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리더의 조건 (4)
최대한 다른 괴들레와 마주치지 않도록 이동하던 일행이 12번 홀을 눈앞에 둔 상황.
“정지.”
자기도 모르게 어느새 무리를 이끄는 역할을 맡게 된 유지한은 모두를 멈춰 세웠다.
철판을 조용히 바닥으로 내려놓은 그가 말했다.
“다들 저거 보여요?”
“……보입니다.”
7명의 영웅이 나무 기둥에 몸을 숨긴 가운데.
하얀 씨앗이 나와 있는 돌연변이들은 12번 홀 여기저기 퍼져 있었다.
꽃을 달고 있는 평범한 괴들레는 주변을 순찰하듯 걸어 다니고, 돌연변이들은 자리에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햇볕을 쬐며 광합성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래도 저놈들도 공격형 돌연변이로 예상됩니다.”
“피해 가야 할까요?”
“다른 곳이라도 안전하다는 법은 없습니다만.”
“음…….”
“지한 씨 말씀은, 여길 지나가자는 거죠?”
“예.”
저 멀리 결계가 보였다.
유지한의 생각에 당장 이곳보다 좋은 선택지는 없었다.
뒤쪽에 있던 김시후는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제가 파이어 월을 써서 날아오는 씨앗을 막으면…….”
“뚫릴 가능성이 커.”
일전의 괴물 닭과 싸우던 때에도 불의 벽은 녀석에게 쉽게 뚫려 버렸다.
이번에도 빠르게 날아오는 씨앗을 막지 못하고 뚫릴 가능성이 컸다.
머릿속으로 씨앗을 무력화시킬 다양한 마법을 떠올리는 김시후였으나, 함부로 시도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1번의 실패가 생명을 좌우할지도 모르는 법이니까.
그런데 그때였다.
“아앗!”
신문아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깜짝 놀란 모두가 그녀를 바라봤다.
무릎보다 작은 크기의 괴들레가 그녀의 다리에 꽃을 부비고 있었다.
이제까지 덩치가 큰 것만 마주쳤기 때문인지 숨어 있던 걸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문아야!!”
서걱!
황급히 달려간 신우정이 그 작은 괴들레를 처리했다.
“아야…….”
“괜찮아? 어떡해, 상처 좀 봐!”
신문아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의 다리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검을 바닥에 떨어뜨린 신우정은 그녀의 상처를 살피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큰 부상은 아니다.’
반면, 유지한은 그녀의 상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 정도면 괜찮습니다.”
“……뭐라고요?”
“당장 다리를 못 쓸 정도는 아니에요. 그리고 괴들레는 단 한 번도 독이 발견된 적이 없으니까 안심해도 좋습니다.”
지금까지 경험한 것들을 기반으로 내린 적절한 진단이었다.
하지만 신우정은 거기에 동의하지 못하는 듯했다.
“내 동생이 다쳤는데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해요?!”
“……우정 씨? 갑자기 왜 그래요?”
“당신이 혼자 잘났다고 그딴 소리를 하니까!”
“……?”
신우정은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유지한은 그를 바라보며 입을 작게 벌렸다.
‘이 사람 갑자기 왜 이래?’
생산적인 논의가 오가도 모자랄 판에 소리를 지르다니.
분위기가 조금 나빠지려고 하자, 신우정 파티의 마법사가 나서서 말했다.
“우정아. 그만 진정해.”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유지한은 화를 내는 그를 바라보면서도 12번 홀 안쪽에 있는 괴들레를 경계했다.
혹시라도 대화 소리에 이끌려 관심을 끌게 되면 무척 곤란해진다.
“오빠. 나 정말 괜찮으니까 그만…….”
“대체 뭐가 괜찮아! 이렇게 다쳐 놓고!”
신문아는 버럭 소리 지르는 오빠를 진정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얼굴이 새빨개진 그는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내가 이럴까 봐 널 두고 오려고 했는데……!”
“신우정! 너 적당히 해라.”
“우정아. 지금이 고집부릴 때냐?”
“너네도 닥쳐!”
다친 신문아 본인과 파티원들의 말까지 무시하는 신우정이었다.
이제껏 예의 바르던 사람이 180도 달라진 듯한 모습에 유지한과 김시후는 적잖게 당황했다.
그가 동생을 아낀다는 건 알겠지만, 지금은 너무 크게 흥분했다.
“우정 씨. 그만 진정하시고 일어나세요.”
“내 동생이 다쳤는데요?”
“걷지 못할 정도로 큰 상처는 아닌…….”
“하……. 역시 다른 길드의 사람이라 이거죠. 네! 잘 알겠습니다.”
벌떡!
결심한 표정의 신우정이 동생을 팔로 안고 일어섰다.
유지한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우리는 따로 가겠습니다.”
“……갑자기요?”
따로 떨어져서 가겠다는 폭탄선언!
나머지 파티원들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신우정! 진짜 미쳤어?!”
“얀마, 너 여기가 아직도 영웅 학원인 줄 알아? 왜 동생을 감싸돌아?”
“오빠, 빨리 나 내려놔.”
“넌 가만히 있어.”
동생에게 다그치듯이 말한 신우정이 결국 뒤로 돌아섰다.
당황한 신문아가 자리에 남은 파티와 자신의 오빠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오빠? 오빠!”
“…….”
“아, 오빠!! 진짜 미쳤나 봐, 왜이래애!!”
“1번 홀로 가자. 그쪽이 더 안전할 거야.”
유지한은 등을 돌린 그에게 말했다.
“우정 씨. 진짜 이대로 빠질 겁니까?”
“네.”
“우정 씨의 파티원들도 여기에 두고요?”
“알아서 하겠죠.”
“……당신은 파티를 책임지는 리더입니다.”
“리더 이전에 문아의 오빠죠.”
“동생분이 그렇게나 싫다고 하시는데요.”
“얘는 아직 판단력이 약해요.”
“뭐라는 거야! 내려놔!!”
신문아가 자신을 붙잡은 오빠의 등을 때리며 파티원들을 바라봤다.
울먹거리는 그녀를 보고 표정을 굳힌 이들이 신우정에게 다가갔다.
“오지 마라.”
“너 진짜……!”
그러나 그는 끝까지 파티원들의 접근을 거부했다.
사실상 마지막 경고였다.
“진짜로 갔네.”
“저 미친놈…….”
끝내 신우정은 신문아를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자리에 남은 모든 영웅들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유지한과 김시후는 신우정의 파티원들을 강하게 노려봤다.
지금 벌어진 일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저희가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저 새끼가 예전부터 동생을 과보호하는 성격이라…….”
그들이 전해 준 이야기는 짧았다.
같은 영웅 학원에 있을 때부터 신우정이 신문아를 너무 과할 정도로 아꼈다는 이야기였다.
매 쉬는 시간마다 한 학년 아래 교실까지 찾아가 동생을 감싸 돌았고, 동생이 수업 중 다치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날 학원이 통째로 뒤집혔다고 한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봤나.’
유지한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교류회에서 마주쳤을 때만 해도 그는 아주 건실한 인상의 영웅이었는데.
현장에서 함께 해보니 그저 시스터 콤플렉스에 빠진 애새끼였다.
어쩌면 이곳이 생과 사가 오가는 전장이니만큼, 그의 본성이 드러난 것일 수도 있었다.
“쟤는 아티팩트도 있으니까 알아서 할 거예요.”
“아티팩트? 그게 있으면 왜 지금까지 안 썼어요?”
“공격 마법인데 하루 사용이 제한이 있었댔나, 아마 그럴걸요.”
“충전형 아티팩트네요.”
특수한 마법 스킬 따위를 사용하는 게 가능하고 이후 재사용이 가능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충전형 아티팩트.
신우정은 4급 파티에게는 과분한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게 있으면 진작 말할 것이지.’
마법에 따라 다르겠지만, 화력이 높은 것이라면 마법사들과의 협의를 통해 입구를 뚫어 낼 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었다.
그런데 말하는 걸 들어보니 신우정은 아티팩트의 상세 정보를 파티원들에게 제대로 알려 주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당신들은 안 따라갈 겁니까?”
“저놈 상태를 보자니 따라가지 않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쪽에 걸겠습니다.”
“우정이가 실력은 나쁘지 않아서 우정 길드에 합류한 건데……. 여기 나가기만 하면 당장 파티 탈퇴할 거예요.”
신우정의 파티원들은 그나마 정상이었다.
아니, 여길 나가자마자 파티를 탈퇴한다니 완전히 정상이라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지만.
어쨌든 2명이 빠지고 남은 인원은 총 5명.
김시후를 포함한 마법사 2명에 전사 3명이었다.
마법사와 전사가 빠진 게 아쉬워도 충분히 해볼 만했다.
유지한은 확인 차 그들에게 말했다.
“저희와 함께하시겠다면, 지금부터 모든 지시는 제가 내리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들의 동의로 임시 파티가 결성되었다.
유지한은 다시금 12번 홀을 바라봤다.
이동할 경로를 찾기 위함이었다.
‘여기만 뚫어 내면 돼.’
12번 홀을 벗어나 외곽에 있는 작은 수풀만 넘어가면 골프장과 주택가 사이에 있는 결계로 나갈 수 있었다.
결계가 입구보다는 두껍게 펼쳐져 있으므로 나갈 때 반발력이 있겠지만, 4급 MA의 결계라면 억지로 뚫고 나가더라도 신체에 후유증이 남지 않는다.
‘침착하게.’
유지한이 입을 다물고 코로 길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저 멀리 결계를 바라보며 현 위치로부터 결계까지 이어지는 가장 짧은 직선 경로를 탐색했다.
찾아낸 경로는 머릿속으로 ‘A’라고 가정하고, 샘플링을 사용했다.
<—이 자리의 영웅들이 A경로를 안전하게 지나갈 확률>
<34%>
가상의 경로로 향했을 때의 생존 확률을 계산한다.
샘플링의 조건으로 눈에 보이는 하나의 ‘현상’이 아닌, 임의로 가정한 요소들을 포함할 수 있는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결과로 나온 것은 34%.
불가능은 아니나 시도하기에는 리스크가 컸다.
‘아직 길은 많다.’
<—이 자리의 영웅들이 B경로를 안전하게 지나갈 확률>
<—이 자리의 영웅들이 C경로를 안전하게 지나갈 확률>
<—이 자리의 영웅들이 D경로를 안전하게…….
검은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며, 결계로 이어지되 이전의 경로와는 전혀 다른 경로를 찾아냈다.
그리고 그것을 샘플링의 조건으로 집어넣으며 얼마나 큰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 확인했다.
‘아까 보니까 저 여자 마법사가 조금 지친 거 같던데.’
동시에 샘플링에만 기대지 않고 현재 상황까지도 고려했다.
김시후와 자리에 남은 전사들의 체력 등을 냉정하게 계산했다.
‘조금 더 나은 선택지를……!’
유지한의 생각이 가속했다.
<—이 자리의 영웅들이 A-1경로를 안전하게 지나갈 확률>
<—이 자리의 영웅들이 B-2경로를 안전하게 지나갈 확률>
…….
…….
이리저리 움직이던 눈이 조금씩 뻑뻑해졌다.
샘플링을 반복해서 사용한 탓에 머리도 조금씩 지끈거렸다.
하지만 그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잠깐의 고통쯤은 견딜 수 있었다.
비록 김현태 파티에서는 이러한 과정에서 얻어 내는 결과를 그저 말이 많다는 식으로 무시했었지만…….
지금은 묵묵히 김현태의 결정을 따르던 그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푸후…….”
“지한 씨?”
“저기 보세요.”
결정을 마친 유지한이 입으로 공기를 토해 내며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가 검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은 골프장 구석에 있는 작은 호수였다.
“저 호수의 경계를 따라서 뒤로 넘어갑시다.”
“네?”
괴들레의 공격으로부터 가장 안전한 선택지.
그러나 김시후를 제외한 나머지 영웅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리가 더 짧은 경로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긴 돌아가는 길인데, 굳이 그렇게 가시려는 이유라도.”
“다른 의견은 듣지 않겠습니다. 제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여기서 갈라서시죠.”
“하지만…….”
“모든 지시는 제가 내리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유지한은 신우정 파티원들의 의견을 단호하게 잘라 냈다.
그리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들의 얼굴을 노려봤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여기서 모두의 말을 들어줄 수는 없었다.
‘어?’
‘이 사람이 이런 사람이었나?’
‘분위기가 조금 다른데.’
조금 전까지 함께하던 때와는 다른, 다소 고압적인 태도.
자칫하면 거부감이 들 수도 있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신우정 파티원들은 그런 유지한의 모습에 믿음을 느꼈다.
그를 따라가면 여기서 살아갈 수도 있겠다는 믿음.
자신들을 버리고 떠난 신우정과는 너무나도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서로 시선을 교환하던 그들은 이내 유지한에게 말했다.
“지한 씨를 따르겠습니다.”
“직선으로 가는 게 아니라 중간에 커브를 돌 겁니다. 신호하면 다들 철판 뒤로 잘 숨으세요.”
“네!”
“그리고 마법사분은…….”
유지한이 간단한 설명을 마친 뒤.
모두가 긴장한 채 잔잔한 호수를 바라봤다.
그리고 괴들레 하나가 앞을 지나치는 순간.
유지한이 김시후의 지팡이에 정령 강화를 사용하며 외쳤다.
“쏴!”
김시후는 파이어 애로우를 사용하는 것과 비슷하게 마력을 내뿜었다.
그리고 본래 여러 발로 나뉘어야 하는 마력을 한데로 엮어 합쳤다.
[파이어 랜스]
그 결과 허공에 떠오른 것은 불의 화살이 아니라 커다란 불의 창!
그는 그걸 제어하는 일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와…….”
“저걸 저렇게 움직인다고?”
마력의 소모를 줄이기 위해 최대한 낮게 띄운 마법.
앞을 가로막는 괴들레를 요리조리 피하는 그것은 탄막 슈팅 게임에서 적의 미사일을 피하는 우주선과도 같았다.
옆에서 대기하던 신우정 파티의 전사들과 마법사는 그의 솜씨에 크게 감탄했다.
화르륵!
목표를 더 확실하게 처리하기 위해 생성된 마법은 결국 돌연변이에 적중했다.
녀석의 머리에 달려 있던 씨앗이 모두 불에 타오르자, 숨어 있던 모두가 나무에서 빠져나왔다.
“시시시…….”
“시시시시!”
12번 홀의 괴들레들은 영웅들이 달려가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골프장을 노랗게 물들인 꽃들이 동시에 회전하는 광경은, 마치 단체로 화려한 군무를 추는 듯한 것처럼 보였다.
‘쓸데없이 화려하기는!’
철판을 머리 위로 들고 가장 앞장선 유지한은 미리 정해 둔 경로를 따라 달렸다.
이깟 위기쯤, 그는 얼마든지 벗어날 자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