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87화 (87/300)

87화. 피드백 (2)

김명수 파티의 영상이 종료되고.

다음 파티의 영상이 시작되기까지의 짧은 휴식 시간 동안, 유지한 파티는 서로의 의견을 정리했다.

“메모한 내용 파티 채팅방에 올릴게요.”

민유리는 메신저를 통해 자신이 작성한 피드백을 전송했다.

유지한과 김시후는 전송받은 내용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녀가 거의 1만자에 가까운 글을 작성한 덕분이었다.

“괴냥이의 습성, 공격 패턴……. 약점 분석까지? 어느 새 이런 걸 적었어요?”

“조금만 더 보태면 괴냥이로 논문 쓰셔도 되겠는데요.”

“에이, 그 정도는 아니에요.”

4년 간 괴냥이만을 사냥한 민유리.

적어도 이 자리에 그녀만큼 괴냥이를 잘 아는 사람은 없으리라.

그녀는 그 괴냥이에 대한 풍부한 지식으로 바탕으로 김명수 파티의 아쉬운 모습을 지적하는 내용을 적었다.

“유리 씨의 내용을 기반으로 시후와 제 걸 조금 추가하는 게 좋겠네요.”

유지한은 다 만들어진 훌륭한 문서에 양념을 조금 추가하는 느낌이었다.

이번 피드백이 좋은 평가를 얻는다면 민유리의 공이 가장 크겠지.

“다음 영상 재생하겠습니다.”

검은 화면에 또 다른 영상이 재생됐다.

초점이 흐린 영상에 조금씩 어떤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레이디스 길드의 고미나 파티입니다!

“에구!”

오로지 여성 영웅으로만 구성된 레이디스 길드.

재생되는 것은 고미나 파티의 영상이었다.

화면 속 자신의 얼굴을 보는 고미나는 손바닥으로 자신의 두 눈을 가렸다.

—저기다!

영상 속 고미나 파티의 사냥이 시작됐다.

“크흠!”

“으음.”

“역시 레이디스…….”

몸에 찰싹 달라붙는 타이즈처럼 생긴 고미나의 장비.

심지어 고미나 파티원들은 모두가 비슷한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영상을 지켜보는 남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몸의 굴곡이 외부로 고스란히 드러나는 그녀들.

그것은 단순히 뽐내기 위함이 아니라 무수한 훈련으로 다져진 결과물이었지만.

누군가는 보기가 부끄러웠는지 눈알을 계속 이리저리 굴려댔다.

“뭐야, 저게.”

“쯧!”

“무슨 요가하러 가나 봐.”

다른 파티의 여자 영웅들은 고미나 파티를 보며 조금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험담을 중얼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흥, 뭔 상관이래.’

하지만 고미나는 그런 반응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녀의 기준에서 타이즈는 공기저항을 감소시키고 빠른 움직임이 필요한 영웅들에게 그 어떤 방해도 되지 않는 최적의 장비였다.

내가 필요해서 원하는 걸 입겠다는데 무슨 상관이겠는가.

‘좋은 선택이네.’

그리고 그건 유지한도 동의하는 바였다.

언젠가 과거의 그도 만화 속 슈퍼맨 같은 타이즈를 고려했던 적이 있었다.

다만 그런 장비는 어딘가 작은 손상이라도 가면 현장에서 대처하기가 힘들어서 포기했지만 말이다.

*****

청영사 3기의 첫 피드백 시간이 마무리되었다.

모든 파티는 영상으로 나온 3개 파티에 대해 피드백을 작성, 제출하고 강의실을 떠났다.

“후우.”

교관 진석우는 청영사 사무실 내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의자에 앉자마자 작은 한숨이 토해 냈다.

‘첫 교육이었는데, 잘 했나 모르겠네.’

현역 영웅이자 동시에 배우로서 활동하는 진석우.

무수한 경험을 가진 그가 교관으로서 후배들의 교육을 진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평소 긴장이 많은 편인 그는 첫 교육에서 애써 침착함을 연기했지만.

교육이 끝나자마자 긴장이 확 풀려 버렸다.

“다행히 잘 따라주는 모습이었지.”

나름 인지도가 있기 때문이었을까.

후배들은 그의 교육에 잘 따라주는 모습이었다.

피드백도 모든 파티가 빠짐없이 제 시간 내 제출해 줬다.

‘내가 좋은 교관이 돼야 할 텐데…….’

평소 자신이 영웅이라는 것에 꽤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그였다.

청영사 교관이라는 좋은 기회를 얻은 만큼, 그는 다른 파티들이 더 훌륭한 파티가 될 수 있도록 이끌고자 했다.

이번에 피드백을 주고 받는 수업도 청영사에 그가 직접 제안한 교육 중에 하나였다.

그만큼 교관으로서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어디, 메일을 좀 볼까.”

진석우는 컴퓨터를 켜서 자신의 메일함을 열었다.

광고 메일 따위를 제외하고, 총 30개 파티에서 제출한 피드백이 도착해 있었다.

미리 휴대폰으로 확인했던 내용이었다.

“흐음…….”

진석우는 각 파티에서 작성한 피드백을 열어 확인했다.

예상했듯 어떤 파티의 어떤 점이 좋고 어떤 점이 아쉬웠는지가 적혀 있었다.

주로 나쁜 평가 보다는 좋은 평가를 많이 하는 편이었는데…….

‘딱 4급 정도인가.’

영웅이 아니라 일반적인 시민들도 영웅의 전투를 보면서 할 수 있는 수준의 피드백들.

지원한 4급 파티 중에서도 선별해서 뽑았다고는 하지만.

아직 경험이 부족한 4급이기 때문인지 눈에 확 띄는 내용은 없었다.

심지어 누구는 장비의 생김새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개인적인 의견도 적어 놓았다.

영상 속 파티에게 필요한 피드백이라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내용이었다.

‘나도 이랬으니까.’

진석우도 이 정도는 예상하던 바였다.

이제 입교한 청영사 후배들에게 아직 많은 것을 바랄 수는 없었다.

그 자신도 과거에는 이와 비슷한 정도의 수준이었다.

“……음?”

그런데 새로운 메일을 열어 보던 때였다.

피드백을 메일의 내용으로 보내지 않고 별도의 첨부 파일로 보낸 파티가 있었다.

‘바이러스는 아니겠지.’

진석우는 텍스트 파일을 컴퓨터에 내려받았다.

그리고는 파일을 열었는데.

“뭐가 이리 길어?”

드르륵— 드르륵—

마우스 스크롤을 몇 번이나 해야 문서의 끝이 나왔다.

총 글자수가 1만자가 훌쩍 넘어가는 피드백이었다.

인터넷에서 도움이 되는 자료라도 복사해 온 것인지…….

진석우는 천천히 그들의 피드백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10분 뒤.

“……허.”

유지한 파티가 제출한 피드백의 마지막 문장을 읽은 진석우가 헛웃음을 흘렸다.

“그 짧은 시간동안 이걸 적었다고?”

진석우는 피드백의 내용 일부를 복사해서 인터넷에 검색했다.

[검색 결과 : 2건]

하지만 검색 결과에는 딱히 의미 있는 자료가 나오지 않았다.

단순히 인터넷에서 복사해 온 내용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진짜로?”

진석우는 자신의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그가 오늘 교육을 진행한 시간은 전부 합해도 2시간을 넘기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자세한 정보를…….”

진석우가 유지한 파티의 피드백에서 가장 놀란 부분은 바로 괴냥이의 공략법이 적힌 부분이었다.

[……김명수 파티는 전사 4명에 마법사 1명으로 이루어진 파티로서 메인 딜러인 전사를 필두로 괴냥이를 호쾌하게 사냥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전투에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 존재한다. 첫째로 전사에게 너무 비중을 둔 나머지 마법사의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했다는 것…….]

짧은 시간 내 작성한 탓인지 다소 거칠었지만.

이들은 영상 속 파티의 단점을 지적하며 그에 대한 개선점, 당시 취할 수 있었던 최선의 공략법 등을 적어 두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진석우의 눈에도 아주 정확하고도 올바른 피드백으로 보였다.

‘상황을 무서울 정도로 잘 파악했다.’

특정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영상 속의 파티가 어떻게 해야 더욱 효율적인 전투를 진행할 수 있는지.

이 피드백을 작성한 이들은 몬스터는 물론이고 영웅들에 대해서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 이해가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피드백이었다.

“유지한 파티라…….”

진석우는 다시 메일함을 열어서 발송인을 확인했다.

이전에 본 명단에 있었지만 별 기대를 하지 않았던 파티였다.

하지만 그들이 작성한 피드백은 결코 심상치 않았다.

“재밌네.”

피드백을 읽던 진석우는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

다음 날, 청영사의 두 번째 교육 시간.

청영사 입교생들은 다시금 강의실에 한데 모였다.

“어제 여러분이 전달해 주신 피드백을 모두 읽었습니다.”

입교생들은 진석우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과연 영약의 주인은 누가될 것인가.

어쩌면 그것이 오늘 결정될 수도 있었다.

“교관 입장에서 말해 보자면 굳이 영웅이 아니더라도 어느 누구나 할 수 있을 법한 평이한 피드백이 많았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

“여러분은 조금 더 상황을 보는 눈을 기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현장에서 직접 싸우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니,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상황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런데.”

중간에 말을 끊은 진석우는 유지한 파티가 앉아 있는 쪽을 바라봤다.

그를 바라보고 있던 유지한은 그와 눈이 마주쳤다.

“어제 살펴본 피드백 중에서 가장 눈에 띈 피드백이 하나 있습니다.”

“……?”

“어느 파티에서 제출한 피드백인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제가 그것을 아주 인상 깊게 봤다는 건 확실합니다.”

진석우는 책상에 올려둔 하얀 서류를 집었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방금 언급한 파티의 피드백을 잠시 읽어 보겠습니다.”

진석우가 천천히 가져온 서류를 읽기 시작했다.

그 서류에 적힌 피드백이 자기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영웅들은 속으로 조금 실망했다.

‘어?’

‘우리가 제출한 거잖아.’

반면 당사자인 유지한 파티는 서로의 얼굴을 힐끔거리며 조금 당황했다.

설마 저걸 공개적으로 읽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탱커가 파티와 너무 떨어져서 홀로 앞으로 나가는 경향이 있다.”

진석우의 말이 계속 이어지고.

영상 속에 출현한 파티들은 단점이 주르륵 나열되자 잔뜩 표정을 굳혔다.

분한 표정을 짓는 것이, 진석우의 눈에는 반박을 원하는 것 같기도 했다.

“별다른 활약이 없는 마법사의 적극적인 전투 참여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내 개선점이 언급되자 일부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진석우의 말에 집중했다.

평소에도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던 부분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파티의 구심점이 되는 파티장의 역할은 아주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모든 파티원이 완벽하게 파티장의 명령대로 행동하는 고미나 파티는 아주 훌륭한 예시라고 볼 수 있다.”

“으흠!”

유지한의 피드백으로 칭찬을 받은 고미나는 조금 뿌듯한 표정이었다.

그 뒤에 이어지는 단점에서 아주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지만.

대체로 피드백의 내용을 인정하는 모습이었다.

모든 내용을 읽은 진석우는 피드백의 대상이 된 파티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떤가요?”

“전체적으로 맞는 말 같지만, 틀린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희 파티를 비판했던 내용에는 조금 의아한 지점이…….”

“반박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전부 다 맞는 말이에요.”

“…….”

“파티의 장점을 짚어낸 것부터 단점을 꼬집은 것까지. 이건 제가 생각한 것과 거의 일치하는 피드백입니다.”

이의를 제기했던 남자가 진석우의 확답을 듣고 입을 다물었다.

반박을 하고 싶어도 교관인 그가 저런 태도로 나오면 할 말이 없었다.

“듣고 보니 새로 깨닫게 된 것도 많았어요!”

“대체 누가 이런 피드백을 한 거죠? 교관님이 도와주신 거 아닌가요?”

“아니요. 저는 제출된 피드백을 단 한 글자도 건들지 않았습니다.”

“오…….”

“이 피드백을 작성한 파티에게는 높은 가산점을 부여하겠습니다.”

진석우의 눈이 또다시 유지한 파티를 향했다.

그 묘한 관심에 유지한은 조금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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