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콩닥콩닥
“나한테 파티장 자리를 넘기겠다고.”
“참고로 즉흥적으로 생각한 게 아니라 괴냥이 때부터 쭉 고민하던 내용이에요.”
파티장.
말 그대로 파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규모가 큰 길드에서는 성과에 따라 다르겠지만, 길드장과 부길드장 바로 아래에 위치할 정도의 직위다.
1개 파티를 대표하는 파티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진심이야?”
“네. 그리고 형은 이미 파티장처럼 행동하시잖아요.”
“…….”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고요. 저보다 더 파티장에 어울린다는 얘기죠.”
얼마 전의 일들을 떠올린 유지한은 솔직히 할 말이 없었다.
첫 MA에서 괴물 닭과 싸운다는 결정을 했던 것도 그였고, 괴냥이를 피해 김시후와 함께 아파트의 창문으로 뛰어내린 것도 그의 결정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골프장에서는 샘플링을 통해 얻어 낸 경로로 임시 파티원들을 끌고 가기까지 했다.
유지한으로서는 그것들이 모두 적절한 판단이라고 생각한 것이지만, 파티장인 김시후가 아니라 그의 주도로 이뤄진 행동들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상황을 분석하는 능력이 저보다 형이 훨씬 뛰어나니까, 현장에서의 판단은 모두 형에게 맡기고 싶어요.”
“이건 그리 쉽게 정할 문제는 아니야.”
유지한은 아주 진지한 얼굴을 했다.
파티장을 넘기겠다는 건 단순히 직위가 바뀐다는 것만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길드장과 파티장이 따로 존재하면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크게 혼란을 느낄 수도 있어.”
길드를 대표하는 인물과 파티를 대표하는 인물이 서로 다르다면, 나머지 파티원들은 대체 누굴 따라야 할까.
만약 길드장과 파티장의 의견이 충돌하는 일이 발생한다고 생각하자.
일반적으로 현장에서는 파티의 리더인 파티장을 따르는 게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길드장의 의견을 무시할 수 있을까?
현장 밖으로 벗어나는 순간 길드에서 누구보다 가장 큰 힘을 가진 것은 단연코 길드장이다.
평생의 시간을 MA에서만 보낼 것도 아닌 만큼, 평범한 파티원들은 길드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갈등의 원인이 될 수도…….’
길드장의 편을 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 건 아닐지.
반대로 파티장의 편을 들지 않아서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닐지…….
그야말로 카오스, 혼돈이 발생할 수 있다.
그 정도가 심한 경우 인원 수가 적은 파티원들 사이에서도 서로 다른 편을 드는 파벌이 나뉠지도 모른다.
“걱정하시는 건 저도 이해해요. 하지만 ‘현장에서의 모든 결정은 파티장이 내린다.’라는 규칙을 확실히 정해 두면 되죠.”
“음…….”
“제가 형의 결정을 무시할 것도 아니고요.”
유지한이 보는 김시후는 남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가 하는 말이라면 충분히 믿을 수 있었다.
“파티 이름은 분명 문제가 될 거야.”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파티의 이름은 파티장의 이름을 따라 부르는 것이 대부분이다.
김시후의 주장처럼 유지한이 파티장을 맡게 된다면, 현재 파티명은 유지한 파티가 되어 버릴 확률이 높았다.
파티에 엄연히 길드장이 포함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당연히 유지한 파티로 가야죠.”
김시후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빙긋 웃었다.
그에게 자기 이름을 파티에 박아 넣고 싶다는 욕심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길드장의 리더쉽에 의심을 가질 수도…….”
“파티원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가장 효율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 이게 제 리더쉽이에요.”
“…….”
“그리고 제 이번 결정은 형이 파티장을 맡는 거고요.”
이미 마음속으로 결정을 끝낸 듯한 김시후의 태도.
말문이 막혀 버린 유지한은 고민했다.
‘파티장이 되면 지시를 내리는 데 부담이 줄어들긴 할 텐데.’
길드장이 크게 양보해 주는 파티장의 자리.
분명히 장점은 있었다.
지금까지의 경험과 샘플링을 통한 판단을 내리는 유지한에게 리더로서 파티를 이끌 수 있다는 건 아주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하지만 다른 파티에서 평범한 파티원 취급도 받지 못했던 영웅이, 감히 파티장을 맡아도 되는 것일까.
자격지심 같은 것이 유지한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너……. 파티 이미지가 한 번 굳어지면 쉽게 안 바뀌는 거 알지?”
“알죠.”
“나중에 후회하면 안 돼.”
“에이, 후회 안 해요.”
몇 분 정도 끙끙거리며 고민하던 그는 결국 파티장 자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바야흐로 유지한 파티의 탄생이었다.
*****
해가 짱짱하게 떠오른 낮의 아스팔트 도로.
♪♬~
그 위를 달리는 커다란 트럭 안에서 감미로운 음악이 울려 퍼졌다.
“이게 아닌데~ 내 마음은 이게 아닌데~”
트럭 안에서 흥겹게 노래 가사를 흥얼거리는 남자는 몬스터 처리 전문 업체, 몽땅의 대표 장사임.
그는 뒤에 아무것도 싣지 않은 트럭을 몰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흠흠! 여기구나.”
트럭이 도착한 곳은 어느 골프장의 앞.
어제 발생한 사태로 인해 4급 MA에서 3급 MA로 격상된 구역이었다.
본관 건물 앞에서 더 안쪽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붉은 신호봉을 든 남자가 신호봉을 느리게 흔들며 그에게 다가왔다.
차량의 음악을 끈 장사임이 운전석의 창문을 내렸다.
“수고 많으십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몬스터 처리 전문 업체 몽땅입니다. MA에 입장했던 파티의 대리인 자격으로 왔습니다.”
어제 사냥을 하던 유지한과 김시후는 돌연변이를 피해 도망치느라 안에서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했다.
게다가 4급이던 MA는 한 단계 격상되어 3급이 되어 버린 상황.
이곳에 들어오기 위한 각종 절차를 밟는 건 껄끄러운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인증받은 업체를 통한 몬스터 채집은 그런 절차를 건너뛸 수 있다.
그 때문에 장사임은 부탁을 받아 몬스터를 대신 가져가기 위해 골프장에 방문한 것이다.
“MA 탐사 자격증과 신분증 좀 주시겠습니까?”
“여기요.”
“잠시만 확인해 보겠습니다.”
자격증과 신분증을 받고 휴대폰 화면을 두드리던 남자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장사임 씨. 꿀잼 길드의 제1파티 대리인으로 확인되셨습니다.”
“바로 들어가면 되나요?”
“해당 길드의 활동 구역이었던 14번 홀에서만 몬스터 채집이 가능한 건 알고 계시죠?”
“물론이죠.”
“공지한 대로 채집 허용량은 파티 인원수에 비례한 평균값, 또는 그 전날에 사냥한 정도로 제한되고요. 돌연변이의 씨앗은 2개당 괴들레 하나로 취급됩니다. 규칙 위반하시면 벌금 물 수도 있으니 주의해 주시고……. 이만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트럭의 악셀을 밟았다.
임시로 설치한 표지판을 따라서 이동하자 차량을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나왔다.
트럭을 적당한 자리에 주차하고, 빈 보따리를 들고 영웅들이 몰려 있는 입구로 다가갔다.
“어디로 가시죠?”
“14번 홀입니다.”
“14번이면……. 네가 안내해드려.”
장사임은 자신을 14번 홀로 안내하는 영웅을 따라 빠르게 걸었다.
‘진짜 격렬하게 싸웠나 보네.’
걸으면서 주변을 둘러보던 그가 침을 꿀꺽 삼켰다.
여기저기 잔뜩 그을려 있는 바닥과 가지가 꺾인 나무.
잡초나 풀들이 타버리고 남은 찌꺼기들.
한쪽 구석에 모아둔 많은 괴들레의 사체까지.
누가 봐도 이곳에 무언가 큰일이 벌어졌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지금처럼 몬스터의 등장을 예의주시하는 집중 관리 기간에, 많은 영웅이 주변에 대기하는 게 아니라면 발도 들여놓고 싶지 않은 공간이었다.
“여깁니다.”
“감사합니다!”
장사임은 목적지인 14번 홀에 도착했다.
자신을 안내해준 영웅에게 꾸벅 인사를 한 그가 다시 몸을 돌렸다.
‘저기 있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유독 사람들이 몰려 있는 구역.
그곳 바닥에 괴들레의 사체가 산더미처럼 놓여 있었다.
장사임이 그쪽으로 다가가자 주변에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형님!”
“이야, 너 다른 회사로 이직하고 연락도 안 하더니. 여기서 또 보네.”
“이래저래 많이 바빴습니다.”
주변에는 영웅뿐만 아니라 장사임과 비슷한 업체에서 방문한 사람들이 많았다.
규모가 있는 몬스터 처리 업체 직원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그중에는 장사임을 알아보는 사람도 있었다.
“장사임?”
“……박혁 선배.”
부름에 짧게 대답한 장사임이 표정을 살짝 굳혔다.
‘여기서 이 사람을 만나다니.’
기름기로 인해 번들거리는 얼굴로 장사임의 이름을 부른 남자의 이름은 박혁.
그는 장사임이 몸담고 있던 이전 업체에서 선배 직원으로 있던 사람이었다.
“사임아. 네가 왜 여기 있냐?”
“왜라뇨. 일하러 왔죠.”
박혁은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말했다.
“일? 무슨 일? 어디 일 맡긴 길드라도 있나 봐?”
“제가 그걸 알려드려야 해요?”
“…….”
“우리가 서로 사담을 나눌 사이는 아니잖아요.”
장사임은 다소 뾰족한 말로 박혁과의 선을 그었다.
그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박혁은 자기가 선배라는 이유로 후배인 장사임의 실적을 자주 가로채 갔던 사람이었으니까.
그가 번번이 이달의 우수 사원으로 뽑혔던 것도, 남들보다 더 빠르게 승진을 했던 것도.
모두 장사임이나 다른 후배들의 실적을 반강제로 훔쳐간 덕분이었다.
장사임이 회사를 퇴사한 원인 중에서 박혁은 매우 큰 지분을 차지했다.
“말투 꼬라지 하고는. 독립하더니 성격이 빡빡해졌구나.”
“…….”
“그런데 이쪽 업계가 생각보다 판이 좁다. 알고 있지?”
“제 앞가림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큭, 퍽이나 잘 하겠네.”
장사임은 자신을 비아냥대는 박혁을 바라봤다.
“그나저나 선배는 왜 얼마 전까지만 해도 4급이었던 곳에 계십니까. 2급이나 3급 위주로 활동하셨으면서.”
“돌연변이가 이렇게나 많이 보이는데, 이 노다지 같은 구역을 다른 사람한테 넘길 수 있겠냐?”
“…….”
4급 MA라면 처음부터 그가 담당할 만한 구역이 아니다.
그런데도 박혁이 여기 있다는 건…….
회사에서 원래 다른 직원이 맡고 있었던 MA를, 그가 강제로 빼앗았을 확률이 높았다.
‘쓰레기 새끼.’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이기적인 성격의 박혁이었다.
“넌 여전히 감이 없구나? 그래서 어디 업체 대표로 활동할 수 있겠어?”
“제 앞가림은 제가 알아서 하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래그래, 알았다. 난 바쁘니까 이만 간다~”
박혁은 손을 가볍게 흔들며 어딘가로 걸어갔다.
이미 몬스터를 한가득 챙기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쪽이었다.
장사임은 불편한 얼굴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다시 괴들레의 사체가 놓인 곳으로 이동했다.
‘들고 온 보따리 하나는 채울 수 있겠어.’
꿀잼에서 전날에 사냥한 괴들레는 회사에 보관 중이다.
그것이 2인 파티의 사냥 평균치를 넘어가기 때문에, 오늘은 평균치보다 많이 가져가도 문제 될 게 없었다.
영웅부에서 딴지를 걸어도 충분히 증명이 가능하니 말이다.
‘이건 줄기가 너무 상했고……. 저건 꽃잎의 색이 이상하네. 불에 그을린 건가.’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물건들을 훑었다.
그의 특유의 눈썰미는 최소 B급 물건, 평균가는 받아낼 정도의 괴들레를 골라낼 수 있었다.
‘조금 더 일찍 오는 게 좋았을지도.’
다만 아쉽게도 현장에 A급 물건은 잘 보이지 않았다.
영웅들의 공격으로 대부분의 괴들레가 크게 상처 입었거나, 먼저 방문한 업체에서 멀쩡한 물건을 이미 챙겨간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지.’
그는 골라낸 괴들레를 하나씩 보따리에 담았다.
그러던 도중이었다.
괴들레가 겹겹이 쌓여 있는 곳을 뒤적거리던 장사임은 그 사이에서 씨앗을 하나 발견했다.
씨앗과 돌연변이는 한쪽으로 따로 모아 두던데, 이쪽에 하나 빠뜨린 모양이었다.
“잉?”
그런데 그가 발견한 괴들레 씨앗의 모양이 조금 이상했다.
어째 색깔도 조금 진하고 하얀 갓털도 많아 보이는 것이…….
‘……헉!’
그는 황급히 그 씨앗을 주워서 보따리에 집어넣었다.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이 모습을 본 건 아닐까.
보따리를 손으로 꽉 쥐고 주변을 경계하는 그의 심장이 콩닥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