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청영사 (4)
레드홀의 영웅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길드장님께서 직접이요?”
“응.”
청년영웅사관학교를 주관하는 것은 레드홀.
그리고 청영사에서 가장 높은 존재, 교장의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은 레드홀의 수장인 백강천.
그런 그가 일개 파티의 면접을 보겠다니.
‘왜 갑자기 면접을 보시겠다는 거지?’
면접관 중 그 누구도 그가 이번 면접에 들어온 이유를 알지 못했다.
올해로 3년째인 청영사를 주관하면서 백강천이 직접 면접관으로 참여한 적은 없었다.
그야말로 매우 이례적인 일.
“문제 있나?”
“당연히 문제없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백강천이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가 하고 싶다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런 건 예상에 없었는데…….’
유지한은 백강천을 보며 적잖게 당황했다.
갑작스러운 1급 영웅의 난입.
게다가 그가 직접 면접을 진행하는 상황까지.
‘침착하자.’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면접자의 관점에서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유지한 파티가 원하는 건 청영사에 들어가는 것뿐이었으니.
“그럼 계속 진행하죠.”
레드홀의 영웅이 면접장에 있던 다른 의자를 가져와서 앉은 뒤.
다시 유지한 파티의 면접이 재개되었다.
“그쪽이 유지한 씨에요?”
“예.”
백강천은 유지한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어째서인지 묘하게 기분이 좋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케로즈에서 7년을 보내고 꿀잼에 합류. 그 뒤에 5급 파티에서 아주 빠른 속도로 승급하기까지, 아주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계시네요.”
“…….”
아주 독특한 이력이라.
칭찬일까, 아니면 비꼬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지나가는 말일 수도 있겠지.
그의 의도를 알 수 없었던 유지한은 그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케로즈의 박중섭 대표와는 언제 한 번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렇습니까.”
“그쪽은 김현태라는 친구가 아주 유명하죠? 저도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
“하지만 지한 씨 같은 영웅이 있다는 건 들어보지 못했는데 말이죠.”
“제가 입에 오르내릴 만큼의 영웅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 것치고는 최근 보여 주는 모습이 심상치가 않네요.”
설령 거대 길드에 소속된 파티일지라도…….
경력도 짧은 4급 파티가 긴급 MA에서, 그것도 3급 몬스터를 무리 없이 상대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유지한 파티는 바로 그런 일을 해냈다.
유지한을 빤히 쳐다보던 백강천이 그에게 물었다.
“혹시 정령은 좋아해요?”
“……!”
난데없이 정령을 언급하다니.
일순간 유지한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렸다.
“갑자기 정령은 왜…….”
“여기 보니까 골프장에서 발생한 MA에 참전했다고 적혀있는데, 영웅부에 따르면 거기서 새로운 정령사가 나타났다고 해요.”
“그렇군요.”
백강천은 유지한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뭔가를 알고 있는 눈치였다.
‘벌써 들켰나.’
확실히 1급 영웅의 능력이라면 윤도하처럼 정령을 알아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유지한은 언급된 정령사가 자신이 아닌 것처럼 시치미를 뗐다.
당장은 실프의 존재를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마음을 눈치챈 것인지 백강천은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이쪽은 김시후 씨.”
“넷!”
상대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마법사이자 영웅, 백강천.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많은 마법사의 롤모델!
그런 인물과 대화를 나누게 된 김시후는 바짝 기합이 들어간 모습이었다.
“마법부 수석 졸업이네요?”
“네.”
“저랑 같네요. 저도 영웅 학원 수석이었는데.”
“영광입니다.”
“마법사니까 마법과 관련된 질문을 드려도 되겠죠?”
“얼마든지요.”
김시후를 바라보는 백강천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마법의 극에 달한 1급 마법사와 마법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그 의미를 저 4급 영웅이 제대로 알고 있을까.
“주력 마법이 뭐죠?”
“속성 마법. 그중에서도 애로우 계열의 마법입니다.”
“애로우 계열의 사출 마법. 아주 기본적인 마법이네요?”
특정한 속성이 담긴 애로우 마법은 아직 현역이 아닌 영웅들도 배우는 아주 기본적인 마법.
그것을 주력 마법으로 삼기에는 조금 부족하지 않으냐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김시후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뿌리가 탄탄해야 나무가 잘 자라는 법이죠.”
“그 부분은 동감합니다. 하지만 4급 파티에서 화력의 중심인 마법사가 주력으로 쓰기에는 조금 부족한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죠.”
“같은 스킬이라도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쓰임새가 크게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은……. 본인이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는 거죠?”
“네.”
“으후후. 자신감이 좋네요.”
같은 마법이라도 내가 쓰는 마법은 남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확신.
김시후에게는 그 확신이 있었다.
자칫하면 자만심처럼 비칠 수 있겠으나, 백강천은 그런 모습을 싫어하지 않았다.
“어디 한번 써 보시죠.”
“네.”
[윈드 애로우]
김시후는 허공에 윈드 애로우 하나를 소환했다.
면접관들은 눈에 잘 보이도록 세로로 세워진 그것을 유심히 살폈다.
‘호오…….’
화살이 안정적으로 날아가기 위해 달린 얇은 화살깃부터.
작은 비틀림조차 없이 일자로 올곧게 자라난 화살대.
그리고 아주 날카롭게 벼려진 화살촉.
“훌륭하네요.”
“아주 멋집니다.”
면접관들은 작게 감탄했다.
마법이라면 아주 도가 튼 백강천조차 뭐라 흠을 잡을 곳이 없는 윈드 애로우.
게다가 그것은 허공에서 작은 흔들림조차 없이 고정된 좌표에 멈춰있었는데, 김시후는 시선을 백강천에게 고정한 채 그 마법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마 눈을 감고 사용해도 지금과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이었다.
‘괜한 자신감이 아니군.’
백강천은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흐뭇하게 웃었다.
“마법은 잘 봤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화살 모양을 이루고 있던 마력이 허공으로 흩어지고.
가만히 앉아 있던 이동호가 민유리를 한번 쳐다본 뒤에 말했다.
“바로 옆에 있는 민유리 씨는 마력 화살을 쏘는 궁수인데, 굳이 시후 씨가 애로우 마법을 쓸 필요가 있을까요?”
“…….”
이동호의 질문은 김시후의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었다.
화살 마법을 주력으로 사용하는 김시후는 새로 합류하게 된 민유리와 포지션이 겹친다.
김시후의 솜씨를 익히 알고 있는 유지한은 그것이 당장 큰 문제가 될 거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파티에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건 그도 내심 생각하던 내용이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김시후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저는 민유리 씨가 파티에 합류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실력이 확실한 궁수가 들어왔으니 저는 앞으로 더 큰 화력을 가진 마법에 집중할 겁니다. 어떤 마법을 주력으로 사용할지는 지금도 고민 중이지만요.”
“음. 솔직히 아쉬운 답변이네요.”
이동호의 조금 시원찮은 반응에, 유지한은 추가로 대답했다.
“같은 파티원으로서 시후의 실력이라면 어떤 마법을 사용하더라도 무리가 없다고 믿습니다.”
“어떤 마법을 사용하더라도 무리가 없다?”
“예.”
“흐음.”
김시후를 바라보는 백강천이 눈가를 좁혔다.
“시후 씨. 혹시 제 고유마법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알고 있습니다. 몇 개는 완벽하게 이해도 했고요.”
“이해했다고요? 제 고유마법을?”
“뭐라고……!”
백강천의 고유마법을 이해했다.
김시후의 그 발언에 면접장의 분위기가 조금 변했다.
2급 마법사들도 어려워하는 백강천의 고유 마법을 겨우 4급 마법사가 ‘이해’했다니.
직전의 보여 준 윈드 애로우는 분명 훌륭한 마법이지만, 백강천의 고유마법은 전제 자체가 다르다.
“이해는 했지만, 활용은 어렵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이게 무슨 뜻인지 알고 계시리라고 믿습니다.”
“알죠.”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
그것은 마법에서도 적용되는 말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몸으로 보여 주지 못하는 마법은 분명 있었다.
“하지만 이해한 일부는 보여 줄 수 있겠죠?”
“아주 조금이라면…….”
“여기서 보여 주세요.”
고개를 끄덕인 김시후는 지팡이를 잡았다.
그리고는 지팡이를 이용하여 허공에 작은 원을 그렸다.
이어서 아주 작은 별 모양을 반복해서 그리며 입을 작게 벌렸다 오므리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잠시 후.
[문라이트]
화아악——
면접장의 중앙에 작은 구체가 높게 떠올랐다.
마치 보름달과 비슷하게 생긴 구체.
천장에서 LED 조명이 내리쬐는 상황에서 그것은 조명과는 조금 다른 은은한 빛을 내뿜었다.
그 주변에는 입자가 고운 작은 가루들이 달 주변에 떠 있는 별처럼 반짝반짝 빛을 냈다.
탁!
누군가 황급히 면접장의 불을 껐다.
그러자 그것들은 어둠 속에서 더 제 존재감을 과시했다.
“허어!”
“이야…….”
밤하늘 일부를 면접장 안에 가져다 놓은 듯한 모습.
자리의 모두가 김시후의 마법에 감탄을 자아냈다.
이 마법이 무엇에서 파생된 것인지를 파악한 백강천이 말했다.
“제 고유마법, 문라이트 익스플로전의 일부군요.”
“맞습니다. 이걸 익스플로전 마법으로 옮기는 것까지는 아직 어렵더군요.”
“…….”
“여기에 달빛의 색을 부여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신 거로 알고 있습니다. 후배 마법사로서 마법의 창시자 앞에서 이런 부족한 걸 선보이는 것이 조금 부끄럽네요.”
김시후의 겸손한 발언과는 달리…….
그를 바라보는 백강천의 눈빛은 처음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이거 정말 물건이네.’
유지한 파티에는 정령과는 별개로 예상치도 못했던 인재가 있었다.
이 자리에 직접 참석하지 않았다면 이런 마법사가 있다는 걸 결코 알지 못했으리라.
“면접과는 별개로 나중에 따로 대화해 보고 싶네요.”
“불러 주시면 언제든지요.”
“나중에 꼭 연락하죠.”
다시 면접장의 불이 켜졌다.
밝아진 조명 아래, 크게 흡족한 표정인 백강천은 끝에 있는 칠라를 바라봤다.
“친칠라네요?”
“앗, 맞아요.”
“되게 귀엽네요. 이름이 뭐죠?”
“칠라요.”
“몇 살이에요?”
“6살이에요.”
“친칠라는 수명이 길면 20년도 산다고 하는데……. 몬스터로 변했으니 아마도 100년도 너끈히 살 수 있겠네요.”
몬스터로 변한 개체는 병에도 잘 걸리지 않을뿐더러 기본 수명이 대폭 증가한다.
따라서 칠라는 전투 중에 다치는 것 외에는 죽을 이유가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전력적인 측면에서 유지한 파티에게도 큰 이점이라고 볼 수 있었다.
파티가 현역에서 활동을 이어 나가는 동안 칠라가 계속 함께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칠라는 성별이 여자죠?”
“네.”
“혹시 교배는 따로 생각해 본 적 없어요? 테이밍이 된 몬스터는 제가 관심이 많은데.”
“그, 그건 상대가 없어서 조금 어렵겠네요…….”
또 다른 친칠라가 몬스터로 변하지 않는 한.
칠라에게 어울리는 짝은 구하는 건 아주 힘든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유리 씨.”
“네?”
“혹시 활을 포기하고 마법사가 될 생각은 없으시죠?”
“그건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네요…….”
“알겠습니다.”
백강천은 그 외 민유리에 대해서는 별다른 질문 없이 넘어갔다.
언젠가 레드홀에서 그녀를 영입 대상에 올려놓은 적이 있던 만큼, 그녀의 배경에 대해서는 이미 파악해 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
유지한 파티의 면접이 끝난 뒤의 면접장.
면접을 마친 백강천은 실실 웃으며 별다른 말 없이 자리를 떠나고.
남은 면접관들은 한데 모여 대화를 나누었다.
“백강천 님이 직접 오시다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나도 잘 모르겠어.”
백강천이 갑자기 자리에 들이닥친 사건.
아무리 레드홀 소속의 길드원이라도 그의 의도를 알 수는 없었다.
“그래도 분위기를 보니까 조금 전 파티가 상당히 마음에 드신 모양이야.”
“그러면 더 볼 게 있나?”
누군가가 면접 중에 유지한이 앉았던 자리를 보며 말했다.
“합격이지.”
“그래도 상대 평가니까 점수 계산은 해봐야.”
“하면 뭐가 달라지는데?”
백강천이 마음에 들어 한 인재들을 탈락시킨다?
어지간히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그럴 수 없었다.
그리고 같은 시각.
다른 면접관들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면접장 밖으로 빠져나온 이동호는 유지한 파티에게 다가갔다.
“꿀잼.”
“……!”
복도를 걸어가던 유지한은 이동호를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김시후 또한 비슷한 반응이었다.
“저번 일은 미안했다.”
이동호가 유지한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바쁜 일정이 겹쳐 잔뜩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참여했던 승급 면접.
그 당시에 벌어졌던 일을 뒤늦게나마 사과하는 것이었다.
민유리와 칠라가 가만히 기다리는 가운데.
입을 다물고 있던 유지한은 그에게 말했다.
“사과를 받을 대상은 제가 아닙니다.”
“……그래. 이쪽이겠지. 미안하다.”
김시후를 향해서 다시금 고개를 숙이는 이동호였다.
그렇게 자존심이 세 보이던 인물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선뜻 나서서 사과하다니.
나름 진정성이 느껴지는 사과에 김시후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기,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그래.”
“과거에 이종족과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나요?”
김시후의 질문을 들은 이동호가 시선을 벽으로 돌렸다.
그리고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여러 일이 있었지만, 바로 몇 달 전에는 오래 알고 지내던 영웅 하나가 엘프에게 공격당했어.”
“…….”
“깨어있는 상태에서 팔다리가 강제로 뽑혀나가고 처절한 고문을 받았지. 뇌에도 큰 충격을 받아서 지금은 가족을 못 알아볼 정도로 기억이 온존치 않아. ……그런데 면접에서 널 보니까 그때 일이 조금 떠올랐다.”
사건 바로 전날 함께 밥을 먹었던 영웅이 팔과 다리를 모두 잃고 죽어가는 걸 발견했을 때의 기억은, 이동호의 정신적인 부분에 아직도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그런데 스트레스까지 받았던 날에 하필이면 하프 엘프인 김시후의 뾰족한 귀를 보고 침입자를 떠올렸던 이동호였다.
“……솔직하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동호로부터 자세한 사정을 전해 들은 김시후.
당장 그를 완전히 용서하는 건 어렵겠지만.
김시후는 트라우마를 가진 그에 대한 악감정을 조금이나마 덜어내기로 했다.
“하여튼, 오늘 면접 결과는 기대해도 좋을 거야.”
“예?”
“그냥 그렇게 알라고.”
할 말을 마친 이동호는 뒤로 돌아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