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이종족 (4)
김시후를 힐끗거리던 뱀파이어 여학생은 어른들의 대화에 방해가 되지 않게끔 사무실을 나섰다.
보호소장 정은영이 죄송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조금 소란스럽죠?”
“아뇨. 괜찮습니다.”
“처음에 소식을 듣고 너무 놀라서, 아이들한테 사정을 전부 다 말해 버렸거든요.”
보호소의 아이들에게 릭시스의 소식을 전하면 커다란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너무 놀란 나머지 그걸 다 말해 버린 정은영이었다.
향긋한 홍차를 한 모금 마신 김시후가 그녀를 보며 말했다.
“이 보호소는 언제 생긴 건가요?”
“하늘보호소는 설립된 지 9년이 조금 넘었어요.”
“상당히 오래됐네요.”
“저희보다 몇 년 앞서 만들어진 곳도 꽤 있답니다.”
한국에 존재하는 이종족 보호소는 총 16곳.
그중에서도 서울에 위치한 하늘보호소는 약 반년 뒤에 설립 10주년을 맞이하는 곳이었다.
“들어오니까 느낌이 묘하네요. 마치 한국이 아닌 것 같고…….”
“이종족 보호소에 처음 방문하시는 인간분들은 다들 비슷한 말씀을 하시죠.”
“아, 나쁜 뜻으로 드린 말씀은 아닙니다.”
“알고 있어요. 그렇지 않았더라면 릭시스를 구해 주시지도 않았겠죠.”
김시후의 솔직한 감상에 정은영은 작게 미소를 지었다.
딸각.
들고 있던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은 유지한이 잠시 주저하다가 말했다.
“소장님. 실례가 아니라면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네.”
“혹시 오늘 같은 일이 전에도 있었나요?”
“…….”
정은영은 탁자를 내려다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안타깝게도 몇 번이나 더 있었어요.”
“그때는 어떻게 됐나요?”
“마지막이 4년 전의 일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당시 납치된 1명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어요. 행방의 단서를 잡았을 즈음에는 이미 해외로 팔려나간 뒤였거든요.”
“유감입니다.”
릭시스의 일을 합치면 하늘보호소에 납치와 비슷한 사건은 총 4번 정도가 벌어졌었다.
그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피해자는 총 7명.
그중에 6명은 보호소로 되돌아왔지만, 1명은 결국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닙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정은영은 두 사람에게 허리를 90도에 가깝게 숙였다.
그것은 자신의 아이들을 도와준 영웅에게 그녀가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
탁자에 이마를 부딪히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였다.
그녀의 행동에 안절부절못하던 김시후가 말했다.
“괜찮으시면 저희가 적게나마 기부금이라도 드리고 싶은데…….”
“하늘보호소는 이미 차고 넘칠 만큼의 후원을 받고 있습니다.”
허리를 편 정은영은 고개를 좌우를 저었다.
이종족 보호소에는 정부 기관과 사회에 진출한 이종족, 그리고 익명의 이름으로 적잖은 후원을 들어오고 있었다.
땅값이 비싼 수도권에서 평수가 넓은 보호소를 유지할 수 있는 것도 바로 그 덕분이었다.
“그 후원금으로 아이들에게 경호원을 붙이는 건 어떤가요?”
“그건 저도 몇 번씩이나 생각했던 내용이에요. 실제로 영웅 출신의 경호원을 고용한 적도 있고요. 하지만 많은 아이들이 크게 반대해서 무산됐어요.”
“왜죠?”
“이종족이라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시선이 많이 따가운데……. 경호원까지 붙으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을 피하게 되더라고요.”
보호를 받는 피보호자에게 누군가 접근한다면 경호원들은 크게 경계를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종족은 주변 무리에 자연스럽게 섞이지 못하고 소외된다.
대상의 안전은 지켜질지 몰라도 남들처럼 평범한 생활은 불가능해지는 것이었다.
“그래도 당분간 아이들 등하굣길에 경호원을 붙여 둘 예정이에요.”
“하지만 그 이후에 오늘 같은 일이 또 벌어지면…….”
“저희가 더 도와드릴 게 없을까요?”
“여러분이 걱정하시는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정은영은 릭시스를 구해 준 유지한과 김시후에게 무척 고마워했다.
하지만 그들은 기본적으로 이종족 보호소와 크게 관련이 없는 타인이었다.
“이 보호소에는 가끔 정치인들이나 길드에서 찾아오는 일이 있어요. 그리고 그런 분들이 저에게 하는 말은 거의 다 비슷하죠. ‘더 많은 후원금을 지원해드리겠다, 한국을 이종족이 더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겠다’, 같은 것들이요.”
“…….”
“그 뒤에는 그분들이 보호소에 방문한 소식이 각종 뉴스에 실려요. 인터넷 기사에는 저희를 응원하는 댓글도 많이 달리고요. ……그런데 그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일은 드물더라고요.”
정치인이나 길드의 임원 중 누군가는 이종족 보호소에 방문하는 것을 단순히 언론에 실릴 사진을 찍기 위해서, 혹은 자신의 커리어에 적힐 내용 한 줄을 추가하기 위한 것으로 여기는 이도 있었다.
그처럼 세간에서 이종족 보호소에 보여 주는 관심은 마치 담배 연기와도 같았다.
아주 잠깐 눈에 보였다가 금방 날아가 버리는 것들 말이다.
“가장 큰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면, 지금까지 보호소로 돌아오지 못한 아이를 찾아다니던 때. 큰 길드에서 협조를 해 주셨었죠.”
“큰 길드라면…….”
“주사위, 영웅 윤도하 님이 계시는 곳이죠. 사라진 아이가 해외로 나갔다는 건 그분 덕분에 알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하늘보호소에게 의미 있는 도움을 준 건 윤도하의 주사위뿐.
이런 상황에 인원수도 적은 소규모 길드에서 무언가를 도와주겠다고 나선들, 실제로 도움이 될 확률은 매우 낮았다.
“하지만 그때도 후원자분들의 반발 때문에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습니다.”
각자 다른 이유로 영웅을 싫어하는 이종족은 많았다.
그리고 그건 하늘보호소의 후원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보호소에서 길드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게 된다면, 향후 불만을 가진 이종족들이 후원을 중단하는 것도 예상할 수 있었다.
‘쉽지 않네.’
유지한은 결국 입을 다물었다.
보호소는 단지 도움을 주고받는 일에도 이래저래 복잡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었다.
지금 그들이 나선다고 해서 특별히 좋은 결과를 낳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슥—
김시후는 갑자기 머리에 쓰고 있던 모자를 벗었다.
그의 뾰족 귀와 검지 않은 머리칼이 밖으로 드러났다.
“하프 엘프?!”
“네. 저는 인간이 아닙니다.”
정은영은 매우 놀란 듯이 손으로 입을 가렸다.
김시후가 모자를 벗기 전까지는 그를 인간으로 여겼는데.
그는 결코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하지만 꿀잼은 시후 씨가 길드장이라고…….”
“하프 엘프가 설립한 길드. 단지 그뿐이에요.”
“그, 그렇군요.”
하프(Half)는 본래 인간과 이종족,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존재들.
하지만 세간의 인식은 그들은 이종족으로 분류하는 편이다.
따라서 꿀잼은 한국 최초로 이종족이 설립한 길드라고도 말할 수 있었다.
‘이종족이 설립한 길드라니.’
이종족이 설립한 길드.
기존에 이종족 출신 영웅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쩌면 향후 상징적인 의미가 될 수 있는 특별한 조건이었다.
인간을 해친다고 알려진 이종족이 되레 앞장서서 보호하는 입장이 되니까 말이다.
김시후는 깊은 생각에 빠진 정은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또한 많은 사람에게 이종족으로 분류되는 존재입니다. 지금껏 자라오면서 직접 겪은 만큼, 이종족을 바라보는 차별적인 시선을 아주 잘 알고 있고요. 그런데 만약 이런 길드가 세상에 알려진다면 어떨까요?”
“그건……. 확실히 저도 궁금하네요.”
김시후의 머리칼을 바라보는 정은영의 머릿속에서 다양한 상상이 피어났다.
섣부른 기대이긴 하지만, 이종족이 대표인 길드의 존재는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이종족의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어쩌면 정말로…….’
종족 차별이라는 단단한 벽에 도전하는 변화의 바람.
정은영은 눈앞에서 그런 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
유지한과 김시후는 정은영의 허락을 받고 잠시 하늘보호소를 구경했다.
보호소 안내는 그들이 구해준 릭시스가 직접 맡았다.
도와준 보답으로 안내라도 해 주고 싶다는 모양이었다.
“형. 죄송해요.”
김시후는 사무실에서의 돌발 행동을 유지한에게 사과했다.
그가 인간이 아니라 이종족이라는 것은 아직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그것을 유지한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외부인에게 말해 버린 일에 대한 사과였다.
“나한테 미안할 거 없어.”
하지만 유지한은 고개를 저었다.
현장에서의 지시는 파티장인 유지한이 내리는 편이지만.
큰 결정을 내리고 길드를 이끌어가는 건 결국 길드장의 역할이었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도 돼. 나는 길드가 잘못된 방향으로 빠지려고 할 때. 그때만 나설 거야.”
“알겠어요.”
단순히 돈을 버는 일이든, 길드의 이름을 알려서 이종족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일이든, 뭐든 간에…….
유지한은 김시후가 원하는 방향에 최대한 잘 맞춰 줄 생각이었다.
‘재밌네.’
그리고 유지한은 오히려 단순히 큰돈을 버는 것보다 커다란 목표가 있는 편이 재밌게 느껴지기도 했다.
전에 먹어 보지 못한 새로운 음식을 맛보듯, 그 나름대로 도전하는 맛이 있었으니까.
“여기는 식당이에요.”
“상당히 넓구나.”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하게 잘 관리된 식당.
식탁과 의자도 저렴한 싸구려 제품이 아니라 충분히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제품들.
게다가 주방 기구들은 전자레인지, 오븐 등이 모두 고급 레스토랑에서나 볼 법한 비싼 제품이 놓여 있었다.
유지한은 감탄하며 말했다.
“여기 후원하는 사람들이 돈이 꽤 많은가 봐.”
“아무래도 그런가 봐요. 요리에 관심이 많은 친구가 소장님이랑 상담한 뒤에 저런 기구들이 새로 들어오더라고요.”
“좋은 일이네.”
“화가가 꿈인 친구에게는 물감이랑 붓을 주기도 하셨어요! 또, 프로그램 개발자가 꿈인 친구에게는 최신형 노트북을…….”
릭시스는 하늘보호소를 안내하며 보호소 소속된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꿈을 가진 아이들이 제 꿈을 키울 기회를 얻는다는 건 꽤 바람직한 일이었다.
이종족도 저마다 직업을 가지고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사회.
최근에는 일반 회사에서 이종족을 채용하면 세금 혜택을 주는 등, 정부 기관에서 드문드문 관련 정책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도 있었다.
“릭시스으으으—!!”
“프란 오빠?”
그때 1층 입구에서 교복을 입은 어느 남학생이 들어왔다.
키가 유지한의 배꼽쯤 오는 남자 드워프.
하늘보호소 소속의 프란 페이저였다.
“허억, 허억……! 너 역시 살아있었구나!”
부웅— 부웅—
이마에서 땀을 흘리며 헉헉대던 프란은 릭시스의 양손을 붙잡고 앞뒤로 크게 흔들었다.
그는 이미 보호소에 도착해 있는 아이들처럼 릭시스가 납치됐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급하게 돌아온 것이었다.
“혹시 너를 구해 주셨다는 분들이 뒤에 계신 이분들인가……?”
“맞아요.”
“오오오!”
프란은 꿀잼의 두 사람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어어……. 그래.”
쿵!
난데없이 이마를 바닥에 처박으며 절을 하는 프란이었다.
게다가 1층 전체에 울릴 만큼 크고 우렁찬 목소리!
다른 곳에 있던 사람들도 그 목소리를 듣고 문밖으로 나왔다.
릭시스는 그런 그가 조금 창피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아! 이렇게 훌륭하신 분들을 그냥 보내드릴 수는 없지.”
“뭐?”
“잠시만 기다려주십쇼!”
다다다—
프란은 어디론가 급하게 달려갔다.
그리고 잠시 후, 양손에 작은 상자를 1개씩 쥐고 나타났다.
“이거 제가 엄청나게 아끼던 보석입니다! 돈은 아니지만, 부디 이거라도 받아 주시길!”
다시 코앞까지 다가온 프란이 상자의 덮개를 활짝 열었다.
그러자 유지한과 김시후는 눈을 아주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이거……. 마결정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