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리더의 조건 (5)
노란 꽃을 가진 괴들레는 그저 장애물에 불과했다.
문제는 돌연변이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정지해 있던 공격형 돌연변이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에너자이즈]
[아이언 스킨]
김시후는 평소 잘 사용하지 않는 신체 강화 버프를 유지한에게 둘렀다.
비록 타인에게 사용하여 반감된 효과였지만, 철판을 든 유지한은 덕분에 기운이 조금 솟는 모양새였다.
“다들 뒤로!”
유지한은 가장 먼저 움직임이 보였던 돌연변이 쪽으로 철판을 들어 올렸다.
김시후와 다른 영웅들이 그의 뒤로 숨었다.
[실드]
까가가가강—!!
멀리서 날아온 괴들레의 씨앗이 실드가 사용된 철판의 표면을 때렸다.
‘큭!’
12번 홀의 씨앗은 아까 막았던 씨앗보다도 더 위력이 강했다.
덕분에 철판을 지탱하는 유지한의 팔이 비명을 질렀다.
거기에 더해 다른 사람을 먼저 가려 주느라 미처 막지 못한 씨앗은 그의 갑옷을 스치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실드에 마력을 퍼붓는 마법사 2명의 노력으로 철판은 뚫리지 않았다.
“다음은 저쪽!”
씨앗을 다 털어 낸 녀석을 무시하고 앞으로 더 이동한 뒤에 커브를 돌았다.
그리고 철판의 방향을 다른 돌연변이가 있는 쪽으로 돌렸다.
양방향으로 동시에 공격받지 않는 경로를 따라 이동하는 것이었다.
임시로 이뤄진 파티의 전사들은 유지한을 보조하며 옆에서 달려드는 괴들레를 처리했다.
까가가가강!
쉬지 않고 날아오는 괴들레의 씨앗들!
놈들은 한 곳에 몰려 있지 않고 분산되어 있었기 때문에 잠시라도 쉴 틈이 없었다.
‘얼마 안 남았다!’
호수와의 거리가 70미터도 남기지 않은 시점.
마법사들은 잔뜩 인상을 쓰면서 마력을 쥐어짜내고 있었다.
“조금만 참아요!”
호수에 도착한 뒤에는 물을 등지고 한쪽 방향만 신경 쓰는 게 가능하다.
그대로 경계를 따라 이동하면 MA를 쉽게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60, 40미터…….
목적지까지 약 20미터 정도를 남긴 시점이었다.
까앙!
“꺄악!”
“선화야!”
김시후와 함께 실드를 유지하던 마법사가 비명을 질렀다.
철판의 가장자리에 맞고 튕긴 씨앗이 그녀의 발등을 찌른 것이다.
모두가 자리에 멈추고, 당황한 김시후는 외쳤다.
“6초 후에 실드 깨집니다!”
함께 실드를 유지하고 있던 마법사가 빠진 탓에 골프 카트의 지붕을 둘러싼 마력이 매우 불안정해졌다.
“재사용 못 해요?!”
“이게 그렇게 쉽지가 않아요!”
애초에 평범한 철판은 마력을 받아들이기에는 그다지 적합한 소재가 아니었다.
게다가 2명이 합심하여 유지하던 마법이니, 균형이 한번 무너지면 되돌리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저, 저기 좀 봐요!”
“미친!”
설상가상으로 주변의 다른 괴들레까지 돌연변이로 변하고 있었다.
하나의 뿌리에 꽃이 5개나 달린 녀석이 서서히 돌연변이가 되는 걸 보고 있자니, 유지한은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못 버티겠는데.’
실드가 사라져 가는 얇은 철판은 씨앗을 맞을 때마다 안쪽으로 푹푹 패였다.
역시나 평범한 철판만으로는 오래 버틸 수 없었다.
실드가 다시 돌아오기 전에 망가질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된 이상, 플랜 B로 간다.’
유지한은 크게 소리쳤다.
“모두 호수로 뛰어들어요!”
“네?!”
“호수를 넘어가도 결계가 나옵니다!”
괴들레는 물에 들어올 수 없으므로 충분히 가능한 선택지였다.
호수 너머에 괴들레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당장의 위협을 피하는 게 더 중요했다.
유지한은 새로운 돌연변이가 나온 방향으로 철판의 방향을 바꿨다.
콱!
도중에 날아온 씨앗 하나가 철판과 유지한의 손바닥을 뚫고 손등 위로 솟았다.
아슬아슬하게 뼈를 빗나간 그것을 따라 새빨간 핏물이 흘러내렸다.
“형!”
하지만 그는 피가 흐르는 손바닥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철판의 프레임을 세게 쥐었다.
그리고 씨앗이 날아오는 돌연변이를 향해 뛰었다.
“여기다!”
까가가강!!
소리를 지르며 달리는 유지한이 파티원들과 거리를 벌릴수록 날아오는 씨앗은 그에게만 집중됐다.
임시 파티의 행동을 결정하고 지시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었다.
“지한 씨!”
“가기나 해!”
이들이 머뭇거리는 사이에 돌연변이가 더 등장하면 모든 것이 망가진다.
“아이, 씨! 진짜로 갑니다!”
자세를 낮게 숙인 전사들이 다친 마법사를 부축하며 호수로 뛰어들었다.
잠시 망설이던 김시후도 이내 지시에 따라 호수로 뛰어들었다.
아무리 유지한이 걱정되더라도 이 자리에 남는 건 그를 무시하는 행위였기에.
‘나만 남았군.’
여기저기 구멍이 뚫리다 못해 조금씩 찢어지고 있는 철판!
뾰롱!
괴들레와의 거리를 재어보던 유지한은 실프를 소환했다.
그리고는 호수와의 거리를 계산하고는, 철판과 자신의 몸 사이에 윈드 밤을 중첩으로 사용했다.
[윈드 밤]
[윈드 밤]
…….
…….
후우우웅—!
거의 누더기가 된 철판은 씨앗을 한두 개나마 막아 내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사이 유지한의 몸은 골프장의 호수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조절하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푹! 푹! 푹!
공중에 떠오른 그는 몸을 동그랗게 말아서 급소를 보호하고 날아오는 씨앗을 최대한 팔과 다리로 막아냈다.
그리고 호수로 떨어지기 직전, 저 멀리서 탈모가 진행된 돌연변이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시시시시—!!”
그 손가락의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요상한 소리를 내는 괴들레였다.
풍덩!
*****
유지한은 숨을 참으며 밑으로 잠수했다.
적당한 깊이까지 들어가선 곧바로 몸에 박힌 씨앗을 뽑았다.
‘큭!’
씨앗이 뽑혀나간 부위로 물이 스며들었다.
모든 상처가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처럼 매우 쓰라렸다.
고통은 견딜 수 있으니 당장은 염증이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꽤 밝다.’
호수의 안쪽은 생각보다 어둡지 않고 밝았다.
해가 머리 위에 떠 있는 덕분이었다.
수심이 꽤 깊어서 바닥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래쪽에 하얀 점 같은 것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호수로 떨어진 골프공들이 아직 회수되지 않고 남아 있는 듯했다.
괴들레가 나타난 이후 관리를 전혀 하지 못했을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검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걸 주의하며 물속에서 헤엄쳤다.
슉! 슉! 슉!
위에서 괴들레의 씨앗이 물속으로 떨어졌다.
호수 앞까지 도착한 돌연변이가 바로 아래를 향해 씨앗을 쏘고 있었다.
하지만 놈들의 씨앗은 밑으로 잠수한 유지한에게까지는 닿지 않았다.
돌기가 있는 씨앗과 그 끝에 달린 하얀 갓털은 단단했지만, 물에 가라앉지 않고 호수 위로 떠 올랐다.
‘저기 있네.’
앞으로 헤엄치던 그는 앞서 이동 중인 영웅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호수 건너편에 거의 도착해 있었다.
‘아직 견딜 만하니까…….’
위쪽에는 씨앗을 뱉지 않은 돌연변이가 남아 있었다.
아직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파하!”
유지한은 다시 물 위로 올라갔다.
숨을 몰아쉰 그는 일부러 괴들레에게 자신의 위치를 공개하여 주의를 끌었다.
다른 영웅들이 도망칠 시간을 버는 것이었다.
파바바박!
씨앗이 날아오면 곧바로 잠수하여 피했다.
그리고 다시 얼굴을 보이고, 또다시 잠수하기를 5번 정도 반복했다.
두더지 잡기라도 하는 듯한 모양새.
그것을 계속 반복하자 씨앗을 날리던 돌연변이들은 민머리가 되었다.
“지한이 형! 이리 와요!”
뒤쪽에서 귀에 익어 버린 김시후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지한은 그제야 건너편으로 헤엄쳐갔다.
물을 빠져나오자마자 그가 김시후에게 말했다.
“콜록! 다친 사람은?”
“발 다친 마법사분 빼고는 괜찮아요.”
호수 건너편에서는 괴들레들이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동도 없이 서 있는 놈들을 보고 있자니, 김시후는 약간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바로 이동합시다.”
5명의 영웅은 호수 너머의 수풀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2명의 전사는 발을 다친 마법사를 옮기기 위해서 자신의 무기도 물속에 버려 두고 온 형편이었다.
결국 머리칼에서 물을 뚝뚝 흘리는 유지한은 다시 한번 앞장섰다.
물을 잔뜩 머금은 장비와 몸은 무겁게 느껴졌지만, 절대로 주변 경계를 허투루 하지 않았다.
“다 왔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푸르스름한 막, 결계와 가까워졌다.
“빨리 갑시다!”
“잠깐 정지.”
“……?!”
유지한은 결계를 보고 곧장 튀어나가려는 전사들을 손을 뻗어서 막았다.
“시시시!”
“헉!”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어디선가 괴들레가 튀어나왔다.
마지막까지 방심을 할 수 없는 상황.
일행은 유지한이 검으로 괴들레를 썰어 버린 뒤에야 다시 결계를 향해 다가갔다.
파지지지직!
“아오!”
“아, 따가!”
4급 결계를 지나가는 순간.
결계가 상처 부위에 스치자 모두가 인상을 크게 찌푸렸다.
날카로운 씨앗에 당한 상처 위로 입자가 고운 소금을 뿌리는 느낌이었다.
‘이래서 입구가 좋은데.’
유지한은 속으로 조금 투덜거리며 앞으로 걸었다.
곧 차가 지나다니는 찻길과 주택가가 나왔다.
마침내 MA를 빠져나온 것이었다.
“하…….”
“살았다.”
발을 다친 여자 마법사와 2명의 전사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호수로 뛰어드는 순간까지도 이대로 죽는 건 아닐까 생각했는데,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유지한은 뚫고 나온 결계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아직 걸을 수 있죠?”
“아, 네.”
“입구로 돌아갑시다. 아마 지원이 왔을 테니 치료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상처를 치료하고 상황도 파악할 겸, 일행은 골프장의 입구로 되돌아갔다.
10분 정도 걸어가자 도착한 골프장 본관 앞에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었다.
영웅뿐만 아니라 뭔가 큰 사건이 터진 걸 알고 구경 온 일반인이나 기자들도 보였다.
“여기 부상자 있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모두가 간단한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이 중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사람은 없었다.
유지한이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던 것이 나름대로 효과가 있던 것이었다.
“끄아아아!”
“누, 눈이 안 보여요, 선생님……!”
“누가 이 씨앗 좀 빼주세요!!”
반면, 다른 파티에서는 심각한 부상자가 속출했다.
눈에 씨앗을 맞고 실명을 걱정하는 사람도 보였고, 목숨이 크게 걱정될 정도로 피를 많이 쏟아내는 사람도 있었다.
아수라장이 된 골프장에서 김시후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직도 1번 홀이 안 뚫렸나 봐요.”
입구 바로 앞쪽의 1번 홀에서는 아직도 영웅들이 괴들레와 대치 중이었다.
새로 투입되는 영웅들의 차림새를 보아하니 4급이 아닌 3급 파티 위주였다.
그럼에도 쉽게 뚫지 못하는 것으로, 오늘 터진 사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유지한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말했다.
“신우정 씨가 안 보이네요.”
동생을 데리고 파티에서 이탈한 신우정이 자리에 보이지 않았다.
신우정 파티의 전사가 휴대폰을 꺼내 들며 말했다.
“제가 전화해 볼게요.”
“우정 씨 휴대폰이 무음모드인가요?”
“……저야 모르죠?”
애매한 답변이 돌아오자 유지한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어딘가에 몸을 숨기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전화를 걸면 어떡합니까.”
“아…….”
어쩌면 신우정은 지금 벨소리가 울리면 안 되는 상황에 처해있을 수도 있었다.
당장 피해를 끼칠 수도 있는 행동은 금물이었다.
“저희도 여기에 남아있을 테니, 우정 씨가 나올 때까지 그냥 기다립시다.”
유지한은 적어도 신우정의 행방을 파악하고 나서 자리를 뜰 생각이었다.
그리고 약 1시간 후.
급하게 소식을 듣고 방문한 2급 파티에서 1번 홀을 뚫어 냈다는 소식을 전했다.
가장 혼잡하던 구역을 뚫어 낸 뒤 남은 구역을 뚫어 내는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왔다.”
어느덧 영웅부에서 10번 홀까지 뚫어 낸 시점이었다.
기다리던 신우정과 신문아가 드디어 건물로 들어왔다.
‘저건…….’
유지한과 김시후는 눈을 가늘게 떴다.
두 사람의 몸에는 이곳저곳 찢긴 상처가 가득하고, 전신이 뻘건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착용한 장비도 수선하기 어려울 만큼 크게 망가졌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몰골이었다.
“문아야!”
“언니!”
신우정 파티의 마법사가 앞으로 달려 나가 신문아를 힘껏 껴안았다.
서로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트리는 두 사람이었다.
유지한의 옆에 있던 전사들은 신우정에게 걸어갔다.
“우정아. 지금 힘든 건 알겠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
“겨우 이딴 게 네가 우리에게 보여 주고 싶다던 미래였냐?”
“…….”
굳은 표정의 전사들은 고개를 푹 숙인 신우정을 차갑게 노려봤다.
신우정은 할 말이 없는지 입을 계속 다물고 있었다.
‘참극(慘劇)이구나.’
유지한은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리더의 무능이 만들어 낸 참극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