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재회 (2)
영웅부 서울 지부를 빠져나온 유지한은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번화가로 향했다.
사람이 북적거리는 거리에 도착한 그에게 주변의 시선이 모였다.
“검이다.”
“영웅이네?”
“유명한 사람인가?”
주로 허리춤의 검을 바라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무기를 보자마자 유지한을 영웅으로 알아보았다.
“야. 저 사람 청바지에 검을 들고 다녀.”
“꽤 잘 어울리는데?”
“저건 옷걸이가 좋은 거지. 네가 들면 뚱돼지 오타쿠잖아.”
“…….”
때때로 사냥을 나서는 것도 아닌데 자신이 영웅이라는 것을 허구한 날 밖에서 뽐내는 사람들이 있다.
인터넷에서는 그들을 관심종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유지한은 순간 자신이 그런 관심종자가 된 기분이었다.
나이프에게 대응하는 것만 생각하느라 영웅부로 올 때는 미처 신경 쓰지 못했지만, 젊은 사람이 많은 번화가에서 느껴지는 시선은 비교적 조용한 지하철보다도 부담스러웠다.
‘괜히 들고 왔나.’
자신을 감추기만 하던 김현태 파티에서는 느껴 보지 못한 것.
언젠가는 이런 시선에도 익숙해져야겠지.
그는 조금 불편한 시선들을 뚫고 주로 이용하는 은행에 도착했다.
꿀잼의 길드 카드를 발급받기 위함이었다.
‘필요 없다고 했는데도.’
길드 카드라면 이미 김시후가 가지고 있으니, 유지한은 그다지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앞으로 길드에서 지출하는 모든 돈은 길드의 돈으로만 결제하자는 김시후의 말에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
사무실에서 먹을 과자 하나를 구매할 때도 회사가 아니라 개인 돈을 사용하는 것에 김시후가 거부감을 가지는 것 때문이었다.
아직 길드원 복지가 많이 부족한 만큼 가장 잘 체감할 수 있는 돈이라도 마음껏 사용하라나.
‘뭔 절차가 그렇게 복잡한지.’
한도가 없는 길드 카드는 2장 이상 발급받으려면 실사용자에게 추가 인증 절차가 필요해서 직접 은행에 방문해야만 했다.
조금 귀찮지만 유지한은 김시후가 자신을 챙겨 주려는 마음을 알고 있기에 좋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유지한이 은행의 입구로 들어오자마자 한 안내원이 그에게 달려왔다.
안내원은 검을 가진 그를 정중하게 가장 안쪽의 접수대로 안내했다.
의자에 앉아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곧바로 은행 업무를 볼 수 있었다.
영웅들이 항상 은행에서 VIP 대우를 받는 덕분이었다.
“길드 카드 발급, 말씀이시죠?”
“예.”
유지한은 은행원의 지시에 따라 여러 가지 서류에 사인했다.
그러던 도중이었다.
“유지한님. 은행에서 아직 찾아가시지 않은 돈이 있네요?”
“예?”
“영웅채움공제. 혹시 모르세요?”
“잘 모르겠는데요.”
처음 듣는 단어에 유지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은행원이 친절하게 웃으며 말했다.
“영웅채움공제는 영웅들의 안정적인 자산 형성을 지원하기 위해 달마다 보조금을 지급하는 국가사업입니다. 단 한 번도 길드에 소속된 적 없는 신입 영웅이 인원수 50명 이하의 길드에 들어갔을 때만 신청할 수 있죠. 아마도 처음 입사하던 시기에 길드에서 임의로 신청하신 모양이네요.”
“아……. 그래요? 그런데 거긴 이미 50명을 훌쩍 넘겼을 텐데.”
“소속 길드원이 50명보다 늘어나도 그 이전에 신청했던 영웅들은 계속 지원받을 수 있어요.”
“그러면 그 돈도 다른 계좌로 넣어 주세요.”
“알겠습니다. 다만 원래 10년을 꾸준히 넣어야 가장 큰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데, 그보다 일찍 길드에서 나오시게 됐으니 예정된 금액의 절반으로 깎이는 점. 참고해 주세요.”
“…….”
케로즈 길드장 박중섭은 유지한에게 이런 것들을 신청했다는 것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은행원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자신이 길드에서 추방된 때가 떠오르는 그였다.
“총 4천8백만 원입니다.”
“오.”
그래도 거저 생긴 목돈은 꽤 달콤했다.
*****
은행에서 볼일을 마친 유지한은 잠시 카페에 들렀다.
[스노우볼 카페]
그곳은 스노우볼 길드에서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카페였다.
길드명답게 차가운 얼음을 이용한 아이스 커피와 스무디가 가장 잘 팔린다고 알려진 곳이었다.
“주문받았습니다!”
커피를 하나 주문하자마자 직원들의 손놀림이 빠르게 움직였다.
길드에서 운영하는 카페답게 사용하는 커피 기계도 마법이 가미된 것이었다.
위이잉—
기본적으로 전기, 그리고 마력을 충전한 마석으로 동작하는 그 기계에서 향긋한 커피가 추출되는 것에는 단 3초도 걸리지 않았다.
컵에 들어간 얼음 또한 스노우볼 길드의 상징인 화려한 눈 결정 모양으로 들어가 있었다.
이처럼 길드는 명성과 마력을 이용하여 다양한 산업에 진출을 시도하는 일이 많았다.
다른 사례 중 하나로 윤도하의 주사위 길드는 꽤 오래전부터 마법을 이용한 카지노 건설을 추진 중인데, 조만간 정식으로 승인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도 많았다.
‘꿀잼이 나중에 커지면 사업을 하는 것도 좋겠어.’
유지한은 커피를 마시면서 길드가 도전해볼 만한 사업을 떠올렸다.
마법에 해박한 김시후가 있으니 아이디어가 있다면 사람을 고용하여 신박한 사업 아이템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리라.
‘물론, 당장 사업보다는 파티의 성과가 더 중요하지만.’
길드의 가치를 가장 크게 키우는 것은 역시 소속 파티의 성과다.
유명한 파티가 소속된 길드에서 새로운 사업을 진행한다면, 대개 사람들은 그쪽으로 몰리기 마련이었다.
또, 길드 중에는 직접 사업을 진행하지 않고 길드의 브랜드만 빌려주는 때도 있다.
어느 기업과 협약을 맺은 케로즈가 그런 사례 중의 하나였다.
‘김현태 스피커가 나온다고 했던 것 같은데.’
전자 기기를 만드는 회사와 협약을 맺은 케로즈는 김현태 파티의 브랜드를 그 회사에 빌려주었다.
같은 파티에 있던 유지한은 새로 출시되는 스피커에 김현태의 이름이 박힐 거라는 소식도 들은 적이 있었다.
만약 그게 잘 팔린다면 미래에는 김현태 파티원인 임시연 노트북이나, 이미아 에어컨 따위도 나올 거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
오랜만에 카지미르를 만나고 은행에서 케로즈와 관련된 소식을 들었기 때문일까.
자꾸 그들과 관련된 생각이 떠오르는 유지한이었다.
‘케로즈에 미련은 없어.’
이미 길드를 나온 그에게 남아 있는 미련은 없었다.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활동했던 그때보다 지금 꿀잼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더 즐겁고 의미도 있었다.
특히, 꿀잼의 길드장 김시후와 만나게 된 것은 유지한의 인생에 있어서 전환점이라고 부를 수 있었다.
그의 지팡이에 잠들어 있던 실프와 계약을 맺고 평생을 구경만 해 왔던 마법도 사용하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쪼로록—
카페 밖으로 나온 유지한이 빨대로 남아 있는 커피를 마셨다.
“쉬고 있으니까 별생각을 다 하네.”
몸이 편하니까 여러 잡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역시 쉬더라도 최소한 길드 사무실에 나와 있거나, 개인 훈련을 진행하는 편이 그의 성격에 더 맞았다.
다만, 영웅부에서는 영웅들에게 주기적으로 길드를 완전히 벗어나 충분한 휴식을 가지라고 권하는 편이었다.
‘주변이 너무 평화롭구나.’
당장 유지한이 걷고 있는 길가는 아무런 위기도 느껴지지 않는 평화로운 거리였다.
요전의 골프장에서 뛰어다녔던 일들은 모두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그런 장소.
하지만 그는 장비가 완성되는 대로 다시 목숨이 오가는 MA로 들어간다.
정말이지 극과 극의 공간.
두 공간에서 오는 괴리감이 지금보다 심해진다면 그것은 향후 정신질환으로도 이어질 수도 있었다.
‘조심해야 해.’
케로즈 소속 영웅들의 정신 건강은 매니지먼트 부서에서 관리하는 편이었다.
부서의 총괄팀장인 이현재는 육체의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심드렁한 길드장 박중섭으로부터 부서의 예산을 따냈다.
케로즈가 빠르게 성장하는 동안 정신질환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은 것은 그 덕분이라고 볼 수 있었다.
‘언젠가는 매니지먼트 부서를 만들어야지.’
비록 유지한을 내친 케로즈였지만, 빠르게 성장한 그 길드에서도 배울 건 있었다.
가능한 취할 건 취하고 버릴 건 버리는 것이 지금의 꿀잼에게 맞는 방향일 것이다.
특히 이현재가 맡은 매니지먼트 부서는 기존 거대 길드의 시스템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을 터.
‘현재 씨한테도 조만간 연락해 봐야겠어.’
첫 MA 입장 심사 과정에서 이현재의 도움으로 추천서를 받은 뒤, 간단한 연락 외에 아직 감사를 전한 적이 없었다.
뒤늦은 감사 인사를 전하는 것과 함께 매니지먼트 부서의 구조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리라.
거기에는 충분히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었으니까.
……유지한이 그렇게 생각하던 때였다.
“아니, 손님! 계산은 하고 드셔야죠!!”
그와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어느 중년 여성의 날카로운 외침이 들렸다.
유지한과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고개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돌아갔다.
“뭘 하라고?”
“계산이요, 계산! 그거 자꾸 함부로 먹지 말고요!”
소리가 들려온 곳은 바닥에 다양한 야채가 진열된 야채가게.
가게의 사장처럼 보이는 여성은 무척 화가 난 듯,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어느 남성과 말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우적, 우적!
남성은 입으로 초록색 오이를 베어 물었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크고 맛있게 들리는지, 듣는 사람마저 배가 고파올 정도였다.
그가 입안에 있던 오이를 이빨로 조각내어 꿀꺽 삼킨 뒤에 말했다.
“계산이라는 건, 나보고 돈을 내라는 건가?”
“그렇죠! 물건을 드시려면 먼저 돈을 내셔야죠!”
“하지만 난 돈이 없는데?”
“……이 사람 뻔뻔한 것 좀 보게?!”
그 남성은 아무래도 가게에 진열된 오이를 계산도 하지 않고 주워 먹은듯했다.
사람들은 서로 시비가 붙은 그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조금 도와줄까.’
유지한은 그 가게 근처로 다가갔다.
혹시라도 손님이 돈을 내지 않고 달아난다면 옆에서 잡아줄 생각이었다.
평범한 양아치나 좀도둑 따위는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제압할 수 있으니.
“응?”
그런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는 조금씩 이상함을 느꼈다.
야채가게 주인에게 구박을 듣는 남자의 행색이 조금 특이한 덕분이었다.
머리칼은 아주 얇고 뿌리 끝까지 짙은 갈색에 복장도 평범한 사복은 아니고, 그렇다고 영웅의 장비와도 다른…….
“……이런 씨발.”
순간, 유지한은 온몸에 달린 모든 털이 쭈뼛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오른손이 저절로 검의 손잡이로 향했다.
“이거 하나 갖고 되게 시끄럽네.”
“뭐라고?”
콰득!
남자는 날카로운 이빨로 야채가게 주인의 입술을 물어뜯었다.
정말이지 눈 깜박하는 새에 벌어진 상황이었다.
“끄, 끄륵, 끄르르……!”
남자에게 목을 붙잡힌 여성은 팔다리를 아래로 쭉 뻗고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완전히 찢어져서 핏물이 흘러내리는 입가에는 이빨과 턱뼈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캬하!! 역시 이게 훨씬 더 달고 맛있는데!”
“……?”
“……?”
남자는 인간의 입술을 젤리처럼 씹으며 기분 좋은 목소리를 냈다.
평화로운 거리에서 보이기에는 너무나도 낯선 장면.
눈앞의 광경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리에 그대로 정지해 있었다.
그러자 유지한은 주변을 향해 크게 외쳤다.
“도망가 이 멍청이들아——!!”
안 그러면 당신들 다 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