피드백에 욕은 적으면 안 되나?”
“평가 요소로 들어가니까 안 되겠지. 그런데 그건 왜?”
“걔네 영상을 보고도 욕을 참을 수 있을지 모르겠거든.”
“에이, 그건 좀 심했다.”
그들은 걷는 내내 유지한 파티를 험담하며 키득거렸다.
그들 또한 이름 있는 중견 길드에 소속된 영웅들로서 자신들이 작은 길드 위에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다른 영웅들을 너무 무시하는 처사였으나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위에서 이끌어주는 상위 등급의 영웅들이나 길드에서 밀어주는 각종 지원이 있다는 건, 그만큼 남들보다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이었으니까.
*****
준비를 마친 진석우가 강의실에 들어섰다.
강의실에는 영웅들이 빈 자리 하나 없이 빼곡히 앉아 있었다.
“여러분. 다들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짝짝짝—
짧은 박수소리가 이어지고.
진석우는 영웅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오늘은 두 번째 피드백 교육을 진행할 거예요. 지난 번 교육 때 피드백을 받았던 김명수 파티와 고미나 파티 여기 있죠?”
“네!”
“넷!”
두 파티의 파티장이 힘차게 대답했다.
“교육에 사용된 피드백은 제가 여러분께 따로 전달해드렸습니다. 그 후에는 어떠셨나요? 효과가 있던가요?”
“파티장으로서 파티의 단점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평소에는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개선할 점이 보이더군요. 덕분에 시야가 더 넓어진 것 같습니다!”
“저희도 마찬가지로 피드백에서 많은 걸 느꼈습니다! 그중에서 특히 어느 ‘이름 모를 파티’에서 제출한 피드백은 정말 큰 도움이 되더군요.”
“제가 교육 때 언급했던 피드백인가요?”
“맞습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참 다행입니다.”
고미나에게 질문을 던진 진석우의 눈이 아주 잠깐 유지한을 향했다.
이내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긴 그가 교탁 위에 놓인 노트북을 열었다.
“사전에 예고했던 대로 오늘은 제임스 강 파티와 유지한 파티의 영상을 시청하겠습니다.”
“저, 질문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피드백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파티는 가산점을 얻는다고 하셨는데, 반대로 너무 나쁜 평가를 받으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나쁜 평가를 받는 파티는 제 주관적인 기준에 의해 점수가 하락할 수 있습니다.”
진석우의 말을 들은 영웅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청영사의 파티마다 매겨지는 점수는 대학교 졸업에 필요한 학점과도 비슷한 것.
그 점수가 기준 이하로 떨어진다면 중도 탈락의 위기를 겪을 수도 있었다.
“먼저 제임스 강 파티의 영상부터 시청하겠습니다.”
조명이 꺼져 어두워진 교실에서 빔프로젝터가 영상을 쏘아 냈다.
—제임스 강 파티. 촬영 개시.
굵직한 남성의 목소리와 함께 사냥이 시작되었다.
—우어어어어!
커다란 방패와 메이스를 든 거구의 전사가 포효하며 몬스터에게 달려들었다.
한 번 얻어맞을 때마다 멀리 날아가 버리는 몬스터들!
“오오…….”
“와, 쩐다.”
미국에서 태어났으나 부모님이 계시는 한국으로 와서 활동하는 제임스 강.
과연, 그는 레드홀에서 영입할 만큼이나 훌륭한 솜씨를 가지고 있었다.
‘꽤 하네.’
영상을 지켜보는 유지한은 이번 피드백에 딱히 적을 게 없었다.
그만큼 제임스 강 파티가 적들을 크게 압도하는 전투였기 때문이었다.
모든 몬스터가 한방에 나가떨어지니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나마 중간중간 발견한 실수들만 꼬집어 피드백을 작성했다.
“다음은 유지한 파티의 영상입니다.”
“…….”
유지한 파티가 촬영한 영상이 재생될 차례.
진석우가 리모콘을 조작하는 사이, 영웅들의 관심은 앞서 활약한 제임스 강 쪽으로 쏠려 있었다.
‘진짜 이기적인 놈이다.’
‘우리 파티에 있는 전사랑 되게 비교되네.’
‘저런 영웅하고 같이 있으면 편할 텐데…….’
같은 등급에서도 아주 돋보이는 존재감.
다른 영웅들을 그와 함께하는 파티원들을 부러워했다.
제임스 강은 그런 관심이 익숙한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한편, 김시후가 유지한을 보며 말했다.
“형. 우리 괜찮겠죠?”
“문제 없어.”
평가를 걱정하는 김시후와 달리 유지한은 매우 편안한 표정이었다.
무려 바바리안들과 전투를 벌였던 그들이었다.
그 어떤 파티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카메라 잘 동작하지?
—네.
유지한 파티의 영상이 재생되자 다시 모두의 시선이 스크린으로 모였다.
대부분은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앞서 레드홀에서 아주 좋은 모습을 보여 준 덕분에, 유지한 파티는 그들과 훨씬 비교되어 보였다.
—올라가자.
영상은 백화점 2층으로 이어졌다.
드디어 카메라에 안괴꽃이 비쳤다.
‘안괴꽃이네.’
‘제법 까다로운 몬스터인데.’
몬스터의 등장으로 몇몇 영웅이 관심을 가지는 가운데.
백화점에서 유지한 파티와 마주쳤던 영웅들은 그 장면을 매우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영상 속 유지한이 홀로 앞으로 나섰다.
—잘 보고 계세요.
그의 찌르기가 안괴꽃에 닿았다.
그 한 번의 공격으로 작은 꽃이 떨어져 내리고.
안괴꽃 사이에서 검이 부드럽게 움직이며 잔가지를 쳐냈다.
“……?”
“엥?”
“뭐야?”
영상을 보던 영웅들은 인상을 쓰거나 의문을 표했다.
멀쩡히 살아 움직이던 안괴꽃이 너무 빠르게 쓰러진 탓이었다.
—너무 쉽죠?
뒤를 돌아보면서 유지한이 뱉은 말에 모두가 침묵을 지켰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유지한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똑같은 방식으로 안괴꽃이 죽어 나갔다.
“아니…….”
“어떻게 된 거야?”
조용하던 영웅들이 수군거렸다.
주로 한 번쯤 안괴꽃을 사냥해 본 적 있는 영웅들이었다.
안괴꽃은 생각보다 줄기가 질기고 단단하여 상대하기가 까다로운 몬스터.
그러나 유지한은 마치 평범한 꽃을 잘라 내는 것 마냥 안괴꽃을 죽이고 있었다.
‘무기가 엄청 비싼 건가?’
‘딱히 특별할 건 없어 보이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영상 속의 유지한뿐만 아니라 김시후와 민유리 또한 범상치 않은 솜씨를 보여 주었다.
그야말로 안괴꽃을 쓸어 담는 모습에 지켜보는 영웅들은 말문이 막혀 버리고.
편집된 영상 속 시간은 빠르게 흘러, 유지한 파티는 옥상에 도착했다.
“허억!”
“저건!”
옥상의 문이 열리자 단풍괴무와 소괴무가 모습을 드러냈다.
뜬금없는 3급 몬스터의 등장에 영상을 보던 자리의 모두가 경악했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장면은 영웅들을 더욱 놀라게 했다.
“미친!”
“괴무랑 싸웠다고?!”
유지한 파티가 괴무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옆에는 칠라를 앞세우고 전투를 이어가는 김시후와 민유리.
3급과의 전투에서도 구도가 위태롭지 않고 안정적으로 보여 전투를 제법 볼 줄 아는 영웅들은 묘한 감탄사를 흘렸다.
—휘리릭! 휘리리릭!
홀로 단풍괴무를 상대하는 유지한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몇 개인지 모를 정도로 단풍잎이 그를 향해 던져지는 장면에서 영웅들은 손에 땀을 쥐었다.
도저히 피할 수가 없어 보이는 공격.
그러나…….
유지한은 단 한 번의 공격도 허용하지 않고 모든 단풍잎을 피했다.
“…….”
“…….”
“…….”
“…….”
유지한 파티가 전투에서 조금씩 승기를 잡기 시작하고.
더 이상 강의실에서 딴짓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모두가 숨죽인 채, 눈앞의 영상을 주시할 뿐이었다.
*****
피드백 수업이 종료된 뒤.
유지한 파티는 진석우의 부름에 따라 그의 사무실로 이동했다.
사무실로 들어와서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유지한이었다.
“진석우 교관님.”
“네.”
“조금 전 영상, 저희가 바바리안들과 싸운 장면을 잘라 내셨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