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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84화 (84/300)

84화. 가족 (3)

“오늘 만나자고?”

—네. 가능하세요?

유지한은 김시후로부터 아버지가 무사히 한국에 들어왔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이전에 말했던 것처럼 김건오는 유지한에게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문제없지.”

유지한은 그의 요청을 기꺼이 수락했다.

그 또한 실프의 이전 주인이었던 에르나 하스의 남편이자 몬스터 연구원이라는 김건오에게 관심이 있었다.

—만나는 장소는 유리 누나 집 앞으로 하기로 했어요.

“칠라 때문에?”

—네. 눈길도 끌리고 덩치가 있어서 공공장소에 못 들어가잖아요.

“그래. 거기서 보자.”

만나는 장소는 민유리의 집 앞.

칠라의 덩치를 배려한 결정이었다.

‘그렇게 멀지는 않네.’

약속 시간보다 넉넉하게 집을 빠져나온 유지한은 버스에 올라탔다.

그의 휴대폰에는 메시지로 전달받은 민유리의 집주소가 떠올라 있었다.

‘내 윗세대라면 4세대 영웅인가.’

미국과 일본, 중국 따위에서 처음으로 마력을 다룰 수 있는 영웅이 등장하고.

그후로 60년이 넘어가는 역사를 쌓아올린 영웅계.

특별한 의미는 없지만 보통 10년을 주기로 영웅의 세대를 나눈다.

그 기준으로 보자면 한국에 처음 영웅부가 생긴 것은 영웅이 3세대로 넘어가는 즈음이었다.

‘내가 5세대였지.’

유지한은 5세대, 김시후는 6세대 영웅.

그리고 최근 10년 사이에 은퇴한 영웅이라면 3세대나 4세대 영웅일 확률이 높았다.

‘시후 나이를 생각하면 50대가 맞겠네.’

현재 현역에 남아 있는 영웅들은 주로 20, 30대 영웅들이다.

그리고 영웅의 은퇴 시기는 40대에서 50대 사이가 많다.

은퇴 이유로는 주로 자신의 한계에 부딪혔다는 것.

3급 정도에서 계속 활동했다면 돈은 벌대로 벌었을 테니 큰 사치를 부리지 않는 기준에서는 은퇴해도 먹고 사는 데 별 지장이 없다.

김건오의 경우는 은퇴 이후 몬스터 연구에 뛰어들었다고 하니 그 이유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이쯤인데.’

버스를 타고 지도를 따라 이동하자, 커다란 단독 주택이 주르륵 나열되어 있는 공간이 나왔다.

유지한은 지도를 확인하며 민유리의 집 앞으로 이동해서 벨을 눌렀다.

띵동—

“어? 지한 씨!”

조금 기다리자 스피커를 통해 민유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찍 오셨네요?”

“그래요?”

민유리는 조금 놀란 목소리였다.

그러자 유지한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생각한 것보다 너무 빠르게 도착해 버렸다.

“근처 카페로 가서 기다릴게요.”

“손님 불러놓고 실례죠. 안으로 들어오세요!”

딸칵!

집주인의 입장 허락이 떨어지고, 잠겨 있던 대문이 열렸다.

유지한은 그 안쪽으로 들어섰다.

‘엇.’

그러다 무언가를 발견한 그가 걸음을 멈췄다.

건물 앞 공간. 인공잔디가 깔려 있는 작은 정원.

민유리의 차량이 주차된 그곳의 중심에는 칠라가 앉아 있었다.

“찍찍.”

고개를 쳐들고 따뜻한 햇볕을 쬐고 있던 칠라가 문으로 들어온 유지한을 바라봤다.

커다랗고 똘망똘망한 눈이 그의 얼굴에 꽂혔다.

그러자 유지한 또한 지지 않겠다는 듯 칠라를 지그시 바라봤다.

“…….”

“…….”

말없이 이어지는 눈빛 교환.

거기서 먼저 시선을 거둔 것은 유지한이었다.

집 밖으로 나오는 민유리를 발견한 덕분이었다.

“너무 일찍 와서 죄송해요.”

“아뇨. 그것보다 아직 제가 준비를 못 끝내서…….”

유지한은 문밖으로 나온 그녀의 행색을 살폈다.

방금 머리를 감은 듯 잔뜩 젖어 있는 머리칼과 수건.

핑크색 잠옷 바지. 상의에는 대충 걸친 겉옷.

준비를 끝내지 못했다는 말이 이해가 되는 모습이었다.

“마당에서 칠라랑 놀고 있을게요.”

“그러실래요?”

민유리는 준비를 위해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 유지한은 앉아있던 칠라에게 다가갔다.

이렇게 단둘이 있는 건 처음인 것 같은데.

이 녀석과 뭘 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손.”

“……?”

고개를 갸웃거리던 칠라가 유지한에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유지한은 그 손을 받아서 살폈다.

‘……전사의 손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한 행동이었지만.

유지한은 칠라의 손을 만지고 조금 놀랐다.

전신을 뒤덮은 부드러운 털 뭉치가 끝나는 곳. 부드러움이 아니라 단단함이 느껴지는 네 개의 손가락.

그것은 칠라의 귀여운 외모와는 달리 강인함이 느껴지는 전사의 손이었다.

피부가 인간보다도 훨씬 더 질기고 단단한 것이, 녀석이 지금껏 탱커로서 민유리를 지켜왔다는 게 이해가 되었다.

유지한은 칠라에게 넌지시 말했다.

“너 방패 써 보지 않을래?”

“찍?”

“배우면 잘 할 거 같은데.”

현장에서 함께한 기억으로 봤을 때 녀석은 손을 인간처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이런 조건에 제대로 무장을 갖춘다면 지금보다 더 활약할 수 있을 터.

‘방패를 하나 구해야겠네.’

조만간 칠라를 남호열에게 데려가야겠다고 생각하는 유지한이었다.

그가 펫 전용 장비를 만드는 대장장이는 아니지만.

부탁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

약속 시간이 되자 김시후와 김건오까지 민유리의 집에 도착했다.

유지한은 먼저 김건오에게 팔을 뻗으며 말했다.

“시후와 함께하고 있는 유지한이라고 합니다.”

“시후 아버지 김건오입니다. 우리 아들이 계속 신세지고 있습니다.”

“아뇨. 저야말로 시후에게 많이 도움받고 있어요.”

두 사람은 서로 빙긋 웃으며 악수를 나누었다.

‘이 사람이 시후의 아버지인가.’

유지한은 김건오의 얼굴을 살폈다.

펌을 한듯 구불구불한 머리칼과 알이 둥근 안경, 깔끔하게 정리된 턱수염까지.

지적인 이미지가 돋보이는 사람이었다.

웃는 모습이 무척 호감 가는 인상인 게 김시후와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흠…….’

상대인 김건오 또한 유지한의 첫인상을 판단했다.

은퇴를 했지만 과거 3급 영웅이었던 김건오.

몬스터 연구자로서 활동하는 그는 현역 시절의 눈썰미를 아직 간직하고 있었다.

‘괜찮은 영웅이군.’

마주 잡은 손바닥을 타고 만져지는 유지한의 굳은살.

굳은살의 위치로 보았을 때, 주로 검을 사용하는 전사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이었다.

손에 자리 잡은 지 오래된 그 굳은살과 손아귀를 가볍게 잡았음에도 느껴지는 단단한 악력!

이런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한 사람을 완전히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김건오는 자신의 현역 시절과 비교해도 유지한이 꿀리지 않을 정도라고 생각했다.

‘시후가 썩 좋은 사람을 만났구나.’

인사성도 밝은 것이 요즘 싸가지 없는 영웅들과 달리 예의도 좋아 보이고.

아들의 동료로서 나쁘지 않은 인상이었다.

“지한 씨가 파티장이라고 했죠?”

“맞습니다. 시후가 양보해 줘서 그렇게 됐네요.”

“그건 시후의 아버지 이전에 선배 영웅으로서도 좋은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김시후가 파티장으로서 어울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후방에서 파티원들의 상태를 주시하며 적절한 판단을 내리는 마법사 파티장은 다른 파티에서도 자주 보이는 구도고, 김시후라면 그 역할을 능히 수행할 수 있는 재능이 있었다.

하지만 뛰어난 전사가 리더로서 이끄는 파티는 기본적으로 엄청난 수행 능력을 가지고 있다.

전장에서 가장 앞장서는 파티장은 그 존재만으로 파티원들에게 힘이 되니까.

“안녕하세요, 민유리입니다.”

“김건오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쪽이 칠라겠죠?”

“맞아요.”

“으흠!”

김건오는 드디어 칠라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칠라는 집에 찾아온 새로운 손님을 바라보다가 이내 유지한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 친구 정말 멋진데!”

몬스터로 변한 친칠라라니!

잔뜩 기대에 찬 몬스터 연구원 김건오가 긴 콧바람을 내뿜었다.

사실 오늘 만남에서 그가 가장 기대했던 건 다름 아닌 칠라의 존재였다.

“사진 좀 찍을게요?”

찰칵! 찰칵!

휴대폰을 꺼낸 김건오가 칠라를 중심으로 빙 돌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어쩌면 현재 세상에 단 하나뿐인 몬스터 친칠라!

어렵게 만난 김에 얻어갈 수 있는 건 다 얻어가야만 했다.

“괜찮다면 털을 조금 뽑아 가도 되겠습니까?”

“털이요?”

“네! 연구에 꽤 도움이 되는 자료가 될 겁니다.”

“제가 몇 가닥 뽑아드릴게요.”

“가능하다면 정수리에 있는 털로…….”

가능하면 피도 뽑아가고 싶지만.

아버지로서 아들의 동료들에게 너무 큰 실례를 범할 수는 없었다.

“실프도 소환해 볼까요?”

“오! 그거 좋죠. 정말 오랜만에 실프를 보겠네요.”

김건오는 무척 반갑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내가 죽은 뒤에는 실프를 구경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유지한은 지체할 것도 없이 바로 실프를 소환했다.

뾰롱!

허공에 등장한 실프가 유지한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실프.”

김건오는 실프의 이름을 불렀다.

정말이지 몇 년 만에 불러보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흠칫!

주위에서 김건오를 발견한 실프가 몸을 살짝 떨었다.

계약자인 유지한은 그 작은 몸짓을 알아보았다.

“실프? 저쪽에서 부르잖아.”

이상함을 느낀 유지한이 실프를 재촉했다.

도리도리.

하지만 실프는 둥근 몸을 힘껏 흔들어 가며 거부 의사를 표현했다.

그러면서 유지한의 머리 뒤로 숨었다.

“아니…….”

유지한은 실프의 행동에 적잖게 당황했다.

정령과 처음 계약한 날로부터 녀석이 대놓고 명령을 거부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왜 이러지? 얘가 말을 안 듣네요.”

“하하, 괜찮습니다. 오랜만에 봐서 낯선 것 같네요.”

김건오는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으려는 실프를 보며 쓰게 웃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럴 줄 알았다는 것처럼…….

*****

다음 날.

아직 한국을 떠나지 않은 김건오는 한국에 거주하는 몬스터 연구원들과의 일정을 소화하러 이동했다.

그리고 한데 모인 유지한 파티는 청영사의 건물로 들어섰다.

오늘은 새로운 사무실에 입주하는 날이자 청영사의 개별 면담이 있는 날이었다.

“여기가 유지한 파티에게 배정된 사무실입니다.”

“우와.”

“생각보다 넓네.”

칠라가 동시에 3명은 들어갈 정도로 커다란 자동문.

그 문으로 들어가자 3명이 사용하기에는 조금 큰 규모의 공간이 나왔다.

책상과 의자는 없지만 적은 수의 몬스터를 보관할 수 있는 간이 냉동고와 에어컨, 공기청정기 등의 기본 시설이 모두 갖춰진 사무실.

심지어 사무실 내부에서 곧장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갈 수 있는 전용 엘리베이터까지.

이전에 사용하던 작은 건물과는 비교가 불가능했다.

“기물이 파손되지 않는 선에서 마음껏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청영사와 협력 중인 가구 업체의 팜플렛을 드릴 테니, 의자나 책상 등 원하시는 가구가 있으시면 신청해주세요. 주문 후 3일 내로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설명을 마친 청영사 관계자가 자리를 떠났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유지한은 사무실 구석에 준비된 원형의 쿠션을 바라봤다.

그것은 칠라를 위한 준비했다는 특별석이었다.

“찍.”

칠라는 그곳으로 이동해서 쿠션에 앉았다.

그것이 제 자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만 가자.”

새로운 사무실에 만족한 유지한 파티는 이내 사전에 전달받은 회의실로 이동했다.

면담을 약속했던 청영사 직원이 이미 그곳에 들어와 있었다.

‘면담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줘도 가산점이 있댔지.’

청영사는 매번 입교생들을 평가한다.

그리고 평가에 도움이 되는 가산점 반드시 획득해야만 하는 것.

따라서 유지한은 최대한 청영사 측의 의도에 맞춰 움직일 생각이었다.

“유지한 파티. 잠시 활동 이력을 조회하겠습니다.”

타다닥!

직원이 키보드를 두드리자 유지한 파티의 활동 이력이 노트북 모니터에 떠올랐다.

괴냥이만 잡아 온 민유리의 개인 활동 이력은 포함되지 않은 관계로, 청영사에 들어온 다른 파티와 비교하면 무척 짧은 이력이었다.

어쩌면 지금껏 청영사에 들어온 파티 중에서도 가장 짧았다.

‘……이건?’

그런데 내용을 쭉 훑어보던 직원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동물, 식물, 곤충형 몬스터와 전투를 치른 기록들.

그는 유지한 파티가 짧은 기간 내에 다양한 경험을 쌓으려고 했다는 걸 눈치챘다.

‘절대 우연으로 나올법한 선택지는 아니야.’

직원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파티장인 유지한을 바라봤다.

소규모 길드의 경우 무엇보다 돈을 중요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단순히 돈이 목적이었다면 계양산까지 올라가서 괴미를 잡으려고 들지는 않았을 터.

‘재밌군.’

이들은 거대 길드처럼 시스템이 잘 마련된 곳이 아님에도 이상적인 방향으로 잘 나아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개념이 알차게 박혀 있는 영웅들!

청영사의 1기부터 3기까지 담당했던 그의 경험상, 이런 류의 파티는 둘 중 하나였다.

활동 도중에 한계에 부딪혀서 정체하거나.

혹은 엄청난 기세로 승승장구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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