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39화 (39/300)

39화. 리더의 조건 (3)

티티티팅!

조금씩 힘이 약해지던 씨앗 공격은 몇 초 후에 완전히 멎었다.

주위가 조용해지자 유지한은 다시 차량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줄기 끝 부위에 하얀 씨앗이 가득 달려 있던 민들레는 맨들맨들하게 탈모가 진행되어 있었다.

모든 씨앗을 다 날려 버린 것이다.

‘아군, 적군 구분도 없구나.’

주변에는 씨앗을 맞고 쓰러진 괴들레도 많았다.

이놈들은 동료나 동족이라는 단어를 전혀 모르는 듯했다.

“실드 켜 놨어?”

“이, 이미 켜 놨어요.”

평소 실드를 사용하지 않는 김시후도 지금 이 순간에는 몸에 2겹이나 두르고 있었다.

1겹 이상의 실드는 꽤 비효율적이지만, 살려면 뭔들 못하리.

“으으…….”

“아파, 너무 아파……!”

“……!”

멀리서 다른 영웅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씨앗을 미처 피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유지한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말했다.

“거기 괜찮아요?”

“저, 저희 좀 도와주세요!”

바닥에 누워 있던 여성이 울먹거리며 팔을 위로 들어 올렸다.

그녀의 팔을 본 유지한은 표정을 조금 찡그렸다.

팔 여기저기에 민들레의 씨앗이 박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떨어진 거리에서 눈에 잘 보일 정도로 두께감이 있는 갓털이었다.

“넌 여기서 기다려.”

“네? 그런…….”

“금방 올 거야.”

유지한은 김시후를 골프 카트 뒤에 남겨 두고, 다른 파티가 누워있는 곳으로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시시시!”

“……젠장!”

그런데 바닥에 쓰러져 있던 괴들레들이 갑자기 벌떡 하고 일어났다.

화들짝 놀란 유지한은 바로 뒷걸음질 쳤다.

이놈들은 날아온 씨앗으로 인해 죽었던 게 아니었다.

아마도 죽은 척을 했던 것일 수도 있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조금 전처럼 많은 괴들레의 꽃잎이 접혀 있다는 것이다.

‘이건 안 된다.’

이 상황에서 다른 파티에게 다가가는 것도 무리다.

그렇다고 괴들레가 씨앗을 내보내기 전에 처리하는 것도 어려웠다.

“살아 있는 놈들이 있습니다! 그쪽으로 못 가니까 당장 일어나요!”

“도, 도와주세요!”

“도움만 바라지 말고 직접 일어나라고!”

그는 허공을 향해 화를 내듯 소리쳤다.

그것조차 괴들레들의 이목을 끌 수도 있다는 위험 부담을 안고서 한 행동이었다.

“제발 살려줘!”

하지만 쓰러진 영웅들에게 되돌아오는 건 도와 달라는 외침뿐이었다.

유지한은 이를 악물었다.

저렇게 소리 지를 기력이 남아 있다면 어디론가 숨는 편이 더 도움이 될 터.

저들은 같은 영웅으로서 최소한의 자세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결국, 그는 구조 요청을 무시하고 다시 골프 카트로 이동했다.

“형?”

“일어나.”

위기 상황일수록 판단은 빠르게, 행동은 과감해야 했다.

깡! 깡! 깡! 깡!

유지한은 총 4번의 칼질로 골프 카트의 몸체와 지붕을 이어 주는 4개의 기둥을 잘라 버렸다.

그리고는 분리된 철제 지붕을 들어 올렸다.

씨앗을 막아 낸 탓에 지붕에 구멍이 뚫리거나 구겨져 있었지만, 아직 그 형체는 남아 있었다.

공격을 제대로 막아 낼 탱커가 없으니 뭐라도 활용이라도 해야 했다.

“이거 들고 튀자.”

“……괜찮겠어요?”

검을 검집에 집어넣은 유지한이 습관처럼 샘플링을 사용했다.

<—이 철판으로 괴들레의 씨앗을 막아 낼 확률>

<68%>

“걱정은 됐고. 이 지붕 위에다 실드 마법 사용할 수 있지?”

“제 몸이랑 닿아 있으면 가능은 해요. 그리 오래는 못 버티고요.”

씨앗 하나당 막아 낼 확률이 68%라면 조금 애매할 수 있는 확률이지만.

실드까지 더해지면 저 씨앗들을 막기에는 충분했다.

“시시시……!”

어느덧 주변의 괴들레들은 씨앗이 나오기 직전이었다.

유지한은 카트의 지붕으로 자신과 김시후의 몸을 가렸다.

“실드 쓰고 뛰어!”

“어디로요?!”

“어디든!”

타다다닷—

두 사람은 그나마 괴들레가 적은 방향으로 힘껏 뛰기 시작했다.

그 사이 14번 홀의 괴들레들은 줄기에서 꽃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줄기 끝에 숨겨져 있던 씨앗들을 세상 밖으로 내보냈다.

[실드]

터더더더덩!

하늘을 날아온 씨앗들이 유지한이 들고 있던 철판에 닿았다.

충격은 있었으나 다행히 실드까지 두른 철판은 씨앗에 뚫리지 않았다.

“얼마나 버틸 수 있겠어?”

“길어 봤자 10분이요!”

철판에 손바닥을 대고 마법을 사용 중인 김시후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실드로 덮어야 할 크기도 크고 날아오는 씨앗의 양이 상당하니, 공격을 10분 이상 견딜 수는 없었다.

“앞에 한 놈 있어요!”

“오른쪽으로!”

보호받는 김시후가 주변을 살피고, 양손을 쓰지 못하는 유지한은 그의 말을 참고삼아 방향을 지시했다.

괴들레를 최대한 등지고 이동하는 덕분에 직선으로 가지 못하고 주위를 빙 둘러가기도 했다.

‘저것들도 죽은 척하는 거 아니야?’

꽃이 접힌 채로 땅에 쓰러진 괴들레는 볼 때마다 꺼림칙했다.

그것이 함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최대한 피해 다녔다.

‘여긴 그나마 덜하다.’

수풀까지 넘어선 그들이 도착한 곳은 바로 옆의 15번 홀이었다.

15번 홀은 14번 홀보다 훨씬 여유가 있었다.

가능한 입구 쪽으로 가길 희망했지만, 그쪽은 철판으로 막지 못할 정도로 괴들레가 너무 많았다.

“헉!”

“……!”

두 사람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남성을 발견했다.

전신에 단단한 중갑옷을 두른 영웅이었다.

찢어진 피부와 입술, 양쪽 눈알에 박혀 있는 하얀 갓털과 바깥을 향해 나와 있는 씨앗.

이미 절명한 듯한 그의 머리에는 괴들레의 씨앗이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박혀 있었다.

‘우정 길드 사람은 아니야.’

유지한은 그가 15번 홀에서 사냥하던 우정 길드의 영웅이 아닌 것을 알아보고 조금 안도했다.

아는 사람이 죽었다면 지금보다 마음이 편치 않을 테니.

“……저기 있다!”

두 사람의 눈에 검을 쥔 신우정과 그의 파티원들이 보였다.

신우정 파티는 아직 15번 홀에서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흐아아!”

“문아야, 조금만 더 힘을 내!”

그들은 아직 희망을 놓지 않은 모습이었다.

조금 전에 구조 요청만을 보내던 파티와는 사뭇 달랐다.

“우정과 합류한다.”

“네!”

“넌 돌아가 있어.”

드르르!

유지한은 실프를 정령계로 돌려보냈다.

마결정을 먹었다지만 아직은 계약 초기.

금세 탈진 현상에 빠질지도 모르니, 정말로 필요한 순간에만 사용해야 했다.

주위에 돌연변이가 없는 걸 확인한 그가 철판을 내려놓으며 외쳤다.

“우정 씨!”

“꿀잼?!”

그는 신우정과 대치 중인 괴들레를 향해 달려갔다.

키도 아주 클 뿐더러 하나의 뿌리에 꽃이 7개나 달려 있는 놈이었다.

아마도 이 골프장에서 마주친 괴들레 중에서는 가장 큰 개체였다.

촤악—!

유지한이 검으로 녀석의 총포를 베었다.

검날에 괴들레의 진액 같은 것이 묻어나오며, 7개의 꽃 중 하나가 땅으로 떨어졌다.

꽃을 하나 잃은 줄기는 아래로 힘없이 꺾였다.

그러자 무게 중심이 망가진 괴들레의 몸이 줄기가 꺾이는 방향으로 휘청거렸다.

신우정 파티는 유지한이 만든 기회를 놓치지 않고 괴들레를 덮쳤다.

“시시시시—!”

괴들레는 줄기를 구부려 날아오는 여러 공격 마법들을 피했다.

크기도 범상치 않고 움직임도 의외로 재빠른 녀석이었다.

하지만 녀석도 결국 평범한 괴들레에 불과했다.

양쪽에서 덮치는 영웅들의 공격으로 6개의 꽃과 줄기가 찢어지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남아 있던 괴들레를 처리한 신우정이 유지한을 아주 반갑게 맞이했다.

“언제 이리로 넘어온 거예요?”

“방금이요. 그것보다 빨리 여기서 나갑시다.”

“지금 MA로 지원 온 파티들이 입구를 뚫지 못하고 있대요.”

“영웅부와 연락하셨어요?”

“네.”

신우정은 이미 영웅부와 연락을 취했다.

입구 쪽은 3급 파티가 도착했는데도 괴들레를 처리하는 게 난항이라는 모양이었다.

‘이러면 어쩔 수 없나.’

입구와 이어지는 1번 홀로 이동하려던 계획을 보류했다.

유지한은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12번 홀로 갑시다.”

<—여기 모인 인원이 12번 홀을 통해 골프장을 안전하게 빠져나갈 확률>

<61%>

*****

신우정 파티의 5명에 더해 유지한과 김시후까지.

총 7명의 영웅은 12번 홀로 향했다.

12번 홀은 15번 홀의 바로 위쪽에 있으며 세로로 긴 영역을 끝까지 올라가면 결계의 외곽과 이어지는 곳이었다.

입구와는 조금 다른 방향이지만 거기서도 충분히 바깥으로 나갈 수 있었다.

‘원래 입구 외로 나가는 건 금지지만…….’

결계는 미리 정해진 입구가 아닌 곳을 강제로 통과하려고 하면 조금씩 불안정해진다.

특히 밖에서 안으로 들어올 때 그 정도가 심하다.

외부의 인원이 입구로만 들어오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만약 결계가 깨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몬스터가 사방팔방으로 퍼져서 주변에 엄청난 피해를 끼칠 테니까.

하지만 긴급 상황 발생 시 내부에서 빠져나가는 건 허용되는 편이다.

“형. 팔은 안 아파요?”

“버틸 만해.”

유지한이 든 철판은 신우정 파티의 골프 카트에서 떼어 낸 지붕이었다.

공격을 몇 번 막아 내어 찌그러진 이전의 지붕은 15번 홀에 버려 두고 왔다.

“문아야. 이리 와.”

“자꾸 왜 그래.”

“위험하니까 그러지.”

“징그러우니까 저리 가.”

신우정은 전투에서 자신의 동생인 마법사 신문아를 매우 아꼈다.

형제가 없는 유지한은 그들 남매를 보며 피식 웃었다.

‘사이 좋네.’

남매는 사이가 나쁜 경우가 많다고 하던데, 이쪽은 반대로 사이가 너무 좋아 보였다.

“앗! 지한 씨, 피해요!”

“괜찮습니다.”

유지한의 옆쪽에서 튀어나온 괴들레.

그는 철판을 옆으로 내려놓으며 빠르게 검을 뽑았다.

침착하게 괴들레가 휘두르는 잎을 피하고, 총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서걱!

돌연변이가 아닌 개체는 그에게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신우정 파티는 그런 유지한을 무척 신기한 듯이 바라봤다.

“지한 씨?”

“예.”

몇 번의 전투를 치른 뒤.

끝내 궁금증을 참지 못한 신우정 파티의 전사가 그에게 물었다.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물어보세요.”

“왜 이리 잘 싸워요?”

“……평범하지 않아요?”

“전혀요.”

유지한이 칼만 갖다 대면 썰려 나가는 괴들레였다.

다른 4급 전사들이 적어도 3번씩 공격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다른 스킬도 안 쓰시면서 이렇게 싸운다는 게.”

“안 쓰는 게 아니라 못 쓰는 거고……. 알려 드렸잖아요. 이놈들 약점이 꽃의 바로 아랫부분이라고.”

유지한은 땅에 떨어진 괴들레의 꽃을 가리켰다.

딱 저 약점만 노리면 괴들레 사냥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건 저도 알죠. 그런데 머리로 알고 있는 걸 진짜로 해내는 건 다른 문제잖아요.”

“저한테 그렇게 말씀하셔도 말이죠.”

주변에 적이 없는 걸 확인한 유지한이 커다란 나무 앞으로 다가갔다.

쉭!

그는 나무의 중간을 가로로 얇게 베어 작은 흔적을 남겼다.

이어서 아래쪽으로 5cm의 간격을 두고 나무껍질에 비슷한 흔적을 4개 정도 더 만들었다.

한치의 비틀림 없이 나무에 새겨진 5개의 가로선은 아주 균일한 깊이와 간격을 두고 있었다.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길이를 잰다면 정확히 20cm에 가까웠다.

“대충 이 정도만 하실 수 있으면 어떻게든 됩니다.”

“…….”

“요령만 익히면 다들 충분히 가능하실 거예요.”

신우정을 포함한 파티의 전사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걸 흉내는 낼 수 있겠지만 똑같이 따라 하는 건 무리였으니까.

‘능력이 부족하면 몸으로 때워야지.’

예전부터 공격 스킬을 갖고 있지 않았던 유지한.

그는 최근에 배운 마법조차 실프의 도움 없이는 사용하지 못했다.

특별한 힘을 가지지 못한 영웅으로서는 기본적인 몸놀림이나 동작이라도 꾸준히 단련해 왔기에 지금까지 현역으로 활동할 수 있던 것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