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학교 (2)
학교로 진입한 유지한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먼지구름 속, 복도에 한가득 몰려 있는 몬스터들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중에 겁도 없는 녀석들은 유지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서걱!
그의 검은 먼지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정확히 몬스터의 몸을 베어 냈다.
잠시 후 먼지가 조금 걷힌 뒤의 1층 복도.
[1-1]
1학년 1반 교실 앞에는 어느 여성이 바닥에 누워 있었다.
급히 그쪽으로 달려가려던 유지한은 그녀의 몸 상태를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
사라진 그녀의 왼쪽 팔과 다리, 그리고 초점이 없는 눈.
조금 전에 처치한 몬스터들의 입가에는 시뻘건 핏물이 묻어 있었다.
‘이미 죽었어.’
교사로 추측되는 그것은 이미 생기를 잃어버린 시체였다.
시체를 치워 둘지 잠시 고민하던 유지한은 이내 몸을 돌렸다.
당장 죽은 자를 챙겨 줄 여유까지는 없었다.
“올라가자.”
정문을 통과해서 그대로 쭉 직진하면 나오는 중앙 계단.
유지한 파티는 그 계단을 올랐다.
건물 지하에는 식당이 있었으나 지금은 이른 오전.
학생들이 아침부터 식당을 갈 리 없으니 위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쉬이익—!
기다란 괴네 여러 마리가 계단과 계단의 손잡이를 타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왔다.
이미 건물 전체가 몬스터의 터전이 되어 버린 것일까.
‘저건 감귤 괴네인데…….’
유지한은 계단에서 내려오는 괴네의 종류를 특정했다.
몸이 온통 감귤 색인 외골격으로 보아 녀석은 3급 몬스터인 감귤 괴네.
언젠가 김현태 파티에서는 사냥한 적이 있지만.
저것 또한 이런 학교에서 나올 법한 몬스터는 아니었다.
‘물리면 골치 아파.’
녀석의 머리, 첫 번째 마디에는 더듬이, 혹은 갈고리 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
그것은 다리 일부가 변형된 부분으로 먹이를 잡아서 독을 찔러넣는 역할을 맡는다.
인간이 지네의 독에 당하면 살이 조금 부어오르는 경증에 그치겠지만.
몬스터로 변한 괴네의 독은 영웅의 몸이라도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비독을 가진 감귤 괴네의 독침에 팔에 쏘인다면, 그 팔은 최소 20분 동안 마비되어 사용하지 못한다고 봐야 했다.
[파이어볼]
김시후의 마법이 감귤 괴네에게 날아들었다.
선택한 마법은 괴네에게 특효인 불마법.
화르륵!
하지만 단단한 갑옷과도 같은 감귤 괴네의 몸은 불에 살짝 그을리는 정도에 그쳤다.
간간히 장비의 재료로도 사용되는 외골격을 뚫어 내기에는 부족한 화력이었다.
그렇다고 너무 파괴력이 높은 마법을 사용하면 계단이나 건물이 무너져 내릴 가능성이 있었다.
“잠깐 기다려.”
탓—!
유지한은 직접 계단 위쪽으로 뛰어올랐다.
괴네는 기다란 몸을 위로 치켜들며 그의 다리를 노렸다.
하지만 벽에 최대한 가깝게 붙은 유지한은 놈들에게 거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감귤 괴네의 약점은 5번째와 6번째 마디의 사이.’
단단한 감귤 괴네의 몸을 무작정 공격하기는 까다로운 일이다.
하지만 유지한은 녀석의 약점을 알고 있었다.
괴네의 길이를 가늠한 그는 녀석의 공격을 피한 뒤, 그 약점 부위에 검을 찔러 넣었다.
푹!
날카로운 검 끝이 아무런 걸림 없이 부드럽게 괴네의 몸에 꽂혔다.
꼬챙이가 된 괴네는 수많은 다리를 꼼지락거리며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이내 움직임이 멎은 놈을 뒤로 한 채, 유지한은 계단 손잡이에 붙어 있는 괴네를 노려봤다.
촤악!
녀석은 그리 쉽게 당해 주지 않겠다는 듯 계단 손잡이에서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기다란 몸이 일자로 뻗어져 유지한에게 날아왔다.
‘어림도 없지.’
유지한이 몸을 오른쪽으로 확 비틀었다.
그러자 괴네는 그의 몸을 붙잡지 못하고 옆으로 날아갔다.
‘1, 2, 3…….’
괴네가 어깨높이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 상황.
유지한은 녀석의 마디 수를 셌다.
그리고 5번째 마디가 옆을 지나가려는 순간.
타이밍에 맞춰 검을 아래에서 위로 휘둘렀다.
서걱!
정확히 마디와 마디 사이로 들어간 검날은 괴네의 몸을 깔끔하게 이등분했다.
체액을 흩날리며 떨어진 괴네의 몸이 바닥에서 꿈틀거렸다.
“와…….”
마법을 무시할 정도의 단단한 몸을 가진 몬스터.
그리고 그런 몬스터를 단번에 처리하는 유지한을 향해 김시후가 작은 감탄사를 냈다.
‘생존자가 있어야 할 텐데.’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한 두 사람이 계단을 올라갔다.
이미 몬스터의 소굴이 되어 버린 학교이지만.
위층에 생존자가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
몬스터가 덮친 세움중학교의 2학년 5반 교실.
교실의 칠판 바로 앞에 놓인 교탁.
그 아래에는 한 여학생이 몸을 웅크린 채 숨어있었다.
‘대현이, 대현이가 죽었어……!’
몇 분 전 그녀가 확인한 2학년 4반 교실에는 대현이라는 이름의 남학생이 죽어 있었다.
커다란 지네가 인간의 머리를 까드득 깨물던 모습을, 그녀는 아마 살아가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었다.
그녀는 그 장면을 발견하자마자 겁에 질려 곧장 자기 교실의 문을 모두 닫아 버리고, 교탁 아래에 숨었다.
학교에서 빠져나간다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교탁 아래에 숨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서 이름 모를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몸을 숨긴다는 선택은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너무 답답해.’
그녀는 살아남았지만, 동시에 교실에 갇혀 버렸다.
잠긴 교실의 문이 언제까지고 몬스터의 접근을 막아 낼 수 있을까.
살아 있는 몬스터를 본 게 오늘이 처음인 그녀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영웅들이 학교에 도착하기까지만 몬스터가 다가오지 않기를 바랐다.
쿠구궁……!
갑자기 건물 아래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소음에 화들짝 놀란 여학생은 양손으로 자신의 코와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숨소리마저 최대한 죽인 채 이 절망적인 시간이 빨리 흐르기만을 기도했다.
쿵쿵.
교실 문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혹시 영웅이 도착한 건 아닐까.
교탁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보려던 여학생은 이내 모든 움직임을 멈췄다.
밖에 있는 무언가가 몬스터가 아니라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콰지직……!
“……!”
문이 천천히 부서지는 듯한 소음이 여학생의 귀에 닿았다.
누군가 유리 창문이 아니라 강제로 잠긴 문을 부수고 있는 것이었다.
‘몬스터다!’
밖에 있는 게 사람이었다면 먼저 말을 건넸겠지.
그렇게 생각한 여학생은 몸을 더욱 웅크렸다.
콰직—!
끝내 문 어딘가가 완전히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교실의 앞문이 아니라 뒷문에서 난 소리였다.
“…….”
여학생은 순간 숨을 멈췄다.
그녀는 숨을 전혀 쉬지 않고도 약 1분 넘는 시간 정도는 버틸 수 있었다.
평소에는 아주 쓸모없는 재주에 불과했지만, 어쩌면 지금만큼은 도움이 될 터였다.
사가각—
사가각—
무언가가 바닥을 기어오는 듯한 소음이 들렸다.
교실에 들어온 게 몬스터라고 확신한 여학생의 심장이 미친 듯이 빠르게 뛰었다.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듣고 다가오는 건 아닐까 걱정해 봐도, 긴장감에 몸이 반응하는 걸 어쩔 도리가 없었다.
‘으으…….’
그리고 숨을 참은 시간이 어느덧 2분 10초.
무언가가 교실을 기어 다니던 소리는 이미 멎었다.
“허억.”
더는 버틸 수 없었던 여학생이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평소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산소가 인간의 몸에 아주 필수적이라는 걸 지금에 와서야 절실히 깨닫는 그녀였다.
사가가각!
“……!!”
그때 다시 무언가가 바닥을 기어 다니는 소리가 났다.
여학생은 퍼뜩 다시 숨을 참았다.
그런데…….
“콜록.”
너무 급하게 숨을 들이마신 탓인지 작은 기침이 나왔다.
그녀는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쉬이익—
진동을 감지하고 교탁으로 다가온 괴네는 마침내 여학생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살아오면서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커다랗고 흉측한 외형.
여학생은 입에서 튀어나오는 비명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꺄아아아악—!”
이제 그녀가 몸을 숨길 곳은 없었다.
먹잇감을 발견한 괴네가 그녀를 덮치려는 순간이었다.
콰아앙!
교실 앞문에서 강한 폭발음이 발생하며 무언가가 여학생의 앞으로 날아왔다.
괴네는 그것에 머리를 얻어맞고 뒤로 물러났다.
“형! 한 명 찾았어요!”
잠긴 문을 마법으로 부수고 들어온 김시후는 교탁 아래에 숨은 여학생을 발견했다.
방해받은 괴네는 화가 났는지 온몸을 잔뜩 비틀어 댔다.
[윈드 애로우]
김시후는 윈드 애로우를 여러발 생성하여 괴네에게 발사했다.
팍! 팍! 팍! 팍! 팍!
괴네의 수많은 마디와 마디 사이에 화살이 하나씩 꽂혔다.
먹잇감을 바로 눈앞에 둔 사냥꾼은 많은 체액을 뿜어내며 죽어 버렸다.
“괜찮아? 일어설 수 있어?”
“으흐흑……!”
“빨리 나가자.”
김시후는 울먹이는 여학생을 데리고 교실을 빠져나왔다.
2학년 4반에 들어갔던 유지한은 머리가 사라진 남학생의 시체를 발견하고 얼굴을 찡그렸다.
‘벌써 죽은 사람만 9명이 넘는다.’
유지한 파티가 학교 1층과 2층에서 마주친 교사와 학생의 시체만 9구.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 버렸다.
“사, 살려 주세요!”
“……!”
인기척을 느꼈는지 옆반에서 누군가 구조 요청을 보내 왔다.
유지한과 김시후는 황급히 소리가 들려온 2학년 1반으로 달렸다.
“히이익!”
2학년 1반 교실에는 어느 성인 남성이 칠판 위쪽에 올라가 있었다.
그 밑에서는 괴아리가 교사를 올려다보며 삐약거렸다.
“뺙!”
서걱!
단숨에 칠판 밑까지 달려간 유지한은 검으로 괴아리들의 멱을 따 버렸다.
교사로 보이는 남성은 모든 괴아리의 죽음이 확인된 뒤에야 칠판 위에서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유지한은 그를 진정시킨 뒤에 말했다.
“등교한 학생들이 더 있다고 들었습니다.”
“있습니다!”
“어디에 있죠?”
“그게, 분명 2학년 11반 학생이었습니다!”
2학년 11반이라면…….
2학년 1반과 같은 층이긴 하지만, 완전히 반대쪽에 위치해 있었다.
“시후야. 이 사람들 데리고 3층으로 올라가.”
“알겠어요.”
“위에서 합류하자.”
지금 그들이 서 있는 2학년 1반 옆에는 계단이 있다.
그리고 반대쪽인 2학년 12반 옆에도 계단이 있었다.
건물의 양 끝에 모두 계단이 있는 덕분에 어디로 가든 위에서 합류할 수 있었다.
“조심해요!”
[헤이스트]
유지한은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복도를 홀로 내달렸다.
*****
민유리는 칠라와 함께 아침 운동을 하고 있었다.
최근에 받은 검사 결과, 커다란 칠라의 몸에는 지방이 거의 없고 근육으로 꽉 차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근육 덩어리의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많은 단백질 섭취와 꾸준한 운동은 필수적이었다.
‘근처에 괴냥이가 있던가?’
그녀에게 괴냥이를 잡는 것은 하루의 필수적인 일과와도 같은 일.
운동을 끝낸 뒤에 평소처럼 괴냥이가 등장한 MA로 갈 생각이었다.
삐이익!
삐이익—!
그때 그녀의 휴대폰에 재난 경보가 여러 번 울렸다.
그녀는 잠시 운동을 멈추고 휴대폰을 들었다.
“응?”
조금 떨어진 거리에 긴급 MA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메시지로 날아와 있었다.
이렇게 좁은 범위에 긴급 MA가 여러 개 발생하는 것은 민유리도 살면서 처음 보는 일이었다.
‘여긴…….’
게다가 그중에는 그녀의 동생인 민소연이 다니던 중학교도 포함되어 있었다.
동생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학교에 몬스터가 등장했다니.
이 소식을 그냥 무시하려니, 찝찝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