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괴미굴 (2)
3급 파티인 강시욱 파티를 중심으로 한 괴미굴 공략대.
일단은 괴미굴 내부 조사의 목적을 띠고 있지만, 가능하면 많은 괴미들을 섬멸하라는 것이 영웅부의 뜻이었다.
무리에서 가장 앞장서서 이동하던 강시욱은 배정받은 괴미굴의 입구 앞에서 멈춰 섰다.
“주변 경계.”
그가 짧게 뱉은 말에 강시욱 파티의 전사들은 서로 거리를 벌렸다.
파티원마다 위치를 지정하는 등, 별다른 설명이 없었음에도 알아서 제 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이었다.
뒤에 있던 유지한은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훈련이 아주 잘 돼 있네.’
군대처럼 상하 관계가 철저하게 구분된 상명하복의 지휘 체계.
한두 번 연습한 게 아닌 듯 신속하고 정확한 행동이었다.
유지한은 그것만으로도 파티장인 강시욱의 성격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변에 다른 몬스터가 없음을 확인한 강시욱은 뒤를 돌아보았다.
“짧게 설명하고 바로 진입하겠습니다.”
“네!”
“주어진 탐사 시간은 최대 2시간. 그 안에 공략에 성공하지 못하면 왔던 길로 되돌아올 겁니다. 돌아오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적어도 4시간은 소요됩니다.”
“…….”
“괴미굴에 들어가면 강시욱 파티가 가장 앞장서고…….”
강시욱은 자리에 모인 4급 영웅들을 눈으로 훑었다.
그리고는 오른쪽 끝에 있던 유지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러분은 가능하면 전투에 나서지 마십시오.”
“……?”
“네?”
전투에 나서지 말라니.
4급 영웅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계양산에 오기 전에 여러분이 등급 상승을 거부했다던 일은 전해 들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좁은 굴에서 인원이 많으면 도움보다는 방해가 됩니다.”
우리는 4급 파티의 도움 없이도 괴미굴을 뚫어 낼 수 있다.
사정은 알겠지만 뒤에서 가만히 있어라, 라는 말이었다.
그러자 당연하게도 불만이 튀어나왔다.
“아무리 3급 파티라도 이렇게 나오시는 건……!”
“이렇게 나올 수 있죠. 현장에서 모든 지휘권은 제게 있으니까요.”
“허…….”
“정말로 자신이 있는 분들은 앞으로 나서도 좋습니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방해가 된다면……. 저는 괴미굴에서 나오자마자 공략에 방해가 된 파티 명단을 영웅부에 제출하겠습니다.”
강시욱은 아주 차가운 눈빛을 보였다.
방해되는 것들은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저것이 그냥 겁을 주려는 협박이 아니라는 건, 자리의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나라도 저랬으려나.’
유지한은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비좁은 지형에서 서로 엉키면서 싸운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니까.
“각 파티의 마법사들만 앞으로 나와 주세요. 통로의 크기를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키울 겁니다.”
아래로 기울어진 괴미굴의 출입구.
김시후를 비롯한 마법사들은 강시욱 파티가 엄호하는 사이, 마법을 이용해 흙을 퍼냈다.
남은 사람들은 그들을 뒤따라갔다.
“3급이라고 나불대는 거 봐.”
“무시하고 싸울까?”
“그러다 저 사람들한테 찍히면 어쩌려고.”
“영웅부에 알려지면 나중에 불이익 생길 걸.”
차마 직접 나서지는 못하고 뒤에서 구시렁거리는 4급 영웅들이었다.
그 중심에는 문경진의 지인들이 있었다.
거기에 섞이기 싫었던 유지한은 그들과 조금 떨어져서 걸었다.
점차 안으로 들어갈수록 햇빛이 닿지 않아 어두워졌다.
[라이트]
땅을 파던 마법사 2명은 라이트 마법으로 주변을 밝혔다.
직접 가져온 휴대용 랜턴의 전원을 켜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약 10분 후, 굳이 땅을 파지 않아도 될 만큼 넓은 공간이 드러났다.
“있다!”
그곳에는 괴미가 있었다.
녀석들은 예상치 못한 손님에 당황한 듯, 자리에 멈춰서 영웅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병정괴미다.’
유지한은 일괴미 사이에 섞여 있는 병정괴미를 알아보았다.
머리와 턱이 일괴미보다 조금 더 큰 녀석이었다.
딱! 딱! 딱!
정신을 차린 일괴미 몇 마리가 안쪽으로 달아나는 사이, 병정괴미가 영웅들을 막아섰다.
2개로 갈라진 날카로운 턱을 소리 나게 부딪히며 위협하는 녀석들이었다.
일괴미와 함께 다니면서도 단순 노동보다는 전투 시 무력을 담당하는 괴미다웠다.
병정괴미를 노려보던 강시욱이 말했다.
“다들 제가 말한 거 기억하세요.”
“……!”
뒤를 돌아보지 않고 말했지만, 분명 뒤에 있는 4급 파티들을 향한 말이었다.
무기를 꺼내든 영웅들은 어쩔 수 없이 강시욱 파티를 구경만 하고 있어야 했다.
캉! 카앙!
인원이 6명인 강시욱 파티는 마법사를 제외하고 자리에 남은 병정 괴미를 둘러싸는 형태로 움직였다.
파티장인 강시욱이 병정괴미의 눈이나 앞다리를 공격하고 녀석의 반격을 막았다.
옆에 있던 전사들은 다른 병정 괴미를 막아서거나 이미 대치 중인 괴미의 나머지 다리를 공격했다.
그렇게 한 번에 최대 2마리씩 몬스터를 행동 불능에 빠뜨렸다.
“다음!”
다리를 모두 잘라 낸 영웅들은 그 즉시 다른 파티원을 도왔다.
마지막 공격을 날리는 건 뒤에서 파티원들을 보조하던 마법사였다.
바닥에서 움직이질 못하는 괴미는 아무리 느리게 날아오는 마법이라도 맞을 수밖에 없었다.
“잘하긴 잘하네.”
“한번 들어가 봐?”
“들어갈 틈은 있고?”
실수가 벌어질 확률이 낮은 안정적인 공략.
강시욱 파티가 보여 주는 깔끔한 전투에 다른 4급 파티는 뒤에서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파티의 등급처럼 개개인의 실력도 모두 한 수 위였으니까.
자존심을 앞세워서 괜히 끼어들었다가 전투의 균형이 망가진다면 모든 비난은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전투에 나설 용기는 없는 것이다.
“어?”
하지만 유지한은 조금 달랐다.
다른 4급 영웅들은 앞으로 걸어 나오는 그를 주시했다.
‘파악했다.’
그는 강시욱 파티의 반복적인 움직임을 외웠다.
괴미를 선제공격할 때는 어떤 행동을 하는지.
반대로 괴미가 먼저 공격해 올 때는 어떤 대처를 하는지.
짧은 전투에서 그 패턴을 읽어 낸 것이다.
물론, 그것이 강시욱 파티의 모든 것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이 전투에 그가 섞이기에는 충분했다.
타앗!
유지한은 앞에서 싸우는 이들을 최대한 방해하지 않고 그들의 옆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는 미리 찜해 둔 구역, 강시욱 파티의 영향력이 적은 쪽으로 이동했다.
그 앞에는 한 명의 전사가 병정 괴미의 공격을 막고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니까!”
전투에 나선 유지한을 본 강시욱 파티원들은 표정을 찡그렸다.
그가 뭘 하든 방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촤악!
하지만 유지한은 앞서 강시욱 파티가 보여 주던 것처럼 병정 괴미의 뒷다리를 베어 냈다.
공격당한 병정 괴미는 뒤를 돌아봤다.
녀석의 주의가 반대로 끌린 것이었다.
푹!
유지한은 검으로 괴미의 눈을 찔러서 시야를 차단했다.
그리고는 다가오는 턱을 피하며 먼저 괴미와 대치하던 전사와 시선을 교환했다.
많은 전투 경험이 있는 영웅들은 알 수 있는 신호.
함께 공격하자는 무언의 신호였다.
캉! 캉!
이후 유지한은 강시욱 파티가 하던 행동을 따라했다.
화려하게 날뛰기보다는 마치 이 전투의 처음부터 그들과 함께였던 것처럼…….
강시욱 파티에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모습이었다.
“다음!”
전력이 늘어났기 때문인지 살아남은 괴미들은 더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버티지 못하고 더 안쪽으로 도망치는 녀석들도 있었다.
서걱!
해당 구역의 마지막 괴미를 사냥한 강시욱이 검에 묻은 괴미의 체액을 털어 냈다.
그리고 중간에 끼어든 유지한을 향해 걸어갔다.
“…….”
“…….”
모두가 긴장하며 그들을 지켜보는 도중…….
먼저 입을 연 것은 강시욱이었다.
“소속이 어디죠?”
“꿀잼. 유지한 파티의 유지한입니다.”
“파티장인가요?”
“예.”
“4급 파티고요.”
“맞습니다.”
“싸움에 아주 능숙하시네요. 4급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
강시욱 파티원들은 다들 놀란 표정으로 파티장 강시욱을 쳐다봤다.
매사에 깐깐하고도 칭찬에 인색한 강시욱.
그의 입에서 한 번에 칭찬이 나오다니!
그것도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을 저렇게 후하게 평가하는 것은 거의 처음 있는 일이었다.
“괜찮다면 저희랑 함께 움직이시죠.”
“좋습니다.”
강시욱의 요청에 유지한은 뒤에서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마치 그가 강시욱 파티의 7번째 멤버가 된 듯한 모습이었다.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럼 해봐.”
“자, 잠깐 마음의 준비 좀 하고…….”
다른 4급 영웅들은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그냥 지켜보기만 하던 도중.
앞에서 열심히 땅을 파는 김시후는 몰래 웃고만 있었다.
*****
괴미굴에 진입하고 약 1시간 후.
괴미들과 몇 번의 전투를 더 치렀지만, 아직 괴미굴은 그 끝이 드러나지 않았다.
‘너무 깊어.’
녀석들은 생각보다 계양산의 깊은 곳까지 자리 잡고 있었다.
또 한 번의 전투를 마친 영웅들은 괴미굴의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정도면 상당히 오랜 기간 준비한 모양인데요.”
“안에 있던 흙은 다 어디로 간 거죠?”
“저도 그게 의문이에요.”
굴이 만들어지려면 내부의 흙을 밖으로 빼내는 일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렇게나 깊은 굴이라면 아주 많은 양의 흙을 퍼 날라야 했다.
그렇다면 그 과정에서 괴미들이 흙을 나르는 모습이나 퍼 나른 흙더미가 발견됐어야 했는데.
지금까지 계양산에 들린 파티에서 그런 것들을 본 경우는 없었다.
흙이 허공으로 증발하는 것도 아니고, 생각할수록 의문만 생길 뿐이었다.
앞쪽의 통로를 바라보며 고민하던 강시욱이 말했다.
“계획을 변경하여 앞으로 15분만 더 이동하겠습니다. 그 안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가죠.”
이미 상당히 깊은 곳까지 들어온 상황이었다.
처음 예정했던 2시간보다 일찍 돌아간다는 것이 조금 아쉬운 선택일 수도 있지만…….
입구도 많을뿐더러 이 끝모르는 공간을 계속 탐험하는 것은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여러 갈래로 나뉜 갈림길에서도 인원을 나누지 않고 오직 한곳으로만 들어왔다.
존재 여부도 확실치 않은 여왕괴미가 머무는 터전이 아니라, 한참 잘못된 길로 들어온 걸 수도 있었다.
“여긴 뭐지?”
그런데 마법사들이 땅을 파던 그때였다.
다시금 커다란 구역, 괴미들이 만들어 낸 방 같은 것이 나왔다.
바닥에 나무 열매나 작은 동물의 뼈 같은 것이 잔뜩 쌓여 있었다.
“먹이를 저장하는 공간 같습니다.”
“식량창고인가.”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강시욱은 주변의 의견을 취합해 방향을 정했다.
운 좋게도 마냥 틀린 길은 아닌 모양이었다.
“음?”
마법으로 주변을 밝히던 김시후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회색 천 같은 것을 손으로 집었다.
괴미가 물어뜯은 흔적과 붉은 자국이 묻어있는 넝마.
잔뜩 묻어 있는 흙을 털어 보니 익숙한 브랜드의 로고가 보였다.
“어?”
“왜 그러시죠?”
“이거, 등산복입니다.”
“……?!”
김시후의 대답에 주변에 떨어진 옷가지를 보는 모두의 표정이 삽시간에 차갑게 굳어 버렸다.
이곳은 단순한 식량창고가 아니라, 산에서 잡아 온 인간들을 저장하는 공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