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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57화 (57/300)

57화. 괴미굴

얼굴에 생기가 넘쳐 보이는 원영국이 말했다.

“저 요새 계속 허리가 아팠는데, 오늘따라 허리가 쌩쌩합니다!”

“그래요?”

“어제 저한테 주셨던 그 물 덕분 아닐까요?”

“그런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최근 2주일간 자신을 괴롭혔다던 허리의 통증이 멎었다는 원영국의 말.

결계를 넘어서 산을 오르던 유지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물을 마시고 통증이 사라졌다고.’

럭키 위스커와 화이트 엄브렐라가 좋은 효과를 가진 것은 맞다.

그러나 그 두 개의 물건에 몸을 치유하는 효과가 있다는 건 알려지지 않았다.

실제로 치유 효과가 있는 영약은 도감 같은 것으로 정리되어 있는데, 시장에서 꽤 고가에 팔리는 물건들이었다.

돈 많은 일반인들도 관심을 가지는 것들이 있어서 꼭 영웅이 아니더라도 영약을 사가는 사람이 많았다.

‘전에 없던 조합의 영약이니 새로운 효과가 있을 수 있나.’

럭키 위스커와 화이트 엄브렐라를 조합한 영약은 기존에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새로운 시도로 새로운 효과가 나왔다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가능성이 너무 낮은 이야기였다.

<—럭키 위스커와 화이트 엄브렐라를 물에 넣고 함께 끓이면 상처 치유 효과를 얻을 확률>

<2% 미만>

확률은 제로에 가까운데…….

하지만 플라시보 효과라도 얻는다면 나쁘지는 않을 터.

“총을 마음껏 쏘면서 스트레스 해소가 된 걸 수도 있겠네요.”

“이따가 물 한 컵 더 드릴게요.”

“네!”

씩씩하게 대답하는 원영국이었다.

유지한은 김시후를 보며 말했다.

“괴미는 좀 보여?”

“잠시만요…….”

김시후는 휴대폰에 떠오른 지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MA 맵 위에 계양산 안쪽에 들어온 그들의 위치와 여러 개의 붉은 표식들이 떠올라 있었다.

지도 위에서 조금씩 이동하고 있는 붉은 표식들은 괴미들에게 부착해 놓은 위치 추적기들이었다.

영웅부에서 군집 생활을 하는 그들의 동선을 파악하려고 일부러 괴미 몇 마리를 살려 놓고 추적기를 붙여 놓은 것이다.

‘여왕 괴미가 있을까.’

괴미들은 몬스터로 변한 뒤에도 계급체계가 계속 유지된다.

그리고 그동안 유지한 파티가 사냥했던 개체는 전부 일괴미였다.

개체수도 많고 노동자 계층에 속하는 녀석들로 지금처럼 넓은 범위에 일괴미가 퍼져 있다면, 녀석들의 우두머리인 여왕괴미가 있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아직 다른 파티에서 여왕을 발견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샘플링은 말도 안 듣고.’

유지한은 그것과 관련해서 샘플링을 사용했으나 역시나 별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어떤 때는 연속으로 사용해도 잘만 동작하더니, 여전히 제멋대로인 고유 스킬이었다.

이 세상에는 고유 스킬 하나만으로 역사에 커다랗게 이름을 남긴 영웅들도 있는데…….

역시 인생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공평하지 않았다.

“형. 이거 GPS가 좀 이상한데요.”

“왜?”

“인터넷 문제인지 자꾸 움직임이 뚝뚝 끊겨요.”

멈춰 있던 괴미의 표식이 완전히 다른 위치에서 재등장했다.

영웅부에서 뿌린 위치 추적기가 잘못된 건지, 높은 산이라 인터넷이 잘 동작하지 않는 건지…….

“일단 따라가 보자.”

유지한은 엔간하면 그 냄새나는 가루는 만지기 싫었다.

한번 손에 닿으면 빡빡 씻어내도 냄새가 쉽게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어우! 이게 대체 무슨 냄새에요?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에 탔을 때, 유지한은 택시 기사가 묻는 말에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훌륭한 일을 하는 영웅이라고 택시에서 쫓겨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아마 여기쯤인데…….”

약 15분쯤 후.

그들은 괴미의 표식이 몇 분째 멈춰 있는 구역에 도착했다.

바스락—

바닥에 떨어진 작은 나뭇가지를 밟자 그것이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유지한은 적들을 유인하고자 일부러 여러 소음을 내면서 주변을 살폈다.

띡!

그런데 유지한 파티가 찾아온 괴미의 표식이 갑자기 완전히 다른 곳에서 재등장했다.

지도 위에서 조금씩이나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 살아 있는 개체는 맞았다.

김시후는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순간이동?”

“…….”

괴미가 무슨 3급 이상의 몬스터도 아니고.

특별한 능력을 쓰는 놈들이 있을 리가 없었다.

영웅부에서 너무 저렴한 추적기를 썼거나, 혹은 괴미들이 몸에 붙은 추적기를 버렸을 수도 있었다.

“아.”

그때, 어떤 생각 하나가 유지한의 뇌리를 스쳤다.

그가 김시후와 원영국에게 말했다.

“두 사람 다 바닥 좀 잘 살펴봐요.”

“네?”

“움푹 꺼진 곳이나 수풀, 바위에 가려진 영역까지 전부다.”

유지한의 지시에 따라 주변을 샅샅이 수색하기 시작한 세 사람.

그리고 몇 분 뒤, 원영국이 한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여기가 좀 이상합니다!”

유지한은 재빨리 그곳으로 달려갔다.

바닥에 자라난 수풀로 완전히 덮여 있는 영역.

그가 검으로 수풀을 깔끔하게 잘라 냈다.

“……!”

“이건……!”

덩굴로 가려져 있던 곳에서 작은 구멍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구멍 끝에서 보이는 건 껌껌한 어둠.

대각으로 길게 뚫려있어 그 깊이를 쉽게 짐작할 수 없었다.

설마 했던 예측이 맞아떨어지자, 유지한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괴미굴이다.”

*****

유지한 파티는 괴미굴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영웅부에 알렸다.

화들짝 놀란 영웅부에서는 MA에 입장한 파티들을 황급히 입구로 불러모았다.

모인 파티 중에는 유지한 파티처럼 괴미의 수상한 움직임을 발견하고 자체적인 조사를 진행하던 곳도 있었다.

괴미굴의 입구는 고작 한 개가 아니었던 것이다.

“계양산이 괴미들의 집이 됐다고…….”

아예 산 아래에 집을 차려 놨다니!

원영국은 주말마다 찾아오던 곳이 몬스터들의 영역이 되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이전에도 한국에서 괴미굴이 생성된 적은 있지만, 산이 괴미굴이 되어 버린 적은 없었다.

“괴미들을 당장 계양산에서 쓸어버려야 합니다!”

“맞습니다! 바로 출발합시다!”

입구에 모여 있던 4급 파티들은 하나같이 큰 소리를 냈다.

반면, 영웅부에서는 그들을 진정시켰다.

“마음은 알겠지만 잠시만 진정해 주세요.”

“아래에 얼마나 많은 괴미가 존재할지 모릅니다.”

당장 괴미굴에 들어가는 건 무모한 행동이었다.

적의 규모를 파악할 수 없는 이상 신중한 선택이 필요했다.

“구멍에 물을 가득 채워 넣으면 어떻습니까?”

“전부 흙이잖아요. 물은 다 흙에 흡수될 겁니다.”

“구멍을 막고 강력한 독가스를 집어넣으면…….”

“미쳤어요?! 산을 완전히 오염시킬 생각입니까?”

괴미굴 전체를 물로 채워 버리자는 엉뚱한 의견부터, 독가스로 산을 뒤덮자는 황당한 의견까지.

녀석들을 처리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논의되었다.

다만 그중에 실제로 효과가 있을 만한 것들은 거의 없었다.

“땅을 파고 결계 바깥으로 나가는 건 어떡하죠?”

“당장 결계 범위를 넓히는 건 무리고, 서울 지부에 연락해서 추가 인원을 요청해야겠습니다.”

“영웅들을 괴미굴로 들여보낼 수밖에 없겠어요.”

“4급 파티로는 힘들 것 같은데…….”

“3급 정도면 될 것 같죠?”

MA 등급 격상을 고민하는 영웅부 관계자들이었다.

지금 같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현장을 지휘하는 권리는 영웅부가 가져간다.

어떤 결정이 내려지든 영웅들은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4급 파티에서는 크게 불만이 일었다.

“괴미 정도는 4급에서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잖아요!”

“4급이나 3급이나 다 숫자놀음이지, 거기서 거기 아닙니까?”

등급 격상은 MA의 위험성을 고려한 선택.

하지만 이미 계양산에서 무리 없이 괴미를 사냥하던 파티로서는 자신들이 무시당한다고도 느낄 수 있었다.

영웅부 직원들은 조금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러분이 다치면 저희가 더 곤란해집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니까요.”

“저희가 오늘까지 괴미를 몇 마리나 잡았는지 아세요?”

“그래도…….”

등급 격상에 반대하는 파티들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굳이 자존심을 내세우고 싶지 않았던 유지한 파티는 가만히 그들을 지켜봤다.

그러다가 결국 영웅부에서는 차선책을 내놓았다.

등급을 올리는 대신에 3급 파티 몇 개를 불러서 4급 파티와 함께 안으로 보내겠다는 것이었다.

“그 정도면 좋습니다.”

“들어갈 수만 있으면 괜찮죠.”

영웅들의 불만이 사그라들고, 영웅부에서는 괴미굴에 들어갈 파티를 모집했다.

대다수의 4급 파티들은 들어가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유지한 파티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기회를 버릴 수는 없지.’

괴미굴처럼 비좁은 지형에서 싸운다는 경험을 얻는 것.

위험성은 있으나 확실히 도전해 볼 만한 선택지였다.

이전의 전장이 아파트나 골프장이었던 것처럼 현실에서의 지형은 다양하지만, 그런 특수한 공간에서의 전투 경험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영국 씨와는 함께 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원영국은 계양산 근처에 남기로 했다.

영웅들조차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공간에 군인을 데려갈 수는 없었다.

유지한은 아직 자리에서 놀고 있는 다른 군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영웅부에 말해 둘 테니까 영국 씨는 총알 반납하지 말고 입구 쪽에 남는 파티와 합류하세요.”

“네!”

“주변에 괴미가 나온다면 대처를 부탁합니다.”

*****

계양산에 도착한 3급 파티들은 여러 4급 파티를 담당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파악된 괴미굴의 입구 하나당, 3급 파티 하나와 최소 3개 이상의 4급 파티가 함께 진입하는 구조였다.

‘저쪽인가.’

유지한 파티는 배정받은 3급 파티인 강시욱 파티에게 다가갔다.

“너희 뭐야?”

“얘네도 같이 움직인다고?”

“아, 재수 없게.”

그런데 함께 움직이게 된 4급 파티 중에는 얼마 전에 시비를 걸었던 문경진의 지인들도 있었다.

잔뜩 짜증을 낸 그들이 강시욱 파티원들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선배님들~ 저번에 풀빛아파트에서 벌어진 사건 아세요?”

“저기 2명은 괴미가 아니라 같은 편을 뒤통수 칠 사람들이에요.”

“방해만 될 거라 두고 가는 게 나을 텐데…….”

그들은 일부러 아파트에서 벌어진 사건까지 언급하며 유지한을 흘겨보았다.

유지한 파티를 배제하려는 수작이었다.

“저것들이……!”

그들의 잡스럽고 지저분한 행동에 김시후의 표정이 확 찌푸려졌다.

“저분들이 공식적으로 처벌받은 기록이 있습니까?”

“그건 아니지만…….”

“없다는 얘기군요.”

“얼마 전에 벌어진 사건을 생각하면 굉장히 불안하다, 이거죠.”

강시욱 파티의 리더, 강시욱은 유지한을 바라봤다.

본인들을 향해 무슨 말이 들려오든 말든 차분한 표정의 유지한이었다.

그와 잠시 눈빛을 교환하던 강시욱은 자신에게 칭얼거리는 이들을 향해 말했다.

“처벌 기록이 없다면 문제 될 게 없습니다.”

“하지만 저 두 명은!”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현장에서 너무 개인적인 감정을 앞세우지 마세요. 선배 영웅으로서 드리는 진지한 충고입니다.”

주변의 말에 쉽게 휘둘리는 사람이라면 무척 꺼려졌을 텐데.

오로지 정석대로 행동하는 3급 영웅 강시욱이었다.

‘다행히 정상인이군.’

유지한은 꽤 멀쩡한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반면 문경진의 지인들은 그대로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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