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입교식 (2)
유지한 파티는 호텔에 입장 후 로비에서 기다렸다.
그들이 곧 직원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거대한 홀이었다.
천장에 달린 커다란 샹들리에. 실용성보다는 화려함에 치중된 조명.
순백의 식탁보가 깔린 원형 테이블. 그리고 그 위에 준비된 투명한 와인 잔까지.
결혼식에 사용되기도 하는 이 공간은 유지한이 이전에 참여했던 4급 교류회보다 더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꿀잼 - 유지한 파티]
유지한 파티의 테이블.
테이블 옆에는 묘하게 커다란 방석이 깔려 있었다.
청영사에서 칠라가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놓은 것이었다.
“칠라. 너도 앉아.”
“찍.”
알아서 쿠션에 착석하는 칠라.
유지한은 행사 주최 측의 세심한 배려에 놀라며 의자에 앉았다.
‘아는 얼굴이 있나?’
입교식에는 절반이 넘는 인원이 들어와 있었다.
입구에서 자기 파티원을 기다리는 이들을 제외하면 거의 다 모인 듯했다.
청영사는 합격한 파티에게 개별 연락을 넣기 때문에 다른 합격자들과는 오늘이 처음 만나는 날.
유지한은 합격자 중에 아는 얼굴이 있을까 하여 정장을 두른 이들의 얼굴을 살폈다.
‘……민주용.’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발견한 익숙한 남자의 얼굴.
그는 민유리에게 많은 관심을 드러내는 나이스 길드의 민주용이었다.
‘용케도 합격했나 보군.’
청영사에 합격한 이상 그도 마냥 약해빠진 영웅은 아니라는 것이겠지.
그런데 민주용은 어쩐지 이곳에 민유리가 등장한 걸 알고도 꽤 조용한 모습이었다.
장소가 장소인 만큼 체면을 지키려는 것일까.
칠라 쪽을 몇 번 힐끗거리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가 말을 걸어올 기색이 없어 보이자 유지한도 이내 그를 무시했다.
‘케로즈에서도 왔고.’
참가한 파티 중에는 케로즈의 4급 파티도 있었다.
과거 길드 내부 행사가 있을 때 한 번쯤 스쳐 지나간 얼굴들이었다.
케로즈 내에서 김현태 파티의 입지가 크다 보니, 꽤 유망 있는 후배들이라면 오고가다 마주치는 경우가 많았다.
“형.”
“응?”
“저기 저 사람……!”
김시후가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리고 유지한은 그가 가리킨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인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문경진?!’
꿀잼과 나이프 길드가 적대 관계를 이루게 된 원인, 문경진이 이 자리에 있었다.
아파트에서의 사고 후 외다리였던 그는 어느새 몸에 마력으로 동작하는 의족을 장착한 상태였다.
사라진 왼쪽 손가락에도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손가락을 붙여 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이 진짜 신체처럼 자연스러운 것이, 아주 고가의 물건을 사용한 듯했다.
‘대체 어떻게 통과한 거지.’
저 성격 나쁜 인간이 청영사에 들어왔다니.
유지한으로서는 문경진 파티를 합격시킨 이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
유지한의 시선을 받은 문경진이 눈을 아주 크게 떴다.
어떻게 네가 여기에 있냐고 물어보는 듯한 눈빛.
서로가 상대에 관해 완전히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
“…….”
유지한을 강하게 쏘아보던 문경진은 고개를 홱 하고 돌렸다.
청영사의 합격자들이 처음으로 한데 모인 자리.
지금 같은 상황에서 말다툼을 해봤자 자기만 손해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잘못하면 영웅사관학교가 아니라 빌런학교가 되겠는데…….’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른 파티를 공격하기까지 하는 문경진.
유지한은 그를 결코 같은 영웅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개인적인 원한 관계를 걸고 넘어지기에는 껄끄러웠으니.
일단은 그냥 넘어가는 수밖에.
“어? 영욱이다.”
청영사에 합격한 파티 중에는 주사위의 정영욱 파티도 포함되어 있었다.
유지한과 김시후는 연달아 아는 얼굴을 발견하자 신기해했다.
‘레드홀은 당연히 있고.’
청영사를 주관하는 레드홀의 파티는 이 자리에 무려 3개나 있었다.
그리고 레드홀과 주사위 외에도 거대 길드로 분류되는 곳에서 최소 1개 이상의 파티가 입교식에 참석해 있었다.
사실상 이곳은 거대 길드의 잔치였던 것이다.
‘쉽지 않겠어.’
유명 길드 사이에 껴있는 꿀잼.
여기서 가장 작은 규모의 길드는 단연코 꿀잼이었다.
이렇게 잘나가는 길드들 사이에서 과연 순탄히 졸업할 수 있을까.
유지한은 앞으로 쉽지 않은 청영사 생활을 예감했다.
짝짝!
그때 홀의 중앙에서 누군가가 손뼉을 쳤다.
“……!”
“……헉!”
분위기에 취해 서로 웃고 떠들던 영웅들은 중앙에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흠칫 놀랐다.
그가 다름 아닌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꼽히는 마법사 백강천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들 벌써부터 즐기고 있구나? 좋은 분위기를 방해해서 미안한데, 슬슬 입교식을 진행해도 되겠지?”
“네!”
“여기서는 얼굴이 다 안 보이니까…….”
[플라이]
백강천의 몸이 샹들리에와 가까울 정도로 높게 떠올랐다.
자신의 몸을 허공에 띄우는 공중 부양 마법.
단순히 높게 점프하거나 눈속임 따위가 아니라, 진짜로 마력만을 이용해 허공에 떠오른 것이었다.
게다가 땅을 걸어 다니는 듯 흔들림 없는 자태.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고 있는 마법사들은 그를 올려다보기 바빴다.
혹시나 그의 마법을 보고 작은 깨달음이라도 얻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청영사 3기에 합격한 여러분, 다들 축하해. 나는 청영사의 교장을 맡은 백강천.”
우우웅—
마이크를 쓰지 않았는데도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한 목소리.
마력을 이용해 음성을 멀리까지 퍼뜨리는 것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바로 근처까지 가서야 들릴법한 조곤조곤한 목소리임에도, 영웅들은 백강천의 목소리를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아하! 저렇게 하는 거구나…….’
백강천을 올려다보는 김시후는 마법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교과서나 책으로는 절대로 접하지 못하는 경험!
뛰어난 마법사의 마법을 분석하고, 마력의 흐름을 작은 단위까지 쪼개어 살핀 후, 그 구조를 해석한다.
따로 가르침을 내리지 않아도 보는 것만으로도 무언가를 익히는 부류들.
그런 부류에 속하는 김시후는 이 시간에도 실시간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집중하는 자세, 아주 보기 좋아.”
주변이 조용해지고 자신에게 모든 이목이 쏠리자 백강천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짧게 얘기할게. 최근 한국에서 많은 사건 사고가 발생하고 있어. 세계적으로도 그런 추세고, 그에 따라 영웅들의 필요성 또한 급증하고 있지.”
사건 사고가 잦아지고, 그로 인한 피해자가 늘어날 때마다 비난을 받는 건 항상 영웅들이다.
일반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돈을 버는 주제에 밥값을 못 한다고 욕을 먹는 것이다.
그러나 하지만 아이러니하기도 그 욕을 하는 사람들조차 영웅에게 구원받는다.
현대 사회에 안정적인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영웅의 존재는 필수 불가결이었다.
“이런 상황에 여러분 같은 잠재력이 뛰어난 영웅들을 청영사로 데려온 걸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
높은 경쟁률을 뚫고 청영사에 합격한 4급 파티들.
아직은 5급을 벗어난 지 얼마 안 된 햇병아리일 뿐이지만.
이 자리에 있는 영웅들은 모두가 등급 이상의 높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청영사에 들어온 한, 여러분은 모두가 훌륭한 영웅이 되어야 해. 우리는 여러분을 그런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정말 많은 지원을 할 거야. 때로는 MA에 따라나서기도 할 거고, 여러분 간에 서로 대련을 시키기도 하고…….”
길드의 규모와는 상관없이.
나이나 성별, 보유한 자금 등 그 모든 것과 상관없이.
청영사에 들어온 모두는 투명하고 공정한 기준에서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것은 오로지 파티의 실력으로만 증명할 수 있는 것!
아무리 영향력 있는 거대 길드의 파티라고 해도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면 청영사에서 퇴출당할 뿐이었다.
“작년에는 입교한 파티 중에서 정말 소수만이 졸업할 수 있었지.”
“…….”
“그리고 올해는 전년도보다 평가도 많아지고, 훨씬 더 어려울 거야. 아마 졸업은 10팀 미만을 예상하고 있어.”
“그런…….”
졸업이 정말로 어려웠다고 알려진 청영사 2기.
그런데 백강천은 청영사 3기가 그것보다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소식을 들은 파티들은 걱정에 빠졌다.
그중에서도 청영사 2기 멤버들에게 조언을 들었던 어느 영웅들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마력을 가진 영웅들은 종종 자신이 남들보다 특별한 존재라는 착각에 빠지는 경우가 있어. 여러분 중에도 분명 그와 비슷한 사람이 존재할 거야. 하지만 그런 부류는 자기보다 더 강한 적을 만나면 이내 쉽게 절망하고 포기해 버리지.”
“…….”
“나는 그런 식으로 죽어 간 영웅을 많이 봐왔어. 부디 청영사에 들어온 영웅 중에는 그리 나약한 영웅들이 없었으면 해.”
영웅들은 백강천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신의 한계에 부딪혀서 절망하는 영웅들.
이 자리에서 자신이 거기에 포함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없었다.
*****
백강천의 인사말이 끝나고.
청영사에 합격한 파티는 각자 파티를 소개하는 자리를 가졌다.
같은 입교생임에도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만큼, 청영사에서 일부러 준비한 코너였다.
“레드홀 소속의 제임스 강 파티입니다.”
“외국인인가요?”
“아버지가 미국인입니다.”
레드홀, 주사위, 스노우볼, 워리어즈…….
그리고 10대 길드에 들어가는 그림자, 주작, 해피 타임 길드까지.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길드 출신들의 소개가 줄줄이 이어졌다.
그리고 유지한 파티의 차례가 돌아왔다.
“꿀잼 소속의 유지한 파티입니다.”
“꿀잼?”
꿀잼이라는 길드명에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입교식에 참여한 일부를 제외하면 꿀잼이라는 길드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기에.
“반갑습니다.”
짝짝짝…….
간단한 소개 후 형식적인 박수 세례가 쏟아졌다.
‘저런 사람들도 청영사를 오는구나.’
‘청영사 합격 기준이 낮아졌나?’
‘쟤들은 바닥에 깔고 가겠네.’
박수 속에는 유지한 파티에 대한 무시가 섞여 있었다.
내가 아무리 못해도 쟤들보단 낫겠지.
대체로 유명 길드 소속의 영웅들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소개는 끝났나?”
“네!”
모든 파티의 소개가 끝난 이후.
자리에서 묵묵히 듣고만 있던 백강천은 주변을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여기서 긴급 발표!”
“……?”
“저번 청영사 면접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상위 TOP 10 파티를 발표한다!”
“네?”
백강천이 품속에서 작게 접힌 종이를 꺼내어 펼쳤다.
“제임스 강 파티, 한지영 파티, 정영욱 파티…….”
호명되는 이름은 전부 거대 길드 소속의 파티들.
그런데…….
“마지막으로 유지한 파티.”
“……?!”
“나는 이 리스트에 들어간 파티가 향후 졸업에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어.”
백강천의 입에서 유지한 파티가 호명되었다.
‘우리가 그 정도인가?’
본인 생각보다 높게 평가받은 유지한이 살짝 놀라는 순간.
순위 안에 들어가지 못한 파티의 영웅들은 표정을 구겼다.
‘내가 저놈들보다 못하다고?’
‘어째서?’
‘웃기는 소리……!’
저런 듣도 보도 못한 파티가 우리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다니!
그럴 리가 없다. 면접 평가 방식에 조금 문제가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영웅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