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콩닥콩닥 (2)
“여긴가?”
택시에서 내린 유지한과 김시후가 작은 창고처럼 생긴 건물을 올려다봤다.
건물의 정문에는 몽땅의 명패가 걸려 있었다.
김시후는 휴대폰 화면에 떠오른 지도와 건물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여기가 맞네요.”
이곳은 몽땅에서 운영 중인 창고였다.
장사임이 꿀잼을 대신하여 MA에서 괴들레를 회수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그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지한 씨! 시후 씨!”
건물의 뒤쪽에서 장사임이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왔다.
“안녕하세요.”
“여기까지 찾아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이건 방문 기념 선물입니다.”
“아니, 뭘 이런 걸 다……!”
유지한은 그에게 선물 박스를 건넸다.
새로운 회사나 길드를 차린 사람들에게 개업 기념으로 많이들 선물한다는 찹쌀떡이었다.
이 떡을 먹으면 미래에 돈이 술술 들어온다는 소문이 있는데, 진실은 믿거나 말거나.
“잘 먹겠습니다.”
“아내분은 어디 계세요?”
“오늘은 집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전산으로 처리할 일이 있어서요.”
“그럼 다음에 인사드려야겠네요.”
선물을 받고서 활짝 웃은 장사임이 두 사람을 이끌고 창고 안쪽으로 향했다.
“저건 냉장고인가요?”
“네. 몬스터용 냉동고입니다.”
“되게 크네…….”
“보통 상온에서 보관하기 힘든 몬스터는 저기에 넣어 둡니다.”
창고 안에는 몬스터를 보관할 수 있는 대형 냉동고 따위의 몬스터 처리를 위한 각종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신생 업체치고는 되게 괜찮네.’
회사의 인원이 2명인 것 치고는 상당히 잘 준비된 시설들이었다.
하나 아쉬운 건, 갖춰진 시설에 비해 보관 중인 몬스터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
유지한은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창고 유지비도 꽤 부담되겠어요.”
“하하, 이쪽 일이 처음에는 다 마이너스로 시작하는 법이죠. 그래도 최근에는 단일 건수로 일을 맡겨 오는 길드가 늘어나고 있어요.”
“그래요?”
“다 여러분 덕분이죠. 저번에 경매 수수료도 큰 도움이 됐고요.”
몽땅이 꿀잼과 처음 거래를 튼 이후, 다른 길드에서도 조금씩이나마 몽땅에 일을 맡겨 오고 있었다.
그러나 회사의 재정 상태가 나아지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괴들레는 저기 있습니다.”
괴들레는 커다란 플라스틱 박스 3개에 나뉘어 담겨 있었다.
장사임이 직접 MA에서 트럭으로 싣고 온 물건들이었다.
그것들을 눈으로 훑은 유지한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상태가 썩 나쁘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제 눈에는 조금 아쉽긴 합니다. 주변 업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전체적으로 괴들레 상태가 다 좋지 못한 모양이에요.”
“그 난리 통에 이 정도 건진 거면 다행이죠.”
2명이 잡은 것 치고는 상당한 괴들레의 양이었다.
‘큰돈은 기대하기 힘들겠지.’
골프장 MA에서 정말 많은 괴들레가 발생한 것을 이유로 괴들레의 가격은 크게 떨어졌다.
공급이 수요를 뛰어넘을 정도로 물건이 남아돌아서 이것들로 돈을 벌겠다는 건 무리가 있었다.
그나마 긍정적인 것은 유지한이 김시후를 데리고 괴들레와 싸우는 경험을 얻었다는 것.
하루 이틀 만에 녀석들을 질릴 정도로 많이 마주쳤으니, 앞으로 비슷한 식물계 몬스터와 마주치더라도 놀라거나 크게 당황하는 일은 없을 터였다.
“가격이 더 내려가기 전에 파는 게 낫겠죠?”
“현재 보관 중인 괴들레를 따로 활용하실 게 아니라면, 아무래도 그렇죠.”
“그러면 그냥 전부 팔아 주세요.”
“가져오신 씨앗은 어디 있어요?”
“저 옆에 있습니다.”
장사임이 덮개로 덮인 플라스틱 박스를 열었다.
아주 날카로워 보이는 괴들레의 씨앗이 그 안 에 들어있었다.
“씨앗은 잎이나 꽃, 줄기보다도 가격이 더 내려갈 것 같아서 조금만 챙겨 왔습니다.”
장사임의 말대로 골프장에 널릴 대로 널린 괴들레 씨앗의 가격은 그야말로 폭락했다.
이전에 등장했던 씨앗을 아주 귀하게 보관하던 길드에서는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 말씀드릴 게 있는데.”
“예?”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잠시 머뭇거리던 장사임은 갑자기 어디론가 달려갔다.
그리고 약 3분 후.
다시 창고에 들어온 그의 손에는 또 다른 괴들레의 씨앗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것도 괴들레 씨앗인가요?”
“같은 현장에서 챙겨온 씨앗입니다. 그런데 이건 조금 특별해요.”
“특별, 하다고요?”
“비교해 보시죠.”
장사임이 평범한 괴들레 씨앗과 새로 가져온 것을 함께 바닥에 내려놓았다.
‘색깔이 살짝 더 진한가? 갓털도 더 촘촘하고.’
아리송할 정도의 미묘한 차이였다.
유지한조차 멀리서 본다면 절대로 구분하지 못할 것 같았다.
“저번에 럭키 위스커를 얻으셨다고 하셨죠?”
“예.”
“사실 이 씨앗도 그와 비슷한 종류입니다. 이걸 손으로 잡고 비비면…….”
장사임은 손바닥 사이에 씨앗을 넣고 앞뒤로 비볐다.
그러자 하얀 갓털이 팽이처럼 회전하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촘촘하게 자라난 갓털이 빠르게 회전하며 얇은 선이 아니라 마치 하나의 면처럼 보였다.
“오오…….”
“털이 위로 떠 올라서 마치 우산처럼 보이죠? 그래서 붙여진 이름도 하얀 우산, 화이트 엄브렐라(White Umbrella).”
“난생처음 들어봤습니다.”
“그럴 겁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발견된 적 없고, 영약으로 취급될 만큼 희귀한 물건이니까.”
“영약!”
“듣기로는 마력에 특별한 효과가 있다더군요.”
이야기를 듣던 김시후의 귀가 쫑긋해졌다.
최근에 성장의 필요성을 느낀 그에게는 희소식이 분명했다.
“이게 그 골프장에 있었다고요.”
“네. 14번 홀에서 발견했습니다. 누가 볼까 봐 MA에 나온 이후에는 따로 숨겨 왔죠.”
유지한과 김시후는 그저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었다.
거기에 저런 귀한 물건이 있었다는 걸 알 리가 있나.
아무리 MA에 들어간 경험이 많은 영웅이라도 저런 희귀한 물건을 알아보는 눈썰미는 키우기 쉽지 않다.
이전에 얻은 럭키 위스커도 운이 나빴다면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 받으세요.”
장사임은 유지한에게 화이트 엄브렐라를 건넸다.
김시후가 살짝 상기된 얼굴로 씨앗을 바라보는 가운데.
유지한은 장사임에게 말했다.
“사임 씨. 이걸 받기 전에 하나만 물어보겠습니다.”
“네.”
“이 씨앗을 판다면 아마 굉장히 비싼 가격에 팔리겠죠?”
“그럴 겁니다. 나오는 물량 자체가 거의 없으니까 경매로 진행해도 되겠죠.”
“사임 씨라면 저희한테 알리지 않고 이 씨앗을 처분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입술을 일자로 다문 장사임이 희미하게 웃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한 것이다.
“몽땅에서 이 물건을 몰래 숨기거나 팔았더라도 저희는 쉽게 알지 못했을 겁니다.”
“……제가 몸을 담고 있는 몬스터 처리업은 영웅들의 신뢰를 기반으로 이뤄집니다. 저는 아무리 돈을 많이 번다고 해도, 제 소중한 고객의 신뢰를 저버리는 일 따위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꿀잼은 몽땅의 첫 고객이었다.
아무런 이력도 없는 업체에게 제대로 된 거래를 가능케 한 소중한 고객!
신생 업체인 몽땅이 아직은 제대로 된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는 당장의 욕심을 채우는 것보다도 길드의 신뢰를 얻길 원했다.
“…….”
입을 다물고 있던 유지한은 샘플링을 사용했다.
<—몽땅이 일류 몬스터 처리 업체로 성장할 확률>
몽땅과 첫 거래를 시작한 순간부터 종종 틈이 날 때마다 알아봤던 확률이었다.
여전히 샘플링은 대답을 들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제 이 조건에 대해서는 굳이 확률이 필요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좋습니다.”
유지한은 씨앗을 건네받았다.
그리고는 김시후에게 다가가서 속닥속닥 귓속말을 했다.
“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고개를 끄덕인 김시후가 장사임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임 씨!”
“네?”
“현재 꿀잼에게 적용되는 수수료 행사가 올해 말까지 진행된다고 하셨잖아요?”
“맞습니다.”
“그거 말인데요. 앞으로는 행사 비율이 아니라 정상 비율로 적용해 주셔도 됩니다.”
“네에?!”
장사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씨앗 때문에 그러시는 거라면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되는데…….”
“저희가 그렇게 하길 원합니다.”
지금보다 많은 수수료를 내며 더 활발하게 거래를 하는 것.
그것이 먼저 신뢰를 보여 준 이에게 영웅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였다.
*****
MA에서 영웅이 사망할 정도의 사건이 발생하면 영웅부에서는 매번 긴급회의가 벌어진다.
그리고 그 사건은 이후에도 몇 번씩이나 영웅부 정식 회의의 안건으로 올라가며 언급된다.
그 사태가 발생한 원인은 무엇인지, 미리 막을 수는 없었는지.
누군가의 실수로 인한 것이라면 그 실수에 대한 책임을 어느 정도로 물릴 것인지, 향후 대처 방안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등.
사고와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얽힌 것들까지 고려하며 대비 방안을 마련한다.
“아, 뭘 어쩌라는 거야 대체……!”
그리고 이곳은 영웅부의 사무실.
높으신 분들은 모두 퇴근한 뒤의 늦은 밤.
일부 직원들은 작은 회의실에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눴다.
“집에 가고 싶다!”
“우리 딸이 집에 언제 올 거냐는데.”
“오늘은 글렀어…….”
자리에 모인 건 평범한 직원이 아닌, 영웅부 소속의 영웅들.
그런데 그들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오늘은 위에서 강제로 내려온 명령으로 인해 퇴근을 못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의 경험을 살려서 사고 발생률을 낮추기 위한 향후 대처 방안을 모색하라니.”
“그것도 내일 오전까지.”
“하……. 우리끼리 이렇게 모인다고 달라질 게 있나.”
MA에서 사고가 터질 걸 미리 예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대처 방안을 가져오라고 해도 그들로서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야야, 윤식아. 자꾸 졸려오는데 재밌는 썰이나 풀어 봐라.”
“뭐?”
4급 승급 심사에서 대련을 맡아서 담당하는 방윤식.
그가 동료의 말에 표정을 찡그렸다.
“너 대련 심사 중에 5급 파티한테 졌다며?”
“뭐? 진짜로? 윤식이가 5급 따리에 졌어?”
“진짜라니까! 그것도 상대가 2명이래.”
“그럼 봐준 거겠지.”
방윤식이 대련에서 패배했다는 걸 쉽게 믿지 못하는 동료들이었다.
하지만 방윤식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가 진 게 맞아. 전혀 봐주지도 않았고.”
“워…….”
“내 예상으로는 아마 몇 년 내로 특급 신성처럼 떠오를 거다. 다들 기대하고 있어라.”
“어디 길드인데?”
“꿀잼.”
“뭐야, 그게.”
방윤식은 자신을 쓰러뜨린 꿀잼이 조만간 이름을 널리 떨칠 것에 의심을 갖지 않았다.
그만큼 유지한과 김시후를 크게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그 골프장을 위에서 찍던 드론은 어떻게 됐다냐?”
“결계에 닿아서 망가졌대.”
“진짜 도움 안 되네…….”
오늘 야근을 진행하게 된 주된 이유는 괴들레가 등장한 골프장 때문이었다.
그리고 골프장을 위에서 촬영하던 드론은 비행 도중에 결계에 닿아 그만 고장 나 버렸다.
영상 자료가 있으면 참고라도 할 텐데, 사고 당시 영상이 담긴 메모리 카드가 결계의 마력으로 타버렸기 때문에 복구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짝!
그때 누군가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맞아, 내가 그 골프장에 들어간 전 길드 동료한테 이상한 소리를 들었어.”
“무슨 소리?”
“걔가 물의 정령이랑 계약한 3급 정령사거든. 이름 들으면 아마 알 텐데, 따로 부탁을 받고 그 골프장의 호수를 조사하던 중에 다른 정령의 흔적을 발견했다더라?”
“그래?”
“그리고……. 내가 확인해 보니까 기록상 그 골프장에 입장한 정령사는 걔 하나뿐이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