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인터뷰
“완성되면 제가 연락 드릴게요.”
남호열은 유지한과 김시후의 장비 제작이 완료될 때까지 다소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무난한 장비를 만드는 건 하루나 이틀 정도로 마무리되겠지만, 괴물 닭의 부리를 활용하자니 대장장이로서 소재의 쓰임새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부리의 일부를 잘라 내서 뜨거운 불에 달궈 보거나 강한 충격을 가하며 어느 정도까지 버틸 수 있을지 테스트하는 것.
그리고 고운 가루로 만든 뒤에 여러 재료와 섞어 보는 등, 활용할 방법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무궁무진했다.
그것들이 모두 장비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작업이니만큼 꿀잼에서는 시간을 두고 기다리기로 했다.
“형. 시간에 맞추려면 슬슬 출발해야 해요.”
“준비 끝났으면 가자.”
오후 1시 30분.
사무실에서 샌드위치로 간단하게 점심을 때운 유지한과 김시후는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만.”
문을 나서기 전, 유지한은 사무실에 놓인 작은 거울을 바라봤다.
1시간 전쯤 미용실에서 다듬은 머리칼이 거울에 비쳤다.
‘인터뷰 요청이 들어올 줄이야.’
오늘 오후 2시에는 언론사의 인터뷰가 하나 잡혀 있었다.
벌써 길드에 관심을 갖는 언론이 있을 줄은 몰랐기에, 유지한은 김시후로부터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조금 놀랐다.
“이번 인터뷰는 4급으로 승급한 파티 대상으로 전부 다 진행하는 모양이에요.”
김시후가 자신의 휴대폰을 뒤집어서 화면을 보여 주었다.
저번 시기에 함께 4급으로 승급한 신우정 파티와 다른 한 곳의 인터뷰가 검색 결과에 보였다.
“신우정 파티에서 진행한 인터뷰는 봤어?”
“그쪽 기사는 지워졌던데요.”
“뭐?”
김시후가 우정 길드, 신우정 파티의 인터뷰 기사를 클릭했다.
그러자 결과로 보이는 건 단 한줄의 메시지.
[삭제된 기사입니다.]
기사가 삭제되었다는 경고문이었다.
유지한이 그 경고문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번에 징계 내려온 거 때문에 삭제된 건가?”
“아무래도 그렇겠죠. 아니면 2일 전에 작성한 기사를 삭제할 이유가 없잖아요.”
“크…….”
김시후는 휴대폰을 조작해서 다시 검색 결과 화면으로 돌아갔다.
삭제된 기사가 검색 결과에 잡히는 걸 보면 아직 최신 정보로 갱신이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저것도 하루 이틀 뒤면 사라질 터였다.
‘좀 안타깝기도 하네.’
신우정의 잘못된 선택 하나로 길드 전체에 여러 가지 불이익이 발생하고 있었다.
첫 만남에서 그를 좋게 생각했던 유지한으로서는 동정심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앞으로는 저것을 되풀이해서는 안 될 나쁜 본보기, 반면교사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었다.
다행히 꿀잼의 길드장인 김시후는 신우정 같이 잘못된 판단을 할 만큼 어리석은 영웅이 아니다.
혹여 잘못된 방향으로 빠지려고 해도, 유지한이 옆에서 잡아 줄 수 있었다.
‘역시 사람이 중요하다.’
길드의 지출 중에서 보통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영역은 영웅에게 지급하는 인건비다.
그만큼 사람이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학교, 회사, 길드 등, 그 어느 곳이라도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람이었다.
소수 정예를 지향하는 꿀잼이지만, 간혹 좋은 인재를 발견한다면 그들에게 영입 제안을 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야 했다.
*****
“아직 안 오셨나 봐.”
유지한과 김시후는 언론사 기자와 약속을 잡은 카페 앞에 도착했다.
시간을 거의 딱 맞춰서 왔는데 기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약속 시각으로부터 5분쯤 뒤.
“허억, 허억! 혹시 꿀잼인가요?”
“네. 맞아요.”
“휴우……!”
젊은 남자가 나타나 김시후에게 말을 걸었다.
“제가 오늘 인터뷰를 진행할 영웅일보의 이완입니다!”
그는 김시후에게 이메일을 발송하여 인터뷰 약속을 잡은 영웅일보의 기자 이완이었다.
서둘러 달려온 것처럼 보이는 그는 몹시 더운 듯, 얼굴에 연신 손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제가 연락을 받았던 김시후, 이쪽은 유지한입니다.”
“어휴, 정말 죄송합니다. 차가 너무 밀려서 늦었습니다.”
“괜찮아요.”
“안으로 들어가시죠.”
그들은 카페 안으로 들어가서 각자 음료를 주문했다.
음료값은 김시후가 길드 카드로 계산하려고 했지만, 이완은 그보다 먼저 빠르게 자신의 카드를 직원에게 줘 버렸다.
“저희가 사야 하는데…….”
“이거 어차피 법카라 상관없어요.”
“아.”
그들은 카페의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마침 카페 안에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인터뷰를 진행하기 딱 좋았다.
“최근에 승급하시고 많이 바쁘시죠? 오늘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작은 길드에 관심을 보여 주시니 저희야말로 감사드려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도 기쁘네요.”
유지한이 돌려준 답변에 이완은 싱긋 웃었다.
그리고…….
‘기본 태도 점수 2점 추가.’
10점 만점에 좋은 태도로 2점 추가.
그는 마음속으로 꿀잼에 대한 점수를 매겼다.
새로운 길드와 인터뷰를 진행할 때 나오는 그의 습관이었다.
기자로서 마주친 영웅 중에는 거만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종종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속으로 매겨둔 점수에 따라서 기사를 아주 대충 작성하는 때도 많았다.
‘첫인상은 나쁘지 않아 보이네.’
다행히 꿀잼은 첫인상부터 합격점이었다.
약속 시각에 늦은 기자를 대놓고 탓하지도 않았으니, 예의와 더불어 꽤 너그러운 성격을 가진 것도 알 수 있었다.
물론 이들의 속마음은 다를 수도 있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은 그랬다.
“제 명함 먼저 드리겠습니다.”
그는 두 사람에게 각각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유지한은 손에 들어온 명함을 천천히 살피며 말했다.
“기자님은 주로 승급한 파티를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시나요?”
“네! 인터뷰는 막 데뷔한 신입 영웅이나 등급에 관계없이 승급에 성공한 파티 위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유지한은 명함을 탁자 위에 잘 보이게 내려놓았다.
‘이 사람, 역시 그때 김현태 파티를 인터뷰했던 사람이 맞구나.’
이완은 과거 케로즈의 김현태 파티가 4급과 3급으로 올랐을 적에도 인터뷰를 진행했던 기자였다.
그의 이름을 전해 듣고 긴가민가했는데, 과거에 작성된 기사를 확인하고 지금 명함에 적힌 정보를 보니 유지한은 자신의 기억이 맞았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우연인가.’
김현태 파티에서는 비공식 파티원이라는 이유로 참여하지 못했던 인터뷰였다.
그 당시의 기자와 현재 눈앞의 기자가 같은 사람이라는 걸 생각하니 조금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그때 하지 못한 인터뷰를 인제 와서야 하는 느낌이었다.
딸깍!
이완은 휴대용 녹음기의 전원을 켰다.
“먼저 간단하게 길드 소개부터 해 주시면…….”
그는 길드장인 김시후에게 기본적인 길드 정보에 관해 물었다.
언제쯤 설립되었고, 다른 길드에 들어가지 않고 새로운 길드를 만든 이유가 무엇인지 등.
새로운 길드에게 많이들 물어보는 질문들이었다.
대다수가 예상해 둔 질문이었기에 김시후는 어렵지 않게 술술 대답할 수 있었다.
수첩에 메모를 적던 이완이 말했다.
“최근에 몇 달간 4급으로 승급한 파티 중에 가장 인원수가 적던데, 알고 계셨어요?”
“대충은요.”
“대부분 3인 이상으로 파티를 구성하잖아요. 승급 이후에도 파티원을 늘리지 않는 것에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저희는 소수 정예를 지향합니다. 파티에 아무나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언제든지 새로운 영웅을 영입할 계획이 있고, 실제로 최근 눈여겨보는 영웅도 있죠.”
“오, 가능하다면 그게 누구인지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그건 조금 곤란합니다. 현역으로도 꽤 이름이 알려진 분이라서.”
“이름이 알려져 있다……. 쓰읍,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더 궁금해지네요.”
이 자리에서 민유리를 언급한다면 잠깐의 관심은 끌 수 있겠지만 그녀에게 폐를 끼칠 것이다.
영입이 확정된 다음에나 함께 인터뷰를 진행하는 편이 나았다.
“승급하신 뒤에 근황이 어떻게 되시나요?”
“괴냥이도 잡고, 괴들레도 잡고. 이래저래 바빴어요.”
“훌륭하시네요.”
“근황까지는 아니지만, 저희가 5급 때는 괴아리의 돌연변이도 사냥했었거든요.”
“네?”
수첩에 메모를 적던 이완이 고개를 들었다.
‘지금 괴아리의 돌연변이를 사냥했다고 말한 건가?’
그는 자신이 말을 잘못 알아들은 건가 싶어, 천천히 확인하듯이 물었다.
“혹시 한국에서 발견된 돌연변이인 MU-1302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맞습니다.”
“오! 그 녀석을 잡은 게 꿀잼이었군요!”
유지한과 김시후는 이번 인터뷰에서 파티의 이름을 알릴 계획을 짰다.
괴물 닭을 언급한 건 그 계획의 일환이었다.
비공개로 진행된 4급 교류회를 통해서 이미 한 번 새어나간 정보여도 공개적인 장소에서 그 정보를 꺼내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에, 약간의 홍보 효과를 얻으리라 판단했다.
‘꽤 괜찮은 인터뷰가 되겠는데?’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된 이완의 눈이 반짝였다.
특종까지는 아니어도 한 번쯤 사람들의 눈길을 끌만 한 기사가 그의 머릿속에서 완성되고 있었다.
“지금은 주로 길드명으로 불리고 계시겠지만, 정확한 파티명은 김시후 파티잖아요? 향후 김시후 파티에서는 어떤 계획을…….”
“기자님, 잠시만요.”
“네?”
김시후는 이완의 말을 중간에 끊으며 말했다.
“방금 말씀하신 파티 이름이요.”
“김시후 파티, 말인가요?”
“저희는 김시후 파티가 아니라 유지한 파티입니다!”
“어? 하지만 길드장은 김시후 씨잖아요.”
“저희는 파티장과 길드장이 달라요.”
“……정말로요?”
“네. 조만간 영웅부에 정식으로 파티장을 교체한 명단을 제출할 거예요.”
“오호! 특이하네요.”
이완이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이며 수첩에 메모를 끄적였다.
‘이 사람들 재밌네.’
길드장과 파티장이 서로 다르다니.
특유의 서열 문화를 가진 일본이나 한국 등, 동양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구조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길드장과 파티장이 서로 다른 이유는…….”
파티장을 나눈 것에는 따로 이유가 있을 터.
목표를 변경한 이완이 유지한을 향해 집중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
“이제 드릴만 한 질문은 거의 다 드린 것 같네요.”
약 30분간 진행되던 인터뷰가 거의 끝나갈 즈음이었다.
얼음이 꽤 녹은 커피를 내려다보던 이완이 말했다.
“어……. 지한 씨. 이건 조금 개인적인 질문인데요.”
“예.”
“꿀잼에 합류하기 전에는 케로즈에 계셨죠?”
“그렇죠.”
“혹시 케로즈의 대표 파티인 김현태 파티에 대해서는 따로 하고 싶은 말이 없으신가요?”
“……?!”
갑자기 훅하고 들어온 질문에 유지한은 속으로 크게 놀랐다.
‘이걸 묻는 의도가 뭐지?’
이전 질문과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좀처럼 그의 의도를 알 수 없는 질문이었다.
“사실은 제가 오래전에 김현태 파티를 취재했었거든요.”
“……그러셨군요.”
“같은 길드 소속이었으니 종종 마주쳤을 것 같은데, 이 자리를 빌려서 따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지.”
유지한은 잠시 생각하는 척하며 그의 얼굴을 살폈다.
이것이 단순히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인지.
그게 아니라면…….
‘뭘 알고 있는 걸까.’
언론사에 소속된 기자라면 케로즈의 내부 정보에 대해서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대외비에 해당하는 정보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