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청영사 (2)
유지한과 김시후는 다음 날도 어김없이 사무실에 출근했다.
하는 일은 어제와 별로 다를 게 없었다.
괴네의 처리는 몽땅에 맡겨둔 상황이니 길드가 입주할 사무실을 찾는 것에 집중할 뿐.
“거기 메이버 부동산이죠? 여기는 꿀잼이라는 길드인데요…….”
“……아무리 정식으로 등록된 펫이라도 건물 내 출입은 어렵다고요. 예. 알겠습니다.”
부동산에 직접 연락을 넣으며 매물을 찾는 게 연속 4시간째.
아직도 이렇다 할 사무실은 발견하지 못했다.
“차라리 땅을 사서 건물을 지어야 하나.”
“그게 가장 이상적이긴 해요.”
계속 입주가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오는 나머지, 직접 사무실을 지을 생각까지 하는 유지한이었다.
대출까지 동원한다면 마냥 불가능한 일이 아닌 만큼 진지하게 검토할 여지가 있었다.
“음…….”
다만 아직 길드의 규모가 작은 상황에서 굳이 건물을 지을 필요까지 있냐는 의문도 있었다.
향후 길드의 규모가 어떻게 커질지도 모르기 때문에 건물의 크기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건물을 짓는 일에 시간도 적잖게 소요될 테고.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사무실을 찾아다니는 두 사람이었다.
위치를 타협하여 찾아보면 뭐 하나라도 나오지 않을까.
그게 아니라면 커다란 창고 같은 건물을 사무실로 사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었다.
뚜루루—
“네. 김시후입니다.”
김시후는 의자에 편히 등을 기대며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낯선 남자의 말에 적당히 받아치던 때…….
“……네? 진짜요?”
청영사와 관련된 소식을 들은 그가 의자에서 몸을 튕기며 일어났다.
통화를 끊은 그는 유지한에게 서류 합격 소식을 전했다.
그러자 유지한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릴 왜 뽑은 거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기뻐요!”
길드 인원조차 청영사 지원 조건에 간신히 부합하는 유지한 파티.
그들은 자신들이 서류 심사에 통과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면접은 언제래?”
“이틀 뒤요.”
“되게 빠르네.”
서류 심사는 하루 만에 끝내고, 면접은 다다음날에 진행되다니.
상당히 빡빡한 일정이었다.
‘진짜 통과한다면…….’
하지만 정말로 청영사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당분간 사무실 걱정은 없을 터.
잠시 고민하던 유지한은 집에서 쉬고 있을 민유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한 씨?”
“유리 씨! 당장 바쁘지 않으면 우리 사무실에 잠깐 와줄 수 있어요?”
“알았어요.”
동생이 입원한 병원에 가 있던 민유리.
그녀는 곧 꿀잼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무슨 일 있어요?”
“청영사라고 알죠?”
“당연히 알죠. 제 주변에서도 지원한 사람이 있거든요.”
“주변 분들은 어떻게 됐대요?”
“소식이 없는 걸 보니 아마 떨어진 거 같더라고요.”
민유리의 지인 중에는 작년부터 청영사에 지원한 4급 파티가 있었다.
하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서류부터 떨어졌다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저희는 거기 서류에 통과했거든요.”
“네에? 정말로요?”
“서류 지원 마감되기 전에 별 기대 없이 넣었는데도…….”
서류에서부터 많은 파티가 걸러진다고 알려진 곳인데.
유지한 파티가 그걸 쉽게 통과했다고 하니 놀란 반응을 보이는 민유리였다.
“제가 축하드려야겠죠?”
“유리 씨도 같은 당사자인데요.”
“아 참! 그랬죠.”
“유리 씨의 동의 없이 청영사에 지원한 건 미안합니다.”
“사과를 왜 해요. 통과하면 저도 좋은 건데.”
아직 절차를 밟는 중이지만, 민유리는 꿀잼의 일원이 되는 영웅.
청영사에 합격한다면 그녀도 같은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유리 씨도 2일 뒤에 있는 면접에 같이 가 주셨으면 좋겠어요.”
“아직 눈송이 길드가 정리되지 않았는데, 제가 참여해도 되는 건가요?”
“물어보니까 오히려 반기더라고요.”
유지한은 민유리가 사무실에 도착하기 전에 레드홀에 연락을 넣었다.
청영사 관계자들은 민유리도 면접에 와 주면 좋겠다는 입장이었다.
“면접 준비는 어떡하죠?”
“저희도 그게 고민이네요.”
유지한은 청영사 면접을 본 영웅의 후기를 검색했다.
그 결과 대체로 면접관이 아주 깐깐한 질문을 많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점이라면 여기 있는 인원은 모두 4급 승급 심사에서 비슷한 면접을 경험해 본 영웅들이라는 것.
“무슨 질문이 나올까요?”
“아마도 지금까지의 경력에 관해 물어볼 확률이 높습니다.”
햇병아리가 몇 차례 현장을 경험한 4급 파티로서 들어가는 청영사의 면접.
경력직의 회사원들이 이직을 시도할 때 자신의 경력에 대한 질문을 받는 것처럼.
청영사에서도 지금까지의 경력을 중심으로 질문할 확률이 높았다.
‘케로즈에서의 경력은 배제하고…….’
유지한은 유지한 파티의 활동 내역을 떠올렸다.
괴아리 등의 동물계 몬스터부터 괴들레 같은 식물계 몬스터도 잡았었고.
그리고 같은 동물계로 분류되지만 조금 다른 느낌인 곤충계 몬스터까지.
그리 긴 기간은 아니어도 짧은 기간 내에 알차게 사냥을 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저는 괴냥이밖에 없는데.”
“괴냥이에 관련된 건 되게 잘 아시잖아요?”
“그렇긴 해요.”
괴냥이에 대해 빠삭하다 못해 박사급으로 잘 알고 있는 민유리.
몇 년간의 경력이 괴냥이 사냥만으로 좁혀져 있는 건 조금 아쉬운 일이지만.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고, 그녀의 기본 실력은 유지한이 보증할 만큼 출중하니 크게 문제가 될 건 없었다.
“게다가 최근에 서울몬스터박물관에 괴냥이를 납품하셨죠. 그건 가산점이 될 확률도 있습니다.”
“그게 그렇게 이어지네요.”
“솔직히 운이 좋다고 봐야죠.”
괴람쥐의 습격으로 개장이 예정된 일정보다 뒤로 밀려 버린 서울몬스터박물관.
다행히 민유리가 납품한 민무늬 괴냥이에는 피해가 없는 만큼 납품 사실도 쉽게 증명할 수 있었다.
‘파티의 합은 생각보다 더 좋아.’
팀워크(Teamwork).
영웅 개인의 강력함이 아니라 파티로서의 합이 얼마나 잘 맞는지는 중요한 평가 요소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지금 세 사람의 합은 알게 된 기간을 뛰어넘을 만큼의 팀워크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면접에서 얼마나 잘 전달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겠지만…….
‘잘하면 될 것도 같은데?’
평가 요소를 하나씩 따져 보던 유지한은 조금씩 자신감이 붙었다.
*****
청영사 면접 당일.
유지한과 김시후는 민유리가 운전하는 차에 같이 타고 가기로 했다.
“오.”
“우와.”
민유리가 꿀잼의 사무실까지 끌고 온 차량은 캠핑카처럼 커다란 트럭 형태의 차량이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칠라를 옮기기 위해서 특별히 개조를 거친 물건이었다.
“…….”
작은 창문에서 눈만 보이는 칠라가 유지한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면접에는 녀석도 함께하기로 되어 있었다.
운전석에서 내린 민유리는 두 사람을 반겼다.
“이거 너무 죄송해서 어쩌죠.”
“운전은 익숙해서 괜찮아요.”
유지한은 아직 회사에 제대로 합류하지도 않은 그녀에게 운전을 맡기는 게 미안했다.
하지만 그녀는 별로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평소에도 자주 운전하세요?”
“저는 몬스터 처리를 직접 하는 편이라서요.”
평소에 괴냥이 처리를 별도의 업체에 맡기지 않고 직접 하는 민유리.
게다가 그녀는 운전 무사고 4년 차의 뛰어난 드라이버였다.
개조된 차량을 이리저리 살피며 구경하던 김시후가 그녀에게 말했다.
“유리 씨 나이가 어떻게 된다고 하셨죠?”
“26살요.”
“누나라고 불러도 돼요?”
“상관은 없는데…….”
세 사람은 차를 타고 청영사의 면접장으로 이동했다.
도착한 곳은 레드홀 소유의 빌딩.
미리 연락했던 청영사 관계자가 빌딩 앞에서 그들을 맞이했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유지한 파티는 안내에 따라 주차를 한 후, 건물 안쪽으로 이동했다.
‘되게 좋네.’
유지한은 길을 걸으며 건물의 내부를 살폈다.
이곳은 청영사의 입교생들에게 사무실로 빌려주기도 하는 공간.
건물의 크기도 크고 천장도 높으며, 입구도 아주 널찍한 것이 칠라가 오가는데도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이용할 수만 있다면 사무실로 사용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대기실은 이쪽입니다.”
유지한 파티는 면접을 치르기 전에 잠시 기다리는 대기실로 입장했다.
문을 넘어서자 그들과 비슷한 처지인 영웅들은 새로 입장하는 유지한 파티를 바라봤다.
한 번씩 칠라를 훑고 가는 시선들.
분명 저 중에는 4급 중에서도 유명한 민유리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터였다.
“어어? 뭐야?!”
그리고 칠라를 발견한 누군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유리 씨?!”
“주용 씨?”
그는 매번 민유리가 자신의 길드로 오기를 기대했던 인물.
나이스 길드의 영웅, 민주용이었다.
“유리 씨가 왜 여기에 계세요?!”
“어, 그게…….”
민유리를 만나서 기쁜 마음이 반.
그녀가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의문이 반.
복잡한 마음이 된 민주용이 민유리의 앞으로 달려 나왔다.
“유리 씨도 이번 청영사에 지원하신 건가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하지만 청영사는 파티의 인원이 2명 이상이어야 되는 거로 알고 있는데…….”
민주용이 민유리와 함께 입장한 김시후와 유지한을 힐끔거렸다.
그러자 유지한이 한 걸음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유리 씨는 청영사의 지원에 문제가 없습니다.”
“하! 그걸 왜 유리 씨가 아니라 그쪽이 말씀하시는 겁니까?”
다소 날카롭게 대답하는 민주용.
그는 유지한이 민유리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속에서 피어오르는 불안감.
그것을 눈치챈 유지한은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말했다.
“왜긴 왜겠어요.”
“…….”
“유리 씨가 우리 길드에 합류했으니까 하는 말이죠.”
“……뭐라고?!”
눈을 동그랗게 뜬 민주용은 민유리를 향해 고개를 홱 하고 돌렸다.
그녀가 나이스가 아닌 다른 길드에 합류했다니!
“그렇게 됐네요. 죄송해요, 주용 씨.”
민유리는 항상 자신을 원한다고 말했던 그에게 무척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입니까……? 왜 나이스 길드가 아니라 저런 녀석들에게…….”
“저런 녀석들이 아니라 꿀잼이에요.”
“……!”
민유리는 유지한과 김시후를 대변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민주용은 그런 그녀에게 충격을 받은듯한 모습이었다.
잠시 그를 기다리던 유지한은 이 상황에 쐐기를 박듯이 말했다.
“일이 이렇게 됐으니, 앞으로 꿀잼의 길드원이자 제 파티원인 민유리 씨를 데려가려는 행동은 참아 주셨으면 좋겠군요.”
“그, 그건…….”
“그쪽도 저와 같은 영웅이라면 이런 기본적인 예의는 알고 계시리라고 믿겠습니다.”
할 말을 끝낸 유지한은 몸을 돌려 다시 걸었다.
민주용을 향한 그의 차가운 태도에, 이야기의 당사자인 민유리는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유지한의 뒤를 따라 걸었다.
이미 다른 길드에 들어가기로 했으니 눈송이 인수를 제안했던 나이스 길드와 선을 긋는 것도 어느 정도 필요한 작업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민주용과의 갈등을 끝내서 후련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잖아!’
민주용은 매우 허망한 표정으로 민유리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어째서 그녀는 자신을 선택하지 않았는가.
‘속사정이 있을 거다……!’
남들에게 설명하지 못하는 약점을 잡혔다든지.
가족을 죽이겠다는 협박 따위를 당했다든지…….
분명 숨겨진 사정이 있을 거라고, 꿀잼을 의심하는 민주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