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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90화 (90/300)

90화. 가능성

휴일이 되어 민유리는 동생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 방문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병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하얀 침대, 그 위에 언제나처럼 하얀 이불을 덮고 누워 있는 동생이 보였다.

“소연아. 나 왔어.”

치이이—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가습기가 있는 병실.

언제나처럼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답변이 없는 인사를 건네는 것도 이번이 몇백 번째.

민유리는 어느덧 혼자만 하는 인사에 익숙해졌다.

끼익—

그녀는 등받이가 없는 의자를 가져와 침대 옆에 앉았다.

그건 이 병실에 처음 들어올 때부터 놓여 있던 의자였다.

분명 처음 봤을 때는 새것 같았는데, 이제 앉으면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만큼 시간이 지났다는 뜻이었다.

“……?”

민소연은 병실에 있는 작은 탁자를 바라봤다.

탁자 위에는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사각의 무언가가 놓여 있었다.

아기에게 사용해도 괜찮다고 적혀 있는 순면 물티슈였다.

“엄마가 왔다 가셨나보네.”

민소연이 홀로 입원한 1인 병실에 저런 물건을 가져다 놓을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뿐이다.

바로 민유리와 민소연의 어머니.

며칠 사이에 그녀가 왔다 간 것이 분명했다.

물티슈에는 이미 몇 번 사용한 흔적이 있었다.

환자가 병상에 누운 채 꼼짝도 하지 못하는 관계로, 어머니가 물티슈를 이용하여 민소연의 몸을 대신 닦아 준 것이다.

‘어제 오신 건가?’

민유리는 최근 길드를 옮긴 뒤 사냥 및 청영사 활동 참여, 개인 훈련 등으로 현생에 충실한 삶을 보내고 있었다.

그 덕분에 매일 같이 들리던 민소연의 병실에 3~4일 간격으로 방문하게 됐다.

요 며칠 동안에도 병원을 방문하지 못했기에 어제쯤 부모님이 오셨을 거라고 예상하는 그녀였다.

‘연락도 없으시고.’

원래 민유리의 부모님은 병원에 방문하면 그녀에게 연락을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병원에 올 때마다 연락을 하지는 않는 편이었다.

딸이 많이 바빠졌는데, 괜히 동생 때문에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음…….”

민유리는 물티슈를 보며 괜히 입맛을 다셨다.

민소연은 잘 때 땀을 자주 흘린다.

마음 같아서는 그녀도 물티슈를 꺼내어 동생의 땀을 닦아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만질 수가 없어서 아쉬워.’

지금 민소연이 걸린 병을 부르는 이름은 마력 변색 증후군.

마력이 닿으면 일정 시간 동안 피부가 검게 변색 된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전신에 마력이 흐르는 영웅의 피부가 그런 환자와 닿는다면 닿은 부위가 새까맣게 물들어 버린다.

‘처음 봤을 때 얼마나 기겁을 했는지.’

그런 사실을 모른 채 민유리가 민소연의 팔을 만졌던 순간, 손이 닿은 부위가 검게 물들었었다.

게다가 그녀는 마력이 원체 많은 몸이기 때문에 다른 영웅이 만지는 것보다 더 정도가 심했다.

그때는 정말, 동생이 잘못되는 게 아닌가 크게 걱정했었다.

몇 분 정도 흐른 뒤에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말이다.

“소연이 친구들이 왔던 게 1달 전이었나?”

민유리는 시선을 물티슈에서 그 옆의 작은 액자로 옮겼다.

그건 민소연의 고등학교 친구들이 선물해 준 것이었다.

교복을 입은 민소연과 똑같은 교복을 입은 다른 친구들이 손으로 V 사인을 하고 있는 사진.

언니로서는 고맙게도, 4년이 흐른 지금까지 민소연을 잊지 않고 찾아주는 친구들이었다.

‘취직했다는 친구도 있었는데.’

민소연의 친구들 중에는 전문대에 입학 후 졸업하여 취업까지 마친 사람도 있었다.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첫 월급으로 민소연이 좋아하는 꽃을 선물했을 때, 민유리는 정말로 고마움을 느꼈다.

안타깝게도 꽃이 몬스터로 변하는 최악의 상황을 경계하여 생화는 병실에 둘 수 없었지만 말이다.

“…….”

민소연의 친구들을 떠올린 민유리는 문득 씁쓸함을 느꼈다.

날이 갈수록 동생의 친구들은 조금씩 성숙해지는데.

침대에 누워 있는 민소연의 시간은 4년 전에 멈춰 있었다.

민유리는 그것이 너무 속상했다.

‘점점 더 몸이 마르는 것 같아.’

제대로 음식을 먹지 못한 민소연의 팔과 다리는 젓가락처럼 야위었다.

얼굴의 볼살은 볼 안쪽으로 움푹 패여 골격이 그대로 드러날 정도였다.

당장은 어떻게든 목숨을 연명하고 있어도, 동생의 몸이 언제까지고 이 상황을 버텨 줄지는 알 수 없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줘.”

괴냥이를 사냥하는 일은 그만뒀지만, 민소연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동생을 깊은 잠으로부터 깨우는 방법을 찾는 것.

그것이 가족으로서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

청영사의 공용 훈련소.

휘리릭!

민유리가 화살을 꺼내는 듯한 자세를 취하자, 칠라가 재빨리 등에 메고 있던 방패를 앞으로 꺼내들었다.

공격과 방어를 반복한 덕분에 칠라는 방패의 존재 의미가 ‘공격을 막는 것’이라는 걸 조금씩 깨닫고 있었다.

“찍!”

다만 중간에 칠라가 방패의 손잡이를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평소에 보여 주는 힘이라면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을 법한 공격임에도 그랬다.

이상함을 느낀 유지한이 그것을 유심히 관찰해 본 결과.

녀석이 약간 습관이나 버릇처럼 손을 놓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칠라. 방패는 절대로 손에서 놓으면 안 돼.”

“찍…….”

“처음에 하던 것처럼 해 봐.”

유지한은 칠라가 방패를 땅으로 떨어뜨릴 때마다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다시 손에 방패를 쥐어주었다.

당장 방패를 내려놓으면 손은 편하겠지만, 자기 뒤에 있는 동료들을 지켜낼 수는 없다는 사실을 가르치는 것이다.

다행히 유지한의 뜻을 이해해 준 것인지 녀석이 손에서 방패를 놓치는 빈도 수는 점차 줄어들었다.

“후우,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죠.”

칠라에게 방패 사용법을 가르치고 개인 훈련을 진행하길 몇 시간째.

이마에서 땀을 뻘뻘 흘리는 유지한은 훈련 종료를 선언했다.

“수고하셨어요.”

“유리 씨도 수고하셨습니다.”

“다들 물 좀 드세요.”

훈련을 마치고 진행되는 티타임.

김시후는 커다란 보온병을 들고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럭키 위스커와 화이트 엄브렐라가 조합된 영약차였다.

“역시 짜고 쓰네요.”

오로지 유지한 파티원들만 마실 수 있는 독특한 맛의 영약!

그것을 처음 접한 민유리는 반신반의했지만.

차를 꾸준히 섭취할수록 효과가 나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마력을 엮어 만드는 마력 화살의 형태가 다듬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스킬을 사용할 때도 전과 비교될 만큼 편하게 느껴진 덕분이었다.

“아 참, 유리 씨.”

“네?”

“오늘 저녁에 시간 되세요?”

“딱히 약속은 없는데…….”

“그럼 오늘 저한테 시간 좀 내주세요.”

“……?”

꿀잼의 일상은 보통 평범한 회사처럼 오전부터 오후 6~7시까지만 진행된다.

저녁에는 서로 간섭없이 개인 시간을 보내는 편인데, 시간을 내달라니.

“가능하죠?”

“가능은 한데요…….”

“다른 게 아니라, 드리고 싶은 선물이 있어서요.”

“선물? 그게 뭐예요?”

“그냥 작은 선물이요. 마음에 드실지는 모르겠지만.”

“뭔지 말해 주면 안 돼요?”

“미리 말하면 재미없어요.”

“…….”

뜬금없이 민유리에게 선물을 주겠다는 유지한.

민유리는 순간 유지한의 얼굴을 살폈다.

그는 아주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장난기가 담긴 표정처럼 보이기도 했다.

‘뭐지? 뭘 주겠다는 거야?’

물을 홀짝이는 민유리의 궁금증이 커져갔다.

*****

해가 저물고 어둠이 깔린 저녁.

사복을 입은 민유리는 유지한이 말한 카페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 가기 전에 소연이한테 들려야겠다.’

우연찮게도 그 카페는 민소연이 있는 병원의 바로 근처였다.

어쩌면 유지한이 일부러 병원과 가까운 이곳을 약속 장소로 정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선물…….’

그가 말한 선물은 무엇일까.

최근에 다른 사람한테 선물을 받아 본 적이 있던가?

너무 기대하진 말아야지.

그래도 궁금해지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내던 때였다.

딸랑—

카페의 유리문이 열리며 유지한이 안으로 들어왔다.

“지한 씨!”

“저 여자인가?”

“맞아.”

유지한의 뒤에는 검붉은 머리칼의 남자가 함께였다.

두 사람이 민유리에게 다가갔다.

민유리는 낯선 남자를 힐끗거리며 말했다.

“저기, 이쪽은 누구시죠?”

“뱀파이어요.”

“……?”

민유리는 유지한의 대답을 듣고서 뱀파이어의 신체적 특징을 떠올렸다.

검붉은 머리칼과 송곳니. 창백함이 도는 피부 등.

“배, 뱀파이어!”

그게 바로 눈앞에 있었다.

화들짝 놀란 그녀는 본능적으로 손을 등 뒤로 가져갔다.

이곳에 가져오지 않은 활을 찾는 것이었다.

“경계할 필요 없어요. 한국에 잘 정착한 친구니까.”

“나는 선량한 공무원이다.”

표정이 뚱해진 카지미르는 자신의 소속이 적힌 공무원증을 앞으로 들이밀었다.

그가 영웅부 소속임이 확인되고 나서야 민유리는 안심할 수 있었다.

‘공무원 뱀파이어라니.’

한숨을 내쉰 민유리가 자기 소개를 마친 카지미르를 힐끗거렸다.

수인이나 엘프는 몇 번 본 적이 있지만, 난생 처음으로 직접 만난 뱀파이어.

그녀에게는 너무 낯선 인물이었다.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죄송한 걸 알았으면 됐다.”

“그런데 지한 씨가 오늘 주시겠다는 선물이라는 건…….”

“제가 이 친구에게 부탁한 겁니다.”

유지한은 민유리에게 간단한 설명을 했다.

카지미르가 영웅부에 소속된 공무원으로서, 피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자라는 것까지.

“소연 씨의 동생인 마력 변색 증후군도 이 친구의 연구 과제 중에 하나래요.”

“와……. 머리가 좋으신가 봐요.”

“머리가 좋은 게 아니다.”

“네?”

“머리가 아주 좋은 거지.”

“…….”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말에 민유리가 순간 말문을 잃어버렸다.

잠깐의 대화로 그녀는 이 뱀파이어의 성격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뭘 드릴 거냐면.”

유지한이 카지미르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카지미르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이게 오늘 드릴 선물입니다.”

하얀색의 액체가 담긴 투명한 병.

액체처럼 보이나 너무 묽지 않고 되직한 것이, 민유리의 눈에는 마치 로션처럼 보였다.

“그게 뭐예요?”

“마력 변색 증후군의 연구를 진행하던 중에 탄생한 물건이다.”

카지미르의 설명을 들은 민유리가 눈을 빛냈다.

연구자라는 사람이 주는 물건이라면 결코 평범한 물건은 아닐 터.

“환자에게 특별한 효과 같은 게 있는 건가요?!”

“아니.”

“그러면요?”

“너, 지금껏 동생의 몸을 만져 본 적이 있나?”

“만지면 피부가 검게 변해서…….”

“이 로션을 바르면 적어도 1시간 동안은 만져도 문제가 없을 거다.”

로션이 담긴 병을 바라보는 민유리가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는 저도 모르게 손을 쭉 뻗어서 그 병을 받았다.

“……?”

그런데 병을 건네면서 서로의 손가락이 가까워진 찰나.

카지미르가 눈을 살짝 꿈틀거렸다.

“왜 그러세요?”

“……아무것도 아니다.”

“이 로션, 효과는 정말 확실한 건가요?”

“시제품에 불과하지만 실제로 효과가 있다는 걸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하지.”

“지금 바로 확인해도 되겠죠?!”

“이 시간에 병원에 들어가도 되는 건가?”

“문제 없어요.”

자리에서 일어난 민유리는 두 사람을 이끌고 민소연의 병실로 향했다.

가족과 그 관계자에게는 언제나 열려있는 1인 병실이었다.

“바, 발라 볼게요.”

민유리가 로션을 손바닥에 크게 덜어 냈다.

손톱 끝부터 손목까지, 손 전체에 치덕치덕 바른 뒤에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

“이 정도면 되겠죠?”

“과하다. 그렇게 바른다면 로션이 남아나질 않을 거다.”

“문제 없다는 거네요.”

너무 많은 양을 바른 탓에 카지미르가 작게 구시렁거렸다.

그리고 확인을 받은 민유리는 자신의 손을 민소연의 손바닥으로 가져갔다.

잔뜩 긴장한 채 이뤄지는 접촉.

톡.

민유리의 손끝이 민소연의 손바닥을 살짝 건드렸다.

“……!”

접촉 부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카지미르의 말마따나 정말로 색이 변하지 않은 것이다.

“정말로…….”

마침내 민유리의 손이 동생의 손바닥을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근 4년 동안 단 한 번도 만져 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소중한 동생의 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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