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전조
“지금부터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영웅부의 3층 회의실.
시작을 알리는 목소리에 휴대폰을 내려다보던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앞쪽의 하얀색 스크린을 바라봤다.
“계양산 복구 작업은 끝났나?”
“괴미굴을 메꾸고 산을 복구하는 작업은 어제까지 87% 가량 완료되었습니다.”
“복구 속도가 빨라서 다행이야.”
“중간에 윤도하가 왔다고 하던데?”
“네. 복구 작업에 참여한 마법사들의 전언으로는 윤도하 님이 도와주신 덕분에 속도가 20배는 더 빨라졌다고 합니다.”
괴미굴이 파여 있던 계양산은 원상태로 복구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복구가 완료되는 대로 영웅이 아닌 시민들의 입장을 허용할 계획이었다.
“그 악동이 얌전히 도와줬다고.”
“현장에서 그렇다고 하니까 뭐…….”
“어디 몰래 구멍이라도 파놓은 거 아니야?”
“혹시 모르니까 꼼꼼하게 확인해 보라고 해.”
윤도하가 언급되자 영웅부의 임원들은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주사위는 내국인도 입장할 수 있는 마법 카지노를 계획하는 등, 기존의 법이 가로막는 것들을 뚫으려는 시도가 잦은 길드.
임원들이 그들의 수장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 못했다.
허나 1급 영웅인 윤도하의 존재는 절대로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
행보가 얄미운 놈을 대놓고 칭찬하기는 뭣해 구시렁거릴 뿐이었다.
“여왕 괴미는 서울몬스터박물관에 박제로 만들어 전시될 예정입니다.”
“박물관 개장에는 차질이 생겼잖아.”
“네. 이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진행자가 리모컨을 누르자 어떤 여성의 얼굴이 화면이 떠올랐다.
범죄자의 머그샷처럼 찍힌 사진 속 그녀는 불만이 아주 가득한 표정이었다.
“괴미굴에서 발견된 여성은 저번 회의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IUPC의 회원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여성의 사진 옆에 어느 남성의 사진이 떠올랐다.
“저건 누구지?”
“서울몬스터박물관의 직원입니다. 박물관 사건 발생 2주 전에 합류한 사원으로, 살아 있는 괴람쥐가 납품된 일에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꼽히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가 옆의 여성처럼 IUPC의 회원으로 의심된다는 겁니다.”
“저 남자도 IUPC 소속이라고?”
“확실한 정보인가?”
“경찰의 조사 결과 그의 집에서 IUPC의 회원증이 발견됐습니다.”
영웅부와 경찰은 괴람쥐의 사건 또한 IUPC의 행적이라는 증거를 찾아냈다.
회의에 참석한 영웅부의 임원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찡그렸다.
“싹 다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싶군.”
“UN은 그 새끼들을 왜 도와주는 거야?”
“골치 아파 죽겠어.”
자신들의 회원이 사로잡힌 걸 눈치챈 IUPC에서는 영웅부에 계속 항의를 넣었다.
게다가 국제연합, UN까지도 강제로 구금한 IUPC의 회원을 놓아주라는 입장문을 보내 왔다.
그나마 괴람쥐 납품 건으로 증거가 확실한 남자는 구속할 수 있었지만.
괴미굴에서 발견된 여성은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현재 주사위를 비롯한 거대 길드의 협력으로 풀어 준 여성을 몰래 추적하고 있습니다.”
나날이 영향력이 강해져 가는 IUPC의 세력.
영웅부에서는 그들을 만만하게 보지 않고 모든 행동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다음은 새로운 정령사의 단서를 발견했다는 소식입니다.”
띡!
휴대폰으로 직접 찍은 듯한 호수의 사진이 화면에 비쳤다.
“MA가 발생했던 골프장의 호수입니다. 골프장에 출입한 유일한 정령사의 말에 따르면 이 호수에서 새로운 정령의 기운이 느껴졌다고 합니다.”
“호오……!”
윤도하를 비롯한 한국의 정령사는 총 21명.
그리고 이 소식이 사실이라면 거기에 1명이 더해진다는 것이었다.
“누군가 정령을 감추고 있는 건가?”
“골프장 MA가 닫힌 게 며칠 째인데 빨리 찾지 않고 뭐해?”
“당시 현장을 다녀간 영웅이 너무 많아 조사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이 건은 담당자가 누구지?”
“접니다.”
양지철이 손을 들어 올렸다.
많은 고위 임원들의 시선에 그에게 쏠렸다.
그러자 그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최대한 꼼꼼하게 조사를 하고자 하오니 많은 시간이 걸려도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네.”
“다른 나라에서 먼저 접촉하기 전에 찾아내야 해.”
정령사의 가치는 아주 높게 평가된다.
일본이나 중국에서 정령사를 비롯한 한국의 인재들을 자기 쪽으로 꼬드기는 일은 제법 흔한 일이었다.
다른 나라에서 먼저 데려가기 전에 그들을 한국에 완전히 정착시켜둘 필요가 있었다.
‘짐작 가는 인물은 몇 있지만…….’
양지철은 머릿속으로 최근 많은 활약상을 보여 주는 파티를 여럿 떠올렸다.
무언가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게 있는 파티들.
대략 14개에 달하는 파티 중에는 유지한 파티도 포함되어 있었다.
‘천천히 찾아야지.’
그런데 양지철은 영웅부의 임원들과는 다르게 정령사를 급하게 찾아다닐 생각이 없었다.
이유는 잘 몰라도 그가 자신의 정보를 일부러 감추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스스로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걸 보면 높은 확률로 그럴 것이었다.
‘떠나면 어쩔 수 없고.’
만약 정령사가 다른 나라로 가게 되면 무척 안타깝겠지만.
영웅부보다는 영웅 개인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 주고 싶은 그였다.
*****
박물관에서의 일이 IUPC가 벌인 일이라는 소식은 꿀잼에도 전해졌다.
“이거 완전 또라이들이네.”
김시후는 무척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아무리 박물관이 싫어도 그렇지, 살아 있는 몬스터를 납품할 생각을 하다니.
‘만나기만 해봐라.’
유지한은 계양산에서 만났던 여성을 떠올렸다.
앞으로 현장에서 그런 미친년을 또 만나게 된다면…….
같은 인간에게 칼을 휘두르는 일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었다.
“훈련이나 하자.”
“네.”
이곳은 공용훈련소의 개인 훈련실.
유지한은 뽑아 든 검에 마력을 집중했다.
샤아—
영웅들이 오러라고 부르는 힘이 그의 검에 아주 잠깐 머물렀다가 꺼졌다.
‘장족의 발전이다.’
1초라는 짧은 유지 시간이지만.
오러를 전혀 사용하지 못했던 예전과 비교하면 아주 커다란 변화였다.
물론 오러를 1시간도 넘게 유지했던 김현태나 다른 영웅에 비교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실프.”
뾰롱!
실프가 부름에 응하여 현실에 소환됐다.
허공에 떠오른 실프는 유지한의 정수리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유지한은 한 번 더 검에 마력을 집중했다.
이번에는 몸의 마력뿐만 아니라 정령의 마력을 한데 섞은 것이었다.
샤아아—!
실프의 마력을 섞어 낸 바람의 오러는 하얀빛이 아니라 초록빛을 띠었다.
빠르게 오러가 사라졌기는 하나 유지 시간은 1초보다 긴 2초!
유지한이 몬스터 하나를 처리하고도 충분히 남을 시간이었다.
부르르—
유지한은 커다란 희열에 잠겨 몸을 살짝 떨었다.
마력을 낭비하면 탈진해 버리는 실프이기에 사용에 주의가 필요하겠지만.
그는 오직 정령사만이 가능한 특별한 스킬을 얻은 것이었다.
“넌 뭐 하고 있어?”
“아, 프란이 메시지를 보내서요.”
유지한이 가만히 서 있는 김시후를 바라봤다.
그는 지팡이를 의자에 내려놓고 휴대폰을 만지고 있었다.
“뭐라는데?”
“마법이 잘 안 나간다는데 설명을 좀 해 주고 있어요.”
“벌써 친해졌구나.”
“성격도 싹싹하고 붙임성이 좋더라고요.”
하늘보호소의 프란 페이저는 김시후와 종종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다.
마법과 관련된 질문이라면 거의 정답에 가까운 답안을 알려 주는 김시후였기에, 영웅 학원에 다니는 프란으로서는 아주 좋은 인맥을 얻은 것과도 같았다.
“맞다. 저 이제 레비테이션은 완벽하게 익혔어요.”
“그래?”
지팡이를 든 김시후는 의자를 밟고 그 위로 올라섰다.
[레비테이션]
그리고 힘껏 점프하면서 자신의 몸에 레비테이션을 사용했다.
“보이죠?”
“오…….”
동영상을 아주 느리게 재생하는 것처럼 위에서 아래로 느리게 떨어지는 김시후의 몸.
이전에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렸을 때 보여 준 불안정한 마법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마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안정적으로 선보인 김시후는 땅에 부드럽게 착지했다.
“최대 유지 시간은?”
“지금이라면 10분은 거뜬할 거 같아요.”
“나랑 같이 사용해도?”
“그걸 전제로 말씀드린 거예요. 혼자서는 15분도 가능해요.”
“충분하네. 대체 언제 연습한 거야?”
“영약 빨면서 노력했죠.”
김시후는 별거 아니라는 듯 얼버무렸다.
하지만 허접한 레비테이션 때문에 파티에 위기가 찾아올 뻔한 건 그에게 아주 창피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언제 또 비슷한 상황에 처할지 모르고, 파티원인 유지한에게도 걸림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밖에서는 물론이고 집에서는 제자리 뛰기를 하면서도 중력 마법을 연구했다.
‘느낌이 좋다.’
두 사람의 성장세는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날 정도로 좋았다.
특정 파티가 단기간에 이런 성장을 보인다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유지한은 자신이 김현태 파티에 있을 때와 비교해 봐도 지금이 훨씬 더 가파른 성취를 거두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형. 우리 포지션을 이렇게 해보면 어때요?”
“어떻게?”
“평소랑 다르게 제가 가장 앞에 서고, 형은 뒤로 가서…….”
두 사람은 이후 합을 맞추며 훈련에 더 박차를 가했다.
노력은 결코 그들을 배신하지 않았으니까.
*****
“예은이는 어때?”
“아직 추적이 붙어 있어요.”
외부에는 공개되지 않은 IUPC의 건물.
몬스터 우리가 여러 개 놓인 그곳에서 두 남자가 대화를 나눴다.
“길드들이 영웅부와 긴밀하게 협력하는 모양이에요.”
“어느 길드?”
“주사위, 레드홀, 스노우볼. 그리고 워리어즈.”
“지겹다, 지겨워. 또 그놈들이네.”
그들은 이미 IUPC에 추적이 붙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러 길드와 영웅부 내부에 미리 심어 둔 인력이 있는 덕분이었다.
정보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대처하는 건 쉽다.
영웅부와 길드의 눈에 든 회원은 대기시키고, 뜻이 맞는 새로운 인력을 뽑으면 그만이었다.
“예은이한테는 돈 좀 쥐여 주고 한동안 집 밖에 나오지 말라고 해.”
“네. 넘겨받은 데이터는 여기 있습니다.”
남자는 IUPC의 부장에게 USB를 건넸다.
괴미굴에 들어갔던 그녀가 얻어 낸 모든 데이터가 담긴 USB였다.
만족스러운 표정의 부장은 같은 건물 1층에 있는 회원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여러분! 우리의 동료가 얻어 낸 소중한 데이터가 도착했습니다!”
“와아아아!”
“훼방꾼이 있었지만, 그녀는 어여쁜 크리처가 모인 계양산에서 무사히 살아남았습니다. 다들 이게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겠죠!”
“부장님! 부장님! 부장님!”
“때가 됐습니다! 어서 ‘우유’을 위로 들어 올리십시오!”
척—
자리에 모인 모두가 주사기를 잡은 손을 위로 들어 올렸다.
“주입!”
“주입!”
뾰족한 바늘이 살을 밀어내고 팔뚝에 박혔다.
그리고 주사기의 밀대를 누르자 우윳빛의 하얀 액체가 그들의 몸으로 주입됐다.
텅! 텅! 텅!
잠시 후, 건물 내에 단단히 잠겨 있던 사각 철창의 문이 모두 열렸다.
그 안에서 여러 몬스터가 밖으로 빠져나왔다.
“허어억!”
“꺄아아악!”
이곳은 빠져나갈 문이 모두 닫혀 있는 건물.
당연하게도 몬스터들은 먹잇감인 인간을 공격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50명이 넘는 인간 중에 거의 절반 이상이 몬스터에게 공격받지 않았다.
“서, 성공이다……!”
“살려 주세요! 제발 살려……. 어억!”
“나는 선택받았다!”
“죽기 싫어어어! 으아아악!!”
“으하하하!”
꽈득! 꽈드득!
누군가가 몬스터에게 자기 몸을 씹어 먹히는 때.
다른 누군가는 눈가에 눈물이 맺힐 정도로, 혹은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크게 기뻐하며 날뛰었다.
기쁨과 공포가 함께 공존하는 혼돈의 공간.
그들보다 먼저 선택받은 자들은 몬스터들의 식사 장면을 흐뭇하게 내려다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