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합동 훈련 (3)
“그래서?”
“걔가 나한테 뭐라고 했냐면…….”
5명의 남자들이 잡담을 나누며 주사위 본사 1층의 계단을 내려갔다.
그들은 주사위에서도 4급 서열 2위에 해당하는 정영욱 파티.
몇 달 내로 3급에 도달할 것이 거의 확실한 2개 파티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뭐지?”
나이로는 파티의 가장 막내이면서도 뛰어난 마법 실력을 인정받아 파티장에 오른 정영욱.
그가 훈련소에서 사람들이 몰려 있는 쪽을 바라봤다.
“저거 대련장이죠?”
“오늘 열었나 봐.”
닫혀있던 대련장은 오늘 새로 열린 모양이었다.
뭔가 재밌는 구경거리라도 있을까.
그들은 호기심을 갖고 대련장 앞으로 다가갔다.
“……?”
그런데 그들은 대련장에 가까워질수록 이상함을 느꼈다.
아는 얼굴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몰려 있는데.
대련을 바라보는 그들은 너무나도 조용했다.
대체로 싸움 구경을 좋아하는 영웅들의 성격상, 구경꾼들이 이렇게나 조용할 이유가 없을 텐데…….
삐이익!
그때 마침 진행 중이던 대련이 종료되었다.
모니터에는 결과가 비치고 있었다.
[24:3]
양쪽의 유효 타격으로 보이는 점수는 24:3.
한쪽이 압도적인 차이로 승리했다.
“누구랑 누가 싸운 거야?”
정영욱 파티원들은 대련장에서 빠져나오는 이들을 주시했다.
한쪽 이미 잘 알고 있는 이강모 파티.
그리고 다른 한쪽은 낯선 얼굴의 2명이었다.
“어.”
하지만 정영욱은 그중에 한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그는 푸른 달 영웅 학원의 31기 수석 졸업생.
정영욱으로서는 도저히 잊을 수가 없는 얼굴, 김시후였다.
“승자는 유지한 파티.”
“……!”
자리에 있던 길드장 윤도하는 상대측이 승자라고 말했다.
정영욱은 황급히 모니터의 점수를 재확인했다.
‘저 2명이 이강모 파티를 이겼다고?’
주사위 소속이 아닌 영웅들이 자리에 있는 것은 둘째치고…….
김시후가 이강모 파티를 이겼다니!
정영욱 파티보다는 성과가 조금 떨어지지만, 4급 서열 3위인 그들 또한 나쁘지 않은 실력자.
저들이 패배했다는 건 쉽게 믿을 수 없는 결과였다.
“너 잘 하던데?”
“감사해요.”
“파이어 월 앞에서 마법을 꺾는 장면은 꽤 인상적이었어.”
심지어 정영욱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영웅 윤도하가 김시후를 칭찬하고 있었다.
‘어떻게 네가……!’
같은 길드인 정영욱조차 직접 들어보지 못한 칭찬!
김시후의 얼굴을 바라보는 정영욱은 잔뜩 배알이 꼴렸다.
“영욱아. 저거 네가 말한 반쪽짜리 맞지?”
“……맞아요.”
항상 자신보다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김시후.
그와의 악연은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다음은 저희가 해보고 싶습니다!”
“아니요! 제가 해보겠습니다!”
…….
…….
대련이 끝나자 유지한 파티와 싸워 보고 싶다는 영웅들이 여럿 등장했다.
이강모 파티의 패배가 그들의 승부욕을 더 끌어올린 것이었다.
“아서라. 여기 이강모보다 서열 높은 애들 없잖아.”
윤도하는 이강모 파티보다 서열이 낮은 파티의 도전을 거부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여기 있습니다!”
“넌……. 정영욱이지? 언제 왔어?”
“방금 왔습니다!”
“너네라면 가능하지. 유지한 파티는 지금 상태 어때?”
“문제없어요.”
김시후는 정영욱의 얼굴을 바라보며 밝게 웃었다.
친구를 만나서 순수하게 기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와 다르게 정영욱은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
“이번 승부는 10점을 먼저 득점하는 쪽이 승리한다.”
30분 휴식 후 시작된 유지한 파티와 정영욱 파티의 대련.
먼저 상대에게 10점을 따내는 쪽이 승리하는 방식이었다.
드르륵—
이번에는 1차전과 다르게 대련장의 바닥에 커다란 바위 따위의 장애물이 놓였다.
유지한은 그 준비성에 감탄하며 자리에 섰다.
“시작!”
전투가 시작되고.
유지한은 앞쪽에서 자신을 경계하는 영웅을 바라봤다.
양손도끼를 든 호쾌한 기백의 전사와 마법사 정영욱.
직전의 두 사람과 크게 다를 건 없어 보였다.
[콜 오브 아이스]
“……!”
마력을 감지한 유지한은 황급히 몸을 뒤로 뺐다.
동시에 그가 서 있던 바닥에서 원형의 마법진이 빛나며 매우 날카로운 얼음 파편들이 위로 치솟았다.
유지한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얼음 조각을 검으로 쳐내며 정영욱을 경계했다.
‘이번에는 좀 다른가.’
시전자와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의 위치 지정 마법.
게다가 얼음 계열의 마법은 대체로 물마법보다 물리적인 위력이 뛰어나지만 다루기가 까다롭다.
자칫 잘못하면 마법이 취소되거나 형태가 어그러지기 쉽기 때문에 미숙한 마법사들은 즐겨 사용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정영욱은 달랐다.
“제대로 갈게요.”
상대를 잘 알고 있기에 진심을 내보이는 김시후였다.
그는 지팡이로 구불구불한 도형을 그렸다.
[파이어 링]
정영욱 파티의 위쪽에 불의 고리가 생성되었다.
이내 그것이 빠르게 회전하더니, 원심력을 받은 커다란 불똥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화륵! 화르륵!
정영욱이 물마법으로 자신에게 날아오는 마력의 불을 꺼뜨리는 사이.
전사는 도끼의 면으로 불덩이를 막아 냈다.
그러면서도 그는 뒤에 있는 정영욱을 돌아보지 않았다.
이 정도 공격쯤은 혼자서 막을 것이라고 신뢰하는 것이었다.
“으랴!”
도끼를 든 전사가 유지한에게 달려들었다.
깡!
유지한은 검을 이용하여 커다란 도끼를 옆으로 살짝 흘려냈다.
동시에 상대의 손목을 노렸다.
삑!
[1:0]
공격이 그리 깊게 들어가지는 않았으나, 상대의 팔에 작은 핏물을 맺히게 하는 것에는 성공했다.
그렇게 선취점은 유지한 파티에게 돌아갔다.
“흡!”
상대측 전사는 상처를 신경조차 쓰지 않고 유지한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커다란 도끼를 마치 한손도끼처럼 쉽게 휘두르는 모양새였다.
부우웅—
도끼날이 공기를 찢으며 유지한의 배를 노렸다.
이것이 아무리 대련이라지만, 저렇게 큰 도끼에 정통으로 당한다면 그대로 행동 불능에 빠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전 같은 대련에 나서는 영웅이라면 감수해야 할 일.
유지한은 침착하게 도끼가 휘둘러지는 궤도를 보며 검으로 응수했다.
파바박!
옆쪽에서는 마법과 마법의 충돌이 이어지고 있었다.
정영욱은 전사들의 싸움에 끼어들기 위해 마법을 앞으로 쏟아 내고.
김시후는 그것을 모두 차단하며 마법사끼리의 전투를 유도했다.
[스톤 샤워]
콰과과과—!
샤워기의 헤드에서 떨어지는 물줄기처럼.
하늘에서 수많은 돌덩이가 김시후를 향해 떨어졌다.
[매직 파이프]
하지만 김시후는 그에 대항하여 커다란 원통형의 관을 생성했다.
덜그럭 소리를 내며 기다란 관으로 들어간 돌덩이의 속도는 줄지 않고 오히려 가속했다.
그리고 관의 곡선을 따라 반대쪽 출구로 나왔다.
그 방향에는 정영욱이 서 있었다.
사용한 마법을 반대로 돌려주는 것이었다.
“쯧!”
정영욱은 혀를 차며 스톤 샤워를 취소했다.
모든 돌덩이를 없애기에는 시간이 부족하여, 몸을 옆으로 던졌다.
동시에 김시후에게 반격의 마법을 준비했다.
이후에도 계속 치고받는 마법 교전이 이루어졌다.
두 사람은 어느 한쪽도 쉽게 물러서지 않으며 상대의 마법에 최선의 방법으로 대처했다.
“우와…….”
“저게 4급이라고.”
“갑자기 자괴감 오네.”
대련을 구경하던 사람들은 김시후와 정영욱의 마법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미 4급 마법사의 수준을 한참 벗어난 수준 높은 전투.
3급끼리의 싸움이라고 해도 믿어질 수준이었다.
“…….’
그와 반면 윤도하는 말없이 유지한을 바라봤다.
대련에서 실제로 점수를 따내는 역할은 유지한이 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삑!
[4:1]
또다시 점수 차가 벌어졌다.
커다란 공격이 유효타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유지한은 그저 상대의 몸에 긁히는 수준의 상처만을 내고 있었다.
상대를 압도하거나 제압하는 것보다는 점수를 얻는 것에 집중한다.
이 대련의 규칙을 아주 잘 파악한 전략이었다.
‘역시 주사위로 데려왔어야 했나.’
일전에 꿀잼 인수에 실패한 것을 매우 안타깝게 여기는 윤도하였다.
저들이 주사위에서 들어왔다면 아마 길드 내 4급 파티의 서열이 바뀌었을지도 몰랐다.
“큭……!”
점수판을 올려다보는 정영욱이 침음을 흘렸다.
믿었던 파티의 전사가 무려 4점이나 내줘버린 탓이다.
‘저 망할 전사는 뭐야!’
정영욱이 유지한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어딜 감히!”
하지만 김시후는 그의 일탈을 허락하지 않았다.
빠르게 덮쳐오는 공격 마법으로 인해 정영욱은 손을 다시 거둘 수밖에 없었다.
삑!
[8:3]
전투가 계속되고.
유지한 파티가 승리하기까지 앞으로 2점이 더 남은 상황.
“당장 이리 와요!”
정영욱은 파티의 전사를 자신에게 불러들였다.
몸 이곳저곳에 긁힌 상처가 난 그가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영욱아.”
그는 평소에는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 주는 전사다.
하지만 상대측의 유지한은 정영욱이 예상한 것보다 더 뛰어났다.
김시후만을 걸림돌로 생각하던 그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요소였다.
“됐어요!”
정영욱은 그의 사과를 무시하고 몸에서 마력을 끌어올렸다.
지금은 이 불리한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그런 큰 마법이 필요했다.
[골든 스톰]
고오오—
정영욱의 앞쪽으로 노랗게 반짝이는 마력이 모여들었다.
대련장의 땅이 거칠게 흔들리며 무언가 커다란 것이 일어날 조짐이 보였다.
‘고유마법인가!’
정영욱이 단단히 화가 났다는 걸 깨달은 김시후였다.
더불어 그의 실력이 전보다 더 늘었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지한이 형!”
“알아.”
유지한은 바위 뒤에 있는 김시후 쪽으로 합류했다.
그리고 정영욱의 마법을 기다렸다.
저 마법을 받아치거나 흘려보낸 뒤, 득점을 통해 이 대련을 끝내버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잠시만요!”
“……?!”
대련장의 관리자가 갑자기 대련을 중단시켰다.
“아무래도 지금 센서가 고장 난 것 같습니다!”
“예?”
정영욱이 마법을 취소하고, 관리자들은 유지한을 향해 다가왔다.
“잠시만요.”
무기 모양의 모형이 유지한의 팔에 닿았다.
그러나 스피커에서 울려야 할 경고음은 울리지 않았다.
김시후의 것도 마찬가지였다.
이어서 정영욱 파티의 센서도 반응이 없자, 관리자들이 매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끄응, 정말로 죄송합니다.”
“대련은 여기서 중단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이건……. 어쩔 수 없네요.”
아직은 불안정한 대련장의 시스템.
유지한은 결국 무기를 거두었다.
앞선 전투로 이미 충분히 즐겼으니 만족하고 넘어갈 생각이었다.
*****
전투가 끝난 뒤.
정영욱 파티는 비어 있는 휴게실로 들어왔다.
“젠자앙—!”
턱!
정영욱은 자신의 지팡이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반쪽짜리 주제에……!’
센서의 고장으로 인해 대련이 중단되어 승패는 끝내 가려지지 않았지만.
자신이 김시후에게 밀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정영욱이었다.
“내가 참 할 말이 없다.”
“센서 때문이겠죠?”
“어?”
“센서만 고장 나지 않았어도 괜찮았을 거예요. 그쵸?”
같은 파티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장 난 센서 때문에 4점은 날아갔다.”
“아니. 최소 5점은 날아갔을걸.”
“나 참, 지하 훈련소가 지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관리를 그렇게 하는 건지.”
“……그, 그렇지. 센서 때문이야.”
모두가 센서 탓을 하자, 유지한과 대치했던 전사도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뭐라도 탓하지 않는다면 그가 모든 비난을 받아야 할 테니까.
‘짜증나.’
푸른 달 영웅 학원의 졸업식 때 수석 졸업생에게만 허락되는 자리에 앉았던 김시후!
반면 차석인 정영욱은 일반 학생들과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그때 느낀 치욕감을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었다.
‘김시후, 김시후, 김시후……!’
정영욱이 김시후를 떠올리며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깟 하프 엘프에게는, 뭐 하나라도 지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