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파티에서 추방된 영웅이 너무 뛰어남-36화 (36/300)

36화. 교류회 (2)

유지한은 테이블에서 의자 하나를 빼며 민유리를 그 자리로 안내했다.

“고마워요.”

“유리 씨! 그때는 못 오실 것처럼 얘기하시더니.”

“원래는 안 될 텐데, 영웅부에 물어보니까 와도 좋대요.”

민유리의 교류회 참석은 유지한과 나눈 대화로 인한, 다소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영웅부에서 거절했다면 당연히 포기했겠지만, 의외로 와도 된다고 하니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참석한 것이다.

“민유리 씨. 팻말은 여기 있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양지철은 꿀잼의 팻말 옆에 방금 인쇄한 듯한 눈송이의 종이 팻말을 가져다 놓았다.

“지한 씨. 목에 파스는 뭐예요?”

“아, 이건 별거 아닙니다.”

유지한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했다.

차마 마법을 잘못 써서 멀리 날아갔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음……. 지한 씨?”

“예?”

“그때 주신 제안에 답변은, 죄송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말하면서도 미안한 표정을 짓는 민유리는 아직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지금까지 하던 대로 괴냥이를 사냥할지.

아니면 꿀잼에 합류하여 새로운 기회를 찾아다닐지.

여전히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이죠. 하지만 저희가 3급 파티가 되기 전에는 말씀해 주셔야 해요.”

“벌써 3급을 준비하고 계시는 건가요?”

“아니,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죠.”

유지한은 무안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꿀잼은 4급으로 올라온 지 2주일도 지나지 않았다.

3급을 논하려면 아무리 빨라도 1~2년은 필요할 터였다.

“그런데……. 저 사람은 누군가요?”

김시후가 민유리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턱짓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테이블에 앉은 민주용이 아주 무서운 얼굴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자꾸 여길 노려보는데.”

“민주용 씨라고, 예전에 저를 데려가고 싶다던 길드의 영웅이에요.”

“역시 이미 다른 곳에서도 제안을 받으셨었네요.”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긴 한데……. 그렇죠.”

김시후가 그녀에게 물었다.

“설마 다른 길드의 제안이 같이 들어와서 고민하시는 건가요?”

“아뇨, 아뇨! 그건 진짜 아니에요.”

“그러면 다행이지만요…….”

유지한은 그녀의 말에 속으로 조금 안도했다.

그렇게 그들이 잡담을 나누던 순간이었다.

“여러분! 모일 분들은 다 모이신 것 같으니까, 슬슬 교류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빈 테이블 없이 영웅들로 가득한 강당.

이번 교류회의 MC 역할을 맡은 남자가 무대 위로 나왔다.

무선 마이크를 입에 바짝 가까이 가져간 그가 말했다.

“에,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해 바쁘신 와중에도 이런 자리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너무 잘생겼다!”

“누가요?”

“그쪽이요!”

“거기 여성분. 너무 당연한 건 묻지 마십시오.”

“어우, 뻔뻔해!”

아주 시원시원하게 멘트를 치는 그는 최근 각종 TV 채널에서 활약하는 유명 연예인이었다.

영웅부에서 오늘의 행사를 위해 꽤 몸값이 비싼 연예인을 데려온 것이다.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형식적인 인사를 마친 그가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다들 요청한 대로 아직 점심 식사 안 하셨죠?”

“네!”

“바로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짝짝!

MC가 손뼉을 두 번 치자 갑자기 강당의 모든 조명이 꺼졌다.

그리고 스피커를 통해 긴장감이 도는 음악이 재생되고…….

갑자기 천장이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화아악—!

놀랍게도 직전까지 아무것도 없던 천장에 도자기 그릇이 하나씩 등장했다.

공중으로 둥둥 떠오른 그릇들은 느릿하게 돌면서 테이블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유지한을 포함한 많은 영웅이 입을 벌린 채 그것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레비테이션? 테이블에 새겨진 고정 좌표로 이동하는 것 같은데, 아마 그릇 자체에도 마법이 새겨져 있겠어.’

김시후는 그릇들을 살피며 이번 퍼포먼스에 사용된 마법들이 무엇인지 분석했다.

그 결과 꽤 만만치 않은 마법의 조합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테이블 위로 내려온 그릇에 담겨 있던 건 각종 요리들.

대부분 몬스터를 주재료로 한 몬스터 요리였다.

“오늘의 교류회를 위해 레드홀과 쿠커 길드가 협력한 결과물입니다. 다들 박수 한 번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영웅들은 퍼포먼스를 준비한 길드를 위해 박수를 보냈다.

고작 음식을 테이블 위로 내놓기 위해서 다루기 어려운 마법을 여러 개 조합하여 사용했으니, 그 노력과 열정에 보내는 박수였다.

결과만 보면 별 것 아닌 듯싶지만, 이것은 길드와 길드가 협력한 결과물.

길드끼리 서로 사이좋게 지내라는 교류회의 목적과도 닿아 있는 만큼 나름대로 깊은 뜻을 간직한 퍼포먼스였다.

*****

짧은 식사가 마무리될 즈음에는 영웅부의 발표가 이뤄졌다.

시작은 길드 간 협업 우수사례 발표였다.

침입자와 마주친 서로 다른 길드의 파티가 협력하여 아무런 사망자 없이 적을 제압하는 것에 성공했다는 등,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여러 가지 다른 사례들도 같이 제시되었다.

‘요약하자면,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

이어서 기타 자질구레한 발표가 이어지고…….

다음에는 영웅부가 아니라 자리에 참석한 각 길드에서 준비한 자체 발표가 진행됐다.

마이크를 잡은 레드홀의 영웅이 말했다.

“저희 레드홀 길드에서는 이번에 모든 4급 파티에게 괴삼 추출물을 지급하여……”

자기들이 영약을 먹었다고 자랑하는 내용이었다.

다음에는 무대에 올라온 워리어즈의 영웅이 말했다.

“워리어즈의 4급 파티는 단 하루 만에 5개의 MA에 도전하는 신기록을…….”

이번에는 MA에서 신기록을 세웠다는 내용이었다.

이어서 다른 길드에서 발표되는 내용도 비슷했다.

하나같이 자기 길드가 더 잘났다는 것들이었다.

길게 하품을 한 김시후가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노잼…….”

다른 길드가 잘나간다는 이야기를 들어 봤자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길 뿐이었다.

전혀 흥미가 생기지 않는 내용이었다.

조용히 무대를 지켜보던 민유리도 말했다.

“생각보다 재미는 없네요.”

“그러게요.”

유지한도 그녀에게 크게 공감했다.

교류회에서 엄청나게 재밌는 걸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발표를 보면 길드 간 교류보다는 소속 파티와 길드를 뽐내는 자리 같았다.

차라리 아까 처음에 본 음식 퍼포먼스가 더 흥미롭게 느껴졌다.

“지금부터 질문받겠습니다! 영웅부에 궁금한 게 있으시면 얼마든지 여쭤보세요. 원하신다면 자리에 있는 다른 길드에 질문하셔도 좋습니다.”

“저, 자리에 있는 다른 모든 길드에게 질문 있습니다.”

유지한이 오늘 괜히 온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던 순간이었다.

질문 시간에 레드홀의 영웅이 손을 들어 올렸다.

“여러분. 평소 뉴스를 챙겨 보시는 분들이라면 얼마 전에 한국에서 최초로 괴아리의 돌연변이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으셨을 겁니다.”

그는 괴아리의 돌연변이에 대해 언급했다.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사이에서 유지한과 김시후는 서로의 눈을 힐끔 바라봤다.

“그 돌연변이가 인터넷 경매장에 올라와서 한바탕 소란이 일었죠.”

“아, 그거 저도 봤습니다. 저희 쪽에서는 입찰까지 시도했었거든요.”

“그렇군요. 그런데 제가 어디서 전해 듣기로는 그 돌연변이를 사냥한 파티가 최근에 4급으로 승급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아마 예상이 맞다면 오늘 교류회에도 참가했을 거로 생각되는데, 혹시 여기 계십니까?”

그의 물음에 주변의 모든 소란이 멎었다.

방금 언급된 파티가 나타나길 기대하는 것이었다.

‘아니, 무슨…….’

갑자기 범인을 색출하는 것처럼 변해 버린 분위기.

예정에도 없던 상황에 유지한과 김시후는 조금 난감해졌다.

무엇보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꿀잼의 테이블을 지그시 바라보는 레드홀의 누군가였다.

거대 길드인 레드홀의 정보력이라면 영웅부 연구소에서 흘러나온 정보 정도는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김시후는 유지한에게 눈으로 말했다.

‘형, 어쩌죠?’

레드홀이 깔아 놓은 판.

저들의 의도대로 손을 들어 올릴 것이냐.

아니면 이대로 숨어 버릴 것이냐.

“어……. 자리에 계시지 않거나, 너무 부담이 돼서 나오지 못할 수도 있겠네요.”

“…….”

“없으신 것 같으니 이만 다음 질문으로…….”

고민하던 유지한은 결국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

“오오?”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민유리를 시작으로, 주변 모든 파티가 유지한을 주목했다.

따가움마저 느껴질 정도의 시선들.

그는 기대에 부응하고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질문을 한 레드홀의 파티를 바라보며 말했다.

“방금 언급하신 파티는 저희입니다.”

“역시 자리에 계셨군요.”

“뮤턴트 코드네임 MU-1302. 오롯이 꿀잼 길드의 소유였습니다. 얼마 전에 경매장을 통해서 팔아 버렸지만요.”

“호오…….”

언론에도 밝혀지지 않았던, 전세계 최초로 등장한 돌연변이를 잡은 파티의 등장.

영웅들은 그를 보며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소리쳤다.

“아주 운이 좋으셨나 봅니다!”

입구 쪽 테이블에 앉아 있던 민주용의 외침이었다.

그는 상당히 아니꼬운 시선으로 유지한을 위아래로 훑고 있었다.

“운이요?”

“네! 운이요.”

그는 꿀잼이 이뤄 낸 성과를 오로지 운으로 취급했다.

유지한은 코웃음을 치며 그에게 말했다.

“그렇죠. 저희가 운이 좀 좋았네요.”

“흥. 인정은 하시네요.”

“그리고 실력은 더 좋았죠.”

“……!”

휘유—

유지한이 뒤에 덧붙인 말에 어디선가 호응하듯 휘파람과 웃음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러자 조금 발끈한 민주용이 말했다.

“돌연변이가 생각보다 약했겠죠. 기껏해야 괴아리 아닙니까? 다른 5급 파티에서도 충분히 잡아낼 수 있었을 겁니다.”

“당연히 돌연변이는 저희보단 약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냥에 성공한 거죠. 당시 저희보다 앞서 대치 중이었던 파티는 전멸 직전이었지만요.”

“…….”

민주용은 불편한 표정으로 유지한을 바라봤다.

어째서인지 민유리와 함께 앉아 있는 저놈이 주목받게 되는 상황 자체가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이다.

그에게 시선을 돌려주던 유지한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가 마음에 들지 않으신가 봅니다.”

“이런 별것도 아닌 일로 호들갑 떠는 모습이 조금 거슬려서 말이죠.”

“그 별것도 아닌 일을 저희가 해냈으니까요.”

“그러니까 그건 당신들이 운이 좋아서…….”

“그쪽이 돌연변이를 마주쳤다면 또 모르죠. 운이 나쁘다고 생각했을지도.”

“……그건 내가 그 몬스터를 잡지 못했을 거라는 뜻입니까?”

돌아온 질문에 유지한은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마치 상대를 놀리는 듯한 모양새였다.

‘저 건방진 새끼가……!’

감히 날 무시하다니!

분노한 민주용의 주먹이 부르르 떨려 왔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저 시건방진 놈에게 가르침을 내려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유지한을 잠시 노려보다가 고개를 홱 하고 돌려 버렸다.

교류회에서 난동을 부릴 수는 없었기에.

“그런데 옆에 계시는 건 눈송이의 민유리 씨 아니십니까?”

“맞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길드에서 유지한에게 질문을 던졌다.

옆에 있던 민유리가 유지한을 올려다봤다.

“눈송이가 이번 교류회에 참석한 이유는 둘째 치고, 왜 같은 테이블에 앉으신 건가요?”

“별거 아닙니다. 강당에 테이블이 부족하다는데 저희가 여기서 가장 인원이 적으니까요. 민유리 씨와는 MA에서 마주쳤던 기억도 있고요.”

“그럼 파티가 딱 2명뿐인 건가요?”

“예. 현재는 길드원인 저와 옆에 있는 김시후 길드장까지, 총 2명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단 2명이서 돌연변이를 사냥하여 순식간에 4급에 올라선 파티.

4급 중에서도 인지도가 있는 민유리와 합석할 정도의 친분을 가진 파티!

지금 이 순간, 교류회의 분위기를 타고 꿀잼에게 새로운 신예라는 이미지가 생겨나고 있었다.

‘저쪽은 조용하네.’

여러 질문에 답변하던 유지한은 케로즈의 4급 파티를 바라봤다.

그러나 그들은 유지한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이어지는 몇 가지 질문에 더 답해 주던 유지한은 마무리를 맺듯이 말했다.

“관심을 주시는 건 좋지만, 이번 건 겨우 시작에 불과하죠. 앞으로 저희는 여러분과 같은 4급 파티로서 더 인상적인 활동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짝짝짝—

유지한은 박수를 받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미확인 돌연변이를 사냥한 소규모 길드의 파티.

오늘 이 교류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그들의 얼굴을 기억할 것이었다.

누군가는 영웅 활동을 함께하는 동료로서, 다른 누군가는 반드시 넘어서야 할 경쟁자로서.

“으흠.”

주변의 반응을 본 김시후는 슬며시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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