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가족 (3)
민유리의 시선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실프를 쫓았다.
은은하게 빛나는 초록빛의 구체가 그녀의 눈에 담겼다.
“정령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에요……!”
그녀는 실프를 보며 무척 신기해했다.
항상 소문으로나 듣던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현장에서 한 번쯤 마주칠 수는 있었겠지만.
승급도 거부하고 매번 4급 MA에서 괴냥이만 사냥하던 처지로서는 그럴 수 없었다.
“가까이서 보실래요?”
“네?”
“실프.”
쪼르르—
유지한의 부름에 실프가 그의 앞으로 날아왔다.
이어서 그가 손으로 민유리를 가리키자, 실프가 그녀의 앞으로 날아갔다.
“찍?”
민유리의 뒤에선 칠라는 자신의 주인에게 다가오는 실프를 주시했다.
적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것인지 막아서지는 않았다.
“우와…….”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올린 민유리가 실프를 쓰다듬었다.
실프는 그것이 싫지 않은 듯 그녀의 손에 자신의 몸을 맡겼다.
‘귀엽다.’
손바닥에 둥그런 구체를 부비는 모습은 정령이 아니라 강아지를 연상케했다.
민유리는 처음 보는 자신에게도 친근감을 드러내는 실프를 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그럼 저도 말하는 게 낫겠죠?”
“그렇겠지?”
유지한과 김시후가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나눴다.
의문이 담긴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는 민유리였다.
그리고 잠시 후…….
슥—
김시후가 자신의 모자를 벗었다.
마치 신체의 일부처럼 머리에 붙어 있던 모자가 사라지고.
인간이 아닌 그의 정체가 민유리에게 공개됐다.
“……엘프?”
“하프엘프에요.”
“헉.”
민유리는 진심으로 헉하고 놀랐다.
조금 전까지 자신을 누나라고 부르던 사람이 인간이 아니었을 줄이야!
“새우 더 드세요.”
“어, 어…….”
김시후는 크게 놀란 민유리에게 커다란 새우가 꽂혀 있는 포크를 건넸다.
민유리는 그 포크를 받아들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그의 태도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하지만 김시후가 유지한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 그녀는 곧 정신을 되찾았다.
‘대체 이 길드는 뭘까.’
민유리는 손으로 새우 껍질을 까면서 깊은 생각에 빠졌다.
세간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정령사.
그리고 한 길드의 수장인 하프엘프까지.
한 명만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더라도 단번에 뜨거운 화제로 오를법한 이들.
그녀는 그런 그들과 앞으로 행동을 함께하게 되었다.
‘……나도 딱히 할 말은 없지만.’
4년 동안 오직 괴냥이만 사냥해 온 영웅.
영웅부에서 직접 건넨 승급 권유를 거부하고 계속 4급을 유지하던 테이머.
민유리는 그런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며 쓰게 웃었다.
그녀 또한 유지한과 김시후만큼이나 평범하지 않은 영웅이었다.
이들에게 남 말할 처지가 아닌 셈이었다.
“지한이 형.”
“응?”
“생각해보니까 형 가족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네요.”
“나?”
“네. 형의 가족들은 어떤 분들이세요?”
가족이라…….
김시후의 질문에 유지한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는 그릴 위의 고기를 뒤집으며 말했다.
“부모님은 내가 어릴 때 돌아가셔서 안 계시고, 고모 한 분 계셔.”
“아……. 죄송해요.”
“죄송하긴.”
가볍게 물은 질문에 돌아온 것은 무거운 대답.
김시후는 조금 풀이 죽었다.
하지만 유지한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부모님 얼굴도 기억 안 나니까.’
유지한의 부모님은 그가 기억조차 못하는 어릴 적, 어느 MA에서 실종되었다.
조사 결과, 현장에서 발견된 여러 혈흔 중에는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DNA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 발견됐다.
그 뒤에는 몬스터에게 공격 당해 죽은 것으로 취급되어 조사가 마무리되었다.
‘고모에겐 신세졌지.’
부모를 잃은 어린 나이의 유지한은 아버지의 동생이었던 고모에게 맡겨졌다.
결혼했음에도 자녀를 갖지 않은 그의 고모는 유지한이 영웅 학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의 의식주를 담당했다.
고모가 워낙 무뚝뚝한 성격인 탓에 자주 연락이 오가지는 않지만.
그래도 유년 시절에 많은 도움을 주고 접점이 있는 유일한 가족이니만큼, 유지한은 그녀와 꾸준히 관계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
모든 식사를 마친 유지한 파티는 숙소 안으로 들어왔다.
세 사람은 오늘 이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가기로 예정된 상태였다.
소파에 앉은 김시후가 맞은 편 소파에 앉은 민유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친김에 오늘 유리 누나의 계약도 정리해 두죠.”
“알았어.”
그는 오늘 이 자리에서 민유리와의 협상을 끝맺을 예정이었다.
청영사까지도 합격했으니 더는 일정을 뒤로 미룰 것도 없었다.
“지한이 형도 길드의 지분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 협상에 참여하실 거예요. 괜찮으세요?”
“괜찮아.”
본래는 길드장인 김시후와 민유리만 자리에 있는 게 맞겠지만.
지분을 무려 25%나 들고 있는 유지한은 일반적인 길드원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건 영웅부의 양지철 씨가 준비해 주신 건데요.”
김시후는 책상에 올린 서류 하나를 앞으로 밀었다.
민유리는 그것을 받아들고 읽었다.
“합병계약서?”
“네. 이것저것 적힌 게 조금 많죠? 요약하자면 눈송이 길드의 해산 이후 유리 누나의 소속은 꿀잼으로 인계되며 그 대가로 꿀잼의 주식을 일부 나눠받는 계약이에요.”
“나도 주식을 갖는 거구나.”
“단, 이 주식은 유리 누나가 최소 5년 이상을 길드에 재직한 후에 거래할 수 있어요. 그 이전에 길드에서 떠나시게 되면 1주당 정해진 금액만큼 현금을 대신 지급 받게 되고요.”
김시후는 민유리에게 주식을 주되 조건을 걸었다.
길드에 최소 5년을 재직한 후에야 주식을 거래할 수 있다는 조건이었다.
이렇게 한다면 꿀잼은 민유리에게 최소 5년 이상을 길드에 남아 달라고 유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건 영웅근로계약서에요. 여기서 중요하게 논의해야 할 건 연봉뿐인데……. 혹시 누나가 원하시는 금액이 있어요?”
“따로 생각해 본 적은 없어.”
민유리는 기본적으로 돈 욕심이 그리 많지 않은 사람이었다.
가족의 생활비나 동생의 병원비는 이미 넘칠 정도로 번 상황이었고.
자신의 장비를 제외하면 고가의 물건을 구매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그러면 저희가 준비해 둔 조건을 먼저 말씀드려도 될까요?”
“응. 말해 줘.”
김시후는 쥐고 있던 서류를 한장 넘겼다.
거기에 적혀 있는 숫자들은 유지한과의 대화를 통해 미리 정리해 둔 연봉 테이블이었다.
꿀잼이 그녀에게 내걸 수 있는 최소의 조건부터, 마지노선으로 정해 둔 조건까지.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민유리만을 위해 준비한 것이었다.
김시후가 옆에 앉은 유지한을 바라봤다.
‘얼마부터 부를까요.’
말없이 눈빛으로만 말하는 김시후.
유지한은 똑같이 입을 열지 않고 손가락으로 서류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이걸로 하자.’
마지노선의 바로 아래 단계의 금액이 적힌 부분.
고개를 끄덕인 김시후가 다시 민유리를 바라봤다.
“기본 연봉은 2억 4천이고요. 성과에 따른 성과급은 분기마다 별도로 지급할 예정이예요. 성과급의 계산은 여기 적힌 대로 이뤄지고, 파티 등급에 따른 급여 인상은 이렇게…….”
2억 중반이라면 4급 영웅이 받는 평균적인 금액보다 더 높은 수준이었다.
성과급까지 더해지면 3, 4억은 너끈히 넘길 수 있으리라.
“연봉은 합병 과정에서 지급되는 주식과는 별개예요.”
“그렇구나. 이해했어.”
“길드의 복지 같은 것들도 차차 늘려갈 계획이에요! 누나가 원하시는 복지가 있으면 최대한 의견을 반영해 볼게요.”
민유리는 책상에 놓인 서류를 훑어본 뒤에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좋아. 이대로 계약할게.”
쿨하게 계약에 응하는 민유리.
그녀는 주식까지 보장된 계약에 만족하는 모양새였다.
김시후는 태블릿 PC를 꺼내서 준비해 둔 전자계약서를 띄웠다.
민유리가 그곳에 서명을 적어 넣는 것으로 꿀잼과 그녀 간의 계약은 완료되었다.
그제서야 한시름 놓은 유지한이 민유리에게 말했다.
“길드에 합류하신 것을 다시 한번 환영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두 사람.
한편, 김시후는 아직 찜찜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가 지금 고민이 되는 게 있는데요…….”
“어떤 거?”
“칠라에게도 월급을 줘야 할까요?”
김시후가 어떻게든 커다란 몸을 거실에 들여놓은 칠라를 가리켰다.
“…….”
칠라가 돈을 받는다.
민유리는 그것이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인듯 침묵했다.
앞으로 파티의 탱커로서 활약하게 될 칠라.
녀석에게도 별도의 급여를 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찍…….”
칠라는 자기 이름이 언급되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몬스터가 월급이나 돈이라는 단어를 알아들을 것 같지는 않았기에…….
유지한은 그것을 대신하여 녀석에게 말했다.
“너는 그냥 내가 한달에 한번 고기 구워 줄게.”
“찍.”
유지한의 말이 끝나자 칠라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가 놀란 눈빛으로 민유리를 돌아보았다.
“방금 말을 알아들은 걸까요?”
“……아마도요?”
그렇게 칠라의 월급은 통삼겹살로 대체되었다.
*****
민유리의 환영 파티가 이뤄지고 며칠 후.
꿀잼이 새로운 사무실에 입주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
김시후는 홀로 인천 공항에 나와 있었다.
‘온다.’
공항의 입국장을 통해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김시후는 문으로 나오는 그들의 얼굴을 빠르게 훑었다.
그리고…….
“아빠!”
그곳에서 자신의 아버지, 김건오를 발견했다.
오늘은 돌아가신 어머니 에르나 하스의 기일.
그에 맞춰 남편이었던 김건오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온 것이었다.
김건오는 자신에게 달려오는 김시후를 반겼다.
“되게 오랜만이네, 아들!”
서로 간 통화는 매주 했지만…….
두 부자가 실제로 만난 것은 거의 7개월 만이었다.
“한국 좀 자주 오시지 그랬어요.”
“워낙 바빠져서 휴가 쓸 시간이 없다. 오늘도 어렵게 낸 휴가야.”
“바로 택시 부를게요.”
자신의 캐리어를 찾은 김건오는 김시후와 함께 공항 앞에서 택시를 잡았다.
목적지는 공항에 내리기 전부터 정해져 있었다.
“여기도 1년 만이구나.”
[인천추모공원]
쉬지 않고 달린 택시가 도착한 곳은 인천의 봉안당.
납골당으로도 불리는 곳으로 인간의 시체를 화장하여 유골을 담아 모시는 장소다.
김시후의 어머니, 에르나 하스의 유골은 이곳에 보관되어 있었다.
‘A351.’
정말이지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유골이 보관된 봉안당.
그런 곳에서도 김시후와 김건오는 에르나 하스의 유골이 놓인 장소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A351]
[에르나 하스]
미소 짓는 회색 머리의 여인이 찍혀 있는 사진.
그것은 김시후의 어머니이자 김건오의 아내였던 엘프.
에르나 하스였다.
“여보. 내가 너무 늦었지?”
김건오가 에르나 하스의 사진을 향해 인사했다.
“…….”
조용히 사진 속 어머니를 바라보던 김시후는 테이프가 붙여진 작은 꽃다발을 자리에 붙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묵념.
매번 이곳에서 반복하는 행동이었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한동안 어머니의 사진을 바라보며 멍하니 자리에 서 있던 김시후는 잠시 자리를 비웠다.
김건오는 말없이 걸어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는 김시후가 매번 이곳에 올 때마다 눈물을 찔끔 흘린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음.”
고개를 돌린 김건오가 다시 에르나 하스의 사진을 바라봤다.
어느 남성이 보더라도 감탄할 만큼 아름다운 미모의 아내.
이제는 볼 수 없는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여보야. 내가 여기 올 때마다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김건오가 아내의 사진 쪽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가져갔다.
하지만 유골함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된 유리판이 그의 손길을 막아 냈다.
‘순순히 내 말을 따랐으면 이렇게 죽을 일이 없었잖아.’
그는 조금 서글픈 표정으로 유리판을 쓸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