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이종족
“허어, 이런 괴냥이가 있었다니!”
“좋은 건가요?”
“딱 제가 원하던 모습입니다!”
민유리는 서울몬스터박물관에 민무늬 괴냥이를 보여 줬다.
박물관장인 김홍근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자신이 몇 달을 노력해도 구하기 힘들었다는 희귀한 개체였다.
그녀는 그 희귀한 괴냥이 한 마리를 2천만 원에 팔아넘겼다.
“혼자 받기 죄송해서……. 절반 정도는 꿀잼 측에 드리고 싶은데요.”
“원하신다면 나눠서 입금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평범한 괴냥이처럼 팔아넘기려던 민유리는 예상치 못했던 소득을 얻었다.
따라서 그녀는 박물관을 소개해 준 수고비라는 명목으로 납품 금액의 절반가량을 꿀잼으로 넘기고 싶어 했다.
“아뇨. 저희는 괜찮습니다.”
유지한과 김시후는 그 돈을 거절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길드의 최우선 영입 대상인 민유리에게 돈을 줄지언정, 반대로 받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러자 민유리는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면 다음에 제가 또 식사라도 대접해드릴게요. 그땐 시후 씨도 같이 가시는 거로.”
“저야 좋죠!”
다만 돈은 거절해도 식사 제안은 승낙했다.
그녀와 만남의 자리를 갖는 건 언제나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저는 이만 가 볼게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다음에 봬요!”
고개를 살짝 숙인 그녀는 그렇게 자리를 떠났다.
유지한은 그녀가 떠나기 전, 잠시 머뭇거리는 기색에서 영입 제안에 대한 답변을 아직 고민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급할수록 돌아가랬지.’
민유리는 동생을 위해 몇 년씩이나 혼자서 활동한 영웅.
그런 자의 마음을 얻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유지한은 그녀가 제안을 거부하는 것까지 염두에 두고 더 인내심을 가지기로 했다.
기다리다 보면 먼저 말을 꺼내는 시기가 올 테니…….
*****
다음 날.
유지한은 자신의 집 앞에서 택시를 불렀다.
자리에 도착한 택시 기사는 보조석의 창문을 내리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기사님, 안녕하세요.”
“항상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사무실에 갈 때마다 휴대폰을 통해 콜택시를 불렀다.
근처에 거주하는 택시 기사가 자주 잡히다 보니 그와 서로 안면을 튼 사이가 될 정도였다.
텅!
유지한이 아주 자연스럽게 택시 트렁크에 검을 집어넣었다.
뒷좌석에 놓아도 큰 문제는 없지만, 무기의 존재만으로 불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을 배려한 것이었다.
“오늘도 사무실 가시나요?”
“예.”
“가장 빠른 길로 모시겠습니다.”
자동차 의자에 앉은 유지한이 그것에 몸을 기댔다.
부릉!
무사고 16년 경력을 자랑하는 기사는 아주 능숙하게 운전을 이어 갔다.
보조석에 앉은 유지한은 그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다.
최근 골프장에서 카트를 운전한 것이 마지막인 장롱면허.
그런 그에게 베테랑 드라이버의 운전은 부러움을 느낄 만한 것이었다.
“양발 운전은 보통 위험하다고들 하죠?”
“어우! 운전할 때 양발은 너무 위험합니다. 제 동료 중에 계속 양발 운전을 고집하다가 황천길로 갈 뻔한 놈이 있었죠. 부디 운전은 한 발로만 하세요.”
“흠…….”
그렇게 택시를 타고 이동하던 도중.
차량은 신호등에 걸려 횡단보도 앞에서 멈췄다.
‘박물관 사고는 아직 조사 중이랬지.’
서울몬스터박물관에서 벌어진 사건은 현재 박물관 측과 영웅부에서 그 원인을 파악하는 중이었다.
박물관장 김홍근은 괴람쥐가 어디서 흘러들어온 것인지 알아내면 꿀잼에도 정보를 공유해 주겠다고 말했다.
유지한은 그 외에 사무실에서 할 일을 생각하며 멍하니 자동차 앞유리를 바라봤다.
“어, 저거…….”
신호를 기다리던 택시 기사가 무언가를 발견한 듯 고개를 길가로 돌렸다.
유지한은 그의 고개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수인이네.’
왼쪽 심장 부근에 학교 로고가 박혀 있는 하얀색 셔츠.
다리에는 학교에서 흔히들 보이는 회색의 치마.
거기까지만 본다면 평범한 교복을 입은 한국의 여학생이지만.
머리 위에 고양이처럼 뾰족하고 커다란 귀가 2개 달려 있는 그녀는 인간이 아니라 분명 이종족이었다.
‘저렇게 대놓고 다녀도 괜찮을까.’
그녀는 눈에 아주 잘 띄는 형광색 팔찌를 착용하고 있었다.
익숙한 무늬가 그려진 그것은 자신이 침입자가 아니라 지구에 정착한 이종족임을 외부에 알리는 물건 중 하나였다.
이종족들은 신체적인 특징을 포함해 저런 물건들을 잘 노출하려고 하지 않는다.
외부에 드러나는 순간 매우 불편한 시선이 그들을 향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런 것들을 스스럼없이 노출하고 있었다.
“보니까 괜히 불안하네요.”
“예?”
운전대를 잡은 택시 기사는 길가를 걷는 그녀를 보며 표정을 찡그렸다.
“제가 최근에 안 좋은 뉴스를 많이 봐서 그런지, 갑자기 막 공격받을 거 같고…….”
“교복 입은 걸 보면 평범한 여학생이잖아요. 정식으로 학교에 입학할 정도면 신분에 별문제가 없을 겁니다.”
“나이랑 관계없이 쟤들은 인간이 아니잖아요! 지금이야 영웅분이 옆에 계시니까 괜찮지만, 저같이 약한 사람들은 공격당하면 죽을 수밖에 없어요.”
“…….”
이종족인 여학생이 무섭다고 말하는 택시 기사였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괜한 걱정인가 싶겠으나…….
그의 인식은 일반적인 시민들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인간을 공격하는 침입자들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
그런데 여학생이 길을 지나간 그때였다.
세 명의 남자가 그녀와 조금 떨어진 뒤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각자 휴대폰이나 시계를 내려다보면서도 자꾸만 고개를 들어서 앞쪽을 힐끔거리는 그들.
‘이상하네.’
그들이 고개를 들었을 때 쳐다보는 것은 분명 여학생이었다.
유지한은 수상한 행동을 보이는 남자들이 조금 신경 쓰였다.
그 사이 신호등은 초록불로 바뀌어 택시가 앞으로 천천히 전진했다.
조금씩 택시와 그들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기사님. 잠시만요.”
*****
유지한은 결국 택시에서 내렸다.
그리고 여학생을 따라가는 듯한 남자들의 뒤를 밟았다.
그들이 여학생을 쫓는 것에 짐작 가는 구석이 있었다.
‘이게 괜한 걱정이길.’
대다수 시민은 이종족이 자신들을 습격하는 걸 걱정하지만.
근래 들어서는 그 반대의 사례가 나오기도 한다.
바로 인간들이 지구에 잘 정착한 이종족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증오범죄, 혹은 혐오범죄에 속하는 그것은 엄연한 범죄다.
아무리 그들이 싫다고 해도 죄가 없는 이를 공격하는 일은 없어야 했다.
‘이 근처에 학교가 있던가.’
유지한은 지도 앱을 열어서 근처의 건물을 탐색했다.
약 800M 거리에 여학생이 재학 중인 학교로 추측되는 고등학교가 하나 있었다.
“…….”
길가를 걷던 여학생은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녀가 골목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을 트는 순간, 그녀를 쫓던 남자들은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딴청을 피웠다.
그 행동으로 보아, 역시 그들은 여학생을 쫓아가는 게 맞았다.
‘들어간다.’
여학생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남자들은 그녀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갔다.
달리는 건 아니지만 묘하게 빠른 발걸음.
그들은 걷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일부러 살금살금 걷고 있었다.
‘역시 뭔가 있어.’
수상한 행동을 눈치챈 유지한은 세 사람이 들어간 골목의 초입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읍! 으읍!”
“……?”
그런데 골목 안에서는 이미 일이 터진 뒤였다.
그가 뒤쫓던 남자들은 각자 여학생의 몸을 붙잡았고, 누군가는 하얀 손수건으로 그녀의 코와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여학생은 온몸을 비틀며 반항했지만, 곧 옆으로 스르륵 쓰러졌다.
손수건에 약물 따위를 묻혀 놓은 것이 분명했다.
화들짝 놀란 유지한은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당신들 지금 뭐 하는…….”
그러나 그들은 유지한을 무시하고 반대쪽 길목으로 달렸다.
유지한이 서둘러 그들을 쫓던 찰나.
끼이익—!
골목을 빠져나가는 반대쪽 출구에서 회색의 자동차 한 대가 멈춰 섰다.
남자들은 여학생을 데리고 밴으로 추측되는 차량에 올라탔다.
미리 문을 열어놓은 차량 역시 그들과 한패였다.
“무슨 영화 찍나……!”
정말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영화가 아니라 실제 상황!
차량은 사람을 태우자마자 빠르게 앞으로 튀어나갔다.
뾰롱!
갑자기 마음이 급해진 유지한은 본능적으로 품속에 실프를 소환했다.
[헤이스트]
그는 조금씩 멀어지는 회색의 차량을 쫓아 바람을 가르며 달렸다.
“우왁!”
“꺅!”
차량은 앞을 가로막는 것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직진했다.
지나가는 길에 서 있던 사람들은 옆으로 몸을 던지며 차를 피했다.
그렇게라도 피하지 않았다면 정말로 사고가 터졌을 만큼 정신 나간 운전이었다.
‘안 놓친다!’
후우웅—!
유지한은 몸의 마력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그에 부응하듯 실프는 그의 몸에 최대의 버프 효과를 부여했다.
설령 실프가 탈진해서 정령계로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눈앞의 차량을 쫓겠다.
그 생각뿐이었다.
*****
회색의 차량은 누군가가 따라오는 걸 눈치채고 사람이 가기 힘든 찻길로만 달렸다.
하지만 유지한은 마치 자신이 차가 된 것처럼 그들을 쫓았다.
“허억, 헉……!”
차량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상황.
온몸이 땀으로 젖을 정도로 달린 유지한은 쫓는 걸 포기하고 어느 건물의 옥상에 올랐다.
추적이 붙는 이상 차량이 도저히 목적지로 향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현 위치에서 서쪽으로 가면 차량번호 123가 4568을 마주칠 확률>
<3%>
<—현 위치에서 동쪽으로 가면 차량번호 123가 4568을 마주칠 확률>
<90%>
……
…….
그는 샘플링을 연속 사용하며 높이가 엇비슷한 건물들의 옥상을 뛰어넘었다.
이 끝에 실제로 그 차량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믿고 휴대폰의 지도를 보며 달렸다.
그리고 15분쯤 지났을까.
“찾았다.”
그는 마침내 조금 전까지 뒤쫓던 차량을 찾아냈다.
시동이 꺼진 차량은 인적이 드문 어느 빌딩 앞에 주차되어 있었다.
쫓던 남성들은 어깨에 하얀 마대자루를 메고 건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경찰이 너무 늦는데…….’
경찰에는 이미 신고를 했지만 언제 도착할지는 알 수 없었다.
유지한은 김시후에게 건물의 위치를 공유한 뒤 전화를 걸었다.
“시후야. 너 지금 내가 보낸 위치로 와라.”
—갑자기 왜요?
“누가 납치되는 장면을 본 거 같아.”
—네?! 납치요?
“올 때 장비 챙겨서 와.”
통화를 끊은 유지한이 회색의 차량 근처로 다가갔다.
해당 차량의 운전석에는 검은색 마스크를 착용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쿵! 쿵!
유지한이 운전석의 창문을 두드렸다.
운전자는 그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란 모습이었다.
“내려.”
“…….”
차에서 내리라는 유지한의 요구를 무시하는 운전자.
그는 휴대폰을 내려다보며 화면을 빠르게 두드리고 있었다.
쩌적!
그가 다른 행동을 취하기 전에 유지한은 운전석의 창문을 부숴 버렸다.
부서진 강화 유리의 사이로 팔을 쑥 집어넣자 그가 몹시 당황하며 외쳤다.
“자, 잠깐만!”
“잠깐이고 뭐고. 내려와서 얘기해.”
“너 영웅이지? 내, 내가 설명할 수 있어. 그러니까……!”
쩌저적!
유지한은 마력을 두른 팔로 균열이 간 창문을 전부 뜯어냈다.
“컥!”
운전자의 멱살을 잡고 차에서 끌어 내린 뒤, 앞 건물의 창문에서 시야가 잘 닿지 않는 사각지대로 이동했다.
손을 탁탁 털어낸 유지한이 힘없이 바닥에 내팽겨쳐진 남성에게 말했다.
“딱 18초 준다. 설명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