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리더의 조건 (6)
“신우정. 네 길드 놀이에 어울려 주는 건 이제 질렸다.”
“잘 있어라.”
“뭐?”
신우정 파티의 전사들이 길드장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고개를 든 신우정이 놀란 표정으로 그들의 등을 바라봤다.
“우린 같은 팀이잖아! 은퇴할 때까지 함께하자고…….”
“우릴 먼저 버린 건 너야.”
“저, 정말 잠깐의 실수였어. 진짜 딱 한 번만! 한 번만 넘어가 주라.”
“뭐? 실수?”
“지랄하지 마. 역겨우니까.”
“……!”
파티원들의 욕설에 충격을 받은 듯한 신우정이었다.
“너 같은 오빠를 둔 네 동생 문아가 불쌍하다.”
“……야! 아무리 그래도 문아는 함부로 말하지 마!”
“이 새끼가 아직도!”
“이런 개 시발 새끼야! 그럼 그따위 행동을 하지 말았어야지!”
“지금 문아가 다친 것도 네 탓인 걸 몰라?”
“와, 내가 대체 이 새끼의 뭘 보고 길드에 들어온 거지? 잠깐 눈이 삐었었나?”
동생의 이야기가 나오자 발끈한 신우정과 전사들의 말싸움.
주변 영웅들도 언성을 높이는 그들을 주목했다.
잠자코 서서 그들을 지켜보던 유지한은 입이 근질거렸다.
‘팝콘 당기네.’
눈앞의 사람들에게는 조금 실례일 수도 있지만.
마치 자극적인 아침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유지한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심각한 표정을 유지했다.
“꺼져. 이 이기적인 새끼야.”
“…….”
다시 등을 돌린 전사들은 신우정을 혼자 남겨 두고 걸어갔다.
영웅 학원 때부터 길드 설립까지 이어지던 그들의 인연이 끊어지는 순간이었다.
건물을 바로 나가지 않고 유지한의 앞으로 다가온 전사들이 말했다.
“지한 씨, 그리고 시후 씨. 덕분에 오늘 살았습니다.”
“나중에 따로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연락처를 좀…….”
잠시 고민하던 그는 그들에게 번호를 알려 주고 김시후와 함께 골프장을 빠져나왔다.
그곳에는 이제 볼일도, 관계를 이어 나가고 싶은 파티도 없었다.
*****
다음 날.
“하…….”
유지한은 꿀잼의 사무실 의자에 바짝 엎드려 있었다.
뜨겁게 열이 오른 이마와 여기저기 쑤시는 몸.
등과 엉덩이에는 땀도 조금 찬 것 같았다.
기침은 나오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몸살이 나 버린 듯했다.
‘이렇게 아픈 건 오랜만인데.’
최근 이렇게까지 몸이 아파 온 것은 오랜만이었다.
MA 안에서 커다란 철판을 들고 계속해서 뛴 것은 물론이고, 상처를 입은 채 깨끗한지도 모를 호수에서 잠수까지 했으니…….
확실히 자신이 어제 무리를 하긴 했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김시후가 조금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사무실에 나오지 마시라니까요.”
“괜찮아.”
김현태 파티에 있을 때는 아픈 걸 겉으로 티 내지 않았다.
몸 상태를 이유로 구박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유지한이 자신의 상태를 감추지 않는 이유는, 꿀잼에 합류한 그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길게 한숨을 뱉은 그가 실프를 소환했다.
뾰롱!
그러나 실프는 나오자마자 유지한이 엎드린 책상 위로 스르륵 내려앉았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정령 탈진 현상에 빠지기 직전이었다.
“얘도 상태가 안 좋네.”
“…….”
김시후는 책상을 굴러다니는 실프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정령까지 저러는 건 조금 이상하다.’
정령과 계약자는 서로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연구자들이 그 끈이라고 가정한 것에 담겨 있다고 생각하는 정보 중 하나는 계약자의 좌표.
그렇지 않고서야 지구에 수많은 장소 가운데 정령이 계약자의 근처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걸 설명할 수 없었다.
그처럼 계약자와 정령은 긴밀한 관계에 놓여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양쪽이 서로의 컨디션을 공유하지는 않는다.
정령이 탈진 현상에 빠지더라도 계약자에게는 큰 영향이 없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설마…….’
하지만 지금 두 사람은 마치 서로의 몸 상태를 공유하는 듯 보였다.
보통 그런 경우에는 보통 동조율이 높아졌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상위 등급의 정령사들에게서만 이따금 보인다는 현상이었다.
‘에이, 아니겠지.’
김시후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실프가 묘하게 유지한을 잘 따르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동조율이 높아지는 현상은 주사위의 윤도하나 미국의 제니퍼 딘 같은 정말 극소수의 인원에게만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최근 들어 정령과 관련된 연구를 많이 찾아보는 만큼, 김시후는 자신의 생각에 의심을 갖지 않았다.
“힘들면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쉬세요.”
“됐어. 조금 쉬면 낫겠지.”
영웅의 체력이나 회복력은 일반인과 비교해 매우 대단한 수준이다.
살짝 베인 상처 정도는 관리만 잘하면 하루 이틀 내로 흉터 없이 아물 정도였다.
당장 씨앗에 뚫린 유지한의 손바닥도 빠른 속도로 아물고 있었다.
온몸에 마력 파스도 덕지덕지 붙여 뒀으니, 그는 그 기운을 받아 몸이 회복되길 기대했다.
“그 골프장 얘기는 들었어?”
“3급으로 격상됐다는 거요?”
“이미 들었구나.”
“아침에 뉴스 봤어요.”
사고가 발생한 골프장은 4급이 아닌 3급 MA로 한 단계 격상됐다.
상위 파티를 임시로 투입하는 게 아니라 아예 4급 파티의 접근을 막아 버린 것이다.
이유는 4급 파티에서 괴들레로 인한 사망자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유지한이 호수로 뛰어들기까지 직접 본 시체만 해도 4구가 넘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요새 죽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 같아요.”
“원래 그런 직업이니까.”
“…….”
유지한은 담담하게 말했다.
김시후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다시 한번 영웅이라는 자신의 직업을 상기했다.
인간끼리만 투닥거리던 시대에서 벗어나, 몬스터라는 하나의 자연 현상과 이세계의 침입자에게서 인류를 수호한다는 목적으로 존재하는 영웅들.
일부 사람들은 그저 돈 잘 벌고 유명한 스타처럼 생각하는 직업이지만, 현장에 들어가는 본인들은 언제나 목숨을 건다.
죽음은 늘 그들 가까이에 있었다.
‘진짜 무력하구나.’
김시후는 괴들레로 가득한 골프장에서 무력함을 느꼈다.
유지한이 지시하는 것들을 거의 모두 수행했지만, 딱 거기까지뿐.
그것 이상을 해내지는 못했다.
그 자리에 있던 게 이름 있는 마법사였다면 광범위 마법을 사용하여 몬스터를 압도할 수도 있었겠지.
어제 골프장의 1번 홀을 뚫어 낸 것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다른 것보다 화력이 부족해.’
마법 이론과 마력 제어 쪽으로는 누구에게도 쉽게 꿀리지 않을 정도로 자신 있는 김시후였다.
그 수준이 대단한 덕분에 영웅 학원에서도 난 놈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기본 원소 마법에서 벗어나거나 위력과 규모가 큰 마법을 선보이기에는 아직 미숙했다.
현재의 스타일을 정의하자면 힘보다는 테크닉에 중점을 둔 테크니컬 마법사로 분류할 수 있었다.
소규모, 중규모 교전에는 뛰어나지만, 그 이상으로 넘어가면 한계를 느끼는 부류였다.
‘성장이 필요하다.’
강한 화력을 가진 마법에 요구되는 것은 농도가 진하면서도 많은 양의 마력이다.
하지만 김시후는 체내 마력의 양이 다른 마법사와 비교해 그리 많은 편도 아니고, 마력을 응축시키는 능력도 평범한 수준이었다.
이것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것에도 영향을 받는 부분으로 단기간으로는 변하기가 쉽지 않았다.
“형.”
“응?”
“저희도 슬슬 장비나 영약에 투자를 시작해야겠어요.”
“조금 이르긴 하지만……. 확실히 필요하긴 하지.”
유지한은 그렇게 대답하면서 김시후의 얼굴을 쓱 훑었다.
그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는지 대충은 알 것 같았다.
‘실프의 정령 강화만으로는 부족할 거야.’
마법사 타입의 영웅이 성장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대표적으로 3가지가 존재한다.
첫 번째로는 마력에 좋은 영약을 섭취하는 것.
두 번째는 특수한 효과가 있는 장비나 아티팩트를 사용하는 것.
그리고 세 번째는 영웅이 극히 드문 확률로 경험한다는 ‘깨달음’이 있다.
다만, 깨달음은 얻고 싶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니…….
영약이나 장비 따위의 도움을 얻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시후야.”
“네?”
“너무 조급해하지 마.”
“…….”
속마음을 들킨 김시후가 멋쩍게 볼을 긁었다.
유지한은 빙긋 웃으며 괴냥이 수염차를 따라 마셨다.
입에서 익숙한 짠맛이 느껴졌다.
“김현태 파티에는 마법사 임시연 씨가 계셨죠?”
“그렇지.”
“임시연 씨랑 저를 비교하면 어때요?”
“실력을 묻는 거야?”
“네.”
김시후는 유지한이 있던 김현태 파티의 마법사와 자신을 비교했다.
최소한 그가 있던 파티의 마법사만큼은 해내고 싶다는 것이 그의 속마음이었다.
“당연히 임시연이 더 뛰어나겠지.”
“…….”
“하지만 잠재력은 네가 더 크다고 본다.”
“왜요?”
“걘 성격이 더럽거든.”
그의 대답에 김시후가 쓰게 웃었다.
가벼운 농담 정도로 여기는 것이었다.
‘농담 아닌데.’
굳이 비교하자면 김시후는 과거 김현태 파티가 4급이었을 때의 임시연보다는 뛰어났다.
그러니 앞으로 보여 줄 모습이 그녀보다는 김시후가 더 나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유지한이었다.
그리고 임시연의 성격이 더럽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는 팩트였다.
“어제 번호 가져갔던 전사들에게서 아침에 문자가 왔었어.”
“그래요? 그 사람들이 뭐라던가요?”
“새로운 길드원을 뽑을 계획이 없냐던데.”
전사들은 현장에서 유지한과 김시후의 실력을 보고 꿀잼이라는 길드에 관심을 가졌다.
그들이 보기에도 두 사람이 유별난 영웅으로 보인 덕분이었다.
영웅으로서 뛰어난 사람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것.
유지한은 김시후에게 물었다.
“어쩔래?”
“솔직히 말해서 그중에는 별로 데려오고 싶은 사람이 없어요.”
“나도 비슷한 의견이야.”
아쉽게도 유지한과 김시후는 그 전사 2명에게서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못나지는 않았지만 딱 무난한 정도의 영웅이라는 인상이었다.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서 민유리와 함께 싸운 기억을 떠올려 보면 그들은 그다지 임팩트가 없었다.
“당분간 길드원 모집 계획은 없다고 전달할게.”
“네.”
“그리고 또 다른 소식은, 우정 길드가 영웅부로부터 징계를 받았다더라.”
영웅부는 길드 내부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 징계를 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큰 트러블이 일어난 건 알겠지만, 징계까지 받았다니.
놀란 김시후가 되물었다.
“징계요?”
“전사들이 영웅부에 신고를 넣었다네. MA에서 파티장이 파티원을 버리고 떠났다고.”
“그걸로도 처벌을 받는군요…….”
“임시로 내려온 징계는 5급으로의 강등 및 1년간 재승급 불가. 그리고 1년 내 길드 해체 시 2년간 길드 재설립 불가. 아마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며칠 내로 징계가 확정될 거야.”
“그것 참 안 됐네요.”
4급에서 5급으로 내려감과 동시에 1년간 승급까지 막힐 예정인 우정 길드였다.
승급이 막힌 건 말이 1년이지, 길드의 기록은 영원히 남아서 이후에도 승급에 떨어질 확률이 높았다.
차라리 1년 뒤에 길드를 해체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홧김에 자기 파티원을 버리고 떠난 리더의 행동을 생각하면 마땅한 징계였다.
“우리 리더는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지.”
“아! 마침 리더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저도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김시후가 유지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부터 파티장을 저 대신 형이 맡아 주세요.”
“그게 무슨 말이야?”
“제가 길드장이자 파티원이 되고, 형은 파티장이 된다는 말이죠.”
“……?!”
현역에서 버젓이 활동하는 길드장이 파티장 자리를 양보하겠다니.
길드장과 파티장이 서로 다른 파티.
적어도 유지한은 이제껏 들어본 적 없는 기형적인 파티 구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