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인터뷰 (2)
“김현태 파티는……. 아주 훌륭한 파티죠.”
“…….”
“제가 따로 하고 싶은 말은 없고, 저희도 그런 훌륭한 파티를 목표로 정진하겠습니다.”
유지한이 선택한 것은 아주 형식적인 대답이었다.
개인적인 친분은 드러내지 않고, 그저 평범한 4급 파티에서 유명한 파티를 의식하는 정도의 대답.
‘모르는 척하자.’
현 시점에서 유지한이 비공식 파티원이었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김현태 파티원들과 케로즈의 고위 임원들, 그리고 꿀잼의 김시후뿐이다.
케로즈 길드장 박중섭의 성격을 생각하면 다른 길드원들도 김현태 파티와 유지한에 대해 입단속 하라는 명령을 들었을 터.
그러니 이런 공개적인 자리에서 그 정보를 알릴 수는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앞으로의 활동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적어도 지금은 아니야.’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고 하지만, 언젠가 그 사실이 드러나게 되더라도 최소 김현태 파티와 비슷한 급이 되었을 때.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을 때 조금씩 이야기를 꺼낼 수 있으리라.
“흐음. 그렇군요.”
이완은 형식적인 대답에 만족한 것인지 그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
‘이렇게 넘어간다고……?’
그러자 유지한은 되레 기분이 조금 찝찝해졌다.
갑작스럽게 나온 질문치고 쉽게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너무 신경 쓰지는 않기로 했다.
“앞으로 파티의 포지션을 어떻게 가져갈 예정인지도 궁금합니다.”
“아까 답변했던 내용과도 관련된 내용인데, 훌륭한 마법사가 준비되어 있으니 조만간 탱커와 딜러가 들어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파티장으로서 파티를 이끌 거고요.”
파티에서 메인 딜러를 자칭하지만, 인원이 2명인 지금 사실상 그 외에 필요한 역할을 모두 도맡고 있는 유지한이었다.
다른 파티원이 합류해서 부담을 덜어준다면 그때부터는 본래의 역할에 집중할 수 있을 터였다.
“마지막으로 인터뷰에 특별히 남기고 싶은 말씀은 없으신가요?”
“아! 저희 하고 싶은 말 있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유지한과 김시후가 인터뷰에서 가장 기다리던 질문이었다.
“저희가 아직 부족한 파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를 힘껏 도와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분들께 감사의 말씀 겸 잠깐 홍보라도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물론이죠. 말씀하세요.”
유지한은 마른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먼저 오픈 마켓에서 ‘칼방’이라는 공방의 대장장이로 활동하시는 남호열 씨. 그분이 유명 브랜드 공방에서 만드는 장비와 비교해도 절대 꿀리지 않는 훌륭한 물건을 만드시는데, 아직 사람들이 많이 알아주지 않고 있어요. 이 인터뷰를 보시는 분이라면 한 번쯤 방문해 보시는 걸 추천해 드립니다.”
첫 만남이었던 남호열이 유지한에게 검을 선물한 이유는 홍보 때문이었다.
비록 이번 인터뷰가 4급 파티의 인터뷰이니만큼 세간의 커다란 관심을 끌기는 힘들겠지만.
그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유지한이었다.
다음은 김시후가 말했다.
“몬스터 처리 전문 업체인 몽땅에서도 저희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이쪽도 마찬가지로 현재 이용하는 길드가 꽤 적은 편입니다. 대표인 장사임 씨의 실력은 확실하니까, 아직 처리 업체를 고민 중인 길드에서는 이용해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까지 말씀해 주시니, 두 업체 사장님들이 좋아하시겠어요.”
그들의 음성을 녹음하며 메모를 하던 이완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성장하는 길드는 언제나 좋은 소재지.’
작은 길드가 크게 성장하는 이야기는 시대에 구분 없이 사랑받는 이야기였다.
언젠가 이들이 이름을 크게 떨친다면 지금의 인터뷰는 꽤 중요한 자료로 남으리라.
지금 이름이 언급된 업체들도 그때쯤에는 큰 규모의 회사로 커질지도 모른다.
“네! 이번 인터뷰는 이걸로 마치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딸깍!
이완은 녹음기의 전원을 껐다.
그리고 인터뷰를 마친 두 사람과 함께 카페를 빠져나왔다.
“기사는 며칠 내로 올라갈 겁니다. 제가 문자 한 번 보내드릴게요.”
“모쪼록 좋은 기사 부탁드려요.”
“하하, 오늘 말씀하신 내용 그대로 올라갈 거예요.”
걸으며 대화를 나누던 그들이 횡단보도 앞에 섰다.
이완은 차량이 주차된 주차장으로, 유지한과 김시후는 찻길 반대편에서 택시를 잡으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꺄아아악!!”
쨍그랑!
갑자기 어디선가 여성의 비명과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
“뭐지?”
신호등을 기다리던 세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돌아갔다.
“튜, 튤립이……!”
어느 작은 꽃가게의 앞.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넘어진 여성이 놀란 얼굴로 가게 앞에 진열된 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튤립?’
그녀가 바라보는 것은 하얗고 붉은 튤립들.
그런데 그 튤립의 모습이 매우 이상했다.
츠츠츠츠—
분명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크기인 잎이 자꾸만 크기를 키워 가고 있었다.
이완은 입을 쩍 벌리며 외쳤다.
“몬스터로 변하고 있어요!”
“……!”
그것은 다름 아닌 평범한 식물이 몬스터로 변하는 장면이었다.
이완은 기자의 본능으로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 앱을 클릭했다.
도망칠 때 도망가더라도 이 장면을 녹화해서 중요한 자료를 남기려는 행동이었다.
“형!”
“저거 싹 다 잘라!”
그리고 그사이 유지한과 김시후는 꽃가게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윈드 커터]
달려가던 도중, 적당한 거리에 멈춰선 김시후가 윈드 커터를 사용했다.
샤샤샤샥!
바람의 칼날이 몬스터로 변하고 있는 튤립의 줄기와 꽃을 잘라 냈다.
아직 몬스터로 변하지 못한 녀석들은 평범한 꽃이나 다름없었기에 단 한 번의 공격 마법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몬스터화가 끝난 녀석은 별개였다.
‘이빌립(Evillip)은 또 오랜만이네.’
몬스터로 변한 튤립, 이빌립.
수많은 꽃 중에서도 생산량도 많고 가격도 싼 튤립인 만큼, 이빌립 또한 전세계적으로 꾸준하게 발생하는 5급 몬스터 중 하나다.
오늘 인터뷰 자리에 무기를 가져오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어렵지 않지.’
유지한은 맨손으로도 녀석들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
쿵! 콰앙!
새로운 삶을 얻은 이빌립이 꽃가게의 진열대를 부수며 바닥으로 내려왔다.
“흡!”
퍼억!
유지한은 주먹으로 이빌립의 줄기 중간 부위를 강하게 쳤다.
그러자 사람의 허리가 꺾이듯이 녀석의 줄기가 C자 모양으로 꺾였다.
유지한이 잠시 경직된 녀석의 꽃잎을 손으로 잡았다.
찌지직!
그리고는 커다랗고 질긴 꽃잎을 아래로 확 잡아당겨서 뜯어 버렸다.
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빌립은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그러나 유지한은 스텝을 밟으며 녀석이 휘두르는 초록색 잎을 모두 피한 뒤, 남은 꽃잎을 하나씩 잡아 뜯었다.
잎이 떨어져 나갈 때마다 조금씩 약해지던 녀석은 결국 꽃잎 속에 숨겨져 있던 암술과 수술을 훤히 드러낸 채 바닥에 쓰러졌다.
녀석이 힘을 유지하는 근원이 화려한 꽃잎에 집중된 덕분이었다.
“남은 놈들 없지?”
“다 확인해 봐요.”
꿀잼의 합공으로 남은 4개의 이빌립을 처리하는 데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두 사람은 꽃가게 주인의 동의를 얻어, 가게에 남아 있는 꽃들을 샅샅이 살피며 몬스터의 조짐이 보이는 것들을 하나씩 제거했다.
지이잉—
그리고 이완은 멀리서 그 모습을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었다.
*****
영웅부는 별도의 신고를 받고 꽃가게로 찾아왔다.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이완은 자신의 차량이 있는 주차장에 도착했다.
운전석에 탑승한 그가 휴대폰으로 촬영한 영상을 확인했다.
영상 속에는 이빌립의 등장과 함께 그것들을 처리하는 유지한과 김시후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생각보다 더 좋은 기사가 나오겠어.”
예상하지 못한 사건의 발생.
하지만 그 덕분에 더 흥미로운 기사를 적을 수 있게 된 이완이었다.
‘조회수가 꽤 나오려나…….’
평범한 사람들이 영웅을 바라볼 때 가장 큰 관심을 갖는 부분은 역시 현장에서의 활약이다.
보통은 겨우 4급 파티의 인터뷰로 많은 조회수를 얻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최근에 취재한 다른 4급 파티와는 달리, 꿀잼은 짧은 활약상을 기사에 담을 수 있게 되었다.
기사 하나를 보더라도 볼거리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꽤 크다.
“정리를 좀 해볼까.”
휴대폰 화면을 끈 그가 인터뷰한 내용이 적힌 수첩을 정리했다.
그러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김현태 파티에 대해서는 유지한 씨도 잘 모르는 것 같았지.”
영웅 김현태를 중심으로 하는 김현태 파티.
요새 가장 떠오르는 파티를 손으로 꼽는다면 많은 이들의 손에 꼽힐 만큼 인지도 있는 파티였지만.
그들에게는 조금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다.
‘김현태 파티의 그늘에 가려진 의문의 인물…….’
얼굴 전체를 가리는 가면이나 복면을 쓰고, 항상 등에 가방을 메고 다니던 의문의 인물.
공식 석상에서는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현장에서는 김현태 파티와 자주 함께했다는 그 인물이 최근 종적을 감췄다.
그리고 그가 사라진 뒤 새로운 파티원으로 김강우라는 영웅이 합류했다.
‘문의해도 답변은 없고.’
이완이 그 의문의 영웅에 대해 케로즈에 문의를 해봤으나 돌아오는 답변은 없었다.
게다가 정보를 알고 있을법한 케로즈 소속 영웅들은 대부분 길드를 거치지 않는 개인적인 접촉을 피하는 분위기였다.
따라서 할 수 있는 추측뿐이었다.
가장 가능성이 큰 추측은 그 영웅이 새롭게 합류한 김강우였다는 것.
아니면 그가 길드 내 다른 파티에 들어갔거나, 혹은 길드를 나갔다는 것이다.
‘유지한 씨는 시기가 엇갈려.’
이완은 이번 인터뷰를 통해 유지한이 길드에서 나온 날짜를 알아냈다.
하지만 유지한과 의문의 인물이 활동을 중단한 날은 서로 달랐다.
뒷조사에 따르면 유지한이 길드에서 나온 날 이후에도 얼굴 전체에 복면을 쓴 누군가가 김현태 파티와 며칠간 행동을 함께했었다.
따라서 당장 그를 의심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걸 알아낸다고 해서 나한테 돈이 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그가 볼펜 끝으로 수첩을 두드렸다.
솔직히 그 인물이 누구든 간에 이완과 크게 상관은 없었다.
그는 그저 기자로서 궁금할 뿐이었다.
사실상 2급 영웅에 해당하는 그가 왜 자신의 존재를 철저히 감추고 활동을 했는지.
최근에 갑자기 자취를 감춘 이유는 무엇인지.
“시간 날 때마다 알아봐야지.”
수첩을 가방에 대충 던져 넣은 그가 차량의 시동을 걸었다.
*****
서울의 한 대학병원.
그곳의 1인 병실에 전신이 하얀 붕대로 둘둘 말린 한 남성이 누워 있었다.
그는 나이프 길드 소속의 영웅이자, 탱커로서 활동하는 한 파티의 수장.
그리고 괴냥이가 등장한 아파트에서 유지한 파티에게 시비를 걸었던 남자였다.
“허억!”
일주일도 넘게 긴 잠에 빠져 있던 그가 짧은 숨을 토해 내며 마침내 눈을 떴다.
낯선 천장이 보이자, 그는 잘 움직이지 않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주변을 살폈다.
이곳이 병원이라는 걸 인식하는 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내, 내 다리는……?”
그는 무릎 아래로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자신의 왼쪽 다리가 사라졌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심지어 왼쪽 손가락도 검지와 엄지, 그리고 중지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 아아……!”
아파트에서 구조된 당시 괴냥이에게 양쪽 다리와 손가락이 뜯어먹힌 채 발견된 그였다.
치유 마법까지 동원한 접합 수술로 붙일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붙였지만, 괴냥이의 이빨이나 녀석들의 위 속에서 심하게 훼손된 것들은 의사들도 결국 수술을 포기해야만 했다.
“끄아아아아악——!”
주먹이 들어갈 정도로 입을 크게 벌린 그가, 비명을 지름과 동시에 병실 침대에서 발버둥 쳤다.
“환자분! 진정하세요!!”
“저 사람 붙잡아!”
“위험해요!”
“꺄아악!!”
환자가 깨어난 걸 알고 달려온 간호사와 의사들이 급하게 그의 몸을 붙잡았다.
하지만 영웅인 그의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모두 밖으로 튕겨 나갔다.
“주, 주, 죽여버릴 거야! 그 새끼들 내가 다 죽여버릴꺼야아악—!!”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그가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것은…….
자신의 몸을 뜯어먹은 괴냥이가 아닌, 유지한과 김시후의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