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리더의 조건 (2)
괴들레 사냥은 유지한이 몰고 온 골프 카트에 괴들레 사체가 가득히 쌓일 때까지 계속됐다.
‘이러다 하루 이틀 내로 MA 닫히는 거 아니야?’
쉬지 않고 사냥한 덕에 골프장에서 퇴장할 즈음에는 14번 홀의 괴들레가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유지한은 이번 활동 구역을 꽤 빠르게 옮겨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성공적인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허…….”
어제와 같은 시간에 골프장에 도착한 유지한은 벽에 설치된 TV를 보며 팍 인상을 썼다.
분명 많은 파티에서 괴들레를 사냥했을 텐데…….
드론으로 위에서 내려다보는 골프장은 여전히 노랗게만 보였다.
“수가 더 늘어난 거 같은데요.”
“그런 거 같다.”
드론이 비추는 화면 속, 14번 홀로 추정되는 구역은 완전히 괴들레밭이 되어 있었다.
어째 놈들의 숫자가 어제보다 더 많아 보였다.
분명 퇴장할 때까지만 해도 저렇지 않았는데 말이다.
‘땅속에서 올라온 건지, 강 속에 숨어 있던 건지…….’
이러니 골프장이 영업을 못 하는 거겠지.
유지한은 몬스터로 인해 몇 달째 문을 닫고 있는 골프장 측에 측은함을 느꼈다.
“오늘도 14번 홀이네요.”
우연인지 오늘 배정받은 구역은 어제와 같은 14번 홀.
또다시 입구와 멀어졌지만, 불만은 가지지 않았다.
그 지형에 익숙해졌으니 오히려 더 편하게 느낄 수 있었다.
“꿀잼?”
“어? 우정 씨.”
그때 바로 뒤에서 우정 길드의 신우정이 등장했다.
“여기서 또 뵙네요!”
“괴들레 잡으러 오셨어요?”
“네. 여기가 핫하다고 해서요.”
“핫한지는 잘 모르겠는데……. 수가 엄청 많긴 하죠.”
신우정 파티는 골프장에 오늘 처음 방문한 것이었다.
“그쪽은 어디로 배정받으셨어요?”
“14번 홀이요.”
“저희는 15번 홀인데.”
“바로 옆쪽이네요?”
“심심하시면 옆으로 오세요. 2인 파티는 다른 구역으로 빠져도 뭐라 안 할걸요.”
“중간에 여유 생기면 놀러 갈게요.”
그들은 서로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신우정의 파티원들은 교류회 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하게 서 있었지만, 교류회에 이어 2번째 만남인 만큼 크게 어색해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아, 아.”
“……?”
“입장 전에 여러분께 공지사항이 있습니다.”
“공지사항?”
매장의 스피커를 통해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지사항이라는 말에 매장의 모두가 대화를 멈추고 마이크를 잡은 영웅부 직원을 주목했다.
“요 몇 주간 이곳에 방문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괴들레의 수가 매일 밤사이에 이상할 정도로 많이 늘어나는 중입니다. 영웅부에서 그 원인을 분석한 결과, 드론의 카메라가 닿지 않는 구역에서 돌연변이가 나오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돌연변이라고요?”
“네.”
“하지만 저희는 한 번도 못 봤는데요.”
“그래서 밤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골프장 MA는 파티의 활동을 저녁 7시까지로 제한하고 있다.
해가 떨어진 밤에는 영웅들을 관리하기 힘들뿐더러, 밤은 사고가 가장 많이 벌어지는 시간대라 안전을 위해 출입을 완전히 막아 뒀다.
‘돌연변이가 나왔다고…….’
꽃이 지고 씨앗이 나오는 평범한 민들레처럼, 괴들레에게도 씨앗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괴들레의 돌연변이다.
씨앗을 바람에 날려서 번식하는 놈들로, 땅으로 들어간 씨앗에서는 다시 새로운 괴들레가 자란다.
‘공격형 돌연변이는 힘들 텐데.’
괴들레의 돌연변이 중에는 단단한 씨앗을 멀리 날려서 인간을 공격하는 개체가 있다.
공격형 돌연변이의 씨앗과 하얀 갓털은 모두 바늘처럼 뾰족하고, 먼 거리까지 날아가서 영웅들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온다.
유지한이 직접 마주친 적은 없었지만, 영상으로 보면 매우 까다로운 상대였다.
<—내가 오늘 돌연변이를 마주칠 확률>
“…….”
꼭 이럴 때는 샘플링이 답변을 주지 않았다.
그래도 공격형 돌연변이는 등장할 확률이 매우 낮으니 괜찮겠지.
“돌연변이가 나온다면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시고, 곧바로 영웅부에 연락을 부탁드리겠습니다.”
*****
“다음에 또 봐요!”
각기 다른 골프 카트를 타고 이동하던 꿀잼과 우정 길드는 14번 홀과 15번 홀의 사이에서 좌우로 갈라졌다.
유지한은 어제와 비슷한 위치에 골프 카트를 주차했다.
서걱!
그는 운전석에서 내리자마자 달려들던 괴들레 하나를 썰어 버렸다.
잠깐의 여유도 없이 덤벼들다니.
어제보다 더 바쁜 사냥을 예상하는 유지한이었다.
“으, 징그러.”
김시후는 나무 가까이에 있는 괴들레를 바라봤다.
녀석은 톱니 같은 꽃잎을 땅에 내려앉은 비둘기에 비벼 대고 있었다.
찌지직—
양쪽 날개가 다 찢어진 비둘기의 생명은 이미 꺼져 있었다.
하지만 괴들레는 꽃잎을 땅에 부비는 걸 멈추지 않았다.
날카로운 꽃잎이 비둘기였던 것에 스칠 때마다 점점 형체가 알 수 없게 변하고 있었다.
육식을 하는 놈도 아닌데 왜 저렇게 짓뭉개는 것인지.
이러한 몬스터들의 폭력성은 아직도 원인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방심은 금물이다.’
샛노랗던 괴들레의 꽃잎이 피처럼 붉은색으로 물드는 걸 보고 있자니, 유지한은 묘하게 기분이 나빠졌다.
저 꽃잎에 인간의 팔이나 다리가 닿는다면 그대로 걸레가 되어 버리겠지.
서걱!
그는 일부러 나무까지 달려가 비둘기를 짓뭉개던 괴들레의 줄기를 향해 검을 내려쳤다.
“시시시…….”
두 사람은 어제와 같이 사냥을 진행했다.
사냥한 개체는 꽃과 줄기를 각각 다른 보따리에 넣어서 정리하고, 골프 카트에 실었다.
어제는 보따리를 중구난방으로 쌓았더니 운전 도중에 카트가 하마터면 뒤집힐 뻔했다.
이번에는 무게 중심까지 고려하며 차곡차곡 보기 좋게 정리했다.
‘벌써 다 찼네.’
유지한이 속이 꽉 차 버린 보따리의 끈을 묶던 때였다.
“형, 형!”
“왜?”
“저 사람 좀 봐요.”
“……?”
주변을 경계하던 김시후의 호출에 유지한은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봤다.
탁 트여 있는 골프장에서도 홀과 홀의 경계.
나무가 빽빽하여 작은 숲처럼 조성된 공간에 누군가 쭈그려 앉아 있었다.
반팔 바지에 반팔 티를 입은, 남성으로 추측되는 사람이었다.
"저 사람 옷이 왜 저래?”
유지한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나무 옆에 있는 남자가 입은 옷은 일반적인 영웅의 장비가 아니었다.
당장 밖에 나가서도 흔하게 볼 수 있을 법한 사복.
아무런 장비도 없이 그냥 맨몸이었다.
‘뭔가 이상한데…….’
그에게서 느껴지는 아주 기묘한 느낌.
하지만 이세계에서 온 침입자라기에는 복장이 너무 현대적이다.
설마, 영웅이 아닌 일반인이 여기까지 들어온 것일까.
가능성이 아예 없는 일은 아니었다.
영웅이 아닌 일반인 중에서도 마력을 느끼는 사람들은 종종 있으니까.
결계에 이끌리듯 들어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가 보자.”
이유야 뭐가 됐건 가볍게 무장도 하지 않은 사람이 MA에 들어와 있으면 안 되는 것은 분명했다.
유지한과 김시후는 남자가 서 있는 나무로 다가갔다.
그가 길을 잘못 들어왔다면 밖으로 내보내주기 위함이었다.
“……!”
그런데 그는 다가오는 기척을 느끼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얼굴을 보여 주지도 않고 말없이 뒤돌아서 도망쳤다.
“……뭐지?”
“진짜 뭐죠?”
나무로 걸어가던 두 사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무지 의도를 알 수 없는 행동이었다.
영웅들이 사냥하는 걸 구경하기라도 했던 건지.
‘이상한 사람이네.’
빠르게 도망치는 남자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유지한은 그에게서 관심을 껐다.
도움의 손길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니 굳이 따라가지 않았다.
“시시시…….”
“엥?”
그때, 남자가 있던 나무의 뒤쪽에서 괴들레가 튀어나왔다.
유지한은 눈을 크게 떴다.
나무 기둥에 가려질 정도면 조금 전 도망친 남자와 거의 맞닿아 있었다는 것인데.
대체 그가 앉아서 무슨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시시, 시시시—!”
그런데 모습을 드러낸 괴들레는 다른 녀석들과 조금 달랐다.
꽃봉오리가 펼쳐져 있지 않고 접혀 있었다.
유지한과 김시후는 계속 이상한 소리까지 내는 녀석을 주목했다.
사아악—
아직 피지 못하고 접혀 있던 꽃봉오리가 조금씩 열리더니, 이내 활짝 펴졌다.
그야말로 개화(開花)의 순간이었다.
“와…….”
김시후는 조금 감탄한 듯이 입을 벌렸다.
저렇게 커다란 꽃이 피는 모습을 직접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시시시…….”
가만히 서서 개화를 맞이한 민들레는 계속 자리에 멈춰 있었다.
그놈을 지켜보던 유지한이 낮게 중얼거렸다.
“이상하다.”
“네?”
“생각해 보니 꽃이 피는 속도가 너무 빠르잖아.”
괴들레의 꽃은 저렇게 빨리 피고 지는 것이 아니다.
몬스터라고는 해도 접혀 있던 꽃봉오리가 제대로 펼쳐지려면 적어도 1시간 이상 걸리는 게 기본이었다.
하지만 방금은 단 몇 초 만에 꽃이 펴 버렸다.
사아악—
펼쳐진 노란색 잎은 곧 다시 접히기 시작했다.
쫙 펼친 손바닥으로 주먹을 쥐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자 유지한과 김시후까지 표정을 굳혔다.
평범한 민들레를 떠올려 보면 저 뒤에 벌어질 일은 하나밖에 없었기에.
“저 새끼 죽여!”
[파이어 애로우]
유지한의 외침과 동시에 김시후는 파이어 애로우를 여러 발 생성했다.
화살들은 허공에 나타나자마자 괴들레를 향해 쇄도했다.
화르르륵!
공격당한 괴들레의 모든 것이 순식간에 타올랐다.
괴들레 한 마리를 잡기에는 넘칠 정도의 화력이었다.
‘갑자기 돌연변이로 변하려고 하다니……!’
두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마터면 괴들레가 돌연변이로 변해 버릴 뻔했다.
“아?”
그런데 유지한의 눈에 다른 곳에 있는 괴들레의 꽃이 서서히 접히는 게 보였다.
뾰롱!
[헤이스트]
촤악!
일부러 실프까지 소환해 버프를 두른 그는, 괴들레를 향해 번개처럼 달려가서 검으로 꽃잎을 베었다.
그리고 상품 가치가 아예 없어질 정도로 모든 것을 난자했다.
‘단체로 미쳤나……!’
문제는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14번 홀에 있는 여러 괴들레의 꽃이 동시에 지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사냥하던 다른 파티도 무언가를 눈치챈듯했다.
“이쪽으로 와!”
“지금 가요!”
돌연변이의 등장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유지한이 김시후를 골프 카트 쪽으로 호출했다.
덜컹!
그는 카트를 옆으로 넘어뜨려서 김시후와 함께 차량의 하부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영웅부 쪽으로 연락을 넣으려고 했지만, 번호를 다 누르기도 전에 손을 멈췄다.
기어코 접힌 꽃을 땅으로 떨어뜨리며 하얗고 솜털 같은 씨앗을 내보인 몇 마리의 돌연변이가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번식이냐? 아니면……?’
차량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민 유지한은 돌연변이가 어떤 유형인지 파악하기 위해 기다렸다.
이제 와서 대처하기에는 늦었다.
단순히 번식을 위해 씨앗을 뿌리는 놈이라면 그나마 문제가 적을 터.
“아, 이런.”
그러나 운 나쁘게도 녀석들은 모두 공격형 돌연변이였다.
터더더덩!
터더더더덩—!!
멀리서 총알처럼 날아온 씨앗들이 골프 카트의 몸체를 강하게 두들겼다.
차량에 등을 돌리고 앉은 유지한과 김시후는 흡사 수많은 사람이 망치로 차를 힘껏 내려치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