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학교
이른 아침, 유지한은 여느 때처럼 택시를 타고 사무실 근처에 도착했다.
평소와 다른 점이라면 오늘은 일부러 사무실 바로 앞에서 내리지 않았다는 것.
아침 운동 겸 조금 걷고 싶은 기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시후가 MA를 골라온다고 했었지.’
여왕 괴미 납품을 위해 박물관에 방문하고 하늘보호소와 생각지도 못했던 연을 맺는 등, MA 밖에서도 여러 일이 있었지만.
슬슬 파티의 다음 활동을 펼칠 때가 되었다.
4급 MA라면 수도권에도 차고 넘치기 때문에 활동할 영역을 고르기만 하면 되는 부분이었다.
‘생각해 보면 영웅들은 몬스터가 있는 걸 기뻐해야 하나…….’
영웅은 기본적으로 몬스터와 침입자에 대응하기 위한 존재들.
반대로 그것들이 사라지면 영웅은 그다지 필요가 없어진다.
여러 만화나 소설 매체에서도 악당이 있기에 용사가 존재하는 법.
그렇다면 악당이 사라진 뒤에 용사의 존재의의는 사라지지 않을까.
‘몬스터가 없는 세상이라.’
악당이 없는 세계에서 강력한 힘을 가진 용사는 이후에 어떤 취급을 받는가?
수많은 예측이 가능하겠지만, 아직은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어쩌면 이세계 개척에 이용될지도 모르고.’
미국이나 일본을 포함해 모든 국가에서는 현재까지 이세계에서 지구로 들어오는 현상을 관측하기만 하고 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떠도는 찌라시에 따르면 많은 연구소에서는 지구에서 이세계로 가는 법에 대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실현되기만 한다면 지구의 인간이 이세계의 침입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자원과 기회가 넘쳐흐르는 이세계를 향한 도전!
어쩌면 언젠가는 이세계로 여행을 하는 때가 올 수도 있었다.
‘재밌네.’
유지한은 길가를 걸으며 혼자만의 사색을 즐겼다.
이것은 김현태 파티에 있을 때 만들어진 습관 같은 행동.
그때는 장비를 입더라도 꼭 회사에서 갈아입을 정도로, 파티원이 아닌 남들 앞에서는 최대한 자신을 감췄다.
그런 탓인지 혼자 생각에 잠기는 일이 많았다.
그 습관이 김현태 파티에서 나온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것이었다.
“……?”
그런데 그때였다.
주변에서 어떤 기척을 감지한 유지한은 그대로 자리에 정지했다.
사가각—
사가각—
그는 귀로 들려오는 소리에 모든 감각을 집중했다.
이것은 신발이 바닥을 밟을 때 만들어내는 발걸음 소리와는 달랐다.
쉬이익—!
뒤쪽에서 등장한 무언가가 유지한의 등을 덮쳐 왔다.
서걱!
검을 뽑아 든 유지한은 몸을 뒤로 돌림과 동시에 적을 향해 검을 그었다.
크게 상처 입은 녀석은 바닥에 나뒹굴었다.
“괴네?!”
유지한은 자신이 공격한 몬스터의 정체를 파악하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크기의 관절이 여러 개 연결된 기다란 몸에 짧고 가느다란 다리가 최소 25쌍, 개수로는 50개나 달린 생물.
다름 아닌 지네가 몬스터로 변한 괴네였다.
‘괴네는 이 근처에서 나올 몬스터가 아닌데…….’
벌건 대낮에 뜬금없이 괴네가 나타나다니.
지하나 흙이 많은 지역에 머무는 녀석들의 특성상, 이런 도시의 길가에서 괴네를 마주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유지한은 재빨리 김시후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후야.”
—형! 사무실 건물에서 몬스터가 나왔어요!
“뭐라고?”
—조금 이따 통화할게요!
뚝.
꽤 급한 상황인지 전화가 다시 끊겼다.
김시후를 걱정한 유지한이 곧장 사무실로 달려가려던 찰나.
샤라라락—
높은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그는 고개를 위로 치켜들었다.
투명하고도 푸르스름한 막 같은 것이 바닥에서부터 하늘 넓게 펼쳐지고 있었다.
“결계잖아.”
결계가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장면이었다.
유지한이 서 있는 위치와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서 올라간 결계는 반대쪽에서 다가온 결계와 합쳐져 이내 둥그스름한 반원의 형태를 이루었다.
눈으로만 봐도 상당히 큰 사이즈의 결계였다.
삐이익—!
[주변 3km 내 긴급 MA가 선언되었습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몬스터 : 미확인]
[현 위치로부터 MA까지의 거리 : -13m]
[신속한 지역 안정화를 위해 많은 영웅들의 협조 부탁드립니다.]
휴대폰에서 긴급 MA 알림이 나왔다.
MA와의 거리는 -13m.
0m보다 적은 거리가 나오는 경우에는 이미 그 안으로 들어왔다는 뜻이었다.
‘긴급 MA라니…….’
영웅부에서 상황이 좋지 않다고 판단하여 급하게 MA를 선언했을 때는 모두 긴급 MA로 간주된다.
위험성을 짐작할 수 없는 만큼 최소 3급 이상의 파티에게만 입장이 허락되는 MA.
5급 영웅은 시민들과 함께 대피 대상에 포함되며, 4급에게도 가급적 대피가 권고된다.
“여러분! 여기서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어서 밖으로 나가요!”
MA를 벗어나려는 사람들로 인해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결계가 급하게 생성된 만큼 강도가 약해서 입구가 아닌 곳으로 나가더라도 문제는 없을 터.
“…….”
규정대로라면 4급 영웅은 시민들과 함께 이곳에서 벗어나는 게 맞겠지만.
유지한은 곧장 김시후가 있는 꿀잼의 사무실로 달렸다.
*****
[윈드 애로우]
여러 개의 마법 화살이 괴냥이를 노리고 날아갔다.
“냐옹!”
화살을 피하고자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괴냥이.
하지만 그런 움직임조차 따라 날아간 화살은 결국 녀석의 머리에 박혔다.
“다들 잘 따라오세요!”
김시후는 같은 건물에 상주하는 사람들을 이끌고 밖으로 나섰다.
이 건물 내에 있는 길드는 꿀잼 하나뿐이었기에 인원 모두를 혼자 책임질 수밖에 없었다.
빠르게 계단을 내려가서 도착한 1층 문 앞.
문밖을 쳐다본 김시후가 이를 꽉 악물었다.
“캬아악!”
“쉬이이—!”
여러 몬스터들이 이미 건물을 에워싸고 있는 탓이었다.
“으아아……!”
“너무 많아요!”
혼자서라면 어떻게든 탈출할 수 있지만, 그의 뒤에는 7명의 시민이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게다가 닫혀있는 몬스터가 달려든다면 유리문은 언제든지 깨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
“그래도 나가겠습니다!”
“정말로요?!”
“여기 있어 봤자 어차피 오래 못 버텨요!”
크게 마음먹은 그가 문을 활짝 여는 순간이었다.
“시후야!”
“형!”
때마침 유지한이 자리에 도착했다.
몬스터들의 시선이 홀로 밖에 나와 있는 유지한 쪽으로 쏠렸다.
“조심해요!”
뾰롱!
[헤이스트]
유지한은 실프를 소환하여 몸에 버프를 두르고 몬스터 사이를 가로질렀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며 검으로 벤 몬스터만 4마리.
단숨에 건물 입구 앞까지 도착한 그가 몸을 돌려 주변을 경계했다.
‘다가오면 죽인다.’
여러 몬스터의 피가 한데 섞여서 뚝뚝 흘러내리는 유지한의 검날.
으르렁대는 몬스터들은 그의 기세에 눌려 함부로 다가오지 못했다.
그 사이 건물에서 김시후를 비롯한 인원들이 빠져나왔다.
“입구로 가자.”
“네!”
긴급 MA라도 입구는 존재한다.
유지한은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몬스터들에게 검을 겨눈 채, 사람들을 데리고 MA 맵으로 확인한 입구를 향해 이동했다.
“이쪽입니다!”
입구 근처로 다가가자 다른 영웅들이 보였다.
주로 영웅부 인천 지부에 소속된 영웅들이었다.
그리 많은 인원은 아니었으나 데려온 사람들을 보호하기에는 충분했다.
“어디 길드에서 오셨습니까?!”
“꿀잼의 유지한 파티입니다.”
디지털 펜으로 넓적한 태블릿의 화면을 두드리던 영웅부의 관계자가 표정을 찡그렸다.
화면에는 유지한 파티가 4급 파티로 나오고 있었다.
규정대로라면 이곳에서 내보내는 게 맞지만, 지금은 한시가 급한 상황.
유지한은 잔뜩 고민하는 표정의 그에게 말했다.
“저희도 돕겠습니다.”
“그래도……!”
“지금 뭘 따질 때가 아니잖아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유지한 파티는 저와 이곳에서 만나지 않은 거로 하시죠.”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긴급 MA에서 영웅부의 직원이 유지한 파티와 만나지 않았다고 합의하는 것.
규정을 따르지 않고 자체적으로 움직인다는 유지한 파티를 용인해 주겠다는 말이었다.
물론 이 사태가 마무리 된 뒤 조사가 진행되면 다 들통날지도 모르겠지만.
고개를 숙여 보인 영웅부의 직원은 입구에 도착한 시민들을 안내하러 달려갔다.
“형. 주변에 MA가 너무 많아요.”
김시후가 MA 맵을 띄운 휴대폰 화면을 보여줬다.
근방 3km 내에 표시되는 긴급 MA만 4개.
지이잉—
휴대폰에는 근처에 또 다른 MA가 발생했다는 알림이 울렸다.
MA가 실시간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었다.
“저, 저 좀 살려 주세요……!”
“……!”
그때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남자가 두 사람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왔다.
등에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있는 어린 남학생이었다.
유지한은 남학생에게 달려가서 앞으로 쓰러지려는 그의 몸을 잡아 주었다.
“정신 차려!”
“그르륵…….”
몸 여기저기에 보이는 심각한 상처들!
학교에서 힘껏 뛰어온 것으로 추측되는 남학생은 피거품을 물다가 그만 혼절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유지한은 피범벅이 된 학생을 주변에 대기하던 구급차에 실어 주었다.
들것에 남학생의 몸을 실어 준 그의 손바닥은 남학생이 흘린 피로 인해 붉게 물들었다.
안타까운 표정의 김시후가 땅에 떨어진 중학교 교과서를 주우며 말했다.
“저 아이가 입은 교복, 어디 학교 건지 알 것 같아요.”
“거기로 안내해.”
*****
유지한과 김시후는 인근의 중학교를 향해 달렸다.
쓰러진 남학생의 교복은 그 중학교의 것이었다.
캉! 캉!
MA로 선언된 중학교 앞에는 이미 전투를 벌이는 영웅이 있었다.
유지한은 그와 합류하여 진입을 방해하는 몬스터를 처리했다.
“감사합니다!”
“안으로 갑시다!”
그들은 함께 중학교의 운동장으로 들어섰다.
넓은 운동장에 한가득 모여든 몬스터들.
흔히 볼 수 있는 괴냥이부터 유지한을 덮쳤던 괴네, 그리고 괴아리들도 여럿 섞여 있었다.
“으아아! 도와주세요!”
“……!”
한 남자가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유지한 일행에게 달려왔다.
영웅들은 몬스터를 해치운 뒤 잔뜩 겁에 질린 그를 진정시켰다.
‘묘한데…….’
유지한은 운동장을 채운 몬스터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괴아리와 괴냥이의 조합이라니.
서로 상성이 나쁜 그놈들이 한 곳에 동시에 등장한다는 건 들어보지 못한 일이었다.
“아! 지금 학교에 등교한 학생들이 있습니다!”
“이 학교 교사입니까?”
“네, 네!”
운 좋게 살아남은 남자는 이 중학교의 체육 교사였다.
“학생들이 몇 층에 있어요?”
“그……. 잘 모르겠습니다.”
“어쩔 수 없네요. 저희 둘이 안쪽으로 가겠습니다.”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당장 더 좋은 방법이 없습니다.”
유지한은 학교 앞에서 싸우던 영웅에게 체육 교사를 맡기고 본교 건물로 달렸다.
자꾸만 몬스터들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으나 상대하기에 까다로운 몬스터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1층에는 없나.’
두 사람은 건물의 유리문을 통해 등교한 학생들이 있는지 확인했다.
안타깝게도 1학년이 머무는 1층에는 학생들이 없었다.
“정문 뚫어!”
[윈드 랜스]
유지한의 외침과 함께 커다란 바람의 창이 학교 정문 앞에 생성됐다.
김시후가 지팡이를 앞으로 힘껏 휘두르자 그것이 문을 가로막는 몬스터들을 향해 쇄도했다.
콰과과과광—!
마력이 한껏 담긴 윈드 랜스는 걸리적거리는 몬스터들의 몸을 가볍게 찢으며 그 사이로 작은 길을 만들어 냈다.
마법의 여파로 자욱한 먼지가 피어오르는 학교의 정문.
유지한 파티는 작은 망설임도 없이 그 먼지 속으로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