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철야의 울림
길드 사무실에 모인 유지한과 김시후는 컴퓨터를 이용해서 지금까지의 수익을 정리했다.
타닥, 타다닥!
키보드를 두드리던 김시후가 모니터에 떠오른 숫자들을 주시했다.
보통 길드의 돈 관리는 재무나 회계팀에서 관리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규모가 작은 곳은 지금처럼 길드장 위주로 돈 관리가 이뤄지곤 한다.
꿀잼 같은 경우에는 김시후가 회사의 임원이나 다름없는 유지한에게 재정 상태를 전부 공유하는 편이었다.
“괴아리 때 번 금액이 대략 3천만 원에, 눈송이에서 보낸 괴냥이를 처분하고 들어온 돈이 3천, 그리고 괴물 닭 경매로 얻은 금액이 2억 중반쯤이고…….”
“3억 중반쯤 되려나?”
“아직 미입금된 내역까지 전부 합치면 그렇게 되겠네요.”
“미입금된 건 경매 쪽이야?”
“네. 괴물 닭 낙찰자 중에 미국인이 있다고 했잖아요. 국제 배송이 완료될 때까지 일부는 입금받기 힘들 것 같아요.”
두 사람이 지금까지의 활동으로 얻은 금액은 대략 3억 중반.
각종 세금을 제외하고도 3억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또, 몽땅에서 보관 중인 괴들레와 씨앗을 전부 처분하고 나면 조금 더 늘어날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었다.
‘나쁘지 않다.’
5급, 4급 파티가 단기간에 올린 수입치고는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아마 같은 기간에 거대 길드의 4급 파티가 거둔 실적보다도 꿀잼의 것이 더 나은 편이리라.
특히 괴아리의 돌연변이, 괴물 닭의 경매로 거둔 이익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한 번에 2억 넘게 벌어들였으니 말이다.
‘이 정도면 다른 길드원을 뽑아도 감당할 수 있겠는데.’
벌어들인 금액이 엔간한 4급 영웅의 연봉을 지급하고도 족히 남을 수준이었다.
그리고 지금 유지한이 떠올리는 것은 민유리였다.
테이머라는 특수성과 그녀가 혼자서도 벌 수 있는 금액을 생각하면 평범한 4급 영웅의 연봉과 비교하기는 힘들 수도 있겠지만.
길드의 지분을 제외하고 단순히 현금만으로도 그녀와의 연봉 협상을 위한 여유가 생겼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씨앗은 어쩌죠?”
“화이트 엄브렐라?”
“네.”
몽땅 덕분에 얻게 된 화이트 엄브렐라.
해외 자료를 찾아보면 그것은 정말로 특별한 효과를 가진 영약에 가까웠다.
‘그게 제일 대박이지.’
화이트 엄브렐라를 섭취하면 얻는 효과는 꽤 다양했다.
영웅이 마력을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마력 감응도를 높여 줄 뿐더러, 같은 양의 마력을 오밀조밀 더 좁은 범위로 모을 수 있는 응축력 또한 상승한다고 한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부가 효과가 있지만, 짧게 요약하자면 어디서 돈 주고도 못 살 물건이었다.
“그건 당연히 우리가 먹어야지.”
“휴…….”
“팔고 싶어?”
“절대 아니요!”
고개를 맹렬하게 좌우로 젓는 김시후였다.
고작 돈을 벌자고 성장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먹는 방법에 관해서는 의견이 갈려.”
화이트 엄브렐라의 효과가 증명된 논문이나 글은 몇 건 존재한다.
다만 지금껏 발견된 숫자가 많지 않다 보니 섭취 방법은 아주 제한적으로만 알려졌었다.
단단한 씨앗을 잘게 다져서 가루로 만든 뒤에 물에 타 먹은 사람이 있었고, 불에 구워 먹거나 생으로 오도독 씹어먹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 효과를 보긴 했으나 그중에 무엇이 가장 좋은 방법인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입을 다물고 고민하던 김시후가 유지한에게 물었다.
“우리는 어쩌죠?”
“내가 조금 생각해 둔 건 있는데.”
“어떤 거요?”
“럭키 위스커랑 같이 물에 끓여 먹는 거야.”
유지한이 고민 중인 방법은 물에 끓여 먹는 방법이었다.
그것도 단독으로 끓이는 게 아니라 지금 그의 집에서 보관 중인 럭키 위스커와 화이트 엄브렐라를 하나의 냄비에 넣어서 끓이는 걸 원했다.
김시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먹으면 좋대요?”
“좋지 않을까?”
이전까지 이런 조합을 시도했다는 자료는 없었다.
그저 럭키 위스커는 여러 번 물에 끓여도 맛이 잘 연해지지 않으니, 화이트 엄브렐라도 그와 비슷하기를 기대했다.
‘몸에 좋은 것에 몸에 좋은 것을 섞는 것이니 더 좋겠지.’
마치 향긋한 허브차에 새콤한 과일의 껍질이나 즙을 첨가하여 혼합차를 만드는 느낌!
괴냥이의 수염과 괴들레의 씨앗에 깃든 영험한 기운을 물에 녹여내서 지속적으로 섭취하는 것.
유지한에게 그것보다 더 나은 선택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별 해괴한 방법으로 먹은 사람들도 있으니, 문제는 없겠죠. 형 뜻대로 해요.”
김시후는 차로 끓여 먹자는 제안에 동의했다.
불에 직접 구워 먹은 사람도 있으니 높은 열이 가해진다고 해서 좋은 성분이 파괴되지는 않을 것이었다.
“끓여서 보온병에 담아올게.”
“네.”
“그리고…….”
유지한이 사무실 한쪽에 꺼내 둔 자신의 장비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우리 둘 다 장비를 바꿔야겠어.”
김시후마저 고개를 끄덕거리며 자신의 장비를 내려다봤다.
이전 현장에서 착용했던 장비들은 여기저기 심하게 찢겨 있었다.
모두 다 괴들레가 날린 씨앗 때문이었다.
특히 유지한의 갑옷은 상태가 심각했는데, 저걸 입는다면 예쁘게 생긴 걸레를 몸에 두른다고 표현해도 될 것이었다.
“몽땅에서 가져온 괴물 닭의 부리 있지?”
“제 캐리어 안에 있어요.”
“그거 들고 남호열 씨한테 가 보자.”
*****
인천의 오픈 마켓에서도 후미진 골목.
다 타 버리고 필터만 남은 담배꽁초가 바닥에 굴러다니고, 공방 특유의 소음이 가득한 그곳.
남호열은 자신의 가게 안쪽, 작업대에 앉아 한쪽 손으로 턱수염을 만지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다음 달부터 월세를 조금 올려야겠어.
그는 몇 시간 전에 공방의 건물을 소유한 건물주와 통화를 했다.
반가운 인사로 시작된 통화는 향후 월세를 올리겠다는 어두운 내용으로 끝났다.
정확한 금액은 아직 전해 듣지 못했지만, 50만 원에서 70만 원 정도는 오를 거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주변에 그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들은 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번 달 매출까지 합해서 이번 달 월세까지는 벌었나.’
며칠 전 운 좋게 판매한 투구 하나가 1400만 원이었다.
거기에서 재료비 등을 제한 뒤, 최종적으로 그에게 남는 돈은 80만 원 정도.
‘너무 싸게 팔았을지도…….’
정말이지 극악의 마진율.
물건이 팔려도 사실상 남는 게 별로 없었다.
좋은 장비만을 제작하겠다는 욕심으로 재료의 원가를 크게 잡고, 어떻게든 팔아보겠다는 마음으로 판매가를 너무 낮게 잡은 것이 패착이었다.
그나마 최근 매출을 모두 합산하면 월세 정도는 나올 것 같아서 다행이지만.
“내가 얼마나 더 버티려나 모르겠네.”
남호열이 통장 잔고를 떠올렸다.
당장 망할 정도는 아니어도 재정 상황이 조금씩 위험해질 상황이었다.
대장장이로서 새로운 장비를 만들기 위해서는 재료를 구매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 재료비가 부족하고, 몇 달 뒤에는 월세조차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돈 문제에 그는 계속 골머리를 썩였다.
쿵쿵!
“네네, 갑니다!”
누군가가 공방의 문을 두드렸다.
잘 팔리지 않는 방패를 손질하던 그가 벌떡 일어나 입구로 향했다.
“호열 씨!”
“저희 왔어요.”
“오, 안녕하세요!”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꿀잼 소속의 유지한과 김시후.
남호열은 활짝 웃으며 두 사람을 안으로 맞이했다.
공짜로 건넨 무기를 제외하고는 아직 꿀잼과 제대로 된 거래가 오간 적은 없지만, 어쩌면 그들은 남호열의 가장 큰 고객이 될 가능성을 품은 영웅들이었다.
“조금 늦었지만 4급으로 승급하신 거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찾아보신 거예요?”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까 나오더라고요.”
“조금 부끄럽네요.”
김시후는 배시시 웃었다.
남호열도 그를 따라 미소 지었다.
‘내 눈이 틀리지 않았어.’
마치 투자를 하듯이 무기를 건넨 이후, 그는 종종 인터넷에서 그들과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최근 4급으로 승급한 파티 목록에 이들이 포함된 것을 알았다.
깜짝 놀라 찾아본 결과, 두 사람이 상당히 빠른 기간 내 4급으로 오른 것도 알게 된 그였다.
이렇게 다시 찾아오는 걸 보면 그때 공짜로 무기를 건넨 것은 역시 올바른 결정이었다.
“오늘은 둘 다 제대로 장비 맞추려고 왔어요.”
“어떤 게 필요하세요?”
“상의랑 하의요. 가능하다면 그 외의 장신구 같은 것도…….”
“다 바꾸시려고요?”
“예. 먼저 착용하던 게 이렇게 되어 버려서.”
드르륵!
유지한과 김시후는 끌고 온 캐리어의 지퍼를 열었다.
“오, 세상에…….”
남호열은 입을 쩍하고 벌렸다.
장비들의 상태가 영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특수 가공된 천으로 만들어진 김시후의 마법사 로브와 안에 입는 갑옷은 수선한다면 어찌어찌 복구는 할 수 있는 수준.
하지만 유지한의 가죽 갑옷은 형체만 남아 있고 가죽이 크게 찢어 발겨져 있었다.
“대체 어디 가서 뭘 하신 거예요?”
“며칠 전에 골프장에서…….”
“서, 설마 그 괴들레가 나온 곳에 있던 건가요?!”
“그렇게 됐네요.”
“허! 이렇게 망가질 만하네요. 어디 크게 다치신 곳은 없어 보여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골프장에서 벌어진 사태는 일반 시민들도 알게 될 정도로 많은 기사에 올랐다.
남호열 또한 관련 뉴스를 봤던 사람 중의 하나였다.
“으음.”
놀란 가슴을 추스른 남호열은 눈을 작게 좁히며 유지한과 김시후의 체형을 스캔했다.
마법사치고는 근육이 꽤 잡혀 있는 김시후.
그리고 눈대중으로 봐도 아주 탄탄한 몸을 가진 유지한이었다.
“만들어 둔 장비 중에 수선하면 두 분 체형에 맞는 게 있을 것도 같은데. 보여드릴까요?”
“기성 제품 말고 주문 제작도 가능할까요? 2명분으로 2억 4천 정도 준비되어 있는데. 부족하면 더 드릴 수도 있어요.”
“그거면 충분합니다!”
남호열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저 정도 금액이라면 아주 고급까지는 아니더라도, 재료를 타협하여 4급 영웅들이 사용하기에 적당한 물건은 만들 수 있었다.
“바로 치수 재 드릴게요.”
남호열은 어디선가 기다란 줄자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유지한과 김시후의 어깨너비, 가슴둘레 따위를 꼼꼼하게 재며 종이에 치수를 적었다.
“장비에 들어갈 재료를 선택해야 합니다. 제가 준비해 둔 카탈로그를 보시면…….”
“아, 저희가 먼저 하나 보여드릴 게 있습니다만.”
김시후가 캐리어에서 괴물 닭의 부리를 꺼냈다.
닭의 얼굴에서 부리만 따로 분리해 둔 물건이었다.
“그건 뭔가요?”
“지난번에 괴아리의 돌연변이가 나온 것도 혹시 알고 계세요?”
“들어는 봤습니다.”
“그거 저희가 잡았거든요.”
“네에?!”
“그리고 이게 녀석의 부리입니다.”
그 녀석을 잡은 게 꿀잼이었다니!
매우 놀라는 한편,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서 전에 없던 새로운 재료를 살피는 남호열이었다.
쿵쿵!
만지고, 쓰다듬고, 손으로 두들겨보고.
그것이 썩 괜찮은 소재임을 알 수 있었다.
“무게도 적당하고 강도도 꽤 좋은데요? 내열이나 각종 독에도 견딜 수 있을지는 확인이 필요하지만요.”
“저희 갑옷에 활용할 수 있을지 확인 좀 해 주세요.”
“와……. 제가 그런 기회를 잡아도 될지 모르겠네요.”
전에 없던 새로운 소재를 다루는 것!
대장장이로서 가슴이 무척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돈을 받으면서도 그런 기회를 얻는다는 것이 미안해질 정도였다.
“부리와 함께 쓰일 재료를 결정하는 건 호열 씨께 맡기겠습니다.”
“저, 저한테 전부 맡기신다고요?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전문가를 믿고 맡겨야죠. 대신 몬스터 가죽을 기반으로 한 경갑옷과 마법사가 입을 만한 가벼운 장비로 부탁드려요.”
“천은 살에 닿는 촉감이 부드럽기만 하면 돼요! 너무 거친 건 마력을 다룰 때 방해되더라고요.”
“그리고 저번에 영웅부에서 MU-1302에 관해 발표했던 자료를 참고하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영웅의 장비와 아티팩트에 대해 가장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은 실사용자인 영웅이 아니라 그것들을 만드는 대장장이다.
괴물 닭의 부리를 장비로 활용하는 일도 나름의 연구가 필요할 터.
실력은 있지만,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대장장이 남호열.
유지한과 김시후는 그에게 모든 걸 믿고 맡길 생각이었다.
*****
어둠이 내려앉은 늦은 밤. 남호열의 공방.
평소라면 퇴근을 하고도 남을 시간이지만, 남호열은 아직도 작업대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온 제작 주문 때문이었다.
‘고민이네…….’
그는 꿀잼으로부터 1억 4천을 선금으로 건네받았다.
원래는 주문과 동시에 전체 금액의 30% 정도를 선금으로 받는 게 기본이지만, 재료 구매 비용을 생각해서 당겨 받는 걸 요청한 것이다.
다행히도 그들은 너그럽게 요청을 받아 주었다.
‘아직 앵그리 야크의 가죽이 남았다.’
남호열의 공방에는 유지한에게 선물한 검을 만들 때 사용했던 가죽이 남아 있었다.
재료를 마음대로 선택할 기회가 생겼으니 마음 같아서는 이번 제작의 주재료로 그걸 사용하고 싶은 남호열이었다.
하지만 그 질 좋은 가죽의 원가는 상당히 비싸고, 꿀잼의 주문 제작 비용은 유지한과 김시후까지 총 2명분으로 잡혀 있었다.
가격을 따지자면 이번에 앵그리 야크의 가죽을 사용하기가 힘든 게 사실이었다.
“후우.”
대장장이로서 전도유망한 영웅들에게 좋은 장비를 만들어 주고 싶다는 욕심.
그리고 공방의 대표로서 수익을 고려해야 하는 현실.
그 두 개가 남호열의 머릿속에서 강하게 충돌했다.
“…….”
한참을 서서 고민하던 그는 작업대에 올려 둔 휴대폰으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의 아내는 마치 그를 기다리기도 했던 것처럼 2초 만에 전화를 받았다.
통화 신호음이 2번 채 울리기도 전이었다.
“미안해. 오늘은 많이 늦을 것 같아.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고 있어.”
임신한 아내에게 미안함을 전한 그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작업용 앞치마의 끈을 꽉 조였다.
‘……나는 대장장이다.’
땅! 땅! 땅!
늦은 밤에 시작된 가위질과 망치질은 새벽까지도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