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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91화 (91/300)

91화. 가능성 (2)

민유리가 떨리는 손으로 동생의 팔을 매만졌다.

손도 대지 못하고 있던 동생을 마음껏 만지고 있자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피부가 검게 물들까 봐 걱정됐지만, 카지미르의 말마따나 그런 일은 없었다.

“환자의 몸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정말로 고마워요.”

의자에 앉아 있던 민유리가 카지미르에게 상체를 숙여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다시 동생을 내려다봤다.

‘진짜 얇구나.’

손으로 직접 만져 본 동생의 팔은 너무나도 얇았다.

살이 전혀 없고 안쪽의 뼈가 그대로 만져질 정도였다.

게다가 살아 있는 사람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늘어진 피부.

동생의 상태를 살펴보던 그녀는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침대 앞쪽에 서 있던 유지한은 카지미르에게 말했다.

“이건 어쩌다가 만들어진 거야?”

“마력 변색 증후군 환자의 피부 샘플을 가져다가 조사하는 도중, 샘플이 자꾸 검게 변색돼서 짜증이 나더군. 그래서 그걸 막기 위해 만들었지.”

“만들고 싶다고 만들 수 있는 건가?”

“나 정도 되니까 만든 거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뱉는 말에 유지한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자만이 아닌 자신감.

이 정도 되면 그의 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락—

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 민유리는 동생의 얼굴을 만지고 있었다.

너무 길게 자라 얼굴을 가리는 앞머리를 옆으로 흘려주었다.

애틋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유지한은 그녀를 배려하여 카지미르를 데리고 잠시 병실 밖으로 나섰다.

같은 층의 휴게실에 도착한 그가 음료수 자판기를 살폈다.

“민초는 없네.”

“뭐라?! 믿을 수가 없군! 이 병원은 반성해야 한다.”

병원에는 카지미르가 선호하는 민트초코 음료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아쉬워하면서 대신 캔에 든 이온음료를 마셨다.

“오늘 부탁 들어줘서 고맙다.”

유지한은 카지미르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가 개발했다는 성분은 아직 연구소 외부에는 공개되지 않은 것.

그런데도 유지한의 부탁을 받고 시제품 단계에 불과한 물건을 민유리에게 가져다줬다.

게다가 일상에서 사용하기 쉽도록 로션의 형태로 만들어 준 것은 카지미르의 선제안이었다.

“환자가 친동생이라고 했나?”

“맞아.”

“서로 얼굴이 닮았더군.”

“그렇지. 눈이 많이 닮았더라.”

조용한 밤의 휴게실.

두 사람은 음료를 마시며 가벼운 잡담을 나눴다.

유지한은 카지미르를 영웅부에서 우연히 마주친 후 주에 한 번은 그에게 메시지를 보내곤 했다.

주위에 민소연의 몸을 치료할 단서를 제공할 만한 인물이 달리 없었기 때문에, 시답잖은 이야기라도 건네며 꾸준히 연락을 이어 나갔던 것이다.

그 덕분에 오늘의 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유지한. 저 민유리라는 여자가 네 파티원이라고.”

“가장 최근에 합류한 파티원이지.”

“어떻게 데려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하다면 앞으로도 저 여자를 놓치지 마라.”

“뭐?”

다소 갑작스런 말에 유지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놓치지 말라니?”

“저 여자의 마력은……. 마치 바다같다.”

“바다?”

“굉장히 많은 마력을 가졌다는 뜻이다.”

카지미르는 민유리에게서 맡은 혈향과 손의 접촉을 통해 그녀가 아주 풍부한 마력의 소유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마주쳤던 모든 영웅을 통틀어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유리 씨가 그 정도였나.”

마력 화살을 사용하는 민유리.

원거리 딜러에 해당되는 영웅에는 다양한 유형이 있지만, 그녀의 경우 마력 자체를 무기로 사용하는 만큼 전제 조건으로 넉넉한 마력이 필요한 것은 맞다.

하지만 유지한이 그녀를 눈여겨 본 건 궁술 실력과 칠라까지 합쳐, 파티로서 조합이 잘 어울리는 것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 칠라라는 애완 동물이 몬스터로 변했다는 것도 마력의 영향일지도.”

“흠.”

“개인이 이 정도의 마력을 가졌다는 건 앞으로의 잠재력이 기대되는 부분이지. 본인이 인지하고 있는지는 모르겠군.”

많은 마력을 가졌다고 해서 누구나 뛰어난 영웅이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비슷한 조건을 가진 영웅이 여럿 있을 때, 마력이 많은 영웅이 유리한 것이 분명했다.

전투 지속력이 월등하니까 말이다.

‘데려오길 잘했어.’

전쟁에서 총을 사용하더라도 구비된 탄창이 넉넉해야 더 많은 적을 섬멸하는 법.

카지미르의 이야기를 들은 유지한은 예상치 못한 소득을 거둔 느낌이었다.

“타인의 마력을 알아보는 사람이라면 저 여자를 탐낼지도 모른다.”

“이미 계약 끝났어. 다른 곳에 안 넘겨.”

스톡옵션까지 포함된 그녀의 계약은 가벼운 마음으로 건넨 것이 아니었다.

계약서에 사인까지 끝낸 마당에 큰 돈을 준다고 해도 그녀를 다른 길드에 넘길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네가 잡았다던 그 하얀 머리의 남자 말이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고 있어?”

“조사에 내가 참여하고 있다.”

대학교에서 발견된 하얀 머리의 남자.

자살을 택했다던 그의 시체는 연구소에서 부검을 진행 중이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남자의 피를 분석하기 위해 카지미르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피를 뽑아서 몇 번이나 확인해 봤는데 결과가 이상하더군.”

“……?”

“절대 평범한 인간의 피라고는 볼 수 없었어.”

하얀 머리의 남자가 가진 피는 A, B, O, AB 등 그 어떤 혈액형에도 속하지 않았다.

뽑아낸 피 위에는 마치 돼지 기름마냥 진한 기름기가 둥둥 떠다녔고, 공기 중으로 독한 냄새가 퍼지기도 했다.

피와 친숙한 뱀파이어인 그가 지금까지 봐온 것들 중에서 단연코 가장 이상한 피.

평범한 인간의 것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인간보다는 오히려 몬스터로 변한 동물의 피에 가까웠지. 어쩌면 그보다도 더러웠다.”

“몬스터라니…….”

“그밖에 다른 지역에서 발견된 하얀 머리의 놈들도 마찬가지다. 죄다 쓰레기 같은 피뿐이더군.”

몬스터의 피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카지미르가 불쾌한 듯 표정을 찌푸렸다.

약간의 냄새조차 맡고 싶지 않은 더러운 피의 소유자들.

하얀 머리의 인간들을 인간 이하의 몬스터로 바라보는 그였다.

“이제 영웅부에서도 몬스터를 조종했다던 일은 사실로 여기고 있다.”

“그건 내가 직접 봤으니까 확실해.”

현장에서 실제 영상을 촬영한 자료도 남았고, 피에서도 이상한 점이 확인되었다.

몬스터를 조종하는 세력의 존재가 점차 드러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언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혼란을 피하기 위해 공식 발표는 미뤘다고 들었다.”

“그놈들 때문에 애꿎은 사람이 너무 많이 죽었어.”

“나중에 또 다른 단서를 얻는다면 영웅부에 전달해. 뭣하면 나에게 직접 연락해도 된다.”

“알겠어.”

그렇지 않아도 각종 연구로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지만.

카지미르는 자신의 힘이 닿는 곳까지는 그들에 관한 조사를 함께 이어 가겠다는 입장이었다.

연구소의 유일한 뱀파이어인 그가 참여할 수 있는 일은 아주 많았다.

“그리고 민소연이라는 마력 변색 증후군 환자를 두고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다.”

“뭘?”

카지미르가 유지한에게 영웅부의 협력 환자 제도에 대해 설명했다.

특정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영웅부 연구소에서 진행되는 연구에 도움을 줌으로써 몸에 맞는 치료제 따위가 나오면 가장 먼저 혜택을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정보에 유지한은 귀를 기울였다.

“위험한 건 아니지?”

“때때로 피를 뽑거나 손톱, 피부, 머리카락 따위의 조직을 일부 떼어 내는 작업이 필요할 수 있겠지만. 장담컨대 위험하지는 않다.”

“이건 유리 씨에게 따로 말해 봐야겠다.”

다른 건 몰라도 치료제가 나왔을 때 가장 먼저 사용할 수 있다는 건 상당한 메리트가 있었다.

이런 기회를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리라.

카지미르가 아니었다면 모르고 넘어갔을 내용이었다.

“오늘 할 말은 여기까지다.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까 이만 가 보지. 협력 환자에 대한 답변은 메시지로 줘라.”

“그래. 오늘 와 줘서 고맙다.”

“로션이 필요하면 연락해라. 더 만들어 볼 테니까.”

“받는 게 너무 많아서 미안하네.”

“신경 쓸 거 없다.”

대화를 마친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층에 도착하기 전.

엘리베이터의 올라가는 숫자를 보던 카지미르가 말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저 여자를 놓치지 마라. 흔치 않은 인재다.”

“유리 씨는 내 거라니까.”

감히 누가 파티원을 훔쳐가려고 한다는 말인가.

그녀에게 계속 관심을 가졌던 민주용이 되었건, 그 누군가가 되었건.

꿀잼에서 민유리를 강제로 빼내려거든 유지한의 검을 감당해야 할 것이었다.

파티원을 훔치려는 인간들에게 줄 자비는 없었다.

“그리고 만약 침입자를 만나게 되면 조심해라. 타인의 마력을 파악할 수 있는 놈이라면 민유리를 가장 먼저 노릴지도 모르니까.”

“……그건 명심하지. 충고 고맙다.”

“근래 상황이 심상치 않다. 돌연변이나 하얀 머리 놈들도 문제고 침입자가 발견됐다는 소식도 계속 늘어나고 있으니.”

유지한은 이전에 마주쳤던 수인을 떠올렸다.

그는 수많은 먹거리 중에서도 인간의 고기, 인육을 즐기는 침입자였다.

마력을 가진 영웅의 몸은 그들에게 있어 좋은 먹잇감이다.

특히 민유리처럼 많은 마력을 가지고 있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최우선 타겟이 되리라.

“너도 고생이 많겠네.”

“후, 말도 마라. 그 쓰레기들 때문에 얼마나 눈총을 받는지…….”

카지미르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침입자가 늘어날수록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지구에 잘 정착한 이종족들이다.

연구에서 몇 번이나 성과를 냈던 카지미르도 거기서 예외는 아니었다.

그나마 그는 지금껏 연구소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져온 덕분에 별 탈 없이 끝나고 있지만.

평범한 이종족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다.

띵동—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카지미르가 탑승했다.

“조만간 다시 연락하지.”

“조심히 들어가.”

*****

오랜만에 동생의 몸을 이리저리 만져 보던 민유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병원에 데려온 손님들을 밖에 내버려 두기가 미안했기 때문이었다.

“……?”

병실 문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고개를 갸웃거린 민유리는 천천히 걸어서 휴게실 쪽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휴게실에는 적막이 맴돌 뿐이었다.

‘어디 가신 거지?’

유지한이 인사도 없이 가 버릴 사람은 아닌데.

그리고 카지미르에게도 다시금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야했다.

민유리는 계속 병원 복도를 두리번거리며 그들을 찾아다녔다.

‘저기 있나?’

조용한 병원 복도.

근처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민유리는 소리의 출처를 쫓아 엘리베이터 근처로 이동했다.

‘맞구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조금씩 소리가 커졌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건 역시 두 사람인 듯 했다.

슬슬 병원을 나가려는 것일까.

그들이 떠나기 전 인사라도 하기 위해 민유리가 달려가려던 그때였다.

“유리 씨는 내 거라니까.”

“……!”

갑자기 귀에 훅하고 꽂힌 말에 그녀는 선 채로 굳어 버렸다.

이후 두 사람 사이에서 대화가 더 오가는 것 같았지만.

“……아?”

다른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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