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61화 (61/300)

61화. 박물관

길드 주사위의 본사 건물.

그곳 대부분의 층은 소속 길드원에게 활짝 열려 있다.

비교적 신축인 지하의 훈련소부터, 길드 사업을 추진하는 직원들이 상주하는 층, 영웅들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넓은 휴게실과 수면실 등…….

특정한 날에 허락만 받는다면 길드와는 관련 없는 외부인들도 자유롭게 내부 견학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런 곳에서도 오직 길드장 윤도하가 직접 허락하지 않고서는 입장할 수 없는 꼭대기 바로 아래층.

같은 길드원들도 2급 이상의 파티에게만 이따금 출입이 허용되는 그곳.

윤도하는 그 층에 있는 정수기 앞에서 커피를 타고 있었다.

쪼르르—

커피 가루가 들어간 종이컵에 뜨거운 물이 부어졌다.

물의 양은 정확히 77.7mL.

“하여간 까탈스러워서는.”

물을 소수점까지 계량하며 작게 구시렁거리던 그는 종이컵을 플라스틱 쟁반에 올려 두었다.

그 쟁반에는 믹스커피뿐만 아니라 평범한 물, 차가운 식혜, 그리고 사향 고양이의 배변에서 추출한 루왁 커피가 담긴 종이컵까지 놓여 있었다.

그는 그것을 들고 같은 층의 자동문으로 들어갔다.

탁!

윤도하가 음료들이 올라간 쟁반을 탁자 위에 거칠게 내려놓았다.

동시에 3개의 팔이 그 위로 뻗어졌다.

“감사!”

“잘 마실게요!”

“역시 주사위. 언제나 서비스가 좋아.”

“77.7mL 맞지?”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각자의 음료를 가져갔다.

평범한 물을 제외하고 쟁반 위에 있던 음료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왜 여기 와서 서비스를 찾냐고.”

마지막에 남은 물컵을 든 윤도하가 미간을 찌푸렸다.

한 거대 길드의 수장이 직접 이런 잡일을 하다니.

그래도 이 정도 수고는 밖에 없는 것이…….

지금 자리에 모인 이들은 모두 그와 같은 거대 길드의 길드장이기 때문이었다.

“올 때마다 잘 해 주면서 불만은.”

식혜를 가져간 사람은 자리의 누구보다 크고 우락부락한 근육질 몸의 소유자.

워리어즈의 길드장 강준일.

“음~ 향기 좋네요.”

루왁 커피를 가져간 사람은 이 자리의 유일한 여성.

스노우볼의 길드장 김민정.

“이거 0.1mL 정도 많은 거 같은데?”

77.7mL의 물을 탄 믹스커피를 가져간 사람은 머리칼을 붉게 물들인 젊은 남성.

자타공인 대한민국 1위 길드 레드홀의 길드장 백강천.

윤도하는 백강천의 불만에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닥치고 먹어.”

“예, 예.”

백강천은 웃으며 커피를 마셨다.

“다른 길드장들은 소식 없어?”

“그렇지, 뭐.”

윤도하가 대한민국의 10대 길드의 수장들을 초대한 자리.

본인을 제외하고 9명을 초대했으나 실제로 자리에 참석한 사람은 평소에도 교류가 있는 3명뿐이었다.

해외에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도 대부분이 바쁜 일정을 핑계로 이곳에 오지 않았다.

“더 올 사람은 없을 것 같으니까 시작한다.”

윤도하가 리모콘을 조작하여 방 안에 있던 모니터의 전원을 켰다.

화면에 떠오른 것은 계양산에서 발견된 불괴미였다.

“소식은 다 들었겠지.”

“계양산에 괴미굴이 생겼지.”

“그리고.”

“4급 MA에서 저 불괴미가 나왔고.”

“여왕도 있었다며?”

강준일의 질문에 윤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괴미굴 내부에서 발견된 일반인 생존자 중 하나가 괴미들을 조종했다는 이야기가 퍼지고 있어.”

“그게 말이 돼? 헛것 본 게 아니고?”

“조종은 모르겠지만 최소한 괴미에게 공격받지 않았다는 건 확실해.”

“…….”

“그리고 영웅부에서 그 생존자를 조사한 결과, IUPC의 회원임이 드러났다.”

IUPC.

국제 크리처 보호 연맹이 언급되자 강준일이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 전 워리어즈의 파티도 현장에서 그들에게 방해받은 적이 있었다.

“또 그 새끼들이야.”

“요새 뭐 사건 터질 때마다 빠지는 곳이 없네요.”

IUPC는 최근 여러 MA 근처에 등장해서 조직적으로 시위를 벌이는 등, 전보다 더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중이었다.

그 수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었기에 영웅부는 물론이고 많은 길드에서 그들 때문에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다.

“요새 지방에서 몬스터가 사라지는 것도 알고 있지? 그것도 IUPC에서 건드렸다는 소문이 있어.”

“무슨 짓을 벌이려는 건지…….”

“이번에 잡힌 사람은 어디 있어요?”

“영웅부에서 아직 심문 중이야.”

계양산에서 유지한에게 잡힌 IUPC의 회원은 현재 영웅부에서 심문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신분을 통해 알아낸 정보를 제외하고는 소득은 거의 없었다.

묵언 수행하듯 모든 질문에 입을 다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탁!

강준일이 오른손으로 쥔 주먹을 왼손바닥에 부딪히며 말했다.

“그냥 밟아 버리면 안 되냐?”

“되겠냐, 멍청아.”

“괴미굴에서 불괴미 나왔잖아. 그 괴미산을 조금만 뽑아내서 눈에다 뿌려 주면…….”

“이미 IUPC에서 눈치깠다.”

“쳇.”

IUPC의 회원이 사로잡혔다는 소식은 외부에도 전해졌다.

영웅부 서울 지부 앞에서는 IUPC의 다른 회원들이 죄 없는 그녀의 구속을 풀어 달라고 시위하고 있었다.

최근 영웅부에서는 계속되는 돌연변이의 등장이나 영웅들의 죽음으로 인해 적잖게 비난을 받는 처지.

나날이 상승세인 세력을 쉽게 무시할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파악된 괴미굴의 지도다.”

띡!

화면에 커다란 지도 같은 것이 떠올랐다.

산 모양의 이미지 아래에 그려진 그것은, 모든 괴미를 퇴치한 이후 마법사들이 힘을 합쳐 만들어낸 계양산 괴미굴의 지도였다.

“아따, 깊게도 팠네…….”

구불구불 꼬이고 여러 개의 방이 존재하는 괴미굴.

절대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만한 것이 아니었다.

김민정이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정도면 산이 무너지는 거 아니에요?”

“속을 메꾸는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야. 나도 회의 끝나면 잠깐 도와주러 갈 거고.”

“도하 오빠가 가면 금방 끝내겠죠.”

땅의 정령 무무를 이용한다면 대형 포크레인을 가져다 놓는 것보다 훨씬 빠른 작업이 가능할 것이다.

한편, 괴미굴을 보던 백강천은 의문을 표했다.

“저 많은 흙이 다 어디로 간 거지?”

“그게 가장 이상한 점이지.”

저 정도의 양이라면 흙을 옮길 때 다른 이의 눈에 띌 수밖에 없다.

그런데 주변에서 그런 신고가 없었다는 것은…….

“마법인가.”

“아마도.”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라 마력을 다루는 이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

매우 낮은 확률이지만 윤도하처럼 땅의 정령의 소유자가 도와줬을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마법을 쓰는 마법사들의 짓일 터.

“몬스터를 도와주는 인간이라…….”

“누군지 얼굴 좀 보고 싶네요.”

“헹! 보나 마나 이종족 짓이겠지.”

강준일은 이번 건을 이종족의 소행으로 추측했다.

평소 인간에게 불만을 가진 녀석들이 인간을 곤란에 빠뜨리기 위해 일을 벌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세계에서 넘어오는 대부분의 이종족이 마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성은 충분했다.

“전에 사건들 기억하지? 우리 통수 맞은 거.”

한국에 잘 정착한 줄 알았던 이종족들이 밤마다 몰래 인간을 습격하던 사건.

안 그래도 좋지 않은 이종족의 인식이 더 나빠질까 봐 영웅부의 지시로 외부에는 자세한 사정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알고 있었다.

“역시 이종족은 지구에서 깡그리 쫓아내 버려야 해.”

“무식한 소리 마라.”

“걔들이 아니면 누가 이랬겠냐고! IUPC랑 손잡고 일 터트린 거라니까.”

“이종족과의 공생은 피할 수 없는 장기적인 숙제야.”

“어련하시겠어요.”

윤도하는 이종족과의 화합을 지지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과거 침입자들에게 커다란 피해를 입었던 워리어즈는 그렇지 못했다.

“백강천. 너는 어떤데.”

“나는 평화가 좋지.”

레드홀의 백강천은 실실 웃으며 평화를 주장했다.

“우리 애들 중에는 이종족도 조금 섞여 있거든.”

“민정아. 넌?”

“저는 중립. 그래도 기왕이면 평화가 좋겠죠?”

“뭐, 누군 평화를 싫어하는 줄 아나.”

혼자만 다른 의견을 내는 것 같아 투덜거리는 강준일이었다.

윤도하는 다른 길드장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면 다들 동의한 것으로 보고……. 다음 주까지 각자 길드에서 IUPC 감시를 위한 인력 좀 뽑아둬.”

“감시하려고?”

“움직임이 너무 수상해서 계속 지켜봐야겠어.”

윤도하는 다른 3개 길드와 협력하여 IUPC의 활동을 감시할 생각이었다.

사회에 계속 혼란을 일으키는 이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이종족 단체는 요새 잠잠하지?”

“그렇지.”

지구에 정착한 이종족들이 모인 단체들.

예전에는 계속 사고를 치고 다녔는데, 요새는 활동이 뜸한 편이었다.

“어쩌면 거기가 IUPC와 연결고리가 있을지도 모르지. 그쪽은 내가 따로 조사할게.”

“도하 오빠가 혼자 고생이 많네요.”

“알면 너네도 손 좀 보태.”

“네~”

세간에서 붙여 준 악동이라는 이름답지 않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래저래 활약하는 윤도하였다.

그때 백강천이 손을 들며 말했다.

“나 너한테 물어볼 거 있는데.”

“뭐?”

“최근에 누굴 좀 찾아다녔다며?”

“…….”

백강천을 바라보는 윤도하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그건 어디서 들었어.”

“레드홀의 정보력을 무시하면 곤란하지.”

“참 한가한 정보력이네.”

“5급 파티 하나뿐인 길드. 그걸 찾아서 뭘 한 거야?”

“인수 제안.”

김민정과 강준일의 눈이 크게 뜨였다.

“네가 직접 길드 인수 제안을 했다고?”

“어디에요, 그게?”

“알 거 없어. 이미 까였으니까.”

“와! 주사위의 인수 제안을 거절했어요?”

겨우 5급 파티가 거대 길드의 제안을 발로 차 버리다니!

역사상으로 봐도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다.

“더 궁금해지는데? 우리가 접촉해 봐도 되냐?”

“물론이지. 나랑 싸우고 싶으면.”

윤도하는 그렇게 말하며 싱긋 웃었다.

내가 못 가지는 걸 니들한테 주겠냐.

그런 형식의 대답이었다.

“쩝, 그럼 나는 됐다.”

“저도요.”

“…….”

다른 사람들이 쉽게 포기할 때.

백강천은 대답 없이 그저 실실 웃고만 있었다.

윤도하는 그 웃음이 조금 거슬렸다.

*****

“……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밝은 표정으로 통화를 하던 김시후가 휴대폰을 귀에서 내렸다.

옆에서 기다리던 유지한이 그에게 물었다.

“뭐래?”

“괴미굴에서 발견된 다른 모든 괴미의 소유권을 포기하는 대신 여왕괴미부터 불괴미까지 전부 꿀잼이 가져가도 좋다, 래요.”

“그거 잘됐다.”

계양산에 발생한 괴미굴에 들어간 날.

그곳에서 사냥한 괴미의 소유권을 어떻게 나눌지, 강시욱 파티나 영웅부와 함께 상의한 결과.

유지한 파티는 일괴미나 병정괴미들의 소유권을 포기하고 특수한 개체들의 소유권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이득이다.’

평범한 일괴미가 시장에서 잘 팔리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이번 건은 아주 괜찮은 거래였다.

특히 괴미굴에서 하나뿐이었던 여왕괴미를 얻어 낸 것은 큰 이득이라고 볼 수 있었다.

“여왕괴미는 바로 박물관에 납품하면 되겠어.”

“몽땅에 연락할게요.”

현재 서울에서 개장을 준비 중인 몬스터 박물관.

몬스터의 사체를 영구 보존할 수 있도록 특수 처리하여 일반인들도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이었다.

몽땅을 통해 들어온 소식에 따르면 그 박물관 측에서 여왕괴미를 구한다는 소식이 있었다.

‘역시 그쪽에서는 별말 없나 보네.’

현장에서 함께했던 문경진의 지인들은 유지한 파티가 여왕괴미의 소유권을 가져가는 것에 딱히 반대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그쪽들은 계속 입만 나불거렸지 괴미를 잡는 데 별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저 보여 주고 증명할 뿐.’

반면 유지한은 여왕괴미의 등에 올라타기까지 하며 녀석을 잡는 일에 가장 혁혁한 공을 세웠다.

괴미굴을 나올 때 그들이 계속 입을 다물고 있던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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