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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93화 (93/300)

93화. 백화점

“네. 수고 많으셨습니다!”

청영사의 교관, 그리고 연예인으로 활동하는 진석우.

간단한 촬영을 끝낸 그가 관계자들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건넸다.

촬영장 밖으로 빠져나오니 이미 해가 저문 저녁이었다.

차에 오른 뒤에 매니저 형이 가져다준 음료로 목을 축이며 다음 스케줄을 확인했다.

“이제 영웅 일보 가서 인터뷰 하면 끝이지?”

“응.”

부릉—

매니저가 운전하는 차가 출발했다.

인터뷰가 예정된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이전 촬영으로 피곤을 느낀 진석우는 자동차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내일은 신작 영화 대본 리딩이 있었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고, 내일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선택한 길에 큰 불만은 없었다.

영웅으로서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행운이었으니까.

“형. 나 잠깐 눈 좀 붙일게.”

“힘드냐?”

“조금.”

“그러게 청영사 교관직은 왜 받아 가지고…….”

진석우의 매니저는 진석우가 청영사가 교관으로 활동하는 것에 조금 회의적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아주 바쁜 일상.

청영사 입교생들에게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교관직까지 맡게 되면 그 피로도는 몇 배로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흐흐, 하고 싶은 걸 어떡하겠어.”

진석우는 눈을 감은 채로 실실 웃었다.

길드의 지시로 인해 연예계 활동에 많이 참여하고 있지만.

이래나 저래나 그의 본질은 현역에서 활동하는 영웅.

그것도 제법 실력 있는 영웅으로 평화를 위한다는 마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청영사에 합격할 정도로 가능성이 큰 후배들을 기른다는 건 상당히 명예로운 일.

한번 수락한 교관을 그만 둘 생각은 없었다.

‘교육도 준비해야 하는데.’

실눈을 뜬 진석우는 옆 좌석에 놓여 있던 서류를 집었다.

그것은 청영사의 전체 업무와 관련된 서류로, 최근 가장 신경을 많이 쓰고 있기에 항상 몸과 가까이에 두고 있었다.

‘어느 파티에게 촬영을 맡긴다…….’

사락—

진석우가 서류를 한 장씩 뒤로 넘겼다.

조만간 이전과 마찬가지로 특정 파티가 치른 전투 영상을 보고 다른 파티들이 피드백을 하는 교육이 예정되어 있었다.

슬슬 교육 자료로 사용하기 위한 영상을 촬영할 파티를 고를 때가 되었다.

‘고미나 파티는 연예인 기질이 있어 보였지.’

이전에 영상을 촬영했던 레이디스의 고미나 파티.

입고 있는 옷마저 영화 속 영웅들을 연상케 하는 그녀들은 대중들의 이목을 끌기에 완벽한 영웅들이었다.

‘기획사에서도 탐낼 것 같더라.’

진석우는 교관직을 떠나 개인적으로라도 그녀들을 연예계에 초대해 볼 생각이었다.

이유는 별 거 없었다.

자신과 비슷하게 영웅이자 연예인처럼 취급되는 이들의 숫자를 늘리려는 계획이었다.

그런 잡다한 생각을 하면서 서류를 넘기던 때였다.

멈칫.

특정 서류를 본 그의 눈이 한 곳에 고정되었다.

어느 길드와 파티의 이름이 적혀 있는 곳이었다.

“유지한 파티…….”

첫 피드백 수업에서 가장 돋보이는 피드백을 제출한 파티.

진석우는 그들이 제출한 피드백을 같은 파티의 동료들에게도 조금 보여 줬었다.

그러자 돌아온 건 하나같이 놀랍고, 믿을 수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이게 진짜 4급 파티가 적은 거라고?

——석우야. 농담하지 마라.

영상 속 전투를 마치 자기들이 직접 겪은 것처럼 잘 파악할 뿐더러, 지적하는 내용이나 개선점 따위에도 허점이 단 하나도 없었다.

고작 4급에 오른 파티가 2급 영웅조차 놀랄 정도의 통찰력을 보유한 것이었다.

그것이 파티원 중에서도 특정한 개인의 능력이었는지, 아니면 파티원 전체의 수준이 높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역시 여기로 해야겠다.”

진석우는 유지한 파티의 이름 위에 붉은 볼펜으로 체크 표시를 했다.

다음 피드백 영상을 촬영할 파티로 정해진 것이었다.

본래 순번대로라면 더 뒤에 촬영하는 것이 맞겠지만.

진석우는 자꾸만 그들의 전투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저 말만 잘하는 영웅들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네.’

과연 이들은 자기들이 한 피드백만큼이나 좋은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을지.

교관으로서 몹시 기대되는 부분이었다.

*****

다음 피드백 교육에 앞서 유지한 파티가 촬영 대상자가 되었다는 소식은 당사자들에게 빠르게 전해졌다.

청영사에서 촬영 장비를 관리하는 담당자는 그들에게 카메라를 보여 주며 설명을 진행했다.

“이건 한쪽 어깨에 붙이는 소형 바디캠이구요. 만약 이게 불편하시면 목걸이 형태로 된 것도 있고, 가슴팍에 매다는 것도 있는데…….”

담당자의 설명을 듣는 김시후는 무척 신기하다는 반응이었다.

이런 카메라는 전문가들만 다루는 것인 줄 알았는데.

이번에 직접 사용하게 된 것이다.

‘영상 속에서 다들 어깨에 달고 있던 게 이거였구나.’

유지한은 어깨에 매다는 형태의 바디캠을 착용해 봤다.

다행히도 그 상태로 팔을 이리저리 움직여 봐도 그리 불편함은 없었다.

민유리는 목걸이 형태의 바디캠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촬영된 영상으로 개별 평가 점수도 들어간다고 했죠?”

“예. 좋은 장면이 나온다면 향후 홍보용 영상으로 사용될 수도 있고요.”

청영사는 때때로 외부에 청영사를 홍보하는 영상물을 제작하곤 했다.

피드백 영상은 그때 참고 영상 자료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이었다.

만약 실제로 사용하게 된다면 규정상 따로 보상도 지급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래도 설마 저희 걸 사용하겠어요.”

“그렇죠?”

유지한은 기대를 버렸다.

진짜로 좋은 장면이 나오는 게 아닌 이상, 겨우 교육 자료로 사용되는 영상을 홍보물로 사용할리가 없겠지.

“이거 끈 조절 가능한 건 없나요?”

“잠시만요.”

유지한 파티는 칠라에게 장착할 카메라까지 대여하고 장비실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청영사 건물을 걸어다니던 그때였다.

“어이, 쓰레기들!”

“…….”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누군가가 그들에게 말을 걸어왔다.

기분 나쁘게도 이젠 제법 익숙해진 얼굴.

몇 번이나 트러블을 겪은 영웅이자, 같은 청영사 입교생인 나이프 길드의 문경진이었다.

그의 옆에는 같은 파티원들이 유지한을 노려보고 있었다.

‘쓰레기?’

다짜고짜 쓰레기라는 소리를 들은 민유리가 눈을 껌벅거리는 가운데.

유지한과 김시후는 그를 힐끗 쳐다보고는 말없이 그들의 옆쪽으로 걸었다.

그러자 문경진이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무시하냐? 쫄았어?”

“똥을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이 새끼, 말하는 거 봐라?”

문경진 파티에서 거구의 남자가 유지한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이전에 아파트에서 죽은 전사 대신 새로 합류한 영웅이었다.

자리에 멈춰 선 유지한은 자기보다 키가 살짝 더 큰 그를 올려다봤다.

“네가 유지한이지?”

“그런데?”

“너 우리 파티장한테 할 말 없냐?”

“할 말은 없고, 사과 받을 건 있는데.”

표정의 변화 하나 없는 유지한의 반박.

그를 가로막은 남자의 표정이 와락 찌푸려졌다.

서로가 서로의 눈을 노려보는 상황.

문경진은 유지한과 대치중인 남자를 향해 말했다.

“거기까지. 여기서 싸우면 우리한테도 득 될 거 없어.”

“이 싸가지 없는 놈……!”

“비키기나 해.”

분노를 삼킨 듯한 남자는 옆으로 살짝 자리를 비켰다.

유지한은 문경진을 힐끗 바라보곤, 다시금 앞으로 걸었다.

뒤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으나 그가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저 사람들 뭐야?”

“저희랑 적대하는 곳이에요.”

“저런, 어쩌다가…….”

김시후는 사정을 모르는 민유리에게 짧은 이야기를 전했다.

아파트 단지에서 그들과 겪었던 몇 번의 마찰.

그걸 전해들은 민유리는 표정을 구겼다.

“저거 완전 미친 새끼들 아니야?”

유지한은 두 사람에게 앞으로 저들을 마주치거든 경계하라고 알렸다.

같은 영웅을 공격하고도 충분히 남을 놈들이었으니까.

*****

“카메라 잘 작동하지?”

“네.”

유지한 파티가 현장으로 떠나는 날.

기본 장비에 더해 촬영 장비까지 착용한 그들은 4급 MA가 선언된 한 백화점으로 이동했다.

부천시에 위치한 그 백화점은 총 7층으로 이루어진 곳.

결계는 커다란 백화점 옆의 작은 건물까지도 포함하고 있었다.

“살벌하네요.”

결계 안쪽, 백화점 앞의 작은 광장.

커다란 크레이터와 여기저기 튀어 있는 돌조각 따위가 많이 보였다.

틀림없이 영웅의 스킬로 인한 흔적들.

건물 안쪽이 아니라 바깥에서부터 치열한 전투를 치렀음을 알 수 있었다.

‘저건…….’

검을 꺼내든 유지한은 거칠게 잘려있는 초록색 줄기를 발견했다.

몬스터로 추정되는 것의 흔적.

백화점 1층의 꽃집에서 식물계 몬스터가 발생하여, 건물 바깥으로 나가는 건 물론이고 건물 전체로 숨어든 상황이었다.

잘그락—

유지한은 와장창 부서진 유리문 조각을 밟으며 백화점 안으로 들어섰다.

물건의 이름과 가격이 적혀 있는 팻말이 바닥에 여럿 떨어져 있고, 어지러이 무너져 있는 각종 진열대들.

“킁.”

1층 전체에 화장품 매장에서 깨져 나간 향수의 냄새가 퍼져 있었다.

김시후는 향수가 섞인 냄새가 좋지 않은 듯 자신의 코를 매만졌다.

캉! 캉!

몬스터의 발생지로 추정되는 꽃집 안에서는 이미 전투가 한창이었다.

밖에서 언뜻 모습이 보이는 건 분홍색의 안괴꽃.

안개꽃이 몬스터로 변해 버린 녀석이었다.

주로 사람 키만 한 높이에다가 줄기가 단단하고 여럿이 하나로 뭉쳐서 움직이는 몬스터로, 잔가지에 달린 단단한 꽃잎들은 공격은 물론이고 방어까지 가능했다.

‘하얀색이 아닌 게 다행이지.’

죽음이라는 꽃말을 가진 하얀 안괴꽃은 무려 2급 몬스터에 해당된다.

꽃잎 전체에서 하얀 안개 같은 독을 내뿜어서 대량의 적을 중독시키는 강력한 몬스터 중 하나.

이곳은 이미 영웅부에서 모든 층에 관한 조사를 끝낸 곳이니만큼 큰 문제는 없겠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올라가자.”

꽃집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들려오는 충격음.

1층은 이미 사냥을 진행 중인 파티가 많았다.

유지한 파티는 2층으로 가고자 멈춰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걸어 올랐다.

한정된 공간에서 사냥을 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사람이 적네요.”

1층보다는 한적한 2층.

주로 여성용 옷가게 따위가 몰려 있는 공간이었다.

주변을 돌아보던 칠라는 귀를 쫑긋거렸다.

“찍!”

“저쪽에 있나 봐요.”

“갑시다.”

유지한 파티는 앞서나가는 칠라를 따라 이동했다.

도착한 매장에서 발견한 것은 아래층과 비슷한 안괴꽃.

하지만 파란색 꽃이 피어 있는 녀석이었다.

“유리 씨. 안괴꽃 잡아 본 적 있으세요?”

“아뇨.”

“꽃 바로 아래 가지 부위를 쳐내면 좋은데, 잘 보고 계세요.”

검을 든 유지한이 먼저 앞으로 나섰다.

잔가지를 흔드는 안괴꽃이 그를 공격하려는 찰나.

유지한의 찌르기가 촘촘한 꽃 사이로 파고들었다.

투둑!

쭉 뻗어진 검날은 꽃에 보호받던 가지를 끊어 냈다.

꽃에 가까워질수록 약해지는 잔가지 부위는 안괴꽃의 약점.

특히 중심부에 있는 꽃이 떨어지면 뿌리의 힘이 약해지기 때문에 안괴꽃의 혼란을 유도할 수 있었다.

투두두두둑!

꽃 사이에서 S자를 그리며 유연하게 움직이는 검이 처음 끊어진 가지를 시작으로 안괴꽃의 잔가지를 빠르게 쳐냈다.

그걸 놀랍다는 듯 지켜보는 김시후와 민유리였다.

“찍.”

끝내 쓰러진 안괴꽃에게 다가간 칠라가 방패의 모서리로 녀석의 줄기를 찍어댔다.

가볍게 적 하나를 처리한 유지한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너무 쉽죠?”

“……?”

“쉬, 쉬운가?”

“쉽잖아. 너도 마법으로 충분히 따라할 수 있어. 딱 괴아리 수준이지.”

마치 별거 아니라는 듯 말하는 유지한.

비공식 파티원과 서포터를 벗어나 처음으로 제대로 된 역할을 맡은 뒤, 5급 MA에서 괴아리를 사냥할 때조차 아주 신중하게 행동했었지만.

이제는 새로운 파티에서 활동하는 것도 익숙해진 덕분에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그였다.

“형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괴아리 수준이라면…….”

김시후와 민유리는 약간의 의문을 표했지만.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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