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청영사
일찍 등교한 학생들과 교사가 약 13명 정도 사망하고 4명이 심각한 중상을 입은 사건.
세움중학교에서 발생한 MA는 같은 시간대의 긴급 MA 중에서도 대참사로 분류되었다.
많은 영웅의 도움으로 상황은 빠르게 종료되었으나 이미 죽은 사람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사람들은 어린 학생과 교사의 죽음을 애도하며 학교 앞에 하얀 꽃을 두고 가기도 했다.
“이번 사태를 철저히 조사한 후, MA 발생 원인을 찾아내어 그 원인 제공자에게 아주 강력한 처벌을 내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영웅부에서는 발생 원인을 찾아내어 처벌하겠다는 자세를 취했다.
맡은 바 책임을 다하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근래 나빠지고 있는 영웅부의 여론에 기름을 끼얹은 셈이 되었다.
“피해자 보상 방안은 준비 중인가요?”
“최근 영웅부의 행보가 시원치 않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몬스터와 함께 공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싸우려고 했기 때문에 이번 사태가 벌어졌다는 IUPC의 입장문은 보셨습니까?”
“당장 우리 아들 살려내!!”
카메라 플래시가 쏟아지는 기자 회견.
“그게…….”
영웅부의 대리자로 나선 어느 불쌍한 직원은 카메라에 대고 허리를 숙이는 일밖에 하지 못했다.
사무실에서 모니터로 그 기자 회견의 영상을 보던 유지한은 혀를 쯧쯧 찼다.
“대답 못 할 거 뻔히 알면서 말단 직원을 내보냈네.”
“희생양이겠죠.”
유지한은 이번 회견에 나온 직원과 중학교 앞에서 마주쳤었다.
그는 그 지역에서 발생한 MA를 관리하는 담당자로 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일개 직원에 불과한 그가 기자들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저 그가 불쌍하게 여겨질 뿐이었다.
“양지철 씨는 뭐래?”
“눈송이 길드와의 절차에 자잘한 서류 작업이 꽤 많은데, 자기가 대신 처리해 주겠다네요.”
“그거 고맙네.”
한편, 꿀잼은 민유리의 눈송이 길드와의 인수합병 절차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혹시 민유리 씨한테 협박이라도 했어요?
처음에 양지철에게 이 소식을 전했을 때 그는 아주 깜짝 놀라는 기색이었다.
경력이 짧은 길드가 그보다 몇 배는 오래 활동한 길드를 먹어 버리겠다니!
게다가 상대는 매번 승급을 거부하여 영웅부 내에서도 가끔 말이 나오는 눈송이.
영웅부에서는 테이머인 그녀를 눈독 들이던 길드가 상당히 많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그녀가 선택한 곳은 영웅이 일개 2명뿐인 꿀잼이었다.
이것이 아주 이례적인 일인 만큼 양지철도 많은 관심을 갖고 각종 절차를 돕고 있었다.
“이제 이 사무실도 옮겨야 하겠죠…….”
“내가 미리 몇 개 찾아보긴 했는데, 그게 좋은 곳인지는 모르겠네.”
“다른 것보다 칠라가 있으니까요.”
“그러면 민유리 씨 의견을 들어보는 것도 좋겠지.”
유지한과 김시후는 인원이 늘어감에 따라 좁은 사무실에서 벗어날 필요성을 느꼈다.
이곳이 민유리를 맞이하는 길드의 사무실치고는 너무 초라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칠라는 몸집이 큰 관계로 이런 좁은 곳에는 출입조차 불가능했다.
“최대한 칠라에게 불편한 장소가 아니었으면 해요.”
“잠깐 찾아볼까?”
커다란 몬스터가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으면서도 사무실의 구색은 갖춘 건물.
두 사람은 그런 건물을 찾기 위해 인터넷 매물을 뒤졌다.
그러나 조건에 딱 맞는 사무실은 찾기가 쉽지 않았다.
‘다른 것보다 몬스터니까.’
칠라가 공식적으로는 펫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결국에는 몬스터의 일종이다.
살아 있는 그것이 건물로 출입하는 것은, 건물주로서는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일.
결국, 영웅들의 특수한 사정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그것 또한 영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음?”
그런데 갑자기 무언가가 김시후의 눈에 들어왔다.
검색 포털 사이트에 커다랗게 떠오른 광고였다.
[청년영웅사관학교 입교생 모집!]
“청영사에서 입교생을 뽑고 있었네요.”
“그래?”
청영사.
청년영웅사관학교의 줄임말이었다.
이미 활동 중인 영웅 파티 중에서도, 33세 미만의 영웅들로만 구성된 4급 파티를 대상으로 1년간 운영되는 제도.
거대 길드 레드홀에서 주관하는 것으로 국가로부터 세금을 받아서 진행되는 국비 지원 사업의 일종이었다.
‘평범한 학교는 아니었지.’
청영사는 이름과는 달리 어린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가 아니라, 향후 한국을 이끌어갈 뛰어난 영웅 파티를 양성한다는 목표로 계획되었다.
아직 미숙하지만 가능성이 있는 4급 영웅들.
그중에서도 가공되지 않은 원석을 골라내어 많은 지원을 해 준다고 알려져 있다.
“매달 활동지원금도 나오고 파티에게 적합한 사무실도 공짜로 빌려준대요.”
“지원이 되게 빵빵하다고 들었어.”
“전체 지원금 규모가 작년보다 훨씬 커졌다고 나와 있어요.”
달마다 인원수에 비례하여 나오는 활동지원금.
그리고 파티의 구성에 맞는 사무실을 무상으로 대여.
또 공방에서 장비 제작 시 일정 비율을 지원해 주기까지!
금전적인 부분만 따져 봐도 정말 많은 혜택을 볼 수 있었다.
‘졸업생 평가도 나쁘지 않던데.’
이번에 선발하는 청영사는 3기였다.
이미 1기, 2기에 있던 파티들은 청영사를 졸업하여 현업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리고 청영사를 졸업한 파티는 전체의 절반 이상이 2급 파티로 승급하여 자기들의 이름을 떨쳤다.
많은 영웅이 3급에서 정체되는 것을 생각해보면 굉장한 결과였다.
‘졸업생 중에는 인수되는 쪽도 있었고.’
거대 길드에서 주관하는 만큼, 돋보이는 인재들을 발견하면 주관하는 쪽에서 파티 인수 제안을 건네기도 한다.
기존 길드에게는 거액의 돈을 안겨주고 청영사에 입교한 파티를 자기들이 데려가는 것이다.
그리고 청영사 입장에서는 썩 달갑지는 않겠지만, 청영사 활동 중에 해외에 연이 닿아 미국이나 일본 등으로 진출한 경우도 있었다.
“우리가 가면 어때요?”
“좋네. 되기만 한다면.”
“한번 넣어 볼까요?”
“음…….”
유지한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오늘 오후 11시 59분에 서류 지원이 마감되는 청영사.
지원 자격에 적혀있는 최소 인원은 2명이었다.
작년까지는 3명 제한이었는데 올해부터는 2명으로 줄은 모양이었다.
이제 3명이 되는 유지한 파티가 지원하는 것에 문제는 없었다.
‘선발하는 파티의 수는 최대 30개.’
유지한 파티가 그 30개 파티 안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꿀잼에게도 큰 기회이자 전환점을 맞이하는 순간이 될 수도 있었다.
“이거 정말 쉽지 않을 텐데.”
다만 청영사는 지원 규모답게 매우 까다로운 심사 기준을 가지고 있다.
서류에서 걸러지는 것은 최종 합격 인원의 5배수.
유지한 파티가 그 안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만약 운 좋게 통과하더라도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최종 합격한 파티도 끝내 절반 이상은 졸업을 못 한다고 하죠.”
운이 좋아 청영사에 입교하더라도 제대로 졸업하는 것은 30% 미만.
2급이 되면 바로 졸업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결국 입교생들은 1년간 청영사에서 요구하는 모든 기준에 맞춰야만 한다.
중간평가 따위가 많이 존재하며 평가 기준에 맞지 않으면 탈락하는 방식.
입교 후 약 1년 뒤에 치르는 졸업평가는 어지간한 3급 파티도 통과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경쟁률도 엄청나고.’
청영사는 서류부터 경쟁이 아주 치열한 제도다.
4급 파티라면 무조건 서류부터 넣고 보자는 길드도 많을 정도로, 입교를 희망하는 파티는 무수히 많았다.
그런데 과연 유지한 파티가 그 경쟁률을 뚫고 합격할 수 있을 것인가.
솔직히 가능성은 낮았다.
“오늘이 마감인데 결과도 바로 내일 나오는구나.”
서류 마감 다음 날에 바로 서류 결과 발표라니.
이 정도면 거의 합격 내정자를 뽑아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넣어 볼까요? 지원에 필요한 서류는 제가 다 쓸게요.”
“오케이. 한 번 넣어 보지 뭐.”
보통 이런 서류는 공들여서 꼼꼼하게 작성해야 통과하는 법이지만…….
지원해보는 것 정도는 크게 문제없겠지.
그렇게 생각한 유지한과 김시후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청영사에 지원하기로 했다.
“진짜로 합격하면 어쩌죠?”
“시작부터 김칫국마시지 마.”
“저 김치 별로 안 좋아해요.”
김시후가 청영사 지원 서류를 작성하는 사이, 유지한은 다른 사무실 매물을 찾아보며 시간을 보냈다.
괜히 크게 기대하고 있다가 떨어지면 실망이 더 커질 뿐이었으니까.
*****
청년영웅사관학교 총괄 본부.
지원 규모가 아주 큰 사업이니만큼 레드홀에서는 청영사만을 위한 조직이 따로 꾸려져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서류 마감이 끝난 시각.
해가 완전히 떨어진 새벽에도 총괄 본부의 조명은 꺼지지 않았다.
“야식 가져왔어요!”
“다들 먹고 합시다!”
어느 직원이 비닐봉지를 들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봉지에 든 것들은 카페인이 다량 함유된 커피와 먹으면 정신이 번쩍 드는 에너지 음료, 그리고 배달시킨 치킨들.
서류 마감 다음 날에 결과가 발표되는 만큼 짧은 시간 동안 처리해야 하는 일의 양이 많다.
따라서 밤샘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내 커피는?”
“여기요.”
먹거리에 몰려든 직원들은 서로 대화를 나눴다.
“서류 지금까지 몇 개 들어왔어요?”
“지금까지 약 900개.”
서류를 통과하는 인원은 최종 선발되는 파티 30개의 5배수인 150개.
따라서 지원한 파티들은 서류부터 6: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 것이었다.
“올해도 지원하는 파티가 많네요.”
“우리 쪽에서도 많이 지원했을 테니까.”
레드홀에서 주관하는 사업에는 레드홀의 4급 파티도 지원할 수 있었다.
그렇게 거대 길드의 파티부터 중소 길드의 파티에 이르기까지.
지원 자격은 오직 2명 이상의 4급 파티인 만큼 정말 많은 파티가 청영사에 입교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내정자 거르면 몇 개죠?”
“서류에서 86개만 뽑으면 돼.”
많은 이들이 예상하던 대로 청영사에는 서류 합격 내정자가 정해져 있었다.
미리 특정 리스트에 오른 파티들은 아무런 평가 없이 서류를 통과하는 것이다.
다만 그들이 넘어갈 수 있는 건 오직 서류 심사뿐.
면접에서는 예외 없이 제대로 평가를 받아야만 했다.
우우웅—
청영사 심사 본부장의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잘 튀겨진 닭다리를 베어 물던 그는 휴대폰을 잡았다.
“여보세요.”
—청영사 본부장이에요?
“……?”
보나 마나 밤샘 근무를 걱정하는 아내의 전화라고 생각했는데.
휴대폰 스피커에서 들려온 것은 낯선 남자의 목소리.
상대방의 번호를 확인한 그는 이것이 모르는 자의 전화라는 걸 알게 되었다.
“맞습니다만. 이 시간에 누구시죠?”
—레드홀 대빵이요.
“네?”
갑자기 대빵이라니.
본부장은 표정을 찡그렸다.
—모르겠어요?
“누구신지…….”
—그쪽들 월급 주는 사람.
“……?”
레드홀에서 월급을 주는 사람이라면…….
‘허어억!’
툭.
그제야 상대의 목소리를 인지한 그는 반대쪽 손에 들고 있던 닭다리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지금 통화 중인 사람은 다름 아닌 레드홀의 길드장인 백강천이었다.
“기, 길드장님! 이 시간에 무슨 일이십니까?”
—다른 건 아니고, 청영사 서류 지원한 파티 중에…….
본부장은 백강천과 통화하면서 고개를 연신 끄덕거렸다.
그리고 몇 분 후 휴대폰을 귀에서 내렸다.
“…….”
“…….”
자리의 모든 직원이 숨죽여 그를 바라보는 상황.
그는 기름기가 묻은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백강천 길드장님이 나한테 직접 전화하셨어.”
“……뭐라고 하셨어요?”
“꿀잼이라는 길드에서 지원한 서류가 있으면 그냥 통과시키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