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94화 (94/300)

94화. 백화점 (2)

유지한 파티는 2층에서 사냥을 이어 갔다.

“이렇게요.”

“아뇨. 이렇게요.”

서걱!

유지한은 파티원들에게 안괴꽃의 공략법을 가르쳤다.

아무래도 처음이라 조금 버벅이는 김시후와 민유리였지만.

유지한의 지시 하에 공격 방법을 교정하다 보니 어느덧 그럴듯한 모양새가 나오고 있었다.

“거 봐. 쉽잖아.”

아주 깔끔하게 공격을 가한 김시후.

유지한은 윈드 커터에 잘려 나간 안괴꽃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훤히 드러난 줄기를 공격하는 것보다는 번거로움이 있겠지만.

조금만 신경을 쓰면 더 나은 결과물이 나온다.

“찍!”

칠라의 방패가 달려드는 안괴꽃을 막아섰다.

카가가강! 카가강! 카가강!

가지에 달린 여러 개의 꽃이 번갈아 방패를 두드렸다.

꽃의 크기는 작지만 그 수가 많은 만큼 쉬지 않고 이어지는 연속 공격은 안괴꽃의 특기 중 하나.

방패에 가해지는 충격 또한 무시할 수준은 아니었다.

퉁!

하지만 되레 힘을 주고 안괴꽃을 뒤로 밀어 버린 칠라였다.

민유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마력 화살을 쏘아 냈다.

그리고 화살이 안괴꽃 사이로 들어간 순간.

[형태 변화 - 사각형]

화살의 모양을 이루고 있던 마력이 순식간에 얇으면서도 넓적한 면으로 변했다.

동시에 그 면에 닿는 모든 잔가지가 잘려 나갔다.

‘저게 재능인가.’

이미 화살 모양으로 고정된 마력이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도중에 재가공하다니!

지켜보던 유지한은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간단해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작업.

당장 궁수를 관두고 마법사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역시 좋은 사람들이 모였어.’

김시후와 민유리는 하나같이 뛰어난 재능을 가진 영웅이었다.

다른 길드에서 지금 이 광경을 본다면 군침을 질질 흘릴 터.

“더 올라가겠습니다.”

그들은 2층 여성복 매장을 지나 3층 남성복 매장으로 진입했다.

그런데 에스컬레이터를 올라온 뒤.

유지한은 무언가를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붉은색의 옷.

하지만 그 색깔이 조금 탁한 것이, 물이 묻은 것도 같았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 그는 이내 흠칫 놀라고 말았다.

“핏자국.”

“……?!”

붉은색 티셔츠에 묻어 있는 것은 핏자국.

그것도 꽤 많은 양의 피가 흐른 흔적이 3층 바닥에 남아 있었다.

떨어진 옷가지를 들어보니 물기는 있지만 약간 말라붙은 것으로 보아, 적어도 생긴 지 몇 시간이 흐른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동물이 있는 건가? 아니면…….’

보통 식물계 몬스터를 공격하면 투명한 진액이나 물을 뿜어낸다.

붉은 피를 가진 것은 대부분 동물뿐.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동물에는 인간들도 포함되어 있다.

“사람이 다친 걸까요?”

“글쎄요.”

사람이 쏟아 낸 피라면 사망이 의심될만한 출혈량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은 들어보지 못했다.

“일단은 무시합니다.”

유지한 파티는 3층 내부로 진입했다.

피를 본 탓인지 주변을 향한 경계심은 조금 더 높아졌다.

*****

3층에서의 사냥은 2층보다도 순조로웠다.

적절한 공략법을 숙지한 덕분에 안괴꽃은 더 이상 유지한 파티의 위협이 되지 못했다.

칠라가 끌고 다니는 보따리에는 잘려나간 꽃들이 수북이 쌓여 갔다.

“나눠서 들어줄까?”

“찍!”

김시후가 손을 내밀자 칠라가 고개를 내저었다.

방패를 짊어졌지만 끝까지 짐꾼 역할을 자처하는 녀석이었다.

‘동물은 보이지 않는다.’

붉은 피가 발견된 것과 달리 현장에 동물계 몬스터는 따로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심각한 피해를 입은 파티를 발견한 것도 아니었다.

유지한은 속으로 의문을 가지면서도 묵묵히 사냥을 이어 갔다.

서걱!

남성복 매장 옆에 위치한 아동복 매장에도 안괴꽃이 득실거렸다.

파격 세일이라고 적혀 있는 옷 무더기에 숨어 있는 녀석은 기습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계를 늦추지 않았던 유지한 파티는 기습에도 능숙하게 대처했다.

“잠깐 점검 좀 합시다.”

유지한 파티는 각자 몸에 매단 바디캠을 점검했다.

이전의 피드백 영상을 보니 렌즈 부위에 피가 묻은 것도 모르고 촬영을 계속한 경우가 있었는데, 보는 입장에서는 크게 거슬렸다.

그것을 미리 방지하고자 렌즈를 닦고 위치를 조금씩 조정했다.

“옥상까지 올라갔다가 퇴장할게요.”

“네.”

유지한은 한 층을 더 올라가 4층 식당가에 도착했다.

익숙한 프랜차이즈 햄버거 매장, 아동용 키즈 카페 따위가 눈에 들어왔다.

안타깝게도 매장들은 대부분 난장판이 벌어져 있었다.

다른 파티에서 몇 차례 전투를 치른 것이었다.

“어? 저건…….”

다른 영웅들을 발견한 김시후가 눈을 조금 크게 떴다.

조금 낯익은 얼굴들인 덕분이었다.

이내 상대편 파티도 유지한 파티를 돌아보았다.

“안녕하세요.”

“여기서 뵙네요.”

그들은 함께 청영사에 합격한 파티 중 하나였다.

유지한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사냥은 잘 되세요?”

“그럭저럭이요.”

“아 참, 혹시 이 안에서 동물계 몬스터 보셨어요?”

“따로 보진 못했는데…….”

“붉은 핏자국이 있더라고요.”

“그건 조금 이상하군요.”

이미 옥상까지 다녀온 그들도 다른 동물을 발견하지는 못했다는 모양이었다.

‘정말로 인간의 피였던 건가.’

추측만 늘어가는 가운데.

유지한 파티는 백화점을 떠나는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이쪽은 몬스터가 별로 없네요.”

“계속 이동하죠.”

빠르게 4층과 5층을 넘어 6층에 도착했다.

백화점 6, 7층에는 커다란 영화관과 상영관이 준비되어 있었다.

모든 스크린이 꺼졌지만 천장의 조명만이 간신히 몇 개 켜져 있는 공간.

팝콘이나 음료수가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지만, 다른 층에 비교하자면 상당히 멀쩡한 공간이었다.

[라이트]

표를 확인하는 입구를 지나 상영관 내부로 향하는 길.

김시후는 미리 밝은 빛을 준비하고 안쪽으로 들어섰다.

첫 목적지는 1상영관.

가장 앞장선 유지한이 꺾인 통로를 천천히 진입하던 순간이었다.

“흡!”

채앵!

통로가 꺾이는 부분에서 안괴꽃이 출몰했다.

검으로 꽃을 튕겨 낸 유지한은 재빠르게 잔가지를 털어 내고는 1상영관 안으로 진입했다.

‘어둡군.’

계단식으로 좌석이 놓여 있는 공간.

조명은 물론이고 맞은 편의 커다란 스크린도 꺼져 있는 탓에 내부는 무척 어두웠다.

하지만 안쪽에서 느껴지는 건 분명 적들의 기척.

화악—

김시후는 라이트 마법을 이리저리 이동시키며 좌석을 훑었다.

B열 좌석에서 안괴꽃이 등장하자 민유리가 그쪽으로 화살을 쏘아 냈다.

‘보인다.’

유지한은 슬슬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적들을 살폈다.

상영관 안쪽에는 생각보다 많은 녀석들이 대기중이었다.

“보따리 하나가 더 필요하겠어.”

*****

1상영관부터 3상영관까지.

유지한 파티는 상영관의 어둠 속에서도 무리없이 사냥을 진행했다.

다른 파티를 피해서 6층을 대충 훑어본 뒤에는 7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5상영관부터 들어가려던 그때였다.

“꺄아아악……!”

갑자기 외부에서 작은 비명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매우 작지만 분명 공포가 담겨 있는 비명!

유지한은 반사적으로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달렸다.

“위쪽이다!”

비명이 들린 것은 위층.

백화점 건물의 옥상이었다.

뾰롱!

[헤이스트]

시원한 바람의 기운이 유지한의 몸에 실리고.

부서진 에스컬레이터를 가뿐히 뛰어넘은 그가 옥상의 출입문을 향해 달렸다.

쾅—!

유지한은 닫혀 있는 출입구를 부서뜨릴 듯이 발로 차 버렸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열린 문 뒤쪽에서 바깥 옥상의 모습이 드러났다.

“……!”

옥상정원이라고 적혀 있는 공간.

백화점 방문객의 휴식 장소로 가볍게 꾸며진 그곳에도 몬스터가 있었다.

그런데…….

“사, 살려 줘!”

“이거 놔!”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풍나무가 몬스터로 변한 단풍괴무.

뿐만 아니라 소나무가 변한 소괴무, 관상용으로 쓰이는 사철나무까지도 몬스터화가 진행된 상황이었다.

각종 괴무들은 기다란 가지를 이용하여 영웅들의 몸을 속박하고 있었다.

영웅들은 그 속박에서 빠져나오려고 계속 허우적댔으나 효과는 미미했다.

“끄아아악!”

“컥, 커어억!”

나무에서 자라난 가지가 영웅들의 입과 콧구멍을 타고 몸 속으로 들어갔다.

저 상태로 내버려 둔다면 필시 몸 안에 있는 것들을 죄다 헤집어 놓을 터.

이미 그런 과정을 겪은 듯, 온몸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목이 뒤로 꺾여 있는 사람도 보였다.

까득!

유지한은 이를 갈며 영웅들이 묶인 곳을 강하게 노려봤다.

다른 것 보다도 커다란 단풍괴무와 소괴무가 문제였다.

저것들은 영웅부에서 공식적으로 3급으로 취급하는 녀석들.

멀쩡한 4급 영웅들이 당한 것도 분명 저것들 탓이었다.

쿵! 쿵!

흙밭을 빠져나온 괴무들이 뿌리를 꼼지락거렸다.

대부분의 영웅들이 사로잡힌 상황에, 아직 잡지 못한 유지한 파티를 노리는 모양새였다.

“온다!”

“찍찍!”

휘리릭!

소나무가 기다란 가지를 유연한 채찍처럼 쭉 뻗어 왔다.

예고없이 가해진 공격에 칠라가 빠르게 앞으로 나섰다.

콰앙!

강력한 충격에 칠라의 발이 뒤로 살짝 밀려났다.

터더더더덩!

이어서 고슴도치의 가시와도 같은 소나무 잎이 방패를 연속으로 두드렸다.

공격이 가해질 때마다 칠라의 몸이 방패와 함께 떨렸다.

“찍, 찍찍……!”

칠라는 얼굴을 찌푸렸지만 손에서 방패를 놓지 않았다.

덕분에 뒤에 있는 두 사람은 공격할 기회를 얻었다.

[파이어 랜스]

김시후가 소괴무의 몸통을 향해 파이어 랜스를 쏘아 냈다.

식물계 몬스터에게는 치명적일 수 밖에 없는 불마법!

하지만 소괴무는 두꺼운 가지 여러 개를 앞세워 하나의 벽을 만들었다.

화르륵!

불이 붙은 가지가 활활 타올랐다.

소괴무는 몸에서 그 가지를 일부러 잘라 버리며 피해를 최대한 줄이는 모습이었다.

마력을 가진 3급 몬스터이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민유리는 김시후를 도와 빠른 속도로 다시 자라나는 가지를 향해 화살을 쏘아 냈다.

쿠웅—!

그 사이 유지한은 단풍 괴무와 홀로 맞서고 있었다.

투두둑!

그가 영웅들을 묶은 가지를 검으로 공격할 때마다 속박이 조금씩 느슨해졌다.

조금만 더 공격하면 떨어뜨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단풍괴무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그를 더 강하게 몰아붙였다.

휘리릭!

채찍처럼 유연하게 휘는 나뭇가지가 아주 강하게 휘둘러졌다.

동시에 가지에 달려있던 초록색 단풍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녀석의 단풍잎은 평범한 나뭇잎이 아니라 목숨을 위협하는 무기!

표창처럼 생긴 날카로운 그것이 유지한의 몸을 노리고 아주 빠르게 회전하며 날아들었다.

<—허리를 오른쪽으로 비틀면 저 나뭇잎을 피할 확률>

<73%>

<—고개를 아래로 숙이면 저 나뭇잎을 피할 확률>

<85%>

유지한은 여러 가능성을 검토하여 단풍잎을 피했다.

날아오는 투사체를 피하는 건 도가 튼 입장이었다.

잎이 피처럼 붉게 물든 단풍괴무라면 과정이 조금 더 까다로웠겠지만.

다행히 이 녀석은 그렇지 않았다.

<—검으로 저 단풍잎을 튕겨 낼 확률>

<91%>

게다가 그로서는 훈련보다 실전이 더 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실전에서는 무기와 마력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었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