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청영사 (3)
민주용과 벌인 대화 때문일까.
면접을 앞둔 유지한 파티는 대기실에서 정말 많은 시선을 받았다.
거기서 누구보다 뜨거운 시선을 보내는 것은 당연히도 민주용이었다.
‘질기네.’
유지한은 그가 아직도 민유리에 대한 미련을 접지 않았다는 걸 눈치챘다.
하지만 질투의 시선 따위, 가볍게 무시할 뿐이었다.
“유지한 파티 입장해 주세요.”
약간의 대기시간 끝에 유지한 파티의 차례가 되었다.
그들은 직원의 안내에 따라 들뜬 마음을 안고 면접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면접장으로 들어온 뒤.
유지한과 김시후는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
“설마설마했는데……. 또 당신들이었나.”
자리에 앉아 있는 면접관은 총 3명.
그중에서도 좌측에 앉아 있는 남자는 유지한 파티가 승급심사에서 한번 마주쳤던 인물.
동시에 면접자인 유지한과 아주 날 선 어조로 대화를 나눴던 면접관.
워리어즈의 영웅 이동호였다.
‘망했나.’
정말 잘못 걸리고 말았다.
대체 그는 꿀잼과 무슨 인연이길래…….
과거와 거의 비슷한 처지로서 만나는 것일까.
“동호 씨가 아는 분들이에요?”
“……조금은.”
“뭐야. 갑자기 더 궁금해지네.”
여기 모인 청영사의 면접관은 여러 길드에서 뽑아온 2급 영웅들.
그리고 그들은 이동호와 약간의 친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워리어즈 내에서 후배들과도 교류가 거의 없다고 알려진 이동호가 얼굴을 한 번에 알아보는 영웅들이라니…….
면접관들은 유지한 파티를 바라보며 강한 흥미를 드러냈다.
“자리에 앉으시죠.”
유지한 파티원들은 각자 준비된 의자에 앉았다.
칠라를 위한 커다란 의자도 있었지만 크기가 잘 맞지 않는 탓에 민유리의 뒤쪽으로 섰다.
“지금부터 면접을 시작하겠습니다.”
“짤막하게 자기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소속과 이름을 말하는 간단한 자기소개가 끝나고.
한 면접관은 민유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거기 뒤에 있는 게 유리 씨의 파트너죠?”
“네.”
“혹시 진용학이라고 알아요? 나랑 같은 파티원인데.”
“레드홀의 테이머시죠. 유명 테이머 분들의 이름은 거의 다 기억하고 있어요.”
“음. 용학이가 보면 좋은 후배가 생겼다고 하겠어.”
가벼운 대화로 시작된 면접.
면접관들은 유지한 파티의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 작은 농담을 건네기도 하며 대화를 이끌었다.
“…….”
하지만 다른 면접관과는 달리 이동호는 말없이 김시후와 유지한만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유지한도 마찬가지였다.
질문에 적당히 답을 하면서도 온 신경이 이동호를 향해 있었다.
혹여라도 그의 입에서 또다시 막말이 튀어나오는 건 아닐까.
그리고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이번에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이 기회를 놓치기는 싫은데.’
청영사는 1년 동안 사무실을 비롯한 각종 교육과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지원 사업.
합격할 수만 있다면 현재 유지한이 가지고 있는 걱정의 절반은 덜 수 있었다.
“유지한 씨에게 질문드리겠습니다.”
“예.”
레드홀의 영웅이 유지한을 바라봤다.
“꿀잼에 파티가 만들어진 건 꽤 오래전의 일이지만, 지한 씨가 길드에 들어온 건 얼마 되지 않았어요. 그쵸?”
“맞습니다.”
“2인 체재로 MA에서 활동을 시작한 시기를 비추어 보았을 때, 유지한 파티는 4급 승급이 다른 파티에 비교해 굉장히 빠른 편이에요.”
활동을 시작한 후 2주 만에 영웅부로부터 승급 제안을 받은 파티.
그리고 결국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서 승급에 성공한 파티.
그것은 모두 유지한 파티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운이 좋았죠.”
“단순히 운으로 여기는 것 말고, 이게 어떻게 가능했는지 설명 가능하신가요?”
“저희는 그 당시 이뤄진 대련 심사에서 상당히 고득점의 점수를 받았습니다. 그 기세를 몰아 영웅부 면접에서도 나쁘지 않게 봐주신 것 같습니다.”
“흐음.”
“그리고…….”
유지한은 이동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때 승급 면접의 면접관으로 계셨던 이동호 면접관님이라면 더 정확한 정보를 알고 계실 것 같습니다.”
“아! 그랬군요.”
“어쩐지 아는 눈치인 것 같더라니.”
“동호 씨. 괜찮으시면 당시 유지한 파티의 평가에 대해 짤막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
감히 나를 이용하려 들다니.
갑자기 지목된 이동호는 살짝 불만 섞인 표정으로 유지한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는 곧 입을 열었다.
“유지한 씨의 말씀대로 저는 얼마 전 승급 심사의 면접관으로 참여했습니다.”
“…….”
“그냥, 간단하게 ‘승급할만했다.’ 정도로 요약하겠습니다.”
면접관들은 이동호의 신선한 반응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소 퉁명스러운 어조였지만.
이동호는 유지한 파티를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그가 앞서 면접을 본 파티에게 보여 주던 냉대와는 많이 달랐다.
“민유리 씨는 아직 길드와 파티에 공식적으로 합류한 건 아니죠?”
“네. 이제 곧 인수합병 절차가 마무리될 예정이예요.”
“어째서 눈송이가 꿀잼에 인수되는 거죠? 하나로 합쳐지는 건 그렇다고 치더라도, 더 오래 활동한 눈송이에서 꿀잼을 인수해야 하는 게 아닌가요?”
“제가 길드를 직접 운영하는 일에는 큰 뜻이 없어서요.”
“영웅부 관계자로부터 조금 사정을 들어보니까 유리 씨는 영웅부에서 직접 승급을 제안했다고 하더라고요? 게다가 그걸 몇 번이나 거부하셨고요.”
“……그랬죠?”
민유리는 외부에 밝혀지지 않은 내용을 알고 있는 그들에게 살짝 놀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청영사는 이미 여러 루트를 통해 지원자의 정보를 미리 파악해둔 상태였다.
“테이머라는 영웅의 특성상 여기저기서 영입 권유도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 유리 씨는 결국 자기보다 경력이 훨씬 짧은 파티에 합류하기로 하셨어요.”
“그 이유가 뭡니까?”
“유지한 파티와는 MA에서 우연히 마주쳤어요. 그런데 정말 짧은 만남이었는데도 서로의 호흡이 무척 잘 맞았죠. 이런 파티는 앞으로도 두 번 다시 만나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영화나 소설에서 나오는 운명 같은 만남일 수도 있겠네요.”
“운명 같은 만남이라…….”
아파트에서 유지한 파티와의 만난 것을 운명이라고 여기는 민유리였다.
“그리고 제게 아픈 동생이 있는데, 꿀잼은 길드 차원에서 동생의 치료에 대한 많은 지원을 약속했어요.”
“냉정하게 말하면 꿀잼보다 큰 길드에서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정곡을 찌르는 질문.
잠시 머뭇거리던 민유리가 말을 이어 갔다.
“큰 길드라도 확실한 치료를 약속할 수 있는 건 아니라서요. 다만 꿀잼은 제게 미래에 대한 비전과 새로운 가능성을 심어 주었어요. 설령 제 동생이 치료받지 못하더라도……. 이분들과 함께하기로 한 결정은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오……. 정말 훌륭한 동료를 두셨군요.”
민유리의 말에 면접관들은 놀랍다는 표정으로 유지한과 김시후를 바라봤다.
그러자 어색해진 두 사람은 멋쩍게 웃을 뿐이었다.
“다음은 실전에 관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얼마 전에 세움중학교의 긴급 MA에 들어가셨죠?”
“예.”
“언급하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운 사건이지만, 세분이서 함께하신 활동이 몇 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죠.”
유지한은 면접관들의 말에 더 귀를 기울였다.
이번 면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현장 및 실전과 관련된 질문.
지금 면접을 받는 이들이 청영사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부합하는지를 판별하는 것들이었다.
“4급 파티는 긴급 MA에서 대피가 권고되는데, 계속 남아서 싸운 이유가 뭡니까?”
“학교 안에 다른 학생들이 있다는 걸 알았고, 같은 시각 주변에 3급 영웅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저희가 조금만 노력하면 살릴 수 있는 생명이 있는데 버려 두고 간다는 게 마음이 편치 않더군요.”
“음.”
유지한의 대답에 레드홀의 영웅이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영웅부의 권고를 따르지 않았기는 하나, 그의 자세는 영웅으로서 아주 바람직한 자세였다.
“거기서 무슨 몬스터를 상대하셨죠?”
“주로 괴네를 사냥했습니다.”
“괴네는 이 근처에서 보기가 아주 드문 몬스터죠.”
“맞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처리하셨나요?”
유지한은 잠시 옆쪽의 파티원들을 쳐다봤다.
김시후와 민유리는 유지한이 대답하기를 원하는 모양새였다.
그러자 그는 파티를 대표하듯 말했다.
“괴네의 머리를 위주로 공격했습니다. 그리고 감귤 괴네의 경우에는…….”
“……지금 뭐라고요? 감귤 괴네?”
감귤 괴네라는 말에 면접관들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주로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이동호 또한 마찬가지였다.
“네. 감귤 괴네요.”
“거기서 괴네가 나왔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3급 몬스터인 감귤 괴네가 나왔다는 건 지금 처음 들었습니다.”
“확실합니까?”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사실입니다. 사체도 처리 업체가 가지고 있어서 증명도 가능하고요.”
“녀석들이 몇 마리나 나왔죠?”
“파티에서 사냥한 것만 따져도 10마리가 넘을 겁니다.”
“…….”
4급 파티가 3급 몬스터를 10마리나 넘게 사냥했다니.
게다가 현재 그들의 몸에는 눈에 띄는 상처가 없었다.
무리 없이 사냥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어서 말씀드리면, 괴네는 모두 특유의 약점인 5번째와 6번째 마디 사이를 공격해서 즉사시켰습니다.”
“지한 씨.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감귤괴네의 외골격은 상당히 단단해서 약점을 아주 정확하게 노리지 않는 한…….”
“그 약점을 공격하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진 않습니다.”
“쉽게 믿어지지가 않네요.”
감귤 괴네의 약점을 알고 있는 것도 신기하지만.
아주 좁은 약점을 공격하는 게 어렵지 않은 일이라니.
혹시나 허풍을 떠는 것은 아닐까.
‘잘만 되던데.’
하지만 거짓 없이 진실만을 말한 유지한으로서는 다른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시후 씨는요?”
“괴네의 마디에 애로우 마법을 꽂아 넣었습니다.”
“공격이 잘 통하던가요?”
“20개 쏘면 1개 정도는 빗나가던가…….”
괴네의 몸집과 녀석의 속도를 생각했을 때.
20개 중 1개가 빗나가는 건 굉장한 결과였다.
‘이게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4급 파티라고?’
‘말하는 거만 들어보면 최소 4년 넘게 활동한 파티 같은데.’
단순한 허세에 불과하다기에는 너무 심상치 않은 유지한 파티.
면접 점수를 매겨야하는 면접관들은 조금 혼란스러워졌다.
“그러면 다음 질문으로…….”
몇 가지 혼란을 뒤로하고.
면접관들이 다른 질문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덜컥!
닫힌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자리의 모든 인원은 뜬금없이 면접장으로 들이닥친 그를 보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웁스. 방해했나?”
“……백강천 길드장님?!”
지금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레드홀의 길드장 백강천이었다.
그의 등장에 깜짝 놀란 면접관들이 입을 쩍 하고 벌렸다.
그중에서도 가장 놀란 레드홀의 영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바, 방해라뇨! 전혀 아닙니다. 어서 여기 앉으시죠!”
자연스럽게 길드원의 의자를 뺏어 앉은 백강천.
싱글벙글 웃는 그의 시선이 면접자로 들어온 유지한 파티의 얼굴을 하나씩 훑었다.
‘백강천이다.’
‘백강천이 직접 나오다니.’
‘우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영웅을 눈앞에 둔 세 사람은 바짝 긴장했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칠라만이 뒤에서 느긋하게 하품을 하는 가운데.
이어지는 백강천의 말은 유지한 파티원들을 더욱 긴장시켰다.
“나도 얘네한테 질문해도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