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백화점 (4)
바바리안은 지구로 들어오는 침입자 중에서도 최우선 경계 대상에 해당한다.
강제로 붙잡은 놈들을 제외하면 지구에 정착한 숫자가 단 5명도 되지 않을 정도로 협상의 여지라는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태어나서 두 발로 걷기 시작한 다음에는 형제들과 주먹다짐을 할 정도라는 호전적인 종족.
특이한 점이라면 그들이 평범한 인간들, 자기보다 훨씬 약한 약자를 먼저 공격하지는 않으며 오로지 힘을 가진 영웅을 위주로 공격한다는 것이었다.
타다다닷—!
민유리와 칠라, 김시후는 재빠르게 유지한의 옆으로 합류했다.
그리고 무기를 들고 앞쪽의 바바리안을 경계했다.
“형 저건 설마……!”
“침입자다.”
“다들 조심해요!”
난생 처음으로 침입자를 마주친 김시후와 민유리는 바짝 긴장했다.
전체 통계상 침입자와 싸운 영웅의 생존율은 약 70%.
상당히 높아 보이지만, 10명 중 3명은 죽어 나갈 정도로 힘든 싸움이 많다는 뜻이었으니.
“뭐야?”
“새로운 놈들인가?”
쿵! 쿵!
상영관 위쪽에 있던 남자 바바리안 2명이 앞서 유지한과 대치하던 바바리안의 뒤로 뛰어내렸다.
놀랍게도 그들의 손에는 사람이 한 명씩 들려 있었다.
턱과 안면이 완전히 부서져 버린 사람.
다리 관절이 기형적으로 꺾여 있는 사람.
‘모두 죽었다.’
시체를 본 유지한의 눈이 싸늘해졌다.
붙잡힌 사람은 영웅처럼 보였지만.
그중에 살아 있는 자는 없었다.
“저 새끼가 내 싸움을 방해했어.”
“뭐?”
“아주 나쁜 놈이군!”
감히 신성한 싸움을 방해하다니!
여자 바바리안의 말을 전해들은 다른 바바리안들은 바짝 화가 난 얼굴이었다.
‘침착하자.’
유지한은 상체를 조금 낮추며 3명의 바바리안을 경계했다.
당장이라도 앞으로 뛰어들 듯한 바바리안들의 거친 기세가 피부를 타고 느껴졌다.
‘할 수 있다.’
파티로서 침입자와 싸우게 된 것이 얼마만이던가.
하지만 몬스터하고 싸울 때와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이겨서 살아남는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우릴 방해한 걸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다.”
“나쁜 놈은 죽일 뿐!”
바바리안들은 손으로 잡고 있던 시체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허리춤에 매단 조잡한 도끼를 꺼내들었다.
“브롸아아아—!!”
도끼를 쥔 바바리안 하나가 우렁찬 소리를 지르며 유지한에게 달려들었다.
쿵! 쿵! 쿵! 쿵!
별다른 기교나 기술은 보이지 않는 정직한 돌진.
하지만 몸에서 꿈틀거리는 근육과 상영관 무대에 울리는 발소리만으로도, 유지한 파티에게는 충분히 위협으로 다가왔다.
“찍!”
칠라가 공격을 막고자 자신 있게 앞으로 나섰다.
녀석이 들어 올린 방패가 크게 휘둘러지는 도끼와 충돌했다.
콰아앙—!
“찌, 찍?!”
방패를 울리는 엄청난 충격!
예상을 뛰어넘는 커다란 충격에 당황한 칠라의 몸이 뒤로 스르륵 미끄러졌다.
옥상에서 커다란 괴무들의 공격도 막아 냈지만, 그것을 훌쩍 뛰어넘는 위력.
방패가 찌그러지는 건 아닐까 걱정될 정도였다.
“감히 쥐새끼가 나를 막아서느냐!”
칠라에게 공격을 막힌 게 바바리안의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낸 모양이었다.
쾅! 쾅! 쾅!
고작 방패 따위에 지지 않겠다는 듯, 바바리안은 계속 방패를 향해서 도끼를 휘둘렀다.
그야말로 단순 무식.
하지만 덕분에 다른 영웅들에게는 여유가 생겼다.
[애로우 레인]
민유리가 위쪽을 향해 마력 화살을 연사했다.
순식간에 구름처럼 뭉쳐진 화살은 이윽고 상대 바바리안들을 노리고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투두두두두둑!
투두두두두둑!
무대를 향해 빈틈없이 떨어지는 화살들.
바바리안들은 그것에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우습구나!”
“겨우 이 정도로!”
마력 화살은 분명 바바리안의 몸에 닿았다.
그러나 화살들은 놈들의 피부를 뚫지 못하고, 마치 손톱으로 살을 조금 세게 긁은 듯한 자국만을 남기고 땅으로 떨어졌다.
어지간한 마법 따위는 튕겨 낼 정도로 마법 저항력이 뛰어난 근육질의 몸.
들어만 봤던 소문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민유리는 이를 악물었다.
“이게 끝이라면 실망이구나!”
여자 바바리안이 유지한을 노려봤다.
전투에 있어서 가장 먼저 노려야 하는 건 후방에 있는 원거리 딜러들이지만.
그녀는 뒤에 있는 영웅보다도 자신의 싸움을 방해했던 유지한을 먼저 처리하고 싶어 했다.
“너, 절대로 곱게 죽을 생각은 마라.”
“미안한데 여기선 안 죽어.”
“너처럼 입만 산 놈들은 내가 다 찢어죽였다!”
저놈의 주둥아리를 도끼로 찢어 버리겠다!
그렇게 다짐한 바바리안이 유지한을 향해 돌진했다.
옆에 있던 바바리안도 동시에 앞으로 뛰었다.
‘움직임은 단순해.’
바바리안의 움직임은 유지한이 전부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고도 정직했다.
하지만 축복받은 육체라고 불리는 저들의 힘은 절대로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여자 바바리안을 노려보며 샘플링을 사용했다.
<—내가 저 바바리안의 공격을 피할 확률>
<67%>
<—내가 저 바바리안의 공격을 흘려보낼 확률>
<76%>
공격을 피하거나 검으로 흘려보내는 선택지는 모두 확률이 안정권에 있었다.
유지한은 바바리안들을 주시하며 실프를 소환했다.
뾰롱!
[헤이스트]
[에너자이즈]
[아이언 스킨]
…….
…….
정령과 김시후의 도움으로 가능한 모든 버프를 몸에 두른 유지한이 행동에 나섰다.
“브롸라아아!!”
먼저 공격해 오는 것은 여자 바바리안이었다.
위에서 아래로 도끼를 크게 휘두르는 공격.
유지한은 바바리안과의 거리를 잰 뒤 떨어질 공격을 기다렸다.
그리고 도끼날이 아래로 떨어짐과 동시에.
허리를 확 꺾으며 도끼를 피했다.
후웅!
“이놈!”
거친 도끼날이 공기를 찢어내는 무시무시한 소리가 들린 뒤.
그 옆에 있던 바바리안의 도끼가 또 그를 노리고 떨어져 내렸다.
수직이 아닌 대각선으로 휘두르는 공격이었다.
‘보였다.’
뒤로 살짝 회전하는 바바리안의 어깨.
위로 한껏 올라간 팔꿈치와 굽어진 팔의 각도.
상대가 도끼 손잡이를 쥐는 방법까지.
유지한은 가능한 모든 요소를 체크하며 도끼의 궤적을 계산했다.
그리고는 그 궤적을 따라 검을 비스듬하게 세우되, 각도를 살짝 높게 조정했다.
챙!
날카로운 도끼가 유지한의 검날과 닿았다.
끼기기긱—!
바바리안의 도끼는 비스듬하게 세워진 검날을 훑으며 아래로 내려갔다.
쇠와 쇠가 서로를 탐하는 소리가 주위로 울려 퍼졌다.
성공적인 흘리기였다.
‘큭, 힘이 무슨……!’
서로의 무기가 정면에서 부딪힌 게 아니다.
공격을 흘리기 위해 일부러 빗겨나가듯 만든 충돌이었다.
그런데도 검을 타고 무시 못 할 힘이 유지한의 손아귀까지 닿았다.
정말이지 무식한 완력!
유지한은 공격과 방어를 계속 이어 나가면서도, 손에서 검을 놓치지 않기 위해 손잡이를 더 세게 쥐었다.
[스톤 해머]
민유리가 칠라에게 붙은 바바리안을 공격하는 사이.
마력을 한껏 모은 김시후는 유지한과 대치하는 적들의 위로 거대한 돌망치 2개를 생성했다.
위력만 보자면 그가 사용할 수 있는 마법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마법.
지팡이를 위로 들어 올리자 망치가 뒤로 한껏 재껴졌다.
“으랴!”
그리고는 지팡이가 휘둘러짐과 동시에 돌망치가 바바리안 2명을 내리찍었다.
콰앙! 콰아앙—!
돌망치는 정확히 두 번 사용한 후 금이 가며 깨져 버렸다.
두꺼운 팔로 어떻게든 머리를 보호한 바바리안들의 자세가 크게 흐트러졌다.
“저 요술쟁이 놈! 생각보다 위험하다!”
“끄으으! 죽인다!”
마법에 직격당하고 나서야 그 위험성을 깨달은 바바리안들이었다.
목표를 변경한 그들이 김시후를 아주 무섭게 노려봤다.
시선을 한 몸에 받은 김시후가 흠칫 놀라는 가운데.
“누굴 죽인다고?”
유지한은 그들의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서걱!
순간적으로 초록빛 오러가 둘러진 검은 여자 바바리안이 도끼를 쥔 팔을 크게 베어냈다.
“어억!”
“디애나!”
텅!
어깨 아래에서 분리된 팔이 무대 위로 떨어졌다.
팔을 잃은 바바리안은 숨을 집어삼키며 무릎을 꿇었다.
함께 싸우던 동료는 상처 입은 그녀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유지한은 그의 접근을 막아섰다.
“이놈! 이놈! 이노옴!”
후우웅!
후우웅!
분노한 바바리안이 도끼를 마구잡이로 휘둘러 댔다.
그러나 평정을 잃어버린 공격이 유지한에게 닿을 리는 없었다.
그 와중에 발생하는 풍압만으로 유지한의 머리칼만 이리저리 흔들렸다.
[스톤 해머]
김시후가 다시 한번 완성한 마법이 허공에 등장했다.
그는 실제로 망치를 들고 있는 것처럼 지팡이를 양손으로 잡은 뒤, 아래로 힘껏 휘둘렀다.
퍽! 퍼억!
몸뚱이에서 살과 피가 터져 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망치에 두들겨진 바바리안은 결국 바닥으로 쓰러졌다.
‘몸을 터트릴 생각으로 때린 건데…….’
의도한 결과가 나오지 않자 김시후는 침음을 삼켰다.
바바리안의 육체는 그의 생각보다도 훨씬 더 튼튼했다.
“찍찍!”
어느덧 칠라가 맞서는 바바리안의 몸에는 화살 구멍이 가득했다.
모두 민유리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었다.
살을 뚫지 못하는 화살이라면, 공을 들여서 마력을 압축하고 더 날카롭게 깎아 낸 화살촉을 만들어 낼 뿐!
‘이길 수 있다.’
파티는 점점 승기를 잡아가는 분위기였다.
유지한은 아직 멀쩡한 바바리안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상대는 황급히 도끼로 검을 막으려고 했지만.
샤아!
무기가 부딪치기 직전, 유지한의 검에 다시금 초록색 오러가 서렸다.
짧은 순간이나마 유지되는 오러가 도끼는 물론이고 바바리안의 단단한 육체마저도 무리 없이 베어냈다.
“끄아아!”
고통에 겨워 비명을 지르는 바바리안.
유지한은 실프를 힐끗 보며 아직 상태가 멀쩡하다는 걸 확인했다.
오러로 잡아먹는 마력이 꽤 크기 때문에 계속해서 확인해야만 했다.
푸욱!
마침내 유지한의 검끝이 바바리안의 목을 뚫고 들어갔다.
상영관의 천장을 바라보고 누운 그는 끝내 절명했다.
민유리가 맡고 있던 바바리안까지도 쓰러진 상황.
서 있는 건 유지한 파티원들과 바바리안에게서 풀려난 영웅뿐이었다.
어느새 정신을 차린 남자 영웅은 자신의 목을 매만지고 있었다.
민유리는 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괜찮으세요?”
“아, 네, 네!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깊은 감사를 전하는 남자였다.
앞서 죽어 있던 이들은 그의 파티원이었다.
“여, 여러분은 3급이십니까? 아니면 2급?”
“4급인데요.”
“그럴 리가…….”
그는 도저히 유지한 파티를 자신과 같은 등급의 영웅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푹! 푹! 푹!
한편, 유지한은 확인 사살하듯 바닥에 누워 있는 바바리안들의 심장 부근을 검으로 여러 번 찔렀다.
상영관 무대가 완전히 피로 물들고 나서야 그는 안심할 수 있었다.
“바바리안이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겁니까?”
“안괴꽃을 사냥하던 중에 갑자기 저희를 공격했습니다. 정확히 언제 나타난 건지는 잘…….”
살아남은 남자도 바바리안의 정확한 출몰 경로는 알지 못했다.
일단 싸움은 끝났지만 아직 이 건물에 갇혀 있는 상황.
“아무래도 여긴 아닌 것 같아요.”
주변에 마력을 퍼트리던 김시후는 옥상과 비슷한 마석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는다며 고개를 저었다.
따라서 유지한 파티가 마석을 찾기 위해 자리를 옮기려던 그때였다.
“브롸아아아아—!!”
상영관 출구에서 쩌렁쩌렁한 외침이 들렸다.
모두의 고개가 그쪽으로 홱 하고 돌아갔다.
‘더 있었나!’
새로운 바바리안들이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친구들이 죽었다!”
“이럴 수가!”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바바리안들은 단체로 무대 위에 뛰어올랐다.
그것도 무려 8명에 달하는 놈들이었다.
“디애나! 타얀! 훌리논!”
“후오오오오—!”
죽은 동료의 이름을 크게 부르짖는 녀석들.
그 기세에 눌린 유지한은 살짝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저놈들이다!”
“저놈들이 디애나를 죽였다!”
“저놈들이 타얀도 죽였다!”
“저놈들이 훌리논도 죽였다!”
“너희들의 죽음을 잊지 않으마!”
바바리안 종족의 모든 분노가 유지한 파티를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