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박물관 (3)
“제가 이번에 사냥한 괴냥이 중에 민무늬가 있을 건데…….”
“어? 그래요?”
“한번 가져가 볼까요?”
민유리가 최근 사냥한 괴냥이 중에는 털이 온통 하얀색인 민무늬 괴냥이가 포함되어 있었다.
박물관장 김홍근은 그 물건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길 원했다.
“빠르면 40분 내로 박물관에 오신답니다.”
“여왕 괴미에 이어서 구하기 힘들던 괴냥이까지……! 덕분에 박물관 개장이 더 빨라질 것 같습니다!”
“에이, 괴냥이는 저희가 사냥한 것도 아닌데요.”
꿀잼 덕분에 구하기 힘들던 몬스터들을 얻게 된 서울몬스터박물관.
김홍근은 밝게 웃으며 두 사람을 추켜세웠다.
자신의 휴대폰을 내려다보던 그가 말했다.
“창고로 한번 가 보실까요?”
“예.”
“여왕 괴미의 대금은 현재 박물관 직원이 입금 처리 중입니다.”
유지한과 김시후는 김홍근을 따라 박물관에 진열되는 몬스터를 보관 중인 창고로 이동했다.
창고에는 이미 수많은 몬스터들이 박제가 되어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김시후가 말했다.
“이미 진열된 것들도 그렇지만, 진짜로 살아 있는 것 같네요…….”
“후후. 살아 있을 때의 생동감을 느끼게 하려고 여러 전문가분이 노력하고 계십니다.”
살아 있는 것 같지만 미동조차 없는 몬스터들.
김시후의 반응에 김홍근은 상당히 흡족해했다.
현역 영웅이 저런 반응을 보여 준다는 것은 그만큼 준비가 잘 되어 간다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유지한은 창고에서 몇몇 사람들이 걸어가는 방향을 가리켰다.
“여왕 괴미는 저쪽에 있나 보네요.”
“지금쯤 몬스터 박제사가 여왕 괴미의 몸에서 내장을 긁어 내는 작업을 하고 계실 겁니다. 작업이 끝나면 솜뭉치로 그 속을 채울 거고요.”
“으…….”
“사체가 꽤 크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겠군요. 꽤 혐오스러운 장면일 수도 있으니까 직접 보시지는 않아도 좋습니다.”
“그럼 넘어가죠.”
솔직히 어떤 장면일지 궁금하긴 했지만.
유지한은 김시후의 비위를 고려하여 굳이 내장을 꺼내는 장면을 보지는 않기로 했다.
“방금 직원에게서 입금 처리가 완료됐다는 문자가 왔습니다.”
“확인해볼게요.”
김시후는 휴대폰으로 길드 계좌의 금액을 확인했다.
1분 전 서울몬스터박물관에서 5천 5백만 원을 송금한 기록이 보였다.
“500만 원이 잘못 들어온 것 같은데요?”
“훌륭한 물건을 보내 주신 것에 대한 저희의 작은 성의입니다. 부디 받아 주시길…….”
“흠! 감사합니다.”
유지한은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몬스터를 판매한 길드로써 구매자가 저런 성의를 보여 주는 것은 상당히 기쁜 일이었다.
드르륵—
그때 박물관의 직원이 무언가가 잔뜩 담긴 커다란 카트를 끌며 창고로 들어왔다.
유지한은 옆으로 길을 비켜 주며 카트에 실린 몬스터를 확인했다.
‘괴람쥐네.’
괴람쥐.
한국에서 많이 보이는 다람쥐가 몬스터로 변한 녀석들이었다.
양이 꽤 많은 것으로 보아 꽤 넓은 전시대에서 전시할 모양이었다.
“음?”
그런데 괴람쥐를 바라보던 유지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카트에 실린 괴람쥐는 털 여기저기에 붉은 피가 묻어 있었 지만, 전체적으로 상태가 너무 멀쩡했다.
모두 눈을 감았고 미동조차 없이 얌전히 실려 있는데…….
그는 자꾸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관장님. 저 괴람쥐 보이십니까?”
“네. 오늘 들어오기로 예정된 몬스터 중 하나입니다.”
“저거 정말로 죽은 거 맞나요?”
“네?”
“상태가 너무 멀쩡한 게……. 느낌이 영 좋지 않은데요.”
“…….”
박물관에 들이는 몬스터들은 모두 죽은 몬스터뿐이다.
유지한의 말은 박물관 개장을 준비하면서 새로 채용한 직원들이 모두 한 번쯤은 하는 소리였다.
평소의 김홍근이라면 웃어넘길 이야기.
“흠…….”
하지만 유지한 파티는 이번에 여왕 괴미를 사냥한 영웅들이다.
그런 영웅 중 하나가 저렇게까지 말하니, 김홍근도 조금이나마 불안을 느꼈다.
마력을 가진 영웅들의 감이라는 건 쉽게 무시할만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거기 멈춰 봐!”
“네?”
김홍근은 카트를 끌던 직원을 멈춰 세웠다.
“잠깐 물건 좀 확인하지.”
“알겠습니다.”
세 사람은 괴람쥐가 실린 카트로 가까이 다가갔다.
하나같이 축 늘어져 있지만, 상처가 하나도 없는 괴람쥐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유지한은 그중에 가장 작은 녀석의 목을 손으로 집었다.
“……?”
그런데 그는 괴람쥐의 몸에 손이 닿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손을 타고 미지근한 체온이 느껴진 탓이었다.
몬스터의 사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높은 온도.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은 한, 시간이 지난 몬스터의 사체는 종과 관계없이 모두 얼음장처럼 차가워야 정상이거늘.
“이거 역시 이상합니다. 체온이 느껴지는…….”
바로 그때였다.
그가 손으로 잡은 괴람쥐가 갑자기 눈을 번쩍하고 떴다.
“삐욕——!!”
“……!”
있는 힘껏 울어 재끼는 괴람쥐!
우둑!
유지한은 손아귀에 힘을 주어 괴람쥐의 목뼈를 부숴 버렸다.
하지만 녀석이 울음소리를 아주 크게 낸 덕분인지 카트에 실려 있던 괴람쥐들은 단체로 눈을 떴다.
마치 오랜 동면을 끝낸 동물처럼…….
다다닷—
녀석들은 단체로 카트를 빠져나와 어디론가 달려 나갔다.
“으아아!”
설마 진짜로 살아 있는 몬스터일 줄이야!
김홍근은 양손으로 머리를 보호하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무리 약하기로 소문난 5급 몬스터라도 일반인이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윈드 애로우]
김시후는 허공에 생성한 윈드 애로우로 뿔뿔이 흩어지는 괴람쥐를 쫓았다.
최근 영약으로 강화된 화살의 속도는 괴람쥐들의 달리기 속도보다도 조금 더 빨랐다.
김시후는 지팡이를 요리조리 휘두르며 녀석들의 몸에 화살을 꽂았다.
‘수가 너무 많아.’
그러나 카트를 탈출한 괴람쥐의 수는 마법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었다.
서걱!
검을 꺼내든 유지한은 자신에게 덤벼드는 괴람쥐를 베었다.
“시후야! 영웅부에 전화해!”
“네!”
*****
김시후가 지하에서 김홍근을 보호하는 사이, 유지한은 창고에서 달아나는 괴람쥐를 쫓아 박물관을 쏘다녔다.
그리고 괴람쥐를 추격한 지 30분째.
그는 아직 모든 괴람쥐를 찾아내지 못했다.
‘이러면 곤란한데…….’
여기저기 깨져 있는 유리 창문.
권총을 들고 박물관을 수색하는 경찰들.
박물관 밖으로 빠져나간 것들은 처리가 확인됐지만, 빠져나가지 않고 안에 숨어 버린 괴람쥐는 잘 보이지 않았다.
“남은 게 11마리라고?”
—네. 김홍근 관장님과 확인했어요.
창고에 남아 있는 김시후는 유지한과 전화로 소통했다.
아직 박물관에 숨어 있는 괴람쥐는 11마리나 남아 있었다.
숨어 있던 괴람쥐에게 습격당한 경찰만 약 3명.
그중 1명은 이미 병원으로 실려 갔다.
이러다 자칫 잘못하면 개장을 앞둔 박물관에 MA가 선언될 수 있었다.
<—괴람쥐가 이 건물 1층에 숨어 있을 확률>
<98%>
샘플링이 알려 주듯이 분명 이곳에는 괴람쥐가 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는 않았다.
다람쥐보다는 크지만, 여전히 작은 크기인 괴람쥐는 사람의 눈이 잘 닿지 않는 영역에 몸을 숨길 수 있었다.
“어쩌다 살아있는 몬스터가 들어온 건지.”
이렇게나 많은 양의 괴람쥐를 모두 수면 상태에서 가져오는 건 일반적인 상식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김홍근은 현재 이 괴람쥐들이 들어오게 된 경로를 찾아보고 있었다.
“저기 있다!”
경찰의 목소리에 유지한은 고개를 홱 틀었다.
괴람쥐 하나가 앞으로 달려가는 게 보였다.
앞으로 권총을 겨눈 경찰들이 놈을 쫓는 사이, 유지한은 그들과 정반대편으로 달렸다.
한쪽으로 쭉 이동하다 보면 같은 위치로 돌아오는 구조였기 때문이었다.
“옳지.”
그의 예상대로 괴람쥐와 경찰들이 한 바퀴를 돌아 앞에서 달려왔다.
유지한은 네발로 빠르게 뛰는 녀석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다다닷!
그런데 갑자기 괴람쥐가 박물관의 기둥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경찰들이 총을 겨눠 보지만 쉽게 맞출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뾰롱!
[윈드 밤]
유지한은 실프의 도움을 받아 윈드 밤을 사용했다.
점프와 동시에 위로 높게 떠오르는 몸.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은 그가 기둥을 타고 오르는 괴람쥐를 검으로 그어 버렸다.
검에 베인 괴람쥐는 아래로 추락했다.
콱!
반면 그는 아래로 떨어지기 직전, 기둥을 붙잡아서 몸을 지탱했다.
“애먹이기는…….”
유지한은 품속의 실프를 확인했다.
이동기가 생긴 건 좋지만 정령 마법은 연속 사용 시 정령의 부담이 크다.
괴미굴에서 여왕괴미와 싸울 때는 운이 좋았길 망정이지, 주머니 속에 있던 실프는 그가 보지 못하는 사이 거의 탈진할 뻔했다.
‘마결정을 구해 보든가 해야지.’
정령을 자유롭게 다루려면 높은 수준의 성장이 필요했다.
당장 그가 떠올리는 건 마결정을 통한 정령의 성장.
하지만 그것은 구하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니…….
현재로서는 정령 마법에 너무 의지하지 않는 수밖에 없었다.
주르륵—
그는 기둥을 잡고서 아래로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그런 그에게 어느 경찰관 하나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기……. 앞에 누가 찾아오셨는데요.”
“예?”
“같은 영웅이신 거 같습니다.”
어느 영웅이 유지한을 찾고 있다는 모양이었다.
그 경찰을 따라간 유지한은 박물관 앞에서 칠라와 함께 있는 민유리를 만났다.
“유리 씨!”
“전화를 걸었는데 지한 씨랑 시후 씨 두 분 다 안 받으셔서…….”
“아, 죄송합니다. 지금 안에서 일이 터져서요.”
“네? 무슨 일이요?”
유지한은 그녀에게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했다.
사체가 아니라 살아 있는 괴람쥐가 납품되어 탈출한 일.
그 소식을 전해 들은 민유리가 말했다.
“저도 도와드릴까요?”
“그러면 너무 고맙죠.”
“그런데 칠라가 들어가기에는 건물 입구가 조금 좁네요.”
“지하로 들어가면 됩니다.”
유지한은 그녀를 이끌고 박물관 지하로 향했다.
그렇게 돌아온 건물 1층.
따라오는 내내 유지한을 바라보던 칠라는 갑자기 귀를 쫑긋거렸다.
“찍!”
“벌써 찾았나 봐요.”
“예?”
유지한이 의문을 표하기가 무섭게 칠라가 네발로 어디론가 달렸다.
녀석이 향한 방향은 이미 전시된 몬스터 박제의 뒤편.
괴람쥐는 거기에 숨어있었다.
퍽!
가벼운 주먹질로 녀석을 기절시키는 칠라였다.
‘감이 좋네.’
유지한은 칠라가 단순히 감이 좋은 몬스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박물관을 돌아다니는 와중 칠라는 계속해서 숨어 있는 괴람쥐를 찾아냈다.
같은 쥐과에 속하는 덕분일까.
녀석은 아주 뛰어난 추적 능력을 보여 주었다.
유지한은 그것에 크게 감탄하며 말했다.
“저 녀석, 대단한데요…….”
“그렇죠?”
“정말로 집에서 기르던 애완동물이었어요?”
“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점점 크기가 불어나더니, 집에서는 도저히 기를 수 없을 정도로 커졌어요.”
칠라가 칭찬받자 신이 난 민유리는 이것저것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평범한 친칠라와 달리 물 목욕을 선호한다든지.
마지막으로 배변을 본 게 거의 3년 전인데도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든지.
크기만 제외하면 관리도 아주 편한 놈이었다.
“찍!”
결국,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칠라는 괴람쥐를 10마리나 잡아냈다.
유지한이 기둥을 타고 잡아낸 것과 합치면 박물관에 숨어든 모든 놈을 사냥한 것이었다.
‘갖고 싶다.’
유지한은 자신을 쳐다보는 칠라에게 시선을 돌려주었다.
가능하다면 길드에 하나 들여놓고 싶은, 그런 생명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