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괴미 (2)
영웅부에 계양산 입장 요청을 넣어 둔 유지한 파티는 잠시 MA 입구 근처에서 기다렸다.
고개를 들어 멍하니 산을 올려다보던 유지한은 생각했다.
‘괴미는 엄청 맛이 없다고 했나.’
이곳에 등장한 괴미는 종합적으로 따져봐도 거지는 실용성이 없는 몬스터였다.
살은 매우 끈적하고 맛이 없어서 많은 몬스터 레스토랑에서 그것들을 활용하는 것을 이미 포기했다.
껍질이 단단하긴 하지만, 다른 몬스터에 비교할 건 아니라서 장비의 재료로 쓰이기도 적합하지 않았다.
그나마 쓸 만한 건 괴미의 턱뿐이었다.
‘가격도 좀 낮지.’
괴미의 사체는 쓰임새가 매우 적기 때문에 시장에서도 낮은 가격대가 형성되어 있다.
한 등급 낮은 5급 몬스터와 비교해도 될 정도였다.
외형은 징그러운 데다가 가격은 낮기까지 하니, 많은 몬스터 중에서도 참 인기가 없는 녀석들이었다.
그런데도 유지한 파티가 계양산으로 온 이유는 딱 하나.
[특정 몬스터를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사냥하고, 이미 사냥해 본 몬스터는 최대한 피한다.]
유지한이 김시후와 상의해서 만든 파티의 행동 규칙.
결국에는 다양한 사냥 경험을 쌓자는 것이었다.
파티가 일찍부터 다양한 몬스터를 만나서, 향후 상위 등급에서 어떤 유형의 몬스터를 마주치더라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끔 말이다.
‘돈은 많이 번다고 볼 수 없지만.’
파티가 인기 없는 것들을 무시하고 현재 시장에서 비싸게 팔리는 것들을 위주로 사냥을 진행하면 돈은 지금보다 많이 벌 수 있었다.
그런 방식으로 돈을 빠르게 모아서 길드에 투자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방향이었다.
하지만 그건 ‘경험’을 중시하는 유지한의 정신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파티의 전체적인 커리어와 아직은 부족한 마법사 김시후의 경험을 쌓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다양한 적을 상대해 봐야 했다.
“꿀잼의 유지한 파티 계십니까!”
“여기 있습니다!”
영웅부 직원이 유지한 파티를 호출하자 두 사람이 그에게 다가갔다.
“죄송하지만 두 분, 다른 파티에 합류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예?”
그는 유지한 파티에게 인원수가 비슷한 다른 파티와 합류하는 것을 권했다.
아무래도 산이 꽤 넓다 보니 몬스터와 마주쳤을 때 단순히 물량으로 밀리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꼭 그래야 해요?”
유지한은 그것이 썩 내키지 않았다.
하프 엘프인 김시후가 다른 이를 신경 쓰느라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고, 이전의 신우정 파티처럼 누군가 예측이 불가능한 행동을 할 우려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도중에 상황이 나쁘게 흘러가서 도망치게 되더라도 호흡이 잘 맞는 두 명이 행동하는 것이 훨씬 더 편했다.
그러자 영웅부 직원은 조금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위에서 최소 3명 이상으로 들여보내라는 명령이 있어서요.”
“방법이 없을까요?”
“단순히 인원수를 채우려면 군인을 데려가는 것도 방법이긴 합니다.”
그는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서 있는 공간을 가리켰다.
계양산은 국방부의 강력한 요구로 인해 임시로 현장에 파견된 군인들도 영웅과 동행한다면 MA에 입장이 가능하게끔 되어 있었다.
하지만…….
‘다들 놀고 있네.’
가까운 17사단에서 파견된 군인들은 대부분 자리에서 놀고 있었다.
누군가는 뻑뻑 담배를 피우고, 다른 누군가는 실실 웃으며 친구와 통화하고, 혹은 휴대폰 게임을 하고 있었다.
위험한 현장으로 데려가기에는 영 믿음직스럽지 못한 모습이었다.
‘저런 사람들을 데려가도 되나.’
몬스터와 영웅의 등장으로 존재감과 영향력이 꽤 낮아진 군인들이었다.
위에서 시켰으니 왔겠지만, 실제로 MA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형, 형.”
“응?”
“저 사람, 우릴 보고 있어요.”
김시후가 혼자 서 있는 군인을 가리켰다.
그는 다른 군인들을 살피는 유지한과 김시후를 정면에서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눈빛은 괜찮네.’
웃으며 놀고 있는 사람들과는 다른 눈빛이었다.
마치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눈으로 말하는 것만 같았다.
잠시 고민하던 유지한이 그에게 다가갔다.
“그쪽 이름이 뭡니까?”
“충성! 원영국입니다!”
“제가 쭉 봤는데……. 여기서 혼자 계급이 병장이네요?”
“맞습니다!”
씩씩하게 대답하는 그의 왼쪽 가슴팍에 달린 것은 검은색 작대기 4줄.
자리의 다른 군인들은 최대가 상등병인 것과 달리, 그 혼자서만 병장이었다.
“전역 얼마나 남았어요?”
“1개월 하고도 4일 남았습니다!”
“그냥 병장도 아니고 말년 병장? 짬이 좀 차면 이런 곳에 안 나오지 않아요?”
“제가 가고 싶어서 직접 지원했습니다!”
특이하게도 말년 병장인 그는 군 생활 내내 MA에 들어가 보고 싶어 했던 군인이었다.
하지만 매번 기회를 잡지 못했고 결국 말년 병장까지 되어 버렸다.
유지한은 그의 특급전사 배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희가 2명뿐인 파티인데. 같이 가 볼래요?”
“여, 영광입니다!”
“현장에서는 제가 내리는 명령에만 따라야 합니다.”
“네!”
신우정처럼 통제할 수 없는 영웅보다는 명령에 착실히 따르는 군인이 더 낫겠지.
25살 평생의 소원이 이루어진 원영국의 입가에 도저히 숨길 수 없는 미소가 걸렸다.
*****
유지한이 총을 점검하는 원영국에게 물었다.
“어딜 쏴야 하는지는 아세요?”
“괴미의 눈이나 머리와 가슴 사이, 또는 가슴과 배 사이만 공격하라고 배웠습니다.”
“잘 배우셨군요.”
보다 높은 등급으로 갈수록 몬스터에게 일반 화기는 먹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4급 이하의 몬스터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마석을 심어놓은 총알은 먹히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있어서 지금처럼 군인들이 MA에 들어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괴미는 그런 공격이 통하는 몬스터 중 하나였다.
원영국이 유지한을 힐끔거리다가 말했다.
“저기……. 영웅들은 병역이 면제되지 않습니까?”
“그렇죠.”
“부러우세요?”
“부럽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부럽지 않습니다!”
유지한과 김시후는 군대에 가지 않았고, 앞으로도 가지 않는다.
한국의 영웅들은 기본적으로 병역이 면제되는 덕분이었다,
영웅의 일상이 전장으로 향하는 것이니만큼 그 노고를 인정받는 것이다.
김시후는 원영국에게 물었다.
“그런데 영국 씨는 저희랑 같이 가도 괜찮겠어요?”
유지한 파티는 겨우 2명뿐인 4급 파티였다.
어느 정도 실력과 안전이 보장된 이름 있는 길드의 파티와는 달랐다.
평범한 군인이 자신의 목숨을 믿고 맡기기에는 조금 불안할 수도 있었다.
“제가 사실 이 근처에 사는데, 계양산은 제집처럼 드나들던 곳이라서 괜찮습니다.”
하지만 원영국은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장전된 총을 든 그는 걱정은커녕 자신감을 내보였다.
“저한테 붙으세요.”
“네!”
결계를 넘어가기 전, 김시후는 원영국의 어깨에 손을 대고 실드를 사용했다.
그가 영웅이 아닌 만큼 4급 결계를 아무런 조치 없이 그냥 넘어가면 피부가 쓰라릴 수 있었다.
[실드]
“오오……!”
전신을 아주 얇게 감싼 마력의 보호막.
살아온 인생을 통틀어 가장 가까이서 마법을 본 원영국은 마냥 신기해했다.
“잠시 찾아볼게요.”
MA에 입장한 김시후는 자신의 휴대폰으로 영상을 띄웠다.
사전에 영웅부에서 띄워 둔 촬영용 드론들이 실시간으로 송출하는 영상이었다.
산을 기어 다니고 있을 괴미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파티가 움직일 동선을 정하는 것이다.
“이미 싸우는 파티가 있는 것 같은데…….”
“방해될 수 있으니까 그쪽은 피하자.”
그들은 거의 등산을 한다는 느낌으로 산을 올랐다.
그렇게 30분을 헤맬 무렵.
‘송전탑이다.’
유지한은 중간에 높게 솟아 있는 송전탑을 바라봤다.
예전에는 결계가 쳐지는 지역마다 전기가 끊겨서 문제가 많이 발생했는데, 요즘은 그것에 문제가 없도록 결계가 개선되었다.
결계라는 걸 누가 처음 생각하고 만든 것인지는 몰라도 저것이 없었다면 세상에 인명피해는 지금보다 몇 배는 커졌을 것이었다.
“왜 이리 안 보이지…….”
휴대폰을 바라보던 김시후는 한숨을 내쉬었다.
드론이 비추는 화면에 텅 비어 있는 공간만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화면에 비치는 다른 파티들도 괴미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처음에 사냥을 진행하고 있었던 파티를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꽤 조용한 모습이었다.
유지한도 샘플링을 사용하고 있었으나 큰 도움을 받지는 못했다.
‘이러면 어쩔 수 없나.’
유지한은 품속을 뒤적거렸다.
그리고는 황갈색의 가루가 담긴 투명한 용기를 꺼냈다.
“그게 뭐예요?”
“괴미귀신이 뱉은 실을 말려서 갈은 거야.”
“네?”
괴미귀신.
본래 명주잠자리의 유충인 개미귀신이 몬스터로 변한 놈이었다.
녀석들은 그 이름답게 괴미의 천적으로 알려져 있다.
괴미귀신은 번데기 시기가 되기 전 실을 토해서 둥근 고치를 만드는데, 일반적인 개미귀신과 달리 괴미귀신의 고치는 괴미가 내뿜은 페로몬과 닿으면 색깔이 변한다.
유지한은 그 특유의 반응을 이용해 괴미를 찾을 생각이었다.
김시후는 그의 준비성에 감탄하며 말했다.
“언제 그런 걸 챙겨 왔어요?”
“혹시 몰라서 챙겨 왔지.”
면적이 넓은 MA에서 보이지 않는 몬스터를 찾아 헤매는 건 종종 발생하는 일이다.
유지한은 지금 같은 상황에 부닥칠 것을 염두에 두고 물건을 미리 챙겨 왔다.
다만 이게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방법은 아닌 것이…….
한 가지 단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끼릭, 끼릭!
그는 숨을 참으며 단단하게 잠긴 용기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뚜껑이 완전히 젖혀지자, 고약한 냄새가 순식간에 주위로 퍼졌다.
“헉!”
“으윽……!”
옆에 있던 김시후는 물론이고 처음 들어온 MA에서 침착함을 유지하던 원영국조차 표정을 크게 찡그렸다.
좁은 방에 썩은 음식물쓰레기를 한 달 넘게 방치하면 이런 냄새가 날 듯했다.
“냄새가 너무 심해서 안 쓰려고 했는데.”
하지만 유지한은 어쩔 수 없이 그 황갈색의 가루를 손으로 한 꼬집 집어다 바닥에 뿌렸다.
촤악—
그렇게 이동하면서 8번 정도를 뿌렸을까.
마침내 땅 위의 흙색이 변하며 괴미의 흔적이 드러났다.
“들어간다.”
유지한은 가루를 뿌려 대며 괴미의 페로몬을 쫓았다.
일반적인 등산로와는 한참 동떨어진 길.
인공적으로 다듬어지지 않고 꽤 험한 구역에 들어서자, 마침내 바닥을 기어 다니는 괴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앞으로 나서기 전 원영국에게 말했다.
“영국 씨는 이번에 지켜보고만 계세요. 그리고 괴미들의 움직임은 어떤지, 어느 타이밍에 총을 쏴야 할지 한 번 계산해 보는 것도 좋을 겁니다.”
“네!”
유지한과 김시후가 괴미에게 달려들었다.
등은 물론이고 손바닥에 땀이 흐를 정도로 잔뜩 긴장한 원영국은, 앞쪽으로 총을 조준하고 있었다.
‘저분들이 위험해지면 나도 나서야 한다.’
목숨이 보장되지 않는 전장.
그곳에 영웅이 딱 두 명밖에 없는 파티를 따라오겠다고 한 건 그였다.
만약 눈앞의 영웅들이 수세에 몰리는 상황이 나온다면, 사격에 자신감이 있는 그는 주저하지 않고 방아쇠를 당길 생각이었다.
책이나 동영상 따위로 괴미의 약점은 몇 번이나 확인했으니 본 것을 그대로 따라 하면 큰 문제가 없으리라.
그런데…….
촤악!
유지한이 검을 한 번 휘두르자 괴미가 두 덩이로 분리되었다.
김시후가 마법을 날릴 때마다 괴미의 뇌수가 터져 나갔다.
‘……내가 지금 뭘 보는 거지?’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공격에 당해 쓰러지는 괴미들.
원영국은 입을 벌린 채 그런 두 사람을 구경만 하고 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