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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48화 (48/300)

48화. 적대 길드

새로운 장비가 완성되기 전까지 유지한과 김시후는 현장에서 활동할 수 없었다.

최근 너무 바쁘게 살았다는 김시후는 이참에 제대로 쉬어 보겠다며 집에 틀어박혔다.

한편, 유지한은 자기 집 거실에 대자로 누워서 생각했다.

‘몸이 근질거리네.’

럭키 위스커와 화이트 엄브렐라는 물에 넣어 가스레인지로 팔팔 끓인 뒤에 식히고 있었다.

매일같이 하는 운동도, 남아 있는 집안일도 이미 다 끝내 버렸다.

그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휴식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좀처럼 가만히 있지 못하고 몸을 연신 꼼지락거렸다.

자꾸만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증 같은 게 올라오고 있었다.

‘안 되겠다.’

유지한은 결국 참지 못하고 머리맡에 둔 휴대폰을 잡았다.

바로 얼마 전에 본 기사가 현대인들은 90% 이상이 휴대폰 중독이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소식이라도 접해야 몸의 근질거림을 없앨 수 있을 것 같았다.

화면을 켜자마자 곧바로 실행한 것은 MA 맵.

지도를 보기 위해서는 아니고, 영웅과 관련된 소식들이 올라오는 게시판이 거기에 있었다.

“화성 쪽에 침입자가 나왔구나.”

오늘 하루 가장 댓글이 많이 달린 게시글은 침입자가 등장했다는 소식이었다.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니 경기도 화성시에서 수인(獸人)이 나왔다고 적혀 있었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인간과 특정한 동물의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이종족.

상당수가 인간에게 적대적인 놈들이었다.

[……침입자는 모두 처단했지만, 총 3명이 전사했습니다. 거기서 두 분이 연인이라는 소리가 들려오던데, 너무 안타깝네요.]

[제가 그분들 합동 장례식에 참여했습니다. 사귄 지 한 달쯤 된 커플이 맞고요. 한 명이 인질로 잡혀서 다른 한 명은 어쩔 수 없이 죽었다는…….]

수인과의 격렬한 싸움으로 인해 현장에서는 사망자가 나왔다.

죽은 그들이 서로 연인이었던 것이 알려지면서 그 게시글이 가장 주목받게 된 듯했다.

‘쯧, 안 됐어.’

속으로 짧게나마 그들을 위로하는 한편, 유지한은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다.

그도 침입자를 여러 번 만나 본 경험이 있었다.

마주치는 장소는 주로 MA 안쪽이었는데,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지 그중에서 절반 정도가 지구에 정착하기를 원하는 온건파였다.

김시후와의 면접에서 이종족에 대한 태도가 열려 있는 모습을 보여 준 이유도 그것 덕분이었다.

하지만 다시 말하자면 나머지 절반은 적대적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김현태 파티는 그들과의 싸움에서 언제나 승리를 거뒀다.

파티원은 물론이고, 싸움에 휘말리는 일반인 사망자를 단 한 명도 발생시키지 않고 얻은 결과였다.

“김현태 파티에는 누가 새로 들어갔네.”

비공식 파티원이 빠진 김현태 파티에는 김강우라는 새로운 영웅이 정식으로 합류했다.

과거에 미련을 두기 싫었던 유지한은 케로즈를 떠난 뒤 일부러 그들에 대해 찾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 듣는 소식이었다.

‘미아한테는 나중에 연락을 해볼까.’

김현태 파티원 중에 그와 그나마 소통을 했던 사람이라면 이미아 한 명을 꼽을 수 있었다.

다른 파티원들은 조금 거북해도 그녀에게는 먼저 연락을 할 의사가 있었다.

뚜루루—

쉬엄쉬엄 다른 게시글을 훑어보던 중에 전화가 걸려왔다.

집에서 쉬고 있을 김시후의 전화였다.

“어, 무슨 일이야?”

—형……. 지금 시간 되세요?

“널널하지.”

—오늘 저랑 어디 좀 같이 가 주셔야겠어요.

“집에서 쉰다며. 어딜 가자는 건데?”

—영웅부 서울 지부요.

유지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뜬금없이 거긴 왜?”

—괴냥이 나왔던 아파트에서 저희랑 마찰이 있었던 파티 기억하시죠?

“기억해.”

—그 파티의 길드에서 영웅부에 강하게 항의를 했다는 연락이 왔어요.

“그쪽에서 어떤 행동을 취할 거라고 예상은 했었지. ……그런데 뭐라고 항의했대?”

—아파트에서 그 사람들이 입은 모든 피해가 저희 책임이라고.

“뭐?”

이것들이 미쳤나.

*****

유지한은 영웅부 서울 지부의 정문으로 들어섰다.

빠르게 걷던 그가 혼자서 중얼거렸다.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네.”

“그러니까요.”

“대체 뭔 자신감으로 그런 소리를 하는지.”

김시후는 옆에서 그의 말에 동의했다.

가해자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 쓰나.

“그때 본 파티장이랑 길드장까지 다 나온댔지?”

“네.”

“오늘 그 낯짝 좀 보자.”

유지한은 허리춤에 매어 둔 검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나이프의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무기를 챙겨온 것이었다.

“양지철 씨!”

“아, 오셨군요.”

유지한은 입구 근처에 서 있던 양지철을 발견하고 말을 걸었다.

김시후에게 나이프의 항의 소식을 전해 준 게 바로 그였다.

“너무 급하게 말씀드려서 죄송해요. 원래는 3일 뒤로 예상하고 있었는데…….”

“괜찮습니다. 그것보다 그 뻔뻔한 새끼들 지금 어딨어요?”

“…….”

조금 낮게 깔린 음성과 살짝 찌푸린 얼굴. 그리고 챙겨온 무기까지.

상대측과 만나기 전부터 아주 불편한 태도를 내보이는 유지한이었다.

‘역시 나이프에서 말한 것과는 다른가 보네.’

아직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누기 전이지만.

양지철은 그의 모습을 통해서 나이프와 꿀잼의 입장이 상반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미 와 계십니다. 들어가시죠.”

유지한과 김시후는 안내하는 양지철을 따라서 작은 회의실에 도착했다.

닫힌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때 만났던 파티의 탱커가 보였다.

그는 그나마 멀쩡한 오른팔로 유지한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혀, 형님! 바로 저놈들입니다!”

“그래? 이놈들이야?”

오른쪽 볼에 작은 칼자국이 나 있는 나이프의 길드장, 문경구.

자리에 앉아 있던 그가 유지한과 김시후를 보자마자 앞쪽으로 마력을 뿜어냈다.

스스스스—!

물리적인 타격은 전혀 없고, 오로지 상대측을 압박하기 위한 용도였다.

어떤 일이든지 시작이 중요한 법!

첫 만남에 상대측을 압박하여 이번 만남의 분위기를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갈 생각이었다.

‘뭐야, 이건.’

유지한은 그에 압박을 당하기는커녕 헛웃음을 지었다.

기세는 꽤 그럴듯하지만, 그래 봤자 단순히 장난질에 불과한 걸 알고 있었다.

이세계의 침입자들이 피와 살이 찢기며 보여 주던 진짜 살의와는 비교조차 불가능했다.

하지만 옆에 있던 양지철은 마력의 영향을 받고 조금씩 주춤거렸다.

그러자 김시후가 엄지와 중지를 이용하여 손을 한 번 튕겼다.

파앙!

김시후의 손에서 튕겨 나온 마력의 충격파가 상대방이 내뿜은 마력의 흐름을 망가뜨렸다.

방금 보인 현상이 마법이라고 부르기에는 꽤 조잡한 것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씁…….”

4급 파티치고는 유연한 두 사람의 대응에 혀를 차는 문경구였다.

딱 봐도 오늘의 대화가 쉽게 흘러가지는 않을 듯했다.

유지한은 압박에서 벗어난 양지철이 한숨을 뱉는 걸 확인하고, 문경구에게 말했다.

“시작부터 뭡니까?”

“이거? 그냥 반갑다는 인사야.”

“첫 만남치고는 인사가 꽤 거칩니다만.”

“그럴 수밖에 없지. 내 친동생이 누구 때문에 이렇게 다쳤는데.”

아파트에서 자리를 주장하며 시비를 걸었던 탱커는 나이프의 길드장인 문경구의 동생, 문경진.

유지한은 휠체어에 탑승한 문경진을 흘겨보며 말했다.

“그 반대겠죠. 저희가 누구 때문에 거기서 고생을 했는데.”

“이 개새끼가!!”

“잠깐! 시작부터 싸우지 마세요!”

문경진이 흥분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양지철은 두 길드의 사이에 끼어들어 중재자로 나섰다.

“입장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들어보지 않아도 알겠습니다. 하지만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저희가 양쪽 모두의 말을 들어볼 수밖에 없어요. 이해하시죠?”

“…….”

“다들 자리에 앉으시고. 나이프 측의 입장부터 먼저 들어보죠.”

“아니, 저 새끼들이 아파트에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문경진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소한 트러블을 이유로 유지한이 자신에게 먼저 시비를 걸었다는 주장이었다.

그가 특히 강조한 것은 같은 파티원의 죽음이었다.

“저 검 쓰는 놈이 발로 밀어 버려서, 민현이가 괴냥이한테 물려 죽었다고!”

“지한 씨. 사실입니까?”

“저 사람 말에 가장 중요한 게 빠졌네요.”

“그게 뭔가요?”

“민현이라는 전사는 저 문경진이라는 분의 명령으로 저희를 먼저 공격했습니다. 게다가 몬스터가 나왔음에도 주변 상황을 살피지도 않고 검을 들고 시후에게 달려들었죠. 저는 그에 대응했을 뿐이고, 그 이후 괴냥이에게 당한 것은 그 전사의 책임입니다.”

“거, 거짓말이야!”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입니다. 거기 계단 복도에 CCTV 없나요? 녹화된 거 보면 알 텐데.”

“아쉽게도 계단에는 없다고 하더군요.”

문경구와 문경진의 주장이 나올 때마다 따박따박 반박을 하는 유지한과 김시후였다.

그리고 꿀잼의 입장을 말할 차례가 되자, 유지한은 문경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쪽이 저희한테 자리를 주장하셨잖아요.”

“아니, 그건…….”

“딴소리 마시고. 저희는 구구절절한 말 따위 하지 않겠습니다. 자리 주장 하셨잖아요? 그쵸?”

“…….”

대답을 못 하는 문경진.

하지만 침묵은 곧 긍정이었다.

“이거 보세요.”

“이건…….”

유지한은 휴대폰 화면을 켜서 미리 캡쳐한 스크린샷을 모두에게 보여 줬다.

나이프 길드가 MA 맵 게시판에 올린 자리를 주장하는 게시글이었다.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와 함께, 유지한이 양지철에게 말했다.

“지철 씨. 제가 자리에 대해 문의한 거 알고 계시죠?”

“알고 있습니다.”

“그게 저 사람 때문입니다. 두 번째 만남에서도 자리를 주장하길래 저는 지철 씨가 전해 주신 영웅부의 권고를 그대로 읊었죠. 그랬더니 도리어 영웅부에서 너희 목숨까지 책임질 것 같냐고 위협하더군요.”

“…….”

양지철이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문경진의 행동은 사실상 영웅부의 권고를 깡그리 무시한 것이었으니.

“문경진 씨. 이게 사실입니까?”

“거짓말! 거짓말이야!”

“그렇다면 저 게시글은 뭡니까?”

“…….”

“영웅부에서 하나하나 단속하지 않는다고 해서 저런 걸 허용한다는 게 아니라는 거, 모르십니까?”

“거, 뭐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되게 뭐라 하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문경구 씨.”

이제 서로의 입장은 나올 대로 나왔다.

그리고 여전히 의견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나이프의 잘못 같긴 한데…….’

양지철의 눈에는 이번 일이 정황상 나이프의 잘못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 판단을 내리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

회의는 약 1시간 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회의의 결론은 영웅부에서 당시 싸움이 벌어진 아파트를 재조사한다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문경진은 노발대발하며 항의했다.

그 아파트에 별다른 증거가 남았을 리는 없을 테니, 사실상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넘어가겠다는 말이었으니까.

“받아들이죠.”

“아니, 형님! 그게 무슨 소리에요!”

나이프의 길드장인 문경구는 회의 결과에 순응하는 쪽이었다.

길드 소속 영웅이 1명 죽은 데다가, 자기 친동생은 왼쪽 다리와 손가락 몇 개가 잘렸는데도 말이다.

‘너무 의외인데.’

유지한은 첫인상과는 조금 다른 문경구의 태도에 의문을 가졌다.

그래도 결국 오늘 이 자리는 꿀잼에게 유리하게 풀렸다.

원인을 놓고 보자면 아주 당연한 결과였다.

“할 말 다 끝났으면 이만 가 보겠습니다.”

“어딜 가! 네가 죽였잖아! 민현이를 죽였다고!”

“제가 죽였다가 아니라, 당신 명령을 따른 그 전사가 ‘무리하다가 죽었다’ 입니다. 말은 똑바로 하셔야지.”

“……!”

유지한의 반박에 문경진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그를 노려봤다.

계속 이야기가 오가는 동안에도 언제든 달려들 것처럼 흥분해 있던 그였다.

‘꿀잼도 적대 길드가 생긴 건가.’

길드장 문경구의 태도는 의외긴 하지만, 이제부터 나이프는 꿀잼을 적대하는 길드로 볼 수 있으리라.

현장에서 나이프 소속의 파티를 만난다면 반드시 경계해야 할 것이다.

“돌아가자.”

“괜히 시간만 뺏겼네요.”

소소한 승리를 거둔 유지한과 김시후가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못다한 휴식을 취할 시간이었다.

“형. 오늘 은행 방문하시는 거 잊지 마시고요.”

“알았어.”

그들이 1층 정문으로 걸어가던 순간이었다.

“허, 이게 누구야.”

“……?!”

1층에서 유지한을 알아보는 누군가가 있었다.

유지한 또한 그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평생에 걸쳐 딱 한 번밖에 만난 적이 없지만, 도저히 잊을 수가 없는 얼굴.

“카지미르.”

“아주 오랜만이군.”

김현태 파티 소속이었을 때 마주쳤던 뱀파이어, 카지미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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