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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66화 (66/300)

66화. 이종족 (3)

유지한과 여학생 간의 거리는 8m조차 안 될 만큼 좁혀졌다.

일자 복도에서 목표에 도달하기까지 남은 적의 수는 3명.

유지한은 눈앞의 남성들에게 말했다.

“계속할 거야?”

“이런 썅……!”

그런데 그때였다.

벌컥!

뒤쪽에 닫혀 있던 문이 열림과 동시에, 문 안쪽에서 기다란 검날이 유지한을 노리고 떨어져 내렸다.

까앙!

미리 그 기척을 감지했던 유지한은 검으로 그것을 막아 냈다.

“……?!”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남자는 회심의 일격이 막혀 당황한 듯 보였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것이…….

유지한이 막아 낸 검에는 마력이 담겨 있었다.

게다가 자리의 다른 이들과는 조금 다른 이 묵직한 공격.

평범한 아마추어의 솜씨는 아니었다.

‘영웅인가?’

상대를 바라보는 유지한이 아주 차가운 눈빛을 보였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영웅이 이런 일에 직접 연루되어 있다면…….

절대로 가만히 둘 수 없었다.

“젠장!”

남자가 유지한의 목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유지한은 그 공격을 힘껏 맞받아쳤다.

채앵!

“헉!”

남자의 검은 충격을 이겨 내지 못하고 반대로 튕겨 나갔다.

마력을 가졌기는 하나, 많이 쳐줘도 최대 5급 영웅 정도의 수준이었다.

유지한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의 팔을 깊게 베어 버렸다.

서걱!

“아윽!”

팔을 붙잡으며 쓰러진 남자를 끝으로 복도에 드러누운 인원은 총 11명.

이제 서 있는 사람은 유지한밖에 없었다.

“아으…….”

“끄으윽……!”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사람은 없는지.

닫혀 있는 문 안쪽에서 다른 기척이 느껴지지는 않는지.

모든 요소를 점검하던 유지한은 이내 등을 돌렸다.

“읍…….”

입과 팔다리가 묶여 있는 여학생은 복도의 구석에 앉아 있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유지한의 검을 바라보는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유지한은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가만히 있어.”

찌익!

그는 그녀의 입에 붙은 테이프를 떼어 냈다.

그리고 팔과 다리를 묶은 끈의 매듭을 풀어 내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상황인지 알고 있어?”

“……대충은요.”

“똘똘하네.”

자신이 팔려가는 상황을 알고 있는 여학생.

그녀는 겁을 많이 집어먹긴 했지만, 다행히 대화가 통했다.

나잇대에 걸맞지 않게 꽤 침착한 모습이었다.

“기다리면 경찰이 올 거야. 그때까지 나랑 있어 줘야겠다.”

“알겠어요.”

가능하면 그녀를 서둘러 집에 보내 주고 싶었지만.

난장판이 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증언이 필요했다.

다시 몸을 돌린 유지한은 마지막에 상대한 남성을 발끝으로 툭 건드렸다.

“너 아직 깨어 있는 거 다 알아.”

“……!”

일반인이라면 몰라도 영웅이 혼절할 정도의 상처는 아니었다.

“상황은 대충 들었다. 이 애를 팔아넘기려고 했다며?”

“…….”

“니들 윗선이 누구야?”

당연하게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유지한은 피가 흐르는 그의 상처를 발로 지그시 밟았다.

“끄으으윽……!”

“누구냐고.”

“몰라! 모른다고!”

남자는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끝까지 모른다고 대답했다.

안타깝게도 그건 정말로 거짓말일 확률이 낮았다.

이렇게 현장에서 직접 활동하는 잡졸들은 중요한 정보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모르면서 왜 이런 짓을 했어?”

“기, 기껏해야 수인일 뿐이잖아! 이종족이 어떻게 되든 그게 너랑 무슨 상관……!”

“입 닥쳐.”

이종족이라고는 해도 죄 없는 사람을 건드리다니.

꾸욱!

“끄아아악!”

유지한은 이미 한껏 벌어진 그의 상처를 발로 더 세게 밟아 댔다.

‘역겨운 놈들.’

그는 당장이라도 누워 있는 이들의 목숨을 끊을 수 있었다.

그 뒤에 처벌받지 않을 자신까지도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이들을 죽이는 건 한낱 화풀이에 불과했다.

도마뱀의 꼬리가 아니라 뿌리 자체를 뽑아내지 않는 한, 이런 행위가 완전히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

경찰들은 뒤늦게나마 오피스텔 앞에 도착했다.

유지한은 오피스텔로 올라온 그들을 째려보며 말했다.

“신고는 진작에 했는데, 왜 이리 늦은 겁니까?”

“죄, 죄송합니다.”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는 경찰관이었다.

유지한은 그를 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이종족인 걸 알리지 말 걸 그랬나.’

유지한은 신고 당시 피해자가 이종족임을 알렸다.

이종족이 섞여 있는 사건은 일반 사건과 별개로 처리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경찰은 현장에 너무나도 늦게 도착했다.

주로 이종족 사건을 처리할 때 경찰 쪽에서 피해가 많이 나온다는 건 알고 있지만…….

모든 상황이 마무리되고, 재신고를 한 뒤에야 경찰이 도착한 것이 영 마음이 들지 않았다.

“싹 다 죽이려다가 말았습니다. 빨리 데려가세요.”

“고생하셨습니다.”

경찰들은 복도에 널브러진 남자들을 한 명씩 체포했다.

그들은 치료를 받은 뒤에 강력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었다.

유지한은 마지막으로 상대한 남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사람은 마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네?!”

“길드에 소속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영웅일 겁니다.”

“그런……!”

현장에 도착한 경찰들은 아직 의식이 남아 있는 그를 체포하길 주저했다.

유지한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체포 도중에 역으로 제압당하는 것도 종종 발생하는 일이었으니까.

‘경찰청이 요즘도 영웅부랑 싸우고 있던가.’

경찰청과 영웅부는 오래전부터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묘한 대립 관계에 놓여 있다.

주로 경찰청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영웅에게 모두 빼앗기는 걸 견제하는 게 그 이유였다.

경찰이 출동할 때마다 반드시 영웅들이 함께한다는 계획이 추진된 때도 있었지만.

윗분들의 알력 다툼으로 계획은 금방 폐기되었다.

“수갑 주세요.”

별수 없이 유지한은 직접 마력 수갑을 받아서 남자의 손목에 채웠다.

마력을 억제하고 어지간히 단단한 수갑이니만큼 5급 영웅 정도의 힘으로 부서질 염려는 없었다.

“지한이 형!”

“왔냐.”

김시후가 자리에 도착한 건 유지한이 밖으로 나온 때였다.

경찰차와 구급차에 실리는 이들을 본 김시후가 아쉬운 듯 말했다.

“벌써 상황 끝났네요.”

“이것도 꽤 늦은 편이지.”

“근데 그거 마력 수갑 아니에요?”

“맞아.”

“……피해자는 저쪽이고요?”

“응.”

마력 수갑을 착용한 범죄자.

그리고 매우 수척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수인 여학생.

주변 단서만으로 상황을 이해한 김시후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시후가 저런 표정 짓는 건 처음 보네.’

유지한조차 처음 보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표정이었다.

부릉—

모든 범죄자를 실은 차량들이 출발했다.

멀어지는 경찰차를 지켜보던 유지한은 자리에 남아 있는 경찰관에게 다가갔다.

“아마 이 자리에는 오지 않겠지만, 이놈들 고객은 알파라는 이름의 남자라고 합니다. 참고해주시고 마땅한 처벌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차렷 자세로 대답한 경찰관이 여학생을 힐끔거렸다.

“저기……. 피해자분께서 영웅님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하십니다.”

“저한테요?”

*****

유지한과 김시후는 여학생을 데리고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경찰이 아니라 유지한이 직접 데려다줬으면 한다는 그녀의 부탁 때문이었다.

“저쪽이에요.”

“……!”

릭시스 오르야라는 이름의 여학생은 커다란 건물을 가리켰다.

그런데 그 건물은 평범한 주택이나 아파트 따위는 아니었다.

[하늘보호소]

그곳은 이세계에서 지구로 넘어온 이들 중에서도 약자 계층만을 모아 둔 이종족 보호소.

한국의 보육원과도 비슷한 사회복지시설로, 나이가 어린 이종족의 경우 성인이 되기 전까지 기본적인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하늘보호소 입구 앞에는 검정 앞치마를 두른 중년의 인간 여성 한 명이 나와 있었다.

릭시스는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며 외쳤다.

“소장님!”

“릭시스!!”

릭시스의 인사를 받은 그녀는 화들짝 놀란 모습이었다.

한걸음에 달려온 그녀가 릭시스를 와락 껴안았다.

“죄송해요. 소장님.”

“아니야. 네가 죄송할 게 뭐가 있겠어……!”

그들은 그렇게 약 30초 정도를 말없이 껴안고 있었다.

그 감동적인 재회가 조금 길어지자, 유지한은 멋쩍게 볼을 긁적였다.

“……아! 죄송해요!”

릭시스와 떨어진 그녀는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제가 아까 연락받았던 하늘보호소의 소장 정은영입니다. 꿀잼 길드에서 오신 유지한과 김시후 님, 맞으시죠?”

“맞습니다.”

“먼저 그쪽에 감사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아닙니다. 오히려 저희가 온 게 방해가 된 것 같네요.”

“아뇨아뇨! 그렇지 않아요! 우리 릭시스를 구해 주셔서 정말,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울먹이는 정은영은 연신 허리를 숙이며 그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늦게 도착해서 별로 한 일이 없었던 김시후는 반대로 그녀에게 고개를 숙여댔다.

“잠깐이라도 좋으니 안에 들렸다 가 주세요.”

“예.”

유지한과 김시후를 정은영을 따라 보호소 안으로 들어섰다.

작은 공원같이 꾸며진 마당을 지나 건물로 진입하자, 커다란 복도가 나왔다.

“왔다!”

“릭시스!”

“릭시스—!!”

복도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릭시스의 이름을 외치며 그녀를 반겼다.

귀가 뾰족한 엘프는 물론이고 키가 땅딸막한 드워프와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을 날아오는 수인.

그 외에도 이름 모를 다양한 이종족들이 릭시스 앞에 모였다.

정은영은 짐짓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 지금 손님이 계시잖니!”

“제가 다 데려갈게요.”

릭시스는 친구와 동생들을 이끌고 어딘가로 향했다.

다시 조용해진 보호소의 복도.

유지한 파티를 사무실로 안내한 정은영은 그들을 소파에 앉혔다.

“소장님. 차 가져왔어요.”

“고마워.”

사무실로 들어와 찻잔을 건넨 것은 붉은 기가 도는 눈동자와 머리칼을 가진 여성.

영웅부의 카지미르와 같은 뱀파이어였다.

‘죄다 이종족이구나.’

단지 몇 걸음 안으로 들어왔을 뿐인데.

유지한은 보호소의 문을 경계로 마치 지구가 아니라 이세계에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이종족이라는 것은 그만큼 매우 신기한 경험이었다.

“아까 말씀하신 게 이분들이에요?”

“맞아.”

“릭시스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여학생으로 보이는 뱀파이어는 유지한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친구를 구해 준 영웅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이었다.

유지한은 절도 있는 그녀의 자세를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의 바르네.’

각각의 세계마다 다르지만, 유지한이 알기로 뱀파이어의 예절에 허리 숙여 인사를 하는 것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즉, 이것은 한국에 와서 새로 습득한 지식이라는 것이다.

하는 행동이 평범한 인간과 비교해도 다를 게 없는 이종족.

반면에 세상에 침입자라는 적들이 존재하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었으니…….

‘세상에 이런 애들만 있으면 문제가 없을 텐데.’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는 능력, 혹은 지식을 가진 이종족들은 김시후의 어머니인 에르나 하스와 카지미르처럼 보기 드문 고급 인력이 되기도 한다.

거기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그들이 문제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는 유지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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