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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52화 (52/300)

52화. 재회 (4)

끝내 고통을 이겨 내지 못한 남자는 벌린 입을 다물려고 했다.

“물지 말라고 했잖아.”

이미아는 손바닥으로 남자의 볼때기를 때렸다.

빡!

남자의 볼에서 마치 타악기를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이어지는 연속 공격으로 그의 잇몸에서 여러 개의 이빨이 부러져 나갔다.

점점 피투성이가 되는 그를 보다 못한 유지한이 그녀에게 말했다.

“그만해.”

“얘가 내 말을 무시했어.”

“그것보다 걔 이미 기절했다고.”

누워 있는 남자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너무 큰 충격을 이겨 내지 못하고 기절해버린 것이다.

유지한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변한 게 없네.’

겉모습은 매우 가녀린 여성.

하지만 어지간한 남자보다 더 과감하고 저돌적인 행동을 하는 2급 영웅 이미아였다.

볼을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상대는 거의 쇼크사를 걱정해야 할 정도가 되어 버렸다.

“지금 보니 사람을 죽였구나.”

이미아가 야채가게 앞에 쓰러진 중년의 여인을 바라봤다.

그녀의 다음 행동을 예상한 유지한이 재빨리 말했다.

“죽이지 마.”

“왜.”

“곧 영웅부에서 데리러 올 거야. 캐낼 수 있는 정보는 다 캐내야지.”

저 수인이 어느 세계에서 왔는지.

같이 지구로 넘어온 동료는 몇 명인지.

녀석을 죽이기 전에 알아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이미아는 그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빛이었다.

“이딴 쓰레기가 도움이 될까?”

“쓰레기라서 더 도움이 될 수도 있어.”

자신의 목숨을 위해 동료를 팔아넘기는 침입자는 널리고 널렸다.

목숨을 살려 주겠다는 것을 미끼로 녀석을 회유하면 충분히 정보를 뽑아낼 수 있으리라.

*****

몇 분 뒤 경찰과 영웅부의 사람들이 번화가에 도착했다.

“이건…….”

한 경찰은 기절한 남자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바닥 여기저기 튄 피와 부러진 이빨 조각들.

이곳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꼴 좋군요.”

이유 없이 인간을 죽인 녀석에게 이것은 가벼운 체벌에 불과하다.

침입자에게는 이보다 더 강력한 처벌이 필요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유지한과 이미아에게 경례를 한 경찰관은 기절한 침입자를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죽은 여성의 시체는 구급차에 실려 어딘가로 향했다.

이미아의 시선은 멀어지는 구급차에 꽂혀 있었다.

“좀 더 일찍 올걸.”

이미아와 함께 자리에 남은 유지한은 주변을 둘러봤다.

어느새 현장을 구경나온 구경꾼들이 몰려 있었다.

그들의 대화 소리가 유지한의 귀에 닿았다.

“저거 김현태 파티 아니야?”

“이미아? 이미아라고?”

“진짜?”

이미 얼굴이 알려진 이미아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었다.

하지만 사인을 요청하거나 섣불리 다가오지는 않았다.

조용하면서도 매우 거친 그녀의 성격 또한 잘 알려진 덕분이었다.

“일단 이동하자.”

보는 눈이 너무 많아진 관계로 유지한은 이미아를 데리고 자리를 옮겼다.

다소 갑작스러운 만남이지만, 기왕 만남 김에 조금은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카페처럼 뚫려 있는 장소는 조금 곤란했다.

마음 놓고 대화하기 위해서는 방이 따로 나뉘는 공간이 필요했다.

‘갈 만한 곳이 없나.’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던 그가 선택한 곳은…….

지하 1층에 있는 노래방이었다.

유지한은 노래방 접수대에 카드를 내며 말했다.

“1시간이요.”

“…….”

카드를 받은 노래방 사장은 말없이 계산을 했다.

그리고 유지한에게 카드를 돌려주며 손가락으로 벽에 걸린 종이를 가리켰다.

[노래연습장 안에서 애정행각은 금지입니다.]

방 안에서의 애정행각이 금지라는 포스터.

두 사람을 연인으로 보고 경고한 것이었다.

“아니…….”

유지한은 조금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저희 커플 아닙니다.”

“그럼 됐고요.”

“…….”

카드를 회수한 유지한이 이미아의 얼굴을 슬쩍 바라봤다.

그녀는 여전히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화내는 건 아니겠지.’

괜한 오해를 사게 해서 기분이 나빠진 건 아닐까.

그가 알고 있는 이미아라면 무표정으로 화를 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4번 방으로 들어가세요.”

그들은 지정된 방으로 들어와 푹신한 의자에 앉았다.

천장의 조명이 꺼져 있는 어두컴컴한 노래연습장 안.

가사를 표시하고 노래를 검색할 수 있는 커다란 모니터만이 내부를 비췄다.

잠시 방 안을 둘러보던 이미아가 그에게 물었다.

“노래 부를 거야?”

“아니. 마음 놓고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 여기 말고 안 떠오르더라.”

유지한이 이미아를 바라봤다.

“그래서……. 꽤 오랜만이네.”

“응. 한 달 조금 넘었나?”

“아마 그럴걸.”

두 사람은 김현태 파티 소속이었던 7년간, 일주일에 거의 4번 이상 얼굴을 보고 지냈다.

그리고 오늘은 유지한이 파티에서 나온 이후의 첫 만남이었다.

현장에서 매번 함께했으니, 일주일 이상 떨어져 있던 것만으로도 오래간만에 만났다고 말할 수 있었다.

“이미아. 이 근처에서 뭐 하고 있던 거야?”

“잠깐 쇼핑. 집에 먹을 게 떨어져서 마트에 가 보려고.”

이미아의 집은 이 번화가와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그걸 알고 있기에 자리에 그녀가 나타난 걸 의아하게 여겼던 유지한이었다.

‘먹는 걸 좋아했었지.’

그녀는 평소 식사량이 상당했다.

한번 앉은 자리에서 돼지고기 10인분 정도는 가볍게 먹어치울 정도였다.

영웅이 아니라 일반인이었다면 이미 돼지가 되고도 남았으리라.

“방금 조금 실례되는 생각 하지 않았어?”

“안 했는데?”

“표정이 조금…….”

대체 어떻게 알아낸 거지.

헛기침을 한 유지한이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하여튼, 그동안 잘 지냈어?”

“응.”

“김현태나 다른 파티원들도 잘 있고?”

“전이랑 똑같아.”

그는 그녀에게 기본적인 안부를 물었다.

이미 크게 성공한 파티에 소속된 그녀를 걱정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지만, 예의상 물어보는 것들이었다.

“새로운 파티원이 들어 왔다는 소식은 전해 들었어.”

“…….”

“내가 나오고 나서 박중섭 길드장이 곧바로 정식 파티원으로 넣어 준 걸 보면 실력이 꽤 괜찮나 봐.”

“글쎄.”

새로운 파티원을 언급하자 이미아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뭔 일 있나?’

그녀는 싫은 건 싫다고 하고 좋은 건 좋다고 분명하게 말하는 성격이었다.

애매한 답변을 던질 때는 속으로 조금 신경이 쓰이는 게 있다는 뜻.

‘내가 알 바 아니지.’

하지만 유지한은 그것을 깊게 파고들지 않았다.

이제는 같은 파티원도 아닌 그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너 그거 알고 있어?”

“……?”

“우리 저번에 MA에서 마주쳤던 뱀파이어 있잖아.”

“카지미르?”

“어. 오늘 만났는데, 걔가 지금은 영웅부에 소속되어 있어.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대.”

“신기하네.”

이미아는 카지미르가 영웅부의 연구원으로 근무한다는 말에 관심을 보였다.

“걔가 연구에 참여한 덕분에 기존에 완치가 어려운 희귀병이 몇 개씩이나 해결됐다고 하더라.”

“잘됐네.”

“역시 그때 김현태를 말리는 건 올바른 선택이었어.”

MA에서 김현태 파티가 카지미르를 마주쳤던 당시.

김현태는 딱 봐도 뱀파이어인 카지미르의 대화 요청을 무시하고 그를 죽여 버리려고 했었다.

그 순간 김현태를 막아섰던 건 바로 유지한이었다.

“김현태가 고래고래 소리 질렀었지.”

“나도 이해는 해. 파티가 그전에 만났던 침입자를 바로 눈앞에서 놓쳤었으니까.”

유지한은 파티장의 명령을 거스르면서까지 순순히 투항하는 카지미르를 지켜 냈다.

덕분에 카지미르는 목숨을 건졌고, 뱀파이어인 그의 연구 참여로 여러 희귀병 환자가 건강을 되찾았다.

명령을 따르지 않은 것 때문에 유지한은 김현태에게 거의 1주일 내내 잔소리를 듣고 지냈지만.

그래도 지금에 와서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때 이후로 다른 애들이 너한테 짜증도 더 많이 냈어.”

“알아.”

“…….”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걸.”

박중섭으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전해 들은 것은 아니지만.

유지한을 파티와 길드에서 내쫓은 일에 김현태와 박중섭의 의사가 가장 크게 반영되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카지미르를 살렸다는 이유 하나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금은 새로운 길드에 들어와 있어.”

“알고 있어.”

“알고 있다고? 어떻게?”

“현재 씨가 알려줬어. 꿀잼이라는 길드에 들어갔다고.”

케로즈 매니지먼트 부서의 총괄팀장 이현재는 이미아에게도 유지한의 소식을 전했었다.

이미아는 유지한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있는 파티는 마음에 들어?”

“아주 마음에 들어.”

“……!”

1초도 망설이지 않고 튀어나온 즉답에 이미아는 적잖게 놀랐다.

“진짜 마음에 드나 보구나.”

“그렇지.”

“김현태 파티보다 더?”

“솔직히 그래.”

“……그건 다행이네.”

유지한이 아직 김현태 파티에 있었다면, 이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대답이었겠지.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이미아가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파티를 떠난 그가 전보다 더 잘 지내는 모습을 보니 어쩐지 안심이 되는 그녀였다.

영웅 파티는 목숨이 오가는 현장에서 서로 생사를 같이한다.

따라서 영웅들은 조금씩 불만 따위가 있더라도 자신의 소속에 애착을 가지고 이직을 꺼리는 경우가 많지만…….

역시 그때 유지한을 파티에서 내보내는 건 올바른 선택이었다.

“게다가 나 파티장이 됐거든.”

“파티장? 네가?”

“길드장이 양보해서 떠밀리듯 맡았지만.”

“파티장…….”

이미아가 탁자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잘 어울리네. 파티장.”

“그래?”

“현장에서 네 판단은 거의 틀린 적이 없으니까. 그런 역할을 맡아도 좋겠지.”

“운이 좋았던 거야.”

“그런 운은 아무에게나 찾아오지 않아.”

그녀는 담담한 말투로 솔직한 심정을 말했다.

샘플링을 이용한 판단이 파티에 받아들여졌던 때.

성공적인 결과를 안겨 준 그때의 순간들을,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

‘의외네.’

이미아가 직접 이런 말을 하는 건 처음이었기에 유지한은 조금 낯이 간지러웠다.

화악—

소리 없는 영상이 재생되던 노래방 모니터에 하얀 배경이 떠올랐다.

잠시 밝아진 방안에서 이미아의 얼굴을 바라보던 유지한이 말했다.

“여전히 몸에 뭘 묻히고 다니는구나.”

“…….”

그녀의 머리칼에 붉은 액체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조금 전 침입자를 공격하다가 머리칼에 핏방울이 튄 모양이었다.

하도 터프하게 때려 댔으니 그럴 만도 했다.

“휴지나 손수건 같은 거 있어?”

“있어.”

“잠깐 줘 봐.”

유지한은 하얀 손수건을 건네받아 그녀의 머리칼에 튄 핏방울을 닦았다.

그가 김현태 파티에 있을 적에는 항상 가방에 이미아 전용 수건을 들고 다니면서 그녀에게 묻은 오물을 닦아 주곤 했었다.

“지금은 혼자서 잘 챙기고 있나 몰라.”

“……날 무시하는 거야?”

“당연히 무시하는 거지. 맨날 더럽히고 다녀서 내가 닦아 줬으니까.”

아주 솔직한 대답에 이미아는 불만스러운지 입술을 비죽였다.

“파티에서 나가더니 건방져졌어.”

“이런 말 듣기 싫으면 조금만 더 살살 싸워.”

유지한이 앞머리를 닦기 위해 손수건을 얼굴로 가져가자 그녀는 눈을 감았다.

‘아직도 믿기질 않네.’

이렇게 얌전한 사람이 전투만 시작되면 누구보다 미친년처럼 싸운다니.

옆에서 7년을 함께한 유지한조차 그녀의 반전 모습에는 영 익숙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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