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탱커 (2)
“방패 먼저 드리겠습니다.”
남호열은 가게에 진열된 방패를 훑었다.
한참 전에 제작되어 가게에서 먼지만 쌓여 가는 방패들.
드디어 저기서 하나를 꺼낼 수 있게 되었다.
‘저게 좋겠어.’
팔짱을 끼고 고민하던 남호열은 벽 한쪽에 걸어둔 방패를 꺼냈다.
각진 곳 하나 없이 둥그스름하게 생긴 원형의 방패로 직경이 1m를 넘길 정도로 커다란 물건이었다.
다만 특이한 점이라면 방패의 표면이 마치 말랑한 젤리처럼 생겼다는 것.
“이건 예전에 재미삼아 만든 방패인데, 여기서 꺼내게 되네요.”
“조금 특이하게 생겼네요. 뭘로 만들어진 거죠?”
“마력 코팅된 강철 위에 젤리 피그(Jelly Pig)의 가죽을 덧댔습니다.”
“젤리 피그…….”
유지한은 익숙한 이름을 듣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3급 몬스터인 젤리 피그는 젤라틴이 가득한 돼지의 피부에 마력이 큰 영향을 주어 탄생한 몬스터의 일종.
녀석의 가죽은 마치 말랑말랑한 젤리처럼 생겼으면서도 충격을 흡수하는 효과가 뛰어나다.
무게는 적당히 가벼울 뿐더러 자잘한 상처 따위는 저절로 복원되는 효과까지 있기에, 장비 제작에 종종 사용되는 소재에 속한다.
‘크기도 좋고.’
커다란 칠라의 몸집과도 어울리는 크기.
유지한이 방패를 직접 들어본 결과 크기에 비해서는 꽤나 가벼운 편이었다.
투박한 생김새 때문에 평범한 탱커들은 그리 선호할 거 같지 않지만, 칠라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칠라. 여기 봐봐.”
“찍?”
문밖으로 나간 민유리는 칠라의 앞에서 방패를 사용하는 모습을 시연했다.
안쪽의 손잡이를 보여 준 후, 그것을 손으로 잡는 일까지.
방패라는 물건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려 주는 것이었다.
“해볼래?”
“찍…….”
민유리가 방패의 손잡이를 칠라에게 건넸다.
칠라는 눈앞으로 다가온 방패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김시후는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저게 될까요? 우리가 칠라한테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닌지…….”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어.”
지금까지는 장비 없이 맨몸으로만 활동해 왔던 칠라.
칠라와 쭉 함께해 온 민유리마저 녀석이 방패를 다룰 수 있다고 확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유지한의 생각은 달랐다.
“나는 칠라가 우리 생각보다 더 똑똑하다고 느껴.”
주인인 민유리를 중심으로 몸을 아끼지 않고 파티원을 지켜 내는 탱커.
현장에서 함께하는 동안 칠라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던 유지한이었다.
그 결과 녀석이 나이가 어린 아이만큼이나 똑똑한 동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당장은 낯설어서 그렇지, 방패쯤이야 어렵지 않게 사용할 수 있다고 믿었다.
“잡아 봐.”
유지한은 직접 방패를 들어다가 칠라의 손에 손잡이를 쥐여 주었다.
얼떨결에 방패를 잡게 된 칠라의 시선이 원형의 방패로 향했다.
“공격을 그걸로 막는 거야.”
“찍찍.”
쿵! 쿵!
유지한은 칠라가 잡고 있던 방패를 주먹으로 쳤다.
방패로 충격이 전해질 때마다 칠라의 귀가 연신 쫑긋거렸다.
“이렇게.”
쿵!!
이번에는 유지한이 방패를 조금 세게 두들겼다.
방패를 든 입장에서는 거부감이 들 수도 있을 만한 충격량.
그렇지만 칠라는 아직 손에서 방패를 놓지 않았다.
“오…….”
“되는 건가?”
몇 번의 테스트를 더 진행한 유지한은 결국 방패를 구입하기로 했다.
*****
유지한 파티가 남호열에게 장비 제작을 맡겨두고 공방을 나서려던 차.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예?”
“5분……. 아니 10분이면 됩니다. 서비스로 뭘 좀 만들어 드릴게요.”
작업대에 앉은 남호열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무언가 열심히 작업하기를 약 10분 후.
커다란 끈 같은 것이 그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방패를 몸에 고정할 수 있는 장치입니다. 칠라에게 입혀 보세요.”
“오오…….”
그가 순식간에 제작한 것은 방패를 칠라의 등 부위에 고정할 수 있게끔 하는 장치였다.
그는 이후 제작되는 갑옷에도 등에 방패를 멜 수 있게 만들겠다고 말했다.
칠라가 평소에도 네발로 달리는 녀석인 만큼 상당히 좋은 제안이었다.
“다 만들어지면 연락 주세요.”
“네!”
그렇게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고 공방을 나선 뒤.
민유리는 칠라의 등에 단단하게 고정된 방패를 보며 말했다.
“호열 씨가 생각보다 신경을 많이 써 주시네요.”
“덕분에 자주 찾아가고 있죠.”
“굳이 여길 왜 선택했는지 알 것도 같아요.”
칠라의 갑옷 제작을 주문한 것과는 별개로.
유지한 파티는 남호열과 만날 때마다 항상 생각한 것 이상으로 받아 가고 있었다.
이번에 새로 합류한 민유리도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패를 받은 김에 훈련소에서 칠라에게 방패 쓰는 방법을 가르쳐야 할 것 같아요.”
“그게 좋겠네요.”
우웅—
유지한의 휴대폰에 진동이 울렸다.
그는 휴대폰을 들어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했다.
[장사임 : 보유하고 있던 괴둘기를 모두 몬스터 레스토랑에 납품 완료했습니다.]
한강대학교에서 사냥한 괴둘기를 성공적으로 판매했다는 장사임의 메시지였다.
유지한은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장사임 : 돌연변이는 지한 씨가 말씀하신대로 팔지 않고 보관중입니다.]
[유지한 : 알겠습니다.]
[장사임 : 구매를 간절히 원하는 업체가 있어서 거부하는데 애를 좀 먹었네요.]
단, 유지한 파티는 돌연변이 괴둘기를 팔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정황상 그 현장에서 돌연변이는 인간을 잡아먹은 것이 확실한 개체였기 때문이었다.
인간을 잡아먹은 몬스터를 다시 인간이 먹는다.
몬스터를 식용으로 사용하는 일에 특별한 규정이 없어서 공공연히 묵인되고 있지만.
모르고 먹는다면 모를까 알고 있다면 찝찝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몬스터의 위장에서 인육이 나온 일도 있다고 하지.’
몬스터도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요리할 때 손질이 필수다.
그런데 어느 커뮤니티에 따르면 몬스터를 손질하는 도중 위장에서 인육, 인간의 살이 나왔다는 소식도 들리곤 한다.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관련 업계를 떠나는 사람도 종종 있다고 알려진다.
‘어쩐다.’
괴둘기는 주로 레스토랑에서 소비된다.
하지만 식용으로 팔지 않기로 정했으니, 유지한은 돌연변이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여보세요?”
김시후가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뭐라고요?”
무슨 일인지 심각한 얼굴로 대답하는 김시후.
잠시 후, 통화를 마친 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지한이 형. 영웅부에서 전화왔는데요.”
“영웅부에서? 왜?”
“저희가 대학교에서 생포한 남자 있잖아요. 돌연변이 타고 날아다니던 하얀 머리.”
“그 사람이 왜?”
“심문받던 도중에 자살했대요.”
“뭐?”
길을 걷던 유지한이 자리에 멈춰섰다.
이야기를 듣던 민유리도 퍽 놀란 표정으로 김시후를 바라봤다.
“그 사람이 자살했다고.”
“정확히는 자살로 추정하고 있대요.”
“추정한다는 건 뭐야.”
“손과 발이 꽁꽁 묶인 상태에서 갑자기 피를 토하고 죽었다는데…….”
온몸이 구속된 상태에서 피를 토하며 죽어 버린 남자.
영웅부는 그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고 여기고 있었다.
‘…….’
유지한은 대학교에서 마주쳤던 그 남자를 떠올렸다.
기껏 현장에서 죽이지 않고 살려준 의미가 없게 되었다.
그는 무엇이 그리도 감추고 싶었길래 자살을 택한 것일까.
‘하여간 짜증 나는 놈들이야.’
죄 없는 타인의 생명에 이어 결국 자신의 목숨까지도.
생명의 가치를 너무나도 가벼이 여기는 놈들이었다.
유지한은 그것이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영웅부에서 저희가 확보한 괴둘기를 구매하고 싶다는데요.”
“이미 거의 다 팔아 버렸는데.”
온전한 협조를 구하려면 이미 늦었다.
현장에서 확보한 괴둘기는 대부분 팔아 버렸기 때문이었다.
“돌연변이라도 넘길까요?”
“적당한 가격이라도 받으면 괜찮겠지.”
그렇지 않아도 처리해야만 했던 개체였다.
영웅부에서 연구 목적으로 사들이겠다면 유지한으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슬슬 길드에도 돈이 쌓이겠네.’
칠라의 장비를 구매한 후 현재 길드의 자본은 대략 2억 남짓.
최근 벌어들이는 금액을 생각하면 민유리의 몇 달치 월급을 제하더라도 남는 금액이다.
고가의 장비를 구매하는 일이 발생했을 때는 또 모르는 일이지만.
대출로 초기 자본을 마련하거나 벌자마자 소비하는 길드의 단계에서 조금씩 흑자로 전환하는 단계로 올라섰다고 볼 수 있었다.
‘흔치 않은 일인데 말이지.’
5급, 4급 파티밖에 없는 신생 길드가 적절한 장비를 갖추면서 활동을 이어 가는 건 대부분 적자를 감수하는 때가 많다.
그런데 벌써부터 흑자를 눈앞에 두고 있으니…….
아주 좋은 조짐이었다.
*****
청영사의 공용 훈련소는 청영사 입교생을 포함한 관계자들에게는 365일 무료로 열려 있는 공간이다.
칠라를 포함한 유지한 파티는 그 공용 훈련소에 방문했다.
“좋은데?”
“깨끗하고 기계도 많네요.”
유지한 파티원들은 훈련소 주변을 둘러봤다.
공용 훈련소와 비교했을 때 훨씬 더 깨끗하고 좋은 시설로 이루어진 공간이었다.
게다가 케로즈에서조차 못보던 기계들까지!
청영사에 투자하는 레드홀의 커다란 자금력을 일부나마 엿볼 수 있었다.
“앞으로 훈련소 걱정은 없겠어요.”
홀로 활동했던 민유리도 훈련이 필요할 때는 공용 훈련소를 애용했다.
다만 원하는 훈련을 하려면 대기를 하는 등 귀찮은 과정이 필요했는데.
이제는 사무실에서 조금만 이동하면 이용객이 별로 없는 훈련소가 있으니 매우 편했다.
“저기 있다.”
유지한 파티는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개인 훈련실로 들어갔다.
오늘의 방문 목적은 하나.
칠라에게 방패 사용법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칠라.”
“찍!”
민유리는 칠라의 등에서 방패를 꺼내어 손에 쥐어주었다.
하지만 칠라는 아직은 방패가 낯선 모양인지 손에 쥐기만 하고 제자리에 동상처럼 멈춰 있었다.
“이렇게 하는 거야.”
유지한은 방패를 직접 들어다가 몸 앞으로 세웠다.
그리고 민유리에게 눈짓했다.
“쏠게요!”
미리 말을 맞췄던 대로 마력화살 하나를 시위에 겨눈 민유리가 손을 놓았다.
푸슝!
적당한 힘이 실린 화살 한 발이 유지한을 향해 날아왔다.
퉁!
화살은 방패의 위쪽, 젤리 피그의 가죽에 박혔다.
막아낸 부위의 가죽이 살짝 안으로 패인 모습이었지만.
화살의 형태를 이루는 마력이 흩어진 뒤에는 그 부위가 다시 원래의 평평한 형태로 메꿔졌다.
“잘 봐!”
민유리가 화살을 쏘고, 유지한이 막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칠라는 옆에서 그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
왜 자신의 주인은 동료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화살을 쏘고 있는가.
저 둥그스름한 철판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것을 파악하는 과정이었다.
“이번에는 네 차례야.”
“찍찍!”
유지한은 다시 칠라에게 방패를 넘겼다.
그러자 칠라는 유지한을 따라하는 것인지 방패를 민유리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세웠다.
“쏜다!”
민유리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방패를 향해 화살을 쏘아 냈다.
퉁!
칠라는 전혀 흔들리지 않고 화살을 막아 냈다.
그렇게 몇 차례의 공방이 오간 뒤.
“다 막았어요!”
“오…….”
칠라는 날아오는 모든 화살을 막아 냈다.
심지어는 유지한이 검을 앞으로 가져가자.
“찍!”
칠라가 유지한의 방향으로 방패를 들어올렸다.
본능적으로 날붙이를 경계하는 것이었다.
녀석은 생각보다 더 훌륭한 탱커의 자질을 갖고 있었다.
‘요 자식, 생각보다 잘하네.’
진작에 방패를 사줄 걸 그랬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